지식은 마약이다

[우희종의 ‘좋은 세상’] ‘지식 중독’에 걸린 좀비들 좋은 세상을 위해 뜨거운 감성의 겸허한 지식인 거듭나야

검찰이 조국 장관 가족에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수사를 가하고 있을 당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 모임'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이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 연합뉴스
검찰이 조국 장관 가족에 폭압적이고 반인권적인 수사를 가하고 있을 당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 모임'이라는 모임의 회원들이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 연합뉴스

마약은 말기암 환자와 같이 강력한 진통이 필요한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약물이지만, 대부분은 중독성과 반복 투여가 뇌와 신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그 해악이 심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중독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각인되어 본인 삶의 일부가 된 상태이기도 하다.

물론 데카르트식 지식이 근대 사회를 뒷받침하는 유용한 인식 체계라는 것에 이의를 달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사회는 지식에 중독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이는 상대적으로 드물다는 것에 근대 위기가 있다.

이성에 근간한 지식이 만든 세계는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면서 인류세(anthropocene)를 만들어 내었지만, 그 결과는 지구 생태계 위기로 나타났다. 기후 위기는 물론, 신종 인수공통전염병의 창궐이나 미세플라스틱과 항생제 내성균의 지구 오염 등 어느 개인이나 정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근대 사회가 초래한 생태계 위기에 대한 언급이 일상화되면서도 우리는 근대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근대 지식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근대 사회의 인류세 내지 자본세(capitalocene) 등의 거대 위기 담론의 강조는 근대 지식이 개인 삶에 미치는 해악에 대한 검토를 놓치게 한다.

‘허약한 지식인’에 대해

종종 듣게 되는 ‘허약한 지식인’이란 표현에 담겨 있는 것은 현실 변화에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의미 외에도 세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도 의미한다. 즉, 지식 자체가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장애물도 됨을 의미한다.

근대 지식 구조는 기본적으로 원인과 결과에 근간한 논리 실증적인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지식인이 ‘~ 때문에’, ‘~이니까’ 등으로 세상과 사물을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결정적 함정은 최종 결론의 근거가 되는 원인에 대한 이해나 인식이 언제나 한정적이라는 데에 있다.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만들어지는 세상과의 상호 교류가 인간 의식 형성의 기반이라는 것은 인간 의식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말해 준다. 인간 감각기관이 지닌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원인에 대한 이해는 최종적으로 충분하지 못한 결론을 낳는다.

지식에 중독된 이들의 공통점은 지식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더욱이 주변에 그런 시각을 강요하는 것에 있다. 그런 강요는 지식인들이 지닌 엘리트 의식이라는 우매한 형태로 대중을 향한 갑질이 된다.

영화 '조커'의 스틸 컷. 얄팍한 인과의 지식에 갇힌 '허약한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있다.
영화 ‘조커’의 스틸 컷. 얄팍한 인과의 지식에 갇힌 ‘허약한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있다.

엘리트 의식에 중독된 좀비

지식인들은 자신 주장의 원인으로서 근거가 있어야 하기에 종종 해외 유명 학자나 철학자의 이론을 인용하지만, 그렇다 보니 정작 자신의 말과 주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고작해야 해외 유명 학자를 거론하면서 그 이론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해’ 정도로 자기 위안을 삼고 밥 벌어 먹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주변에 널려 있는지 모른다. 그 유명학자나 철학자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지식인인 셈이고, 결국 이들은 허수아비 내지 좀비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불행히도 우리사회는 지식의 중독성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지식인들이 국민과 대중을 설득하고 여론을 주도해 갈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근대 지식이 분명히 인류의 자산은 맞지만, 지식만이라는 사회적 중독 상황은 작게는 개인의 삶과 사회 현상에서, 크게는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해악을 자각하지 못하게 한다.

마약 중독의 극복은 중독에 대한 직면과 인정으로부터 출발한다. 급변하는 사회현상과 국민 요구에 대하여 지식으로 이해하려 하거나 설명하는 순간, 원인과 결과 형태가 있으니 잠시 사람들의 마음을 살지는 몰라도, 허약한 지식인의 공허한 원인 분석과 언어유희 속에 정작 주목하고 살려야 할 사회 동력과 생명력은 사라진다. 세상을 지식만으로 헤아려 알 수 있다는 오만한 자세다.

근대 지식에 있어서 지식인들이 놓친 것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좀비의 삶을 살아가는 근대 지식인들이 지식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엘리트 의식을 던져버리는 것이 우선이다. 세상을 건조한 지식으로만 바라보고 설명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집중하여 공감하며, 그에 더해 사회나 삶의 건강성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 지 성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전히 진행형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권력의 일방적 모습을 보면서도 이를 단지 ‘강남 좌파의 위선’이라 치부한 지식인들은 지식이 만든 틀 속에서 그런 여론을 만들기 위해 자행된 인권 말살을 놓친다. 인권 존중이 누락된 지식과 세계관이란 공허한 관념의 세계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능했던 전 정부와 함께 우리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검찰 독재 정부 출범에 있어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인간과 사회에 애정을 가진 지식인으로

아무리 각종 이론을 제시하고 현란한 말솜씨로 자신을 변호한다 한들, 현실에서 나타난 결과는 지식인들의 시선이 얼마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열악한 국내 언론 지형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성찰하는 지식인(지성인이라 구분하기도 한다)이 아닌, 해악의 지식 중독인들이 언제나 그런 국내 언론의 먹거리 제공을 하고 있기에 국제 신뢰도 최하의 국내 언론이 유지되고 있음도 살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뒤떨어진 분야가 여야 불문하고 여전히 1970~80년대식 정치 문화에 머물러 있는 정치권과 기득권에 아부하는 주류 언론에 더해, 그동안 해외 지식 수입으로 먹고 살아온 지식인 집단 아닌가 한다. 잘못된 정권을 촛불 하나로 몰아낸 높은 민주 의식을 지닌 국민에게 치명적 폐해를 끼치고 있는 집단들이다.

이제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지식 중독에서 벗어나 지식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지, 삶의 현장에서 왜 중요한지를 제대로 살펴 살아있는 지식인이 되어야 할 때다. 마약을 고통을 절감시키는 약으로 만들어 활용할 수 있으려면, 지식인들의 뜨거운 감성과 겸허한 태도가 요구된다. 이러한 자세에 더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지식 중독이 만들어 내는 허구의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좀비로 살게 하는 지식 내지 엘리트 의식의 갑질로부터 벗어나, 말로부터 행동으로, 머리로부터 가슴을 통해 발로 이어지는 삶이 기다린다.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그것이 생명이다.

글쓴이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

우희종은 서울대 수의과대학를 1981년 졸업한 후 동경대학교, 펜실버니아대학교,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1992년 이후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통일수의학센터장,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 전국민교협 상임의장,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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