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도 낡았나 보다
[우희종의 ‘좋은 세상’] 진영 논리에 갇혀있는 맞불 집회 이를 지켜보는 기득권의 실익 챙기기 혐오·비난 대신 ‘거리의 축제’ 만들자
지난 민주당 정부와 성격이 다른 국힘당 현 정부가 들어서서 여러 분야의 국정 기조가 방향을 선회하면서 불안정해졌고, 검찰 출신 대통령의 비정치적 행보 역시 사회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취임 1년도 안된 신임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로도 나타나지만, 동시에 거리에서의 진보와 보수 단체 간의 시위 빌미를 준다.
메아리 없는 진보-보수 집회
아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적 분열과 갈등은 봉합되기는커녕 더욱 첨예하게 ‘맞불 집회’라는 형태가 되어 서로를 비난하는 목소리와 구호가 거리를 채운다. 비록 언론에서는 양측 균형을 맞춘다는 취지로 두 집회가 비슷한 비중으로 보도되지만, 거리에서 보이는 집회 인원은 서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 수는 그리 많지 않고, 연령대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집회는 서로 상반되는 구호를 외치지만 소통이나 상호 이해는커녕 평행선을 그으며 목청만 높이는 상황이다.
서로 듣지 않고 있는데 누구를 향한 외침일까? 결국 자기 진영 사람들이 대상이다. 명분은 대중의 입을 대신한다지만, 듣는 사람이 늘 듣는 형태다 보니 진보건 보수건 자기 진영 사람들이 좋아하는 강한 표현이나 상대방 비난 구호를 외칠수록 환호와 지지를 얻는다. 어느 집회에서나 감정이 작동하고 사람이란 자신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악마화한다지만, 특히 보수단체 쪽에서의 강력한 혐오 발언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우리 사회 다수를 대변하고 있을까
자신이 속한 집단 충성도가 있어서 길거리 집회에까지 열심히 나오는 이들의 열정과 의지는 진보나 보수나 차이 없겠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의 얼마만큼의 다수를 대변할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필요하다. 물론 집회 참여자 숫자도 훨씬 많고 사회 공공성을 강조하는 진보 집회쪽 참여자들에게도 해당되지만, 극혐의 발언을 내뿜는 길거리 보수단체를 보면서 과연 저들이 국내 보수층을 얼마나 대변할까 싶다.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 대선 때 서울 강남 내지 한강변 지역에서 대부분 90%를 넘었지만, 강남에 사는 이들이 추운 겨울 주말에 현 정부를 지지하는 길거리 집회에 얼마나 나오는지는 의문이다.
내 주변을 보면 많은 이들은 소란스런 거리 집회에 관심 없고, 진보나 보수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들은 거리에서 목소리 높이는 진보나 보수와는 또 다른, 제3의 집단이다. 이들에겐 진보 보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소위 중도층도 아니다. 대화나 사적 자리에서 사회를 걱정하고 공공성을 말하는 온건한 이들이 대부분으로 현실에서는 이념이나 공적 가치보다는 자신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줄 쪽이 어딘가 판단해 선택한다. 이들은 아무리 진보가 정의를 외쳐도, 혹은 보수가 성장을 외쳐도, 그에 흔들리기보다는 자신들 실익을 기준으로 정치적 선택을 한다.
실익 챙기는 기득권들은 ‘중도’도 아니다
그 점에서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은 ‘경계가 느슨하고 매우 유동적인 보수’이며, 사회는 이를 기조로 한 사회다. 국제 냉전의 마지막 남은 지역으로서 70여년의 분단 상황을 내려오면서도 여전히 기득권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본인의 내면화된 기득권이 손상되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서지만, 이득이 된다고 하면 다시 인물이나 정당을 가리지 않고 지지율 90% 이상의 지지를 보낸다. 이들을 중도라 불러서는 안된다. 이들을 중도라고 칭하며 끌어들이고자 한다면 각자도생의 보수사회가 될 뿐이다.
이처럼 진보-보수라는 프레임에 관심 없이 실익 위주의 보수 계층이 기성 사회의 주류로 있다면, 치열한 생존 경쟁에 놓인 2030 세대에 있어서도 진보-보수는 양쪽 모두 사회 기득권이자, 서로 지분 다툼을 하는 것일 뿐이며 이들 간의 대립과 갈등 구도는 대부분 관심 밖이다.
과거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70~80년대와는 달리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단순 도식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뒤에서 자신들의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다수에게 진보나 보수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아쉽게도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떠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길거리에 선 진보와 보수 단체들은 어찌 보면 이들에게 여전히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사회적 표면에 불과하다.

낡은 이분법 대신 ‘축제의 장’을 열자
격렬한 구호로 진보니 보수니 하면 싸우게 하면서, 뒤에서 실익을 챙기는 세력은 국힘당만이 아니라 민주당 내에도 있다. 이들의 온화한 얼굴과 우아한 발언 뒤에는 실질적인 혜택과 이득에 대한 계산이 작동한다. 그 점에서 진보건 보수건 강성 발언이나 표현은 어찌 보면 그런 이들에 의해 결과적으로 이용당하는 순수한 이들의 것이다.
2030 세대의 무관심과는 달리, 진보-보수라는 낡은 이분법적 구도 속에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면서 정작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21세기 적폐 집단’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진보 보수 불문하고, 일본이나 미국이나 언제고 환영한다. 자신들에 유리한 분열과 갈등 상황을 위하여 각종 매체와 여론몰이를 통해 자신들 지지자들로 하여금 더욱 강력하고 강한 구호를 외치도록 선동한다.
우리의 할 일은 거리 집회가 굳이 혐오와 비난이 난무하는 강력한 주장의 장이 되기보다는 축제로 만들어 춤추며 풍자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가는 것 아닐까. 거리 위에서 진보-보수라는 낡은 틀도 버리고 각자의 삶이 존중되도록 서로 힘 모아 즐겁게 나아가는 축제 말이다. 삶의 진정한 악마는 늘 너와 나의 뒤에서 웃고 있다. 검찰 독재의 시대에는 축제의 언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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