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 밸리 와인은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됐을까

1976년 프랑스 와인 꺾고 세계최고 등극 나파 밸리내 ‘스택스 립’ 지역의 포도로 좋은 테루아르 외에 완벽에 도전한 사업가 ‘스택스 립’ 브랜드를 함께 사용하기까지

자신이 만든 와인으로 세계 최고 등급을 따낸 워렌 위니아스키.
자신이 만든 와인으로 세계 최고 등급을 따낸 워렌 위니아스키.

프랑스 와인을 따라잡은 미국 와인

지난 1월 17일 올해 만 118세로 세계 최고령자였던 프랑스의 앙드레 수녀(본명 뤼실 랑동 Lucile Randon)가 119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선종했다. 장수의 비결에 대해 적당한 노동과 함께 매일 먹는 와인 한 잔과 소량의 초콜릿을 들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와인은 풍부한 폴리페놀의 항산화 성분으로 인해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의 와인 사랑은 확산일로에 있다.

작년 한해 우리나라의 와인 수입금액은 약 7162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수입 국가별로 보면 프랑스가 1억 3030만달러, 미국이 9586만달러로 1, 2위를 기록했다. 전통의 와인 강국 프랑스를 신흥국 대표 미국이 추격하고 있는데, 미국의 와인이라고 하면 두 말할 나위 없이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Napa Valley)산 와인이다. 그런데 나파 밸리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이곳에 첫 번째 포도밭을 일군 것은 와인 제조에 적합한 지중해식 기후와 지질학적 구조 때문이었지만 나파 밸리의 포도 재배는 19세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좌절을 맛보았다. 사실, 좋은 테루아르(terroir, 포도 경작에 적합한 토양과 환경)만이 좋은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인간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후발 주자 미국 와인의 오늘을 있게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1976년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올라서다

그는 이론의 여지 없이 워렌 위니아스키(Warren Winiarski)였다. 그는 1976년 5월에 열렸던 파리 시음대회(Paris Wine Tasting, 혹은 파리의 심판 Paris judgement)에서 자신이 출품한 1973년 나파 밸리산(産)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 세계 최고의 와인이었던 프랑스의 샤토 무통-로실드(Chateau Mouton-Rothschild)와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 등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는데, 이는 그때까지 명함도 못 내밀던 캘리포니아 와인을 단번에 최고의 와인 반열에 올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이었는지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간행한 책 『미국을 만든 101 가지 물건』(101 objects that made America)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이 책에는 조지 워싱턴의 제복과 칼, 링컨의 모자, 닐 암스트롱의 우주복 등과 함께 위니아스키가 만든 나파 밸리의 와인 2종류가 포함되어 있다. 도대체 위니아스키가 어떤 일을 한 것일까?

그는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1928년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이탈리아에서 1년을 수학하게 되었는데 한 식당에서 와인 맛을 본 순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어 와인 양조의 길로 접어들었다. 귀국 후 그는 박사 학위를 마무리 짓지 않고, 집에서 발효를 시작했다. 위니아스키는 기후와 토양의 최상의 조합을 찾기 위해 나파 밸리 지역 전체에서 와인을 시음했다. 그러던 1968년 스택스 립(Stags Leap) 지역의 농부인 네이선 페이(Nathan Fay)의 와인을 시음했는데 그의 탐색은 거기에서 끝났다. 거기가 바로 최고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 주택이 들어서기 전에 빨리 포도밭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1970년 땅을 사들였다. 초창기는 살림이 팍팍했다. 그래서 1973년에 와이너리를 만들면서 값싼 중고 장비를 사야했으며 돈을 아끼기 위해 한 배럴에서 두 빈티지의 와인을 생산해야할 정도였다. 그는 당시의 유명 와인 컨설턴트인 앙드레 첼리스체프(Andre Tchelistcheff)의 조언을 받으면서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행하였는데, 전체 통 중에서 23번의 와인이 제일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최고의 포도로 23번 통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이웃의 다른 농장에서 재배하는 엉성한 포도 넝쿨과 달리, 위니아스키의 포도나무에서 자라는 싹은 완벽하게 곧게 서 있고 잘 정돈된 모습으로 자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 밸리의 포도나무 밭.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 밸리의 포도나무 밭.

‘벨벳 장갑 속의 강철 주먹’

그는 때때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정도의 완벽주의자였으며, 엄격한 가지치기를 통해 나무들이 들판에서 자라는 식물이라기보다 마치 플라스틱과 같은 기하학적 모양을 갖게 하였다. 이는 포도를 놀라울 정도로 고르게 익게 하기 위한 철저한 품질 관리의 일환이었다. 이처럼 전 과정에 걸쳐 완벽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자신의 밭에서 생산하고 숙성시킨 와인의 맛을 그는 스스로 ‘벨벳 장갑 속의 강철 주먹’(an iron fist in a velvet glove)이라고 즐겨 묘사하고는 했다. 마신 뒤 정확히 4초 만에 부드럽고 유연한 타격감이 이어지고 미묘한 탄닌의 그립감(tannic grip)이 뒤따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맛에 대한 천재성과 완벽주의적 관리 노력이 그를 평탄한 성공의 길로 인도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워렌 위니아스키는 파리에서의 승리 후에 자신의 상표 Stag’s Leap과 동일한 상표를 쓰는 와이너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같은 나파 밸리 내에 있는 와이너리였다. 그곳은 1893년에 처음으로 호레이스 체이스(Horace Chase)에 의해 설립된 후 주인이 여러 번 바뀌다 마지막에는 1971년 이를 인수한 칼 두마니(Carl Doumani)를 소유주로 하는 와이너리였다.

위니아스키는 두마니를 고소하였고 서로가 “Stag’s Leap”이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두마니도 맞고소했다. 긴 법정 공방 끝에 1986년 주 대법원은 와이너리의 이름이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 독점적 사용권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둘 다 그 이름을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다만 소비자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위니아스키의 와이너리에는 s 앞에 어포스트로피(apostrophe)를 찍어 Stag’s로, 두마니의 와이너리에는 s 뒤에 아포스트로피를 사용해 Stags’로 하도록 했다.

'스택스 립' 두 와이너리의 상표.
‘스택스 립’ 두 와이너리의 상표.

‘사슴의 도약’처럼 완벽을 향한 도전

‘스택스 립’(Stag’s Leap)의 지역명은 ‘사슴의 도약’이라는 뜻이다. 사냥꾼들에게는 절대 잡히지 않는 전설적인 사슴이 있었는데, 이 사슴이 인근의 해안가 절벽(palisades)에서 끝내 잡히지 않고 뛰어내렸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위니아스키가 파리 시음 대회에서 우승하자 시카고에서는 이미 와인을 고가로 사겠다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팔지 않고 더욱 특별한 행사에 쓰기 위하여 오히려 150상자를 되 사들이는 조처를 단행했다. 그만큼 그는 당장의 부(富)보다는 브랜드의 가치를 올리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위니아스키는 두마니와의 소송이 끝나고 그의 가족을 낚시 여행과 집에서 여는 스퀘어 댄스 파티에 초대했다. 싸움은 끝났고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기를 원했던 쿨한 사람이었다. 이에 두마니도 그 추악한 법정 다툼이 사실은 변호사들이 벌인 쇼에 오히려 의뢰인들이 휘말린 것이었다고 화답했다. 사실 너무 뻔한 결말이었기에 소송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우정을 쌓기로 하고 그 징표로 서로의 포도밭에서 생산한 와인을 50대 50으로 블렌딩한 ‘Accord’(합의)라는 브랜드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985를 출시했다. 나아가 이들은 1980년대 후반에 동맹을 맺고 ‘Stag’s Leap’ 명칭을 만들려는 다른 양조업자들에 맞서 싸웠다. 유명 브랜드가 되니 여러 양조업자들이 동일 상표를 쓰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명을 독점 상표화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패했고 이후 이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모든 와인에 ‘Stags Leap District’(스택스 립 구역)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파 밸리의 스택스 립 브랜드로 생산되는 와인.
나파 밸리의 스택스 립 브랜드로 생산되는 와인.

현재 이 구역에는 14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위니아스키 부부는 식당을 확장하거나 큰 이익을 남기고 토지를 판매하는 등 나파 밸리의 개발보다는 환경 보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했다. 이외에도 대의에 아낌없이 기부하는 등의 행위로 인해 위니아스키는 좋은 양조업자의 리더로 존경받고 있다.

‘Winiarski’라는 그의 성(姓)은 폴란드어로 “양조업자”를 뜻하는 winiarz에서 왔다. 이렇게 볼 때 그는 태생적으로 와인 양조업자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선조 가운데 어느 누구도 양조업자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양조업자가 아니라 절벽에서 뛰어내린 사슴의 DNA를 가진 것이 아닐까?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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