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른 87년체제 개편론의 현황과 전망(1)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새해 벽두 국회 개헌자문위 출범 선거제 개혁과 개헌 연계추진 로드맵 민주공화제 안정화의 또 다른 계기되어야

김진표 국회의장이 개헌자문위원회 발족식에서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진표 국회의장이 개헌자문위원회 발족식에서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해를 맞으면서 87년체제 개편론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새해 벽두에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자문위원회’(개헌자문위)가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구성되어 활동을 개시하였다. 2008년, 2014년의 국회의장 개헌관련 자문위원회와 2017년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개헌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 구성된 개헌자문위에는 헌법개정과 관련한 3개의 분과와 더불어 당장 이번 4월로 예정된 개정시한이 다가오는 정당·선거제도 개선에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정치제도 개선 분과위원회를 별도로 두었다.

87년체제 개편론 재부상의 구도

개헌자문위의 출범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취임이후 수차례 언명했던 현행 헌법 개정을 포함한 87년체제 개편론이 공식적으로 부상한 것을 의미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자문위 출범과 함께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여 그 실천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보였다. 김 의장의 로드맵은 선거법개정과 개헌 등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정치제도 개선 분과위의 적극적 활동을 통해 이미 활동중인 국회 정치개혁 특위의 선거법 합의 개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한편, 선거법개정 추진과 병행하여 선거법개정 시한인 4월초까지 개헌자문위에서 수렴된 개헌방향에 관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개헌절차법을 제정하는 동시에 개헌특위를 구성해서 국회 개헌안을 마련하여 내년 총선 전에 개헌국민투표까지 마치거나 혹은 병행하는 구상을 밝혔다. 김의장의 판단으로는 이런 구상이 실패하더라도 개헌이 총선의 이슈가 되도록 함으로써 개헌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중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개헌절차법에서는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하여 국민적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개헌의 필수조건인 사회적 공감대를 확대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하였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기자인터뷰로 한층 힘이 실린 선거제도 개선논의가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에 여야의원 120여명이 참여하는 등 사정·공안정국 하에서 여야의 극단적인 대치상황에도 불구하고 정치개혁의 물꼬를 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22년 여름에 이미 구성되어 청소년 참정권 확대 등 작지만 의미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바 있는 정치개혁 특위가 선거제 개혁의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국회의장 자문위에서도 정치제도 개선 분과의 선거제도 개편안을 마련하여 정치개혁 특위 등에서 효과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선거제개편이 헌정에서 부여받는 막중한 위상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현안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정치개혁 특위에서 단수안이 아닌 복수안으로 개편안을 수렴하게 한 후 이 복수안을 두고 직접적 이해관계인이자 입법의 향배를 좌우할 국회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최종안을 수렴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방안을 김 국회의장이 직접 제안하기도 하였다. 특히 복수안을 두고 전원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구도는 선거제 개편이 정당지도부들의 정쟁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국회의원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견수렴을 최대화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87년체제 개편론의 명암

사실 87년 헌법 개정 직후부터 그 한계에 대한 비판론이 제기된 바 있듯이 현행 헌법과 그에 결부된 정치관계법제에 개선점이 없지 않다는 데에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매번 국회에 개헌관련 국회의장 자문기구가 반복적으로 설치되어 왔고 급기야 2017년 개헌특위까지 구성되었던 이면에는 이와 같은 ‘87년 체제의 한계론’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헌과 정치제도 개선이라는 포괄적 방향성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공감의 폭과 깊이가 충분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미 국회에 자문기구만도 여러 차례 구성되어 독자적 헌법개정안이 제안되기도 하고 개헌방향에 대한 다양한 쟁점이 보고서로 제출된 바 있고, 2018년에는 대통령발의 헌법개정안이 부의되었다가 정치환경 탓에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기시감 때문이다.

결국 이번 개편론의 경우에도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헌법 제·개정 권력자로서 헌법의 저작권한(authorship)을 가지는 국민의 주도성과 공감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다시 한번 ‘그들만의 공론(空論)’으로 그치고 말 것이라는 회의론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김진표 의장이 제안한 것과 같이 국민이 수동적으로 찬반의 의사표시만을 하는 여론조사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부족하고 국민이 주도적으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도 의견을 집약시킬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의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개헌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핵심요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개혁을 위한 제반 여건도 유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3년을 넘기면서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감염병 위기에다 신냉전체제로의 전환, 우크라이나 전쟁,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 등으로 경제가 불안정하면서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삼중고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민감도가 떨어지는 정치개혁론이 탄력을 받기에 쉽지 않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과정의 효율성이 확보되지 않을 때 민생해결에 필요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 또한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없는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면 민생에 대한 정부와 국회의 생산적 협치가 요청되는 것과 병행하여 뚝심을 가지고 민주공화제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구현하기 위한 정치개혁논의를 지속해야 하는 당위가 있다.

1987년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 위원장이었던 현경대 전의원 등 국회 법개정안 기초소위원회 위원들이 기념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도서관/연합뉴스
1987년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 위원장이었던 현경대 전의원 등 국회 법개정안 기초소위원회 위원들이 기념서명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도서관/연합뉴스

87년체제 개편론의 현실적 의의

이런 차원에서 보면 호불호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대선에 검찰총장 출신 정치초년병인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수반에 취임한 이후 촛불혁명의 계기였던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의 성취가 역설적으로 퇴행하면서 정치는 실종되고 ‘검찰형 하나회’라 할 만한 사조직에 의한 사정·공안통치가 가시화되고 있는 현실이 어쩌면 다시금 87년 체제의 한계를 되짚어볼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국회 개헌자문위의 출범으로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87년체제 개편론이 진영대립의 구도를 넘어 무엇이 우리의 민주공화제를 더욱 안정적인 궤도로 복원시킬 것인가를 성찰하고 모색하는 새로운 실천의 계기가 되길 기원해본다.

글쓴이

김종철 연세대 법전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공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공법학회 회장,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정신에 기초한 시민헌법교육과 정치개혁 및 사법개혁에 기여하는 것을 헌법학자로서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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