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임명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국회선출 몫 임명은 헌법상 의무 형식적 국가원수의 역할은 대행되어야 헌법수호차원에서도 의무사항 한덕수 권한대행, 헌법정신에 충실하길
한덕수 권한대행의 위험한 도박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마지막 공직생활에서 끝을 잘 맺겠다는 다짐, ‘유종(有終)의 미(美)’에의 결의가 엇나가도 한참 엇나가고 있다. 애당초 무도한 윤석열 대통령을 “대인(大人)”이고, “가장 개혁적인 대통령”으로 아부했던 잘못이 있기 때문에 40년 공직의 화려함은 이미 때가 잔뜩 묻은 터다. 더구나 위헌·위법적이어서 내란죄 피의자까지 전락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선포에 순응했던 과오는 형사적 책임 유무를 떠나 역사에 오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나마 권한대행으로서 만회할 수 있는 천금같은 기회가 주어졌건만 그 행운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노욕을 부리고 있어 안타깝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그래도 감정을 억누르고 우리의 행위규범인 헌법에 따라 차분히 한덕수 권한대행의 잘못을 따져보자. ‘역시나’로 끝날지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의 마지막 양심에 헌법의 이름으로 호소해 보자.
헌법재판관 임명은 헌법상 의무!
한덕수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게 되면 이는 위헌적 직무유기이다. 헌법재판관 임명은 탄핵과 같은 헌법수호를 위한 제도가 가지는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민주적 정당성과 사회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삼권에 분할하여 이루어지도록 헌법이 결단한 사항이다.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이 3인을, 국민대표기관인 국회가 3인을, 법전문성을 최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대법원장에게 3인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되는 국회선출 몫 3인의 경우, 헌법이 국회에 실질적 임명권인 선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에게 형식적 임명권을 부여한 것이다. 정치적 협상으로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의 임명 여부를 다룰 사안이 아니다. 정치적 협상은 국회의 선출 전에 이루어질 일이며 협상의 유무를 불문하고 국회가 선출한 이상 권한대행은 임명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그 당부를 판단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정치적 협상을 이유로 국회의 선출권을 부정하고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국가원수의 권한이라서 안된다고? 천만에!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선포로 탄핵소추된 대통령을 엄호하고 있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권이 대통령의 국가원수의 지위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어서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편다. 현행 헌법에서 유신헌법의 잔재인 국가원수 조항을 유지해서 이런 궤변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가원수의 지위는 대행할 수 없다는 논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억지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국민의 기본권보장과 국민주권주의를 핵심원리로 하는 헌법에 의한 지배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원수의 직이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을 초월하는 우월적 지위에서 삼권의 오류를 바로 잡거나 관여할 수 있는 실질적 지위를 가지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상이다. 유신헌법이나 5공헌법처럼 제왕적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이라면 모르겠으나 현행 87년 헌법처럼 민주공화적 대통령제를 채택한 헌법에서는 같은 국가원수의 직이라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신에 따라 형식적·의전적 권한만을 행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어 그 직을 대행하는 권한대행은 이와 같은 형식적·의전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국가의 연속성을 위해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다고 외교사절을 신임·접수 또는 파견하는 일을 멈출 수 없으며, 중요한 헌법기관의 구성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통령 권한대행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의 지위에서 행하는 실질적 권한의 행사는 절제할 것이 요청된다. 주로 현상유지적 직무에 집중하고 중요한 정책의 형성을 통한 새로운 질서나 사례를 만드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국민이 직선한 대통령이 가지는 민주적 정당성을 온전히 가지지 못하는 임명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민주적 정당성을 수혈하는 것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되는 국무총리의 직에서 권한대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정당성을 제공해주는 국회의 인사권이나 입법권을 부정하는 일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더더구나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국익의 실현에 긴절한 필요가 있는 경우라면 대통령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여 탄핵소추가 된 상황에서 유일한 국민대표기관이 된 국회가 법률로 제정하거나 인사권을 행사하는 경우라면 그에 따르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 헌법이 명령하는 국가의 존재이유, 즉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국민의 주권을 철저히 실현하는 과제로 국민적 지지가 충분한 현안인데도 권한‘대행’이라는 형식논리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없어서 정작 때를 놓친다면 굳이 권한대행을 둘 이유가 무엇이랴!
헌법수호 차원에서도 헌법재판관 임명은 의무사항
탄핵심판권을 가지는 헌법재판소의 헌법상의 지위를 고려할 때도 헌법재판관 임명은 헌법상 의무로 보아야 한다. 탄핵심판은 고위공직자가 직무집행상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것을 요건으로 한다. 따라서 탄핵심판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공직자에게 중요한 국가권력에서 배제하는 헌법수호를 위한 제도인 것이다. 헌법수호를 위한 특별한 징계절차인 탄핵심판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헌재가 원래 필요한 9인의 재판관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 그 궐위는 바로 탄핵에 반대하는 것(즉, 법치주의를 훼손한 위법하고 부적격한 사람의 파면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셈이다. 헌재가 헌법수호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성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헌정의 위기상태를 신속하게 해소하는 것은 헌법을 수호할 직무를 가진 대통령의 지위를 대행하는 상황에서 최우선적으로 수행해야 마땅한 의무인 것이다.
헌법재판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이익충돌론
내란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의 손을 놓지 못하고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여당을 자처하는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또 다른 궤변은 ‘탄핵소추권을 행사하는 국회가 심판권을 가진 헌재의 구성에 관여하는 것은 이익충돌의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한마디로 헌법재판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궤변이다.
탄핵이 바로 그런 정치적 휘발성을 가지는 사안이기 때문에 헌법제정자들이 지혜를 발휘하여 대통령에게만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다 주지 않고 실질적 임명권은 3인에게만 부여하고 나머지 6인은 국회와 대법원장에게 분할하면서 대통령에게는 형식적 임명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 선출도 단순히 다수결로 따라 원내 1당이 독식하지 않고 여야정파의 의석수에 따라 배분함으로써 정치적 형평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국회선출 몫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헌법제정자의 결단 자체인 헌법재판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상식에 맞지 않는 궤변으로 국민을 현혹하는 것은 국헌을 문란케 한 대통령을 오히려 비호하는 만행에 불과하다.

한덕수 권한대행, 제발 헌법상 권한대행의 직무에 충실해야
그런데 지금 한덕수 권한대행은 헌법이 명령하는 직분을 정반대로 행사하려 들기 때문에 국정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있다. 국헌문란행위를 저지른 대통령과 그에 가담한 공직자들의 잘못을 신속히 조사하고 책임을 묻는 일에 필수적인 내란특검법을 거부하려 한다. 헌법수호와 헌정회복을 위해 긴요한 필요성이 있고 국민적 지지를 폭넓게 얻고 있는 입법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는데 매진하는 것도 모자라 자제해야 할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하려 한다.
반면에 헌정회복을 위해 신속히 처리해야 할 헌법재판관 임명은 권한대행의 역할이 아니라는 궤변에 따라 역시 거부하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탄핵심판의 기본적인 절차마저도 무시하면서 헌정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은 권한대행이라는 헌법상의 직분에 역행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 권한을 중대하게 남용하여 국헌을 문란하게 함으로써 초래된 비상사태를 맞아 나라의 공신력이 뿌리째 흔들리는 불안정성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헌정을 정상으로 회복시키기에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형국에 권한대행이 오히려 나라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드는 일을 자처하다니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부적격자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내란혐의자를 더 이상 비호하려 들지 말고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지금이라도 헌법상 의무에 충실하라. 그것만이 그나마 공직자의 기본 도리는 저버리지 않았다고 국민이 관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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