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입헌민주주의는 진화중이다
[김종철의 시민을 위한 헌법이야기] 내란제압,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진화과정 민주주의 회복력 재현하는 제도와 문화 제도: 국회·헌재와 법원의 자율과 독립 문화: 국민승리 체화한 새 세대, 한국 민주화의 역동성 이어갈 새 동력

한국 헌정사의 새 이정표: 1.26 윤석열 구속기소
한국 21세기사(史)를 ‘악명’(惡名)으로 장식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또 하나의 기록을 남겼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으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집행된 데 이어 또 다시 최초로 구속 기소된 사례가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이제 ‘살아있는 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이 현직에서도 형사소추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게 되었다. 아주 예외적으로 내란죄와 외환죄에만 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소추가 가능하도록 열어두어 사문화된 것으로 여겨졌던 「헌법 제84조」가 살아 숨 쉬게 된 것이다. 윤석열이 대선 토론회에 나와 손바닥에 쓴 왕(王)자를 보여주었을 때부터 진작 알아보았어야 했었는데 너무 늦은 것일까? 여하튼 21세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망상가를 뽑아 국정을 맡긴 것만으로도 한국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내란사태를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답을 하려는 노력은 섣부를 수도 있다. 아직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고 윤 대통령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수사도 진행 중이어서 쉽게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섣부름을 무릅쓸만한 나름의 동기는 있어 보인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찬찬히 톺아보고 바람직한 대응을 숙고하는 것은 굳이 시점을 따질 일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헌정위기와 헌정회복 사이의 역사적 갈림길에 선 ‘헌법의 순간’(constitutional moment)을 맞아 시민으로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숙고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단과 예측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헌법실천을 통해 역사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끊임없는 성찰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 칼럼(내란, 보수의 퇴행과 한국 정치의 재편성)을 통해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정치양극화의 현주소를 살피고, 보수의 퇴행으로 극우맹동세력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민주공화헌정마저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무모함과 폭력성을 보여준 극우맹동세력이 우리의 일상을 침탈하지 못하도록 다스리는 한편, 헌정수호세력을 중심으로 한국 정치를 재편하여야 할 과제가 한국 민주주의에 남겨졌다.
내란 제압: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또 다른 ‘진화’
한편, 1948년 이후 세 반세기 넘게 숱한 질곡을 뚫고 성장해온 한국의 입헌민주주의는 이번 내란사태를 통해 또 다른 발전을 기약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두 차례의 군사쿠데타는 물론 내전까지 겪은 분단체제에서도 민주공화제의 선도국이자 세계 시장경제의 중요한 플레이어로서 발전해온 자랑스런 역사가 내란사태를 계기로 다시금 재현되고 있는 여러 징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국 헌정사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새로운 전환을 도모하는 민주주의의 회복력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될 가능성을 포착하는 지혜와 안목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 입헌민주주의의 회복력을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형 민주공화제는 길게는 1911년 상해임시정부에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제를 국가형태로 채택한 이래 110여년 동안, 짧게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현행 헌정체제가 수립된 이래 40년이 살짝 못되는 기간동안 구축되어온 한국 나름의 독자적 민주공화체제이다. 이 헌정체제에 많은 특색이 있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이번 내란사태의 의미를 분석하는데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세 가지 특징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해보자.

분권형 대통령제의 성과: 국회의 자율성으로 통제되는 대통령제
첫째, 한국형 민주공화제는 의회와의 협치를 전제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권력구조로 채택하고 있는 전통이 있다. 부통령제를 두지 않는 대신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국무총리를 행정권의 2인자로 삼는다. 행정권은 대통령 1인에게 전속되지 않고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지만 대통령과 함께 행정권을 부여받는 정부를 구성하는 다양한 헌법기관들이 존재한다.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국정심의기관인 국무회의, 중앙행정기관인 행정각부가 그러하다. 대통령의 군사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 국법상의 행위는 ‘문서주의’에 따라야 할 뿐만 아니라 국무총리와 관계국무위원의 ‘부서’를 받아야 하고 중요 국정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한편 국회는 정부의 조직과 직무범위 등을 법률로 정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주요한 권한인 군통수권, 사면권, 공무원임면권 등을 모두 국회의 입법으로 통제하는 헌법상 권한을 가진다. 심지어 국가긴급권인 긴급명령권이나 계엄선포권에 대하여 법률로 정하고 그 승인 및 해제요구권을 가진다. 한마디로 국회와 협력하지 않으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안편성권, 법률안제출권, 법률안거부권,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명권을 광범위하게 대통령이 가진다고 하여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한마디로 제도와 운용의 착시현상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12.3 비상계엄사태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선포에 필요한 국무회의 심의나 국무총리 등의 부서에 의한 문서의 작성과 국회 통고 절차를 지키지 않아 탄핵소추되었다. 그리고 헌법이 정한 절차상 국회가 계엄체제의 유지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엄군과 경찰에 의한 국회봉쇄가 시민의 저항 때문에 실패하자 국회가 계엄해제를 의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군통수권 등을 전속적 고유권한으로 행사하고 행정권을 대통령 혼자서 전유하는 미국 대통령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바로 이러한 헌정상의 권력구조 때문에 계엄을 통한 내란이 통제될 수 있었다.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특유한 권력구조가 가지는 수직적·수평적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체제가 망상을 가진 권력자와 그 추종세력의 친위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여전히 대통령제를 제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의 민주화와 분권화를 위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헌정상의 분권형 권력구조가 가지는 장점이 확인된 계기가 이번 비상계엄사태였던 것이다.
헌재와 법원의 자율성과 독립성: 권력통제의 이중장치인 사법권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두 번째 특징은 위헌법률심사권, 탄핵심판권, 정당해산심판권, 권한쟁의심판권, 헌법소원심판권 등 헌법분쟁을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헌법재판권을 가진 독립적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활성화이다.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는 물론 분권화된 권력구조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 조직문화의 관행과 집권적 권력기관의 발호에 의해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황에서 위헌법률심판권이나 탄핵심판권을 가지는 헌법재판소는 한국 민주공화제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책임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헌법적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헌재가 반드시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며 과도한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에 따라 사법통치(juristocracy)를 심화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이중성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러나 헌법재판제도가 최소한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는 권력자를 국회의 탄핵소추를 배경으로 파면시킬 수 있는 중요한 권력통제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를 통해 입헌민주주의를 오히려 훼손하는 헝가리, 브라질, 타이 등 일부 나라들에서의 부정적 경험과는 전혀 다르다.
현재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 드러난 직무집행상의 위헌·위법행위만으로도 파면이 확실히 예상된다. 헌법상의 절차와 발동요건을 명백하게 어긴 비상계엄선포, 헌법적 한계를 벗어난 계엄포고령 제1호의 발포나 국회와 중앙선관위 점거, 주요 인사 체포명령의 위헌성과 위법성은 자명하고, 전국민 아니 전세계가 목도한 사실과 대통령 스스로가 행한 담화나 주장 등에 의해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세 명의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으나 그 운명은 갈렸다. 국민의 강력한 신뢰를 받은 노무현은 권력을 회복했고,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은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이제 내란의 명백한 죄과에도 맹목적 지지층을 향한 선동으로 국민 분열을 획책함으로써 도저히 헌법수호에 적격임을 증명할 수 없는 윤석열은 파면될 예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편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불안전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안정화가 더욱 진전되는 중요한 계기들이 축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한 권력자는 그 공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소중한 헌법적 관행이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권과 더불어 이번 비상계엄사태의 위헌위법성이 형법상 내란죄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 내란죄의 죄책을 소추하는 과정에서 법원이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계엄을 통해 독재자가 되려던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을 형사사법절차를 통해 책임을 물어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란죄 혐의자인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맹동파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만행을 저질러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협요소를 드러내었지만, 동시에 권위주의 체제에서 끊임없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심받아온 법원의 자율성을 역설적으로 확인하는 성과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최후보루: 권력통제의 삼중장치 ‘주권자의 직접행동’
마지막으로 한국형 민주공화제의 주요한 특징은 주권자인 국민의 직접행동이 헌정의 주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장민주주의’(plaza democracy)라고 부를 수 있는 ‘파수꾼 민주주의’(monitoring democracy)가 극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에 지속적으로 항거한 자랑스러운 ‘국민 승리’의 역사이다. 3.1독립운동, 4.19민주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6월 항쟁, 2016년과 2017년의 촛불혁명까지 모든 ‘헌법의 순간’에 시민들의 주권자적 결단과 실천이 있었다. 이번 윤석열 체포와 구속기소로 중요한 한 고비를 넘긴 12.3 내란사태의 진압은 조만간 그의 탄핵과 더불어 또 다른 자랑스러운 헌법의 순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12.3 내란 진압의 일등공신들을 통해 헌법공동체의 사회적 토대가 강화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12.3 비상계엄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주요한 동력이었고 한국 민주주의의 최후보루다. 특히 내란혐의자에 대한 탄핵소추를 방해하는 정치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12.7.에 이어 12.14.까지 국회 앞에 매일 모여든 시민의 중심에 2030 젊은 세대가 있다는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촛불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K-pop을 ‘떼창’하면서 절망의 순간을 희망의 순간으로 전환시킨 그 창의력과 역동성을 한국 사회가 기억하고 온 몸에 체화하면서 공유해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마침내 21세기 한국에서, 이제 아이돌 팬클럽의 알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일상의 행복을 보장해줄 든든한 성벽인 민주주의의 의미를 깨달은 새 세대가 탄생한 것이다. 이 세대는 근대적 주체론의 낡은 굴레로 묶어둘 수도 없는 탈근대적 주체의 특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개인화를 통한 원심력을 공동체의 소수자와의 연대를 통한 구심력으로 복원시키고 승화시키는 자발성과 유연함이 돋보인다. 시민으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능화(empowerment)가 공동체의 해체를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역동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새로운 주체가 헌법질서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이익과 권력에 매몰되어 헌법과 같은 공존의 준칙을 허무는 것을 서슴지 않는 구체제의 지배자들에게 질서옹호자로서의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알린 것이다. 이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무도한 일상의 침탈자를 응징함에 있어 관용과 인내와 절제의 미덕을 잊지 않으면서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른 준엄한 응징에 대한 결기를 한 순간도 흩트리지 않는다. 헌법을 모독하는 숱한 궤변과 만행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헌법대로’의 원칙을 고수한다. 내란사태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탄핵소추와 탄핵심판, 형사절차를 통한 문제 해결의 기본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내란상태를 신속히 해소하고 헌정을 회복하는데 집중하기보다 알량한 기득권을 어떻게든 지속시키는 일부 공직사회와 정치권의 무모함에도 그 파국이 초래할 수도 있는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내하면서 더디지만 단호하게 헌법적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물론, 반복하지만, 이들의 대항세력이 되는 극우맹동파의 행동대원을 자임하는 또 다른 2030의 출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행동대원들은 극우 기독교 선동가들이나 극우 유튜버들에 포획되어 동원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발성과 인권친화성에서 근본적으로 구별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들이 공존의 미덕과 헌법과 법률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실천할 때 극우맹동파의 행동대원들은 배제와 혐오와 폭력에 호소하며 헌법과 법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공화체제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시민들은 정치체제의 불안정성을 역동성으로, 정치과정의 비효율적 지체성을 안정성으로 전환시키는 한국형 민주공화제 특유의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지배 엘리트가 시대착오적인 파시즘적 독재에의 유혹에 굴복하여 내란을 시도할 때 일상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새 시대의 ‘좋은 시민’들은 직접 행동으로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법치에 기반한 민주공화적 입헌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고 있다.
당면과제인 내란의 우두머리 윤석열의 탄핵과 형사처벌이 이루어지고 나면 또다시는 헌정을 퇴행시키는 독재화 시도를 꿈도 꾸지 못하도록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대개혁을 차근차근 추진해 갈 것이다. 이번 내란사태의 조기 제압과 사후처리과정을 통해 진화하는 민주공화국의 주역 대한국민은 그런 자질과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번 내란사태로 드러난 87년 헌정체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 장점을 계승하는 국가와 사회의 개혁 과제와 방법론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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