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감수성’의 새 시대로 나아가야①

[우희종의 좋은 사회] 근대 이성과 위험사회를 넘기 위한 문제 의식 ‘합리적 이성’ 좇았는데 왜 지구는 위험해졌나 ‘자본세’가 지구 황폐화를...미래세대 삶 뺏어 인간 이성 보다 ‘생명의 감수성’ 사회되어야

인류에게 발생한 지 만 4년 만에 거의 7백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낸 지구적 재앙인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는 생명 안전에 대한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속에 추진된 무역장벽 철폐와 세계화라는 문명 형태는 전염병의 신속한 확산에 기여했고, 그에 따라 많은 나라가 국경 봉쇄의 형태로 질병 확산에 대응한 것도 기억한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험의 실체

또한 우리가 더욱 구체적 현실로 느끼는 것은 기후위기다. 인구 증가 및 산업화에 따른 화석 연료 소비 증가 등에 의한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는 지구 기후 변화를 초래했고, 서식지 파괴나 생태계 오염 등 지구 생태계에 이미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이로 인한 지구의 ‘제6의 대량멸종(mass extinction)’ 발생을 예상하기도 한다. 6천5백만년 전 공룡의 대량 멸종을 확인했던 인류가 새로운 대량멸종의 징후를 느끼고 있는 셈이다. 2019년 국제보고서는 생태계 내의 종 다양성의 소실은 수십년 내에 최소한 100만종의 멸종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팬데믹과 기후위기는 여러 지구 생태 변화 중에서 대표적인 현상일 것이다. 태평양 한복판에 인공 쓰레기 섬이 등장했고, 해양에 만연한 미세플라스틱 오염과 항생제 남용에 의한 치료 불능의 항생제 내성균 출현은 피할 길이 없다. 생태계 내 모든 생명체가 인간을 위해 착취되고 소비되면서 점차 지구 생태계는 물론 인간 스스로도 무너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식량안보나 물 부족, 생태계 건강함과 복원력 및 토양 비옥도의 상실, 더욱 빈번해지는 팬데믹, 인류 유산과 다양한 문화 및 무형 자산의 근본적인 손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근대사회를 앤소니 기든스나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risk society)’라 규정한 바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이제 일반인에게도 익숙해진 ‘인류세(Anthropocene)’가 그것이다. 지질계에서의 지질세는 1천3백만 년에서 3천5백만 년에 걸쳐 생겨나는 지구 지질 변화이자 그에 따른 생태계 변화를 말한다. 그러나 인류는 그런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지구 변화를 지난 200년 동안에 만들어 냈다.

밀렵당한 코뿔소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관리인.
밀렵당한 코뿔소 앞에서 흐느끼고 있는 관리인.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는 ‘합리적 이성’

인류세가 담고 있는 실질적 함의는 인간 중심의 인류문명이 지구에 끼친 부정적인 흔적이다. 짧은 시간에 새로운 지질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인류세의 속성은 인류세의 또 다른 표현인 ‘자본세(Capitalocene)’로부터 잘 나타난다. 지구 생태계를 수단으로 삼아 모든 것을 인간 욕망 만족을 위한 생산 자원으로 간주하고, 활용하고, 소비해 온 결과다. 우리의 미래세대도 살아갈 지구이건만, 이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발상으로 지구적 규모의 개발과 오염은 지구 황폐화를 불러일으켜 결국 미래세대가 누릴 몫마저 빼앗아 미리 소비하고 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초래한 전지구적 위기 상황의 출발점이 된 인류세는 신의 초월성이 중심이었던 중세를 넘어 개인 인권 확립에 기여한 데카르트의 합리적 이성과 만물의 척도가 인간임을 상징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Vitruvian Man diagram; Canon of Proportions)로 나타나는 인간 중심의 사유 체제가 그 바탕이다. 근대적 위험사회는 데카르트 식의 합리적 이성과 인간 중심의 욕망이 만든 엄연한 현실이며, 이제 지구적 생태 위기와 팬데믹 유행이라는 위기 상황에 직면해 그 몰락이 예고되는 시점에 온 셈이다. 막연했던 생태 위기나 생명 안전에 대한 중요성은 지구적 산업 재편과 경제 상황에 영향을 미친 코로나19 유행으로 재확인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무한경쟁 속의 지구 착취와 양극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를 넘어 인간 중심의 근대사회와 더 나아가 데카르트식 합리적 이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요구된다. 이런 시도와 구체적 노력 없이 기후위기는 물론 코로나19보다 더욱 강력한 전염병이 다시 올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이제 이 시대의 개선이 아닌,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지구적 위기극복과 더불어 근대사회를 넘어설 새로운 시대적 틀(paradigm)을 준비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그동안의 근대적 인간이 합리적이었다면 인류문명 역시 합리적이어야 하건만, 왜 지구 생태계 위기가 발생하고 인간 스스로의 목을 죄는 상황이 된 것일까. 초월에 근거한 중세라는 한 시대를 넘어 이성의 힘을 되찾은 근대사회로의 이행은 수 백년의 과정이었고 수많은 사회적 변화의 총체적 누적 결과였다. 이제 데카르트식 합리적 이성을 넘어설 혹은 대체할 인류의 지향점을 고민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던질 질문은 ‘왜 합리적 이성에 의한 근대사회가 이토록 위험사회가 된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인간 중심이 된 문명의 한계가 무엇인가’다.

생태주의는 왜 무기력한가

물론 이 두 질문에 대한 인류의 문제의식은 이어져 왔다. 첫 질문에 대해서는 20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 형태로 제기되어 해체주의를 포함해 ‘포스트~’의 유행을 기억한다. 또 두 번째 질문은 60여년 전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으로 시작된 생태주의가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바이다.

그런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태 위기의 심화와 팬데믹 유행 상황이 개선보다는 오히려 왜 악화되고 있는 것일까? 그토록 우리가 강조해 온 생태주의는 무엇을 해온 것이며, 또 이제는 한 시기의 철학적, 미학적 사조인양 여겨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상징되는 근대문명의 한계를 넘어서는 다음 시대의 틀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와 팬데믹에 있어서 반세기 넘은 생태주의와 유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를 볼 때, 여전히 목소리 높은 생태주의자들은 단지 개발론자들의 탓을 하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무력했던 책임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서양 문명의 근대성을 비판한 포스트모던의 문제의식이 정당했다면 왜 사회나 문명 전환을 가져오지 못하고 관념적인 형태나 키취적인 문화 현상으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치열한 성찰과 함께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 제시가 요구된다.

우선 근대문명의 기반인 합리적 이성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데카르트의 ‘이성이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인 것이 모두 이성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 질문을 통해 이성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성과 초월성 모두의 영역에서 합리성이 있어야만 한다는 인식 전환과 함께 근대적 이성만이 강조되면서 지금의 인류 위기가 등장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다양한 이론으로 무장된 생태주의가 결과적으로 무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명 감수성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편, 인류 문명과 문화는 인간 삶의 현장에 근간한다. 삶의 현장은 지극히 물질적이며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이뤄진다. 물질적 터전 없이 진행된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다. 근대 이성을 넘어서서 삶의 현장을 바꿀 물질 기반의 시대적 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관념적인 지적 유희는 될지언정 이 위험사회를 대체할 새로운 시대적 틀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위험사회를 넘어 생명 안전의 새 시대를 위해서는 근대적 이성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생태주의의 실패는 ‘생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성에 근간한 ‘주의’에 있었다. 새로운 다음 시대에는 생태를 넘어 생명이지만, 동시에 이성의 ‘~주의’에 빠져서는 개선은 될지언정 시대를 바꾸는 틀은 제시 못한다.

우리가 친숙한 ‘~주의(~ism)’가 결코 답이 아니라면, 새 시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고, 생명 감수성에 기반한 시대이자 사회이어야 한다. 다음 시대를 위한 시대적 틀 제시에 있어서 이성을 넘어선 ‘생명감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이에 대한 논의와 함께, 앞으로 우리가 직면할 물질적 기반으로서 인공지능(AI)과 자율적 인공지능(SI)에 의한 ‘포스트휴먼posthuman’ 시대의 생명감수성의 역할을 제시하고자 한다.

글쓴이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

우희종은 서울대 수의과대학을 1981년 졸업한 후 동경대학교, 펜실버니아대학교,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1992년 이후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정년 퇴임했다. 통일수의학센터장,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 전국민교협 상임의장,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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