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긴축론의 오류(1) - 잘못된 비유가 갖는 권력

[현동균의 알기 쉬운 경제강좌] 슈바벤 주부의 논리, 정부 곳간설, 정부 부채 상속론 등의 오류에 대해

재정긴축을 주장하는 논리의 오류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사진=연합뉴스
재정긴축을 주장하는 논리의 오류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사진=연합뉴스

양날의 검인 비유의 화법

비유를 이용한 화법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에 양날의 검과도 같다. 어떤 내용을 보다 쉽게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면 듣는 이를 미혹시키는 효과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비유의 기법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복잡한 것을 청자가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방법인데, 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즐겨 사용된 바 있다. 청자는 그러한 화법에 의하여 부지불식 간에 설득 당하고, 또 그 비유를 쉽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과의 대화 중에 언제든지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할 수 있고, 따라서 그러한 비유적 화법의 전파력은 실로 막강하다.

그런데 가장 경계하여야만 하는 비유는 사회를 개인이나 가정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논법이다. 이미 그 논법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이러한 경우 사회는 단순히 개인의 합 내지는 몸집만 커진 개인으로 간주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논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합성의 오류’의 근원이 된다. 사회는 개인들의 단순 합이나, 혹은 몸집만이 커진 개인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합성의 오류를 내포한 논리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그로 인하여 그 논리가 사회정책의 기반이 되는 경우 모두가 그 해악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정긴축론에서 사용하는 비유

그같은 비유 중 가장 위험한 것들은 ‘작은 정부’와 ‘재정 확장 반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비유들이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세개의 슬로건이 있다.

1. “주부들조차 지출은 가계 수입 내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라는,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말한 바 있던 소위 “슈바벤 주부의 논리”
2. ‘정부가 퍼주면 나라 곳간이 빈다’는 “곳간설”, 그리고,
3. 부채를 그 자식에게 물려주면 안된다는, 일찍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주장하여 잘 알려진 “부채 상속론”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우화(愚話)들은 무언가 그럴 듯하고 일반인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다. 더욱이 강단의 교수들이 전면에 나서서 동조하는 주장을 하는 경우 그 설득력은 더욱 커진다. 반면 정치가들은 대체로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있는지라, 당연히 쉽게 설득당하거나, 아니면 아예 관심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따라서 그 이야기가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취급 당한다. 할머니들도 아는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핀잔을 듣는다.

그리고 이러한 비유의 전파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한 몫을 한다. 소위 우파라는 사람들은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리는 것은 단순히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 전략에 불과하다고 주장을 하는데, 강단의 교수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같은 논리를 신문 기고를 통하여 피력하며, 그들은 정부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바로 우국충정이라고 강변한다.

반면, 이 글의 독자들 중에서도 그 논리들의 허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듯 하다. 누군가 이러한 이야기를 주위에서 하면 적어도 그 논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도록 이러한 논리가 가지는 모순과 위험성에 대하여 몇 자 적어본다. 물론 특정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이 이야기들이 왜 틀렸는지 설명을 하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이기에 그런 분들을 설득함으로 얻는 효과보다는 노력이 더 클 수 밖에 없다는 단서는 추가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이야기들은 크게는 다음의 두가지 이유에서 모두 오류이다.

1. 현대 경제에서 화폐는 쌀이나 귀금속이 아니다.
2. 합성의 오류: 이는 일개 개인, 가족 혹은 기업에서 적용되는 이야기를 경제 전체로 확대할 수 없음을 말한다.

총리 재임 시절 몸소 마트에 들러 쇼핑하는 주부의 모습을 보여줬던 앙겔라 메르켈 전독일총리.
총리 재임 시절 몸소 마트에 들러 쇼핑하는 주부의 모습을 보여줬던 앙겔라 메르켈 전독일총리.

슈바벤 주부의 논리

근검 절약으로 유명한 독일 슈바벤 지역에 사는 가정 주부가 만일 수입을 초과하는 소비를 하게 되면 가계 채무가 증가하고, 결국 언젠가는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서는 결제 수단인 화폐를 어디서인가 획득하여만 한다. 자신 스스로 화폐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경우는 두가지 측면에서 슈바벤 주부와는 상이하다. 정부의 부채는 금이나 쌀로 상환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가 발행한 지폐 혹은 현대에 있어서는 컴퓨터 자판을 눌러 전산상으로 화폐를 창조하여 그것으로 채무를 상환한다. 즉, 정부의 채무를 또다른 형태의 채무인 화폐로 상환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국 통화로 표시된 정부 채권이 채무불이행에 빠지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는 1+1이 3이 아닌 것과도 같다. 정부가 채무 불이행에 빠질 수 있는 경우는 외화로 표시된 정부 채무에 한정된다. 단, 외국인이 원화 표시 정부 채권에 많이 투자하고 있는 경우, 그 채권을 매각하고 수취한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려 할 때 환율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이는 정부의 채무불이행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는 후속의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그리고, 정부가 지출을 하는 경우, 그 지출이 해외에서 사치품을 수입하기 위하여 전액 지출이 되어 외환보유고를 탕진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지출로 인하여 국내 소득이 증가하고 결국 세수가 증가된다. 참고로,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소위 ‘균형재정 승수’라는 일반에게는 다소 어려운 용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단순하니까 꼭 기억하자. 가령 정부가 100원을 지출하여 도로를 건설한다고 하자. 그 100원은 경제에 당장 소득을 100원 증가시킨다. 그리고 그 100원은 임금과 이윤이라는 소득으로 분배가 되고, 그 소득에서 예를 들어 80%가 소비로 지출된다면,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매출이 80원 추가로 는다. 그 이후 다시 그 80원의 80%인 64원 만큼의 소비가 추가로 증가되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이를 ‘승수효과’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소득의 총 증가는 100+ 100 x 0.8+100 x 0.82 +100 x 0.83+ … = 500원이다.

그런데, 만일 정부가 100원을 지출함과 동시에 100원을 정액세의 형태로 징수하면 어떻게 되는가. 일단, 재정은 균형이 된다. 그런데, 최초에 징수한 세액 100원이 미치는 직접적인 부(負)의 효과는 소비의 감소 80원과 저축의 감소 20원으로 나뉘어진다. 그 80원의 소비감소는 다시 그 액수의 80%인 64원의 소비감소로 다시 이어지고, 등등,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 정리하자면 소득의 총 감소는100 x 0.8+100 x 0.82 +100 x 0.83+ … = 400원이다.

그렇다면 정(正)의 효과와 부(負)의 효과를 합산하면 100원만큼의 순소득이 증가된다. 이 같이 재정균형을 이루면서 정부 지출을 증가시켰을 때, 최초 지출액 대비 소득이 증가하는 배수를 ‘균형재정승수’라고 하는데, 위의 예에서는 1(=100/100)이 된다. 이 이야기는 얼핏 궤변과도 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지출을 하면, 굳이 당장 정액세를 통하여 균형 재정을 달성하지 않더라도, 그로 인하여 소득이 증가하고, 따라서 세수가 늘어난다. 만일 그 최초 정부 지출이 경제의 각종 인프라 투자 등과 같은, 미래의 성장 동력을 증가시키는 정부 투자인 경우, 미래의 세수는 더욱 커진다. 또한 정액세를 부과하는 경우라도 빈부에 따라 차등을 두면 승수 효과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즉, 부자에게는 더 많은 정액세를 부과하고 빈자에게는 그 세금을 면제한다면 세금의 증가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감소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세금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부자의 소비는 덜 감소하기 때문이다.

곳간설의 오류

마찬가지 이유에서 “정부 곳간설”도 오류이다. 사실 쌀이나 화폐를 모아 놓은 창고와도 같은 정부의 곳간이라는 것은 현대 신용화폐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항아리’를 가지고 있다고 함이 옳다[주 1]. 성경에서 사르빗에 사는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항아리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곡식가루를 이용하여 선지자 엘리엇에게 빵을 대접하자 여호와 신은 그 신앙심을 긍휼히 여겨, 그녀의 항아리를 영원히 비지 않도록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항아리는 절대로 비지 않는다. [주 1] 이 이야기는 케인즈가 그의 저서 ⟪화폐론⟫ (1930)에서 다른 맥락에서, 즉, 자본가가 지출을 하는 경우, 그 지출은 자신들의 이윤으로 변한다는 말을 하면서 사용한 비유이다.

한국의 국가부채 추이. 다수의 재정론자들은 이같은 국가부채를 국민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줘야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픽=연합뉴스
한국의 국가부채 추이. 다수의 재정론자들은 이같은 국가부채를 국민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줘야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픽=연합뉴스

부채상속론의 오류

부채 상속론도 동일한 이유에서 오류임은 분명하다. 부채를 상환하는 주체는 가계가 아니라 정부이다. 물론 혹자는 그로 인하여 미래에 후대들이 세금을 ‘더’ 지불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위의 균형재정승수에서 이야기한 바처럼, 이 주장은 이론적으로 틀리다. 사실 이 “부채 상속론”은 노벨상 수상자이고 현대 주류학파 경제학의 대부라고도 할 수 있는 폴 사뮤얼슨과도 같은 주류 경제학의 거장들도 인정하지 않은 아주 소수파의 이론에 불과하였는데, 경제학에서의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심화됨에 따라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그 주장의 뒤에 있는 사고는 아주 단순하다. 경제는 한 민간 가계가 몸집만 커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기에, 부모 세대의 부채처럼 부채는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화폐를 발행하여 부채를 상환하며 더욱이 그 지출에 수반되어 미래에 소득이 증가하면 자연히 세수가 증가된다.

이 부채 상속론과 유사한 논리 구조를 가지는 주장이 소위 “리카르도 등가정리” (Ricardian equivalence theorem)라는, 무언가 수학적으로 엄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궤변에 불과한 이야기이다. 이름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전혀 없다. 사실 이 이론의 기본 생각은 아주 단순하고 오히려 유치하다. 인간은 모두 전지 전능한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는 로봇이고, 그들의 연산 프로그램에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미래에 세금을 더 징수한다는 공식이 입력되어 있기에, 그에 대비하여 로봇은 세금 지불할 돈을 지금부터 저축하고 반면 소비는 줄인다고 가정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부의 지출은 소비 진작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당장 하루의 생계를 걱정하는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직원이나, 건설 현장의 일급 노동자, 그리고 부자들도 모두 동일하게 정부 지출이 늘어나는 것을 미래에 세금의 증가로 간주하여 소비를 줄인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사회의 빈자들에게 더 이상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할까? 부자들은 저축을 더욱 늘릴까? 더욱이 미래의 세금은 미래의 소득 수준과 연결되기 마련인데, 10년뒤에도 지금과 같이 동일한 소득을 가질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고, 지금부터 10년뒤에 증가할 세금을 내기 위하여 소비를 줄일까? 심지어 이 이론을 긴축재정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제시하는 학자들조차도 자신의 소비 결정을 이러한 원칙에 의존하여 내릴까?

더욱이 이 이론은 실증적으로도 검증된 바가 전혀 없는, 비상식적인 인간 심리에 대한 가정에 기반한 그냥 공상과학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일 뿐이고, 재정지출을 억제하고자 하는 소위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궤변에 불과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론의 주장자들은 공상소설과 현실이 같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소비생활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결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에 자신의 이름 딱지가 붙어지게 된 이 이론에 대하여 정작 당사자인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회의적이었다.

재정긴축을 주장하는 비유에 내재하는 위험

비유라는 것은 종종 이해를 돕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사회를 개인과 비교하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이러한 비유들은 TV, 인터넷 및 유튜브를 통하여 배포되고 있는데, 각종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권능에 힘입어 경제에 문외한이었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태극기 부대까지도 세뇌시키고 있다. 그런데 현재와도 같이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 그리고 중국으로부터의 수출 수요 감소로 인하여 한국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을 때, 현대 화폐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합성의 오류에 사로잡혀 정부 재정확장에 반대하고 경제의 어두운 곳에서 고통 받는 대다수를 외면한다는 것은 중대한 범죄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중대한 책임은 위정자들에게 있다. 그들은 주변에 잘아는 대학교수나 경제관료를 섭외하여 경제정책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일임하고 자신들은 태평하게 지내고 있는데, 그들이 아는 지식의 수준은 태극기 할머니들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깝다. 조선시대의 현군 중에서 학문을 소홀히 한 현군은 없었는데, 이는 현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국의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아무리 일본의 아베 전 총리를 미워한다고 하더라도, 배워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인 하마나 고이치 전 경제 고문의 회고에 의하면, 아베 전 총리만큼 학구열에 불타는 사람을 본 적이 없으며, 경제학 교수인 자신이 아베 전 총리에게서 오히려 경제에 관하여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자질과 노력이 없다면 사실 위정자가 될 자격이 없다. 단순히 경제학 박사님 내지는 기획재정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니까 경제 정책의 모든 것을 그들에게 위임하여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위정자만큼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재정긴축론자들의 반론에 대하여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고명하신 경제학자들은 재정확대를 하기 위해 국가채무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선 필자는 ‘국가채무비율’이 무한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고에 계속하겠다).

1.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민간의 투자가 감소한다.
2.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3.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지면 환율에 악영향을 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반론들의 근거는, 최근 일본에서 출간된 저술의 표현에 따르자면(宮澤和男 2023),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에서만 적용되는, 현실과는 괴리된 공상적인 가정들이다. 경제학에서의 혁명이라고 간주되는,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일반이론』의 결론에서 케인즈는 자신이 개진한 이론이 장기적으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 하에, 경제학자들의 사상이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더욱 강력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어구로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그의 말은 그가 바라던 바와는 반대의 방향으로 실현이 되었다. 케인지언 이론의 전성시대 이후 1970-80년대에 접어들어 다시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여 소위 주류가 되었고, 옳든 그르든 현재의 경제학 교과서는 그들의 교리가 골격을 이루고, 그들의 이론은 경제학자들 뿐만 아니라 경제 관료, 중앙은행, 증권 분석가, 그리고, 언론의 마음까지도 ‘포획’하고 있으며 (Smithin 1996) , 그에 의하여 모든 정책이 입안되고 있다. 그런데 일견 어렵게만 보이는 그들의 이론들의 벌거벗은 모습은 사실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에서만 적용되는 공상에 다름이 아니다.(계속)

참고문헌:

Keynes, John Maynard (1930), A Treatise on Money, The Collected Writings of John Maynard Keynes, Vol 5, Elizabeth Johnson & Donald Moggridge (ed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Keynes, John Maynard, (1936),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London: Macmillan; 존 메이너드 케인스 (2012),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박만섭 역. 지만지.

Smithin, John (1996), Macroeconomic Policy and the future of capitalism, Edward Elgar.

宮澤和男 (2023), アベノミクスと アリスの不思議の国からの敵: わかりやすく解説する アベノミクスの理論的基礎. 松陰館 (미야자와 카즈오, 아베노믹스와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로부터의 적: 쉽게 설명하는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기초)

글쓴이

현동균 경제분야 독립연구자

현동균은 금융인 및 경제학 , 경제 사회학 , 사회학 분야의 독립 연구자다 . 과거 30 년간 씨티그룹 , ABN AMRO, VTB 등의 대형 투자은행의 홍콩 및 싱가폴 아시아 지역 본부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인프라 , 에너지 , 자원 , 중공업 산업분야에 있어서 사업 금융 자문 , 직접 투자 및 자본시장 금융 조달 업무에 종사했다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 및 케임브리지대학의 메그나드 데사이 경 및 제프리 하코트 교수 문하에서 정치경제학 및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을 수학하였고 , 포스트 케인지언 및 제도학파의 시각에서 투자이론 , 화폐이론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해외 유수 경제학저널에 발표했다 . 한글 역서로는 《케인스 경제학을 찾아서》 ( 마크 헤이스 저 , 2021),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의 초대》 ( 존 킹 저 , 2022), ⟪ 권력의 법칙 ⟫( 프리드리히 폰 비저 저 , 2023) 가 있으며 , Bernhard Laum 의 고전 Heiliges Geld 를 영문으로 번역 및 해설하여 ⟪Sacred Money⟫(2023) 를 출판 . 최근 투자와 금융불안정성에 관한 논문인 ‘A financial frontier model with bankers' susceptibility under uncertainty’ ( Metroeconomica, Wiley: Feb. 2023) 를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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