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가 한국에 주는 교훈
[현동균의 알기 쉬운 경제] 아베노믹스에 대한 중간 평가① 아베노믹스의 성과는 가시적이지만, “금융완화정책=성공적” 주장은 과장
세개의 화살
2012년 12월 아베 신조(安倍 晋三) 전총리가 취임한 이후 모토가 된 아베노믹스는 ‘세 개의 화살’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화살은 과감한 금융완화, 두 번째 화살은 기동성 있는 재정정책, 세 번째 화살은 민간투자 촉진 성장전략이었다. 이를 통해 첫 번째 화살의 목표는 금융완화를 통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엔고(高)를 시정하고 수출을 증대시키며, 두 번째 화살의 목표는 재정지출을 통해 내수를 부양하는 한편 마지막 세번째 화살은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의욕을 고취하고 투자를 장려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참고로 아베 총리의 후임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주장하는 ‘신자본주의 정책’과 아베노믹스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에 대해 서두에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양자는 이름만 다른, 똑같은 정책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신자본주의’라는 이름의 명명자는 기시다 총리가 아니라 아베 총리다. 본인 생전에 무언가 ‘아베노믹스 버전 2’로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겸, 사회주의자라는 세간의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 창안한 명칭인데 그 유산을 기시다 총리가 이어받아서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성과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세 개의 화살이 어떻게 작동해 결과를 창출했는지 그 구체적인 ‘전달경로’는 일단 논외로 하고, 아베노믹스 이후 실질GDP의 상승, 실업률의 완화, 투자의 증가, 임금상승 등의 긍정적 효과가 가시화되었다는 점에서는 필자는 이의는 없다(위 표1). 그런데 필자는 이같은 세 개의 정책이 ‘원인이 되어서’ 그 같은 결과가 가시화되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 만큼 대담하지는 못하다. 즉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식으로 아메노믹스와 최근 보여지는 긍정적 결과는 사실 우연히 겹쳐진 사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다 확신을 갖고 양자 사이의 인과를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일단 논리적으로, 또한 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하고, 경험적 증거에 의해 검증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까지 도달하기에는 아직 기존의 연구가 많이 부족하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이 세 개의 화살이 작동했던 경로에 대해 연구해야할 문제가 아직도 태산 같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바람’의 차원에서는 세 개의 화살이 모두 작동해 그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는 ‘싶지만’, 그러한 바람 차원의 이야기를 단정적인 것으로 위장하는 것은 독자들에 대한 ‘사기(?)’이기에 자제하려 한다.
하지만 최소한 ‘아베노믹스는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다면 그러한 결과를 달성하는 것이 절대로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논리적으로 볼 때, 아베노믹스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요인에 의해 성과가 달성됐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다수 일본의 신문 기자 내지 기존의 경제학자들, 심지어 영미권의 유명 경제관련 잡지에서는 대체로 너무나도 ‘틀에 박힌’ 교과서적 설명으로 일관하면서 억지로(물론 무의식적으로 그런다고 간주하고 싶지만) 이야기를 짜맞추는 모습 일색이다. 그러한 이야기는 아베노믹스를 비판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혹은 옹호하고 싶은 사람들 양 진영에서 모두 공통적인데, 자신들의 결론을 이미 정해놓고 소설을 쓰려고 하고 있는 인상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아베노믹스가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괄호안에 집어넣어 유보하고, 독자들이 향후 아베노믹스의 진행과정을 판단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는 사항들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그치려고 한다. 단, 그런 과정에서 한국 경제 정책에 교훈이 될만 한 점은 분명히 밝히려 한다.
첫번째 화살: 대규모 금융완화
아베노믹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규모 금융완화’를 통해 이자율 하락 유도와 달러와의 금리 차이 확대로 기존 아베 총리 취임 전의 골치거리였던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다. 즉, 미국에 의해 강요된 1985년 플라자 협정후 ‘엔고 현상’을 역전시켰으며 그로 인해 수출을 용이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유동성 공급을 통해 주가를 부양시켰고, 저금리에 따른 가계 부담 경감과 소비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 등을 긍정적 효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율이 미미한 일본에서 통상적으로 금융 완화 정책의 경우 전가의 보도처럼 회자되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실종된 것은 당연하다. (물론 한국의 경우, 양적완화를 하는 순간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외치는 학자들이 무수하게 등장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같은 견해는 대체로 ‘화폐수량설’이라는 그릇된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옹호자들은 대규모 금융완화가 아베노믹스의 가장 큰 성과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론적 근거가 취약하다
그런데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이 칭송할 만한 업적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일단 이자율 차이는 그 자체로는 환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종래의 주류경제학의 교과서적 논리에서 양국 간의 이자율 차이가 존재하면 이자율이 높은 나라로 금융 투자가 이동하고, 그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낮은 금리의 자국 통화가 외환시장에서 약세가 된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린다. 수익이 높은 곳으로 자금이 움직인다는 것은 너무 자명하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함정이 있다. 이 이야기는 같은 통화를 사용하는, 예를 들자면 충청남도와 충청북도 간에는 성립될 수 있을 뿐이지 금본위제도가 폐지된 현재의 변동환율제도하에서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국가 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단 몇 퍼센트(%)의 추가 금리소득을 노리고 해외투자를 했다가 만기 투자 회수시에 환율이 역전되면 수십 퍼센트(%)의 손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금을 많이 운용하는 전문적 자산운용가들은 절대로 이렇게 무모하게 투자하지 않는다. 만일 해외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선물환 거래를 통하여 외환위험을 헷지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 예를 들어 일본 투자가가 미국채권 시장에 투자하면서 현물환 시장에서는 달러를 사고 선물환 시장에서 달러를 판다고 하자. 논의를 쉽게 하기 위하여 은행이 하나만 있다고 하자. 은행은 환리스크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만일 선물환 시장에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해 달러를 산다면, 현물환시장에서는 필히 달러를 팔아야 한다. 결국 현물환시장에서는 사자와 팔자가 항상 같을 수밖에 없고 선물환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사자의 물량이 팔자 물량보다 많아서 가격이 상승하고 반대의 경우 하락하는, 소위 청과물 시장처럼 적용되는 가격 형성의 논리는 절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물 환율 자체는 절대로 변할 수 없다. 그리고 선물환율은 양국간의 이자율 차이를 그대로 반영해 외환딜러들이 계산기를 두르려서 결정한다. (이에 관하여서는 본인의 이전 칼럼 “금리차로 자본이 유출되고 환율이 변동할까”를 참조할 것).
금리차와 투자간 상관관계 없어
따라서 금융 완화로 인해 환율이 변했을 때 단순히 이자율 차이를 노리는 재정거래에 의해 환율 변동이 발생한다는 이론적 설명은 오류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자율 차이와 소위 증권의 순투자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아래 그림 1). 이 그림에서 명백한 것은 달러와 엔화의 이자율 차이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본내로의 순증권투자액이 늘어났다는 것, 즉 그들의 이론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아베노믹스가 실시된 이래 대체로 금융투자자본이 일본내로 유입되었지 유출된 연도는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양적완화가 직접 엔저 현상을 야기했다는 논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이 기간 중 대체로 경상수지는 흑자를 시현했기에 경상수지가 환율 약세의 원인이라는 설명 또한 근거없다.

필자의 아주 막연한 추측으로는, 아베노믹스를 통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시장개입 의지가 공표되자, 그같은 ‘반(反)’ 자유주의 태도가 ‘시대역행적’이라는 주류 경제학적 사고에 최면이 걸린 외환 거래자들이 일본 경제의 침체 지속 가능성을 우려해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적극 매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정부가 엔화 약세를 위해 강경한 정책을 사용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투기자본이 먼저 엔화를 매도하기 시작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시장에 형성되고, 그것이 일종의 ‘공통 지식’이 되는 순간 외환시장은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즉, 양적 완화 자체가 아니라, 양적 완화라는 정책이 가져온 ‘심리적’ 효과에 의해 엔화가 약세가 되기 시작한 것이지,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듯 금리 차이로 높은 금리를 시현하는 외국으로 자본이 유출돼 환율이 움직인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사견으로, 사실 아베 총리의 경제팀이 이러한 고도의 심리적 전술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알고 있는 바로는 초기에 아베 총리도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기 이전이었고, 따라서 당시의 경제 참모였던 하마다 고이치 교수 등 소위 뉴케인지언의 정책을 일부 반영했을 가능성, 즉 ‘저금리→ 엔고 문제의 해결’이라는 너무도 단순한 흔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통상적인 경제 이론에 따라 ‘양적완화, 신용공여 증가→저금리→투자촉진’이라는 도식도 염두에 둔 듯한데, 사실 이 공식의 화살표들은 의문 투성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아무리 금리가 싸더라도 수요가 늘지 않으면 투자는 절대로 늘지 않는다.
엔저로 수출이 곧바로 늘었을까
마지막으로 언급할 점은 ‘엔저→수출 촉진’이라는 인과(소위 J-커브 효과)가 성립했는지 여부다. 사실 이에 대한 경험적 근거는 취약하다. 경험으로 볼 때, 일본에서는 이같은 효과가 아주 더디게 발생한다. 특히 아베노믹스 이전의 엔고 시대에서는 많은 일본 기업들이 해외로 이주해 현지화를 추진했고 현지에서 주요 부품을 생산해 그 부품들을 일본에 역수입했으며, 또한 수출시에도 엔화 가격을 기준으로 상품가격을 책정하는 등 일본 특유의 관행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시장보다 과다하게 높은 가격을 책정했는데 엔저 시대에 접어들던 초기에는 그 같은 엔고 시대의 상황을 조정하는 시기였다.
수출 가격을 정상화한다는 것은 단지 다른 국가(예를 들어 한국)와 이제는 경쟁을 시작할 수 있는 준비단계이었다는 것이지, 본격적으로 매출을 늘리는 단계는 아니었다는 학계의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반대로 해외에서 생산된 부품을 국내로 수입하는 경우 엔저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쳤다. 이에 관련해 언급할 점은 비록 시간이 경과됐지만 최근의 엔저 현상은 코로나 사태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를 겪으면서 원자재, 특히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더불어 무역수지상의 악영향을 초래한 바 있다. 따라서 ‘엔저→수출 촉진’이라는 공식은 아주 서서히 진행됐다.
그런데 양적 완화를 통해 일단 금융기관의 유동성이 풍부해진 것이 사실이라하더라도 이것이 직접 실물투자와 연결되지 못했고 또한 그로 인한 ‘부의 효과’ 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켰다는 증거는 없다. 반면 풍부해진 유동성은 오히려 자산가격의 상승을 부추긴 면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베노믹스의 첫번째 화살인 ‘양적완화’는 어느 정도만 성공적일 수 있었다. 만약 심리적 효과를 통해 ‘우연히도’ 엔저를 유도했고, 그로서 장기간에 걸쳐 수출의 해외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정책이 아주 성공적이었다는 세간의 평가는 ‘과장’에 가깝다.
아베는 왜 양적완화를 강조했을까
그런데 독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왜 ‘양적완화’가 그렇게도 주요한 정책으로 자주 등장했고, 아베 총리 자신도 강조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정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을 통제해 금융정책을 실행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에 물들어 있는 재무성의 관료나 야당 내지는 공명당 등의 연립여당을 설득해 재정정책을 통제하는 것보다 월등히 수월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있어서 집권자가 이데올로기와 정책 헤게모니를 놓고 재무성 관료들과 벌이고 있는 전쟁의 어려움은 한국에 있어서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에서는 최고 지도자의 지식과 의지가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가 쉽지 않았고 많은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재무성 관료의 두뇌를 세뇌시키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종교의 힘은 막강하다. 그런데 한국처럼 지도자의 지식이 일천하고 그 의지가 절멸된 상황에서 전쟁은 가히 백전백패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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