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대중영합주의자를 위한 길 안내서
단순하며 말초적어이야 하는 논리 비판은 비판을 위해서 비판해야 노벨상 같은 ‘권위의 오류’도 활용을 충실한 신도를 키워 헌금 모집 늘려야 문제는 초인적인 노력 필요..가능할까
현대사회에서의 성공적인 대중영합주의자는 돈과 명예와 권력을 향유할 수 있고 따라서 모든 이의 로망이 됩니다. 그러한 대중영합주의자가 되기 위한 중요한 원리를 몇 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단순 무식성의 중요성
첫째로, 제일 중요한 점은 주장하는 원리나 논점이 단순하거나 말초적이어야만 합니다. 특히 세상이 혼돈스럽고 불확실할수록 많은 사람들은- 일반 대중이건 고급두뇌라고 자처하는 경제학자이건 상관없이- 이러한 단순하고도 말초적인 원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그 단순한 원리들은 두뇌에 쉽게 각인될 수 있어서 세뇌하기 쉽고, 필요에 따라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남들을 설득하기 위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아주 편리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가 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과학철학자 조르주 캉길렘(Georges Canguilhem)의 ‘생명과학에서의 이데올로기에 관한 중요한 에세이(Canguilhem 1977)’에서는, 신의 질서하에서는 과연 배가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선장의 조타가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라는 라이프니츠 (Leibniz)와 뉴턴(정확히 말하자면 뉴턴의 대변인)의 논쟁이 간단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는,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신의 섭리 하에서 설계 및 예정되어 있기에 선장이 필요 없다는 것이고, 뉴턴의 논지는 신의 질서하에서라도 선장이 소위 조타자의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뉴턴처럼 말하기 시작하면 너무나도 많은 부차적인 설명이 필요하기에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잘 먹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결론적으로는 라이프니츠의 사상이 생명과학에서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어온 주류 사상이 됩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식의 방식에 의하면 물질세계에서는 그러하더라도 인간과 세상의 조화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또한 신에 의하여 인간 본성은 그렇게 조화를 만들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모든 것이 간단히 해결됩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방식의 단순성은 지금도 통용이 됩니다. 예를 들어, 작금의 신자유주의(neo-liberal) 사상의 논리도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조타자는 불필요합니다. 세상이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조타자가 주제넘게 나서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실업이 증가하면 ‘자연의 섭리에 반하여’ 노동시장을 유연하지 못하게 하는 각종 인위적인 장벽 때문이고, 경제위기의 원인은 정부가 주제넘게 간섭하기 때문입니다.
요는, 단순한 사상이 생명력이 길고 호소력이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성공적인 종교집단에서도 동일한 성향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인신공격을 포함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라
두번째는, 자신의 파벌에 반대하는 집단의 주장에 대하여서는 그 잘 잘못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공격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과거에 한 주장과 똑같은 주장을 지금 상대방이 이야기하더라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비난의 화살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비판은 오로지 비판을 위한 비판이어야만 합니다. 이에 조금이라도 양심의 거리낌이 있다면 훌륭한 대중영합자가 될 자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모든 황당한 논리를 동원하여도 무관합니다. 여기에는 다분히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고, 따라서 이에 의하여 대중영합주의자의 등급이 결정되며, 그것은 자신의 소득과 권력의 크기와 직결됩니다. 필요하다면, 자신의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도 적극 활용하여야만 합니다. 청자들은 그러한 가십거리에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에는, 상대방이 바로 반대편의 입장에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지옥의 나락에 떨어질 것이라는 식의 다소 유치한 주장도 필요합니다.
3. 권위의 오류를 적극 활용하라: 하이예크, 마르크스가 주장한 얘기라구!
세번째는,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거나, 혹은 상대방을 논박할 때, 가급적 논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권위의 오류’를 많이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신 자유주의’ 사상에 대하여 누군가가 시비를 걸면, 자신들의 종교의 수장 격인 하이에크 (Hayek)가 말한 “자발적 질서 (Spontaneous Order)”를 언급하면서, “당신이 노벨상 받은 대(大)경제학자보다 더 훌륭하냐”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국공산당이 마르크스주의의 충성스런 신봉자라고 운운했는데, 일단 시진핑이 자본론을 과연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또 저 개인적으로는 중국 공산당과 마르크스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의 권위를 빌어서 자신을 정당화하면 그것으로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필요하면 마르크스의 구절 중 다른 부분은 다 거두절미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강조하면 그것으로 훌륭합니다. 사람들은 게으르고, 복잡한 것을 싫어해서 따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가 보다’, 그리고 ‘이 분은 유식하다’ 대략 그 정도에서 그칩니다.
4. 비판의 목적은 상대의 교화가 아니라 내부 결속 다짐에 있다
네번째로 명심해야만 할 점은, 위의 두번째나 세번째 점에서 강조한 행위의 주요한 목적은 반대 편을 교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럼으로써 이미 자기 편이 되었거나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들 간의 내부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만 믿고 싶기 때문에 이미 자기 편으로 교화된 사람들은 구구절절 시비를 걸며 따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광합니다. 따라서 헌금의 액수는 늘어납니다.
반대편 파벌의 사람이 시비를 걸면 무시하면 됩니다. 혹은 상대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하고 싶다면, 그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식의 답변을 하면 됩니다. 어느 날 의심이 많은 신도가 아퀴나스 신부에게 묻습니다. “신은 완벽한데, 어떻게 불완전한 지옥을 만들었냐”고. 아퀴나스의 답변은, “당신같이 따지기 좋아하는 놈들을 위하여 지옥을 만든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 100%를 다 자신의 종교 신도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포기하여야만 합니다. 충실한 신도 몇 사람이 당신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5. 헌금 액수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것
다섯번째, 누가 자발적으로 돈을 기부하는가 하는 점을 신중히 고려하여 그때 그때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적절히 주장이나 비판을 조정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로 인한 이해상충이 생기는 경우에는, 헌금 액수의 많고 적음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면 됩니다. ⟪돈의 철학⟫의 저자 짐멜(Simmel 2013/1900)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현대 사회에서는 화폐로 인하여 정신적인 고민의 크기를 쉽게 숫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결어: 인기 관리를 위해서는 역사적 안목도 필요
마지막으로, 위의 원리들은 성공적인 대중영합자가 되기까지에 대한 지침이지, 그 위치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지침으로서는 불완전할 듯합니다. 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초인적인 각고(刻苦)의 노력을 요할 듯합니다.
기업을 만들기까지는 20년이 걸려도 단 5분만에 붕괴시킬 수 있다는, 별로 중요하지도, 인생에 도움도 되지 않은 어떤 사업가의 인터뷰를 얼마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일견 성공적으로 보였던 많은 대중영합주의자들이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영락(零落)하였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성공적인 대중영합주의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역사적인 식견도 아주 중요합니다.
일단 여기까지가 중요한 포인트인데, 아마도 더 중요한 점들을 제가 혹시 빠뜨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간과한 점에 대하여는 독자들의 예리한 지적을 기대합니다.
참고자료
Canguilhem, Georges (1977), ‘The development of the concept of biological regulation in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in Georges Canguilhem (1990), Ideology and Rationality in the History of the Life Sciences, The MIT Press.
짐멜, 게오르그 (2013), 돈의 철학. 김덕영 역, 도서출판 길; Georg Simmel (1900) Philosophie des Geldes. Verlag von Duncker & Humb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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