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샤먼이 만나야 하는 생명감수성 ②

[우희종의 ‘좋은 세상’] AI의 위험만 걱정할 시대 아냐 생태 위기의 ‘이성 독재 시대’도 함께 끝내야 감성 회복과 초월성·영성의 부활도 생명,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봐야

자연속에서 인간은 이성과 감성으로만 접근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생태계, 생명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샤머니즘, 애니미즘도 인류가 생태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자연속에서 인간은 이성과 감성으로만 접근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생태계, 생명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샤머니즘, 애니미즘도 인류가 생태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무엇이 위험한가

요즘 챗GPT가 등장하면서 일반인들도 부쩍 인공지능(AI)에 의한 시대적 변화와 함께 AI에 의한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구글 AI의 대부로 알려진 제프리 힌튼 박사가 구글에 사표를 내며 AI의 위험성 때문이라고 한 것이 뉴스에 등장했다. 또 AI 윤리 전문가로서 미국의 ‘젊은 과학·공학자 대통령상’을 수상한 빈센트 코니처 카네기멜론대 교수 역시 인류 말살의 AI가 더 이상 SF영화가 아니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다.

AI 연구를 늦추자는 집단 의견제시도 있다 보니 우리가 곧 접하게 될, AI에 의한 사회변화가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이 인간 생명안전 문제로 인식되는 셈이다. 사람들이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잘하는 챗GPT를 보며 다들 놀라지만, 누구나 앞으로는 챗GPT 정도의 AI가 아니라 앞으로 더 대단한 AI가 밀려올 것을 충분히 예상하기 때문이다.

챗GPT는 아무리 훌륭한 답변을 하고 작업을 수행한다 해도 그것은 인간이 만든 기존 지식의 짜깁기 종합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챗GPT는 알파고와 같이 인간 지능의 범위 내에서 그 확장을 돕는 일종의 도구적 AI다. 몇 천 원 하는 전자 수치 계산기가 인간이 생각하기 힘든 수치로 각종 복잡한 연산 계산을 해주는 것에 놀라는 이는 없다.

더 위험한 건 따로 있다

근대를 넘어 ‘생명 감수성’을 이야기하는 포스트휴먼 시대를 위해서는, 근대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포스트휴먼의 필연적 흐름이 담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지금 당장은 챗GPT처럼 답변이나 잘 하는 AI가 화제이지만, 조만간 스스로 생각하고 ‘인간에게 질문하는 AI’가 등장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그 초보적 형태는 등장했으며, 아직 일반인용은 아니지만 스스로 필요한 명령까지 내릴 줄 아는 생성형 GPT인 오토GPT가 그것이다.

오토 GPT는 사람이 목표만 정해주면 스스로 알아서 학습하고 과정을 선택해서 결론 내지 결과까지 만들어 낸다. 조만간 AI 자체가 주변 상황 정보에 근거해 스스로 명령을 내리고 행동하는 형태의 등장은 필연이다. 알파고나 여러 명령어를 넣어주면 짜깁기 해서 대답 멋지게 하는 AI나, 숫자 입력하면 처리해 주는 전자 수치계산기와 본질적으로는 다른, 메타인지(meta-cognition)를 하는 SI(Strong Intelligence · 강 인공지능)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 소크라테스처럼 각종 철학적 질문이나 미처 사유하지 못한 지점을 인간에게 묻는 AI가 등장할 것이고, 우리의 놀라움은 그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것이다. 장차 인간이 그 위험성을 몸소 체험하게 될 자율적 AI인 SI(Strong Intelligence)에 의한 포스트휴먼의 시작이다.

굳이 근대 이후를 위한 포스트휴먼 시대의 생명감수성을 말하면서 AI나 SI를 재차 강조한 것은, 우리의 근대적 인식 틀을 넘어서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새로운 관계성에 대한 인식 전환과 직결되어 있고 동시에 인류가 다음 시대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

최소한 우리의 삶은 기본적으로 이성과 감성으로 이뤄진다. 인간 중심의 근대 문명은 데카르트식 합리적 이성이 만든 세상이다 보니 아쉽게도 삶의 한 부분인 감성이 언제나 이성의 관리와 통제 속에 놓인다. 피카소나 고흐가 우리 사회에 다시 살아나도 결코 공식적으로 화가를 길러내는 자격을 얻지 못한다. 미대에서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뤄진 논리적 논문이라는 이성의 검열을 통과해야 감성을 다루는 자격이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근대를 ‘이성 독재 시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 이성으로 통제하려는 근대인의 오만이 지금의 생태 위기를 불러왔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는 것도 우선적임을 알 수 있다. 뭇 생명과 공감하며 함께 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감성 회복만으로 될까

그러나 이 정도의 감성 회복은 여전히 인간 중심의 사유체계임을 눈치챌 필요 또한 있다. 우리가 이성에 더해 감성을 회복하면 생태계 위기를 넘어서는 다음 시대의 틀로 충분할 것인가? 여기에 머무르는 이들은 여전히 이성의 틀 안에서 감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유형의 기존의 생태주의자들이자 그 변형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도한다 한들 생태계 문제를 ‘주의(~ism)나 학(~logy)’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한계다.

이처럼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선다고 해서 우리의 이성에 감성이 더해진다 한들 여전히 인간의 제한된 인식 틀에 의한 세계관임을 인정해야 한다. 여전히 근대적 이성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감성을 제대로 말한 자체 언어가 없었다. 그런 자각이 없었기에 지난 반세기 생태주의자들의 노력은 그다지 효력을 보지 못하고 기후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초래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편,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말하는 것 또한 오만한 자세다. 아인슈타인이 강조한 것처럼, 현상에 대한 관찰에는 관찰자의 몫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넘어선 방식으로 세상을 보자고 하는 구호 역시 관념적이고 공허하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새로운 방법은 겸허함을 갖추는 것부터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제한된 감각기관에 의한 이해일 뿐이라는 겸허함이 그 출발점이다. 근대적 인식 방식을 이해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는 열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실증주의자이면서 논리를 넘어선 지점도 인정해 침묵하는 것을 제시했던 비트겐슈타인이 종종 시도했던 ‘열린 정의 (open definition)’ 방식이다.

‘무엇이면 무엇이다’ 식으로 인간/관찰자 중심의 ‘닫힌 정의’ 방식으로부터 ‘무엇이 아니면 그것이다’ 식의 ‘열린 방식’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삼을 때, 인간의 이성과 감성으로 이뤄져 자의식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규정하고 통제해 온 인간 중심의 닫힌 사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바라보기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졌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는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이성에 더해 감성의 회복과 더불어 인간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점도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사람들은 이 지점을 알고 있어서 샤머니즘, 애니미즘 등의 형태로 초월성, 영성 등의 이름으로 인류가 시작된 이후 늘 우리와 함께 해 왔다.

비록 이성 독재의 근대 사회에서는 미신이나 허황된 것으로 폄훼되어 왔지만, 이제 위험사회로부터 생명 중심의 다음 시대에는 포스트휴먼의 SI와 샤머니즘 혹은 애니미즘과 만나야 한다.

근대의 우리는 뉴턴역학으로 대표되는 관계성에 주목하고 이에 근간해 문명을 이뤄왔다. 감성이 근간하고 있는 관계성, 초월성이라 불리는 영역의 관계성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이를 간단히 말하면 총체적 생명관에 근거한 생명감수성에 필요한 초월적 지점에는 100여년 전에 제시된 양자역학 관계성이 있고, 우리가 잃어버린 감성의 관계성이란 20세기 말 통계물리학에 근거해 등장한 복잡계적 관계성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인간의 이성, 감성, 초월성의 관계 유형과 이것이 도구적 AI를 넘어 자율적 SI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요즘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SI에 의한 위험성을 풀어가기 위한 포스트휴먼의 생명 감수성이란 무엇인지 이어가도록 하겠다.

글쓴이

우희종 서울대 명예교수

우희종은 서울대 수의과대학을 1981년 졸업한 후 동경대학교, 펜실버니아대학교,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1992년 이후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정년 퇴임했다. 통일수의학센터장,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상임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 전국민교협 상임의장,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맡기도 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