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지키려면 ‘왜’냐고 묻지 마세요.
[이영균의 ‘말이란 말이야’] 가정·직장내 갈등의 시작 “왜?” ‘왜’를 남에게 향할 땐 항상 갈등 일으켜 ‘왜’란 표현 쓰지않고 대체 표현 찾아보자
며칠 전,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처사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요즘 결혼식’답게 주례도 없고 신부 아버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신랑 어머니가 덕담 형식의 축사를 하는 등 지루할 틈이 없는 결혼식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신랑 어머니의 덕담 중에 이 커플에 대한 특이한 이력을 하나 듣게 됐다. 8년을 사귀면서 단 한 차례도 싸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연애부터 30여 년을 지내면서 셀 수 없을 만큼의 크고 작은 다툼을 겪어온 나로서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이야기였다. 순간 ‘저게 가능한 사실인가’ 싶었지만, 동글동글 사랑스러운 신랑 신부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이들이 정말 성격이 서로 잘 맞고 서로를 잘 이해해 주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 커플을 부러워하는 것은 일단 뒤로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부부나 연인간 항상 평화롭게만 지낼 수는 없다 치고 대화 중의 갈등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 가지 나름의 비책이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소연 : 아니, 쓰레기좀 버리라 했더니 ‘왜’ 안버린거야?
순욱 : 아! 깜빡했네.
소연 : 양말은 ‘왜’ 또 뒤집어서 벗어놨어?
순욱 : 어… 알았다고. 잔소리 좀 그만해.
소연 : 잔소리? 당신은 집안 일 하나도 안 도와주면서…
순욱 : 아니,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왔는데 집안 일도 해야 해?
소연 : 지금 돈 벌어 온다고 유세 떠는 거야?
순욱 : 뭐라고?
이후 대화는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짐작 갈 듯하다. 한바탕 시끄러운 전쟁이 벌어지거나 조용한 냉전이 펼쳐지겠지.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을 하려 하는 것인지 알아차렸을 듯하다.
부부들 말다툼의 시작 ‘왜?’
연인이나 부부의 상당 부분 말다툼이 ‘왜’에서 시작된다. 편안한 사이일수록 자주 쓰게 되는 ‘왜’가 왜 갈등을 일으킨다는 걸까? ‘왜’라는 표현은 단순히 이유를 묻는 의문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상 생활에서 ‘왜’라는 표현은 상대를 질책할 때 쓰는 게 사실이다. 생각해 보라. “왜 그런 말을 했냐?”, “오늘 왜 그러냐?”, “왜 안 사왔냐?” 등등 상대 행위나 표현에 대한 반문 내지 질책의 의미이다. 평소 무심코 사용했던 ‘왜’라는 표현이 갈등의 씨앗이라니…
위 대화에서 소연은 순욱이 집안 일을 거들거나 두 번 일하게 하는 것을 삼가 줬으면 하는 의미에서 저런 표현을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은 순욱의 행동이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저 대화를 통해서는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반발심만 불러 일으켜서 오히려 일을 더 안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말을 꺼내기 전에 ‘말의 목적’을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저 경우 아내는 어떻게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까? 아내가 ‘말의 목적’을 먼저 생각하고 대화를 꺼낸 경우다.
소연 : 쓰레기 좀 버려 주지. 너무해.
순욱 : 아! 깜빡했네. 미안해.
소연 : 양말도 뒤집어서 벗어놨네.
순욱 : 아참! 그것도 미안…
소연 : 담엔 잘 해주리라 믿어.
순욱 : 그래, 쏘리쏘리.(갑자기 재활용 쓰레기 분리 작업에 나선다.)
‘말의 목적’을 관철시키는 방법
‘왜’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말을 하면 상대적으로 표현이 부드러워진다. ‘왜’를 쓰지 않으려 하다 보면 대체 표현을 찾는 과정에서 가능하면 긍정적인 표현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위 대화를 보면 ‘왜’라는 표현으로 상대를 질책하기 보다는 본인의 서운한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남편으로 하여금 미안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인간은 미안한 상황을 해소해야 할 상황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아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수정할 가능성도 높아진다.(5월8일자 <미안하게 만든 만큼 얻는다> 참고) 결국, 소연은 그저 ‘왜’라는 단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원하는 ‘말의 목적’을 이루게 된 셈이다.
‘말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마디 덧붙여 본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어떤 말이든 나름의 목적을 갖는다. 상대를 설득하거나 변화시키고자 하는 목적, 남에게 뭔가를 알려주려는 목적, 다른 사람을 웃겨 보려는 목적,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 적을 도발하거나 기분을 나쁘게 만들려는 목적 등등.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목적과 상관없이 심지어는 목적에 반하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대화를 하면서 그 대화의 목적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야 차라리 말을 건네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괜히 말을 꺼내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을 그르쳐 버릴 바에야 말이다. 말을 꺼내기 전에 1, 2초 정도는 반드시 그 ‘목적’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그나저나 설마 ‘왜’라는 말 하나 삼간다고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며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듯하다. 믿지 못하겠다면 한번 해보시라 권한다. 특히나 평소에 말다툼이 잦은 커플이라면 이 하나의 변화를 통해 다툼이 부쩍 줄어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왜’냐고 묻지 말라. 연인이나 부부처럼 가까운 관계라면 굳이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아도 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서로 잘 알 것이므로.
직장에서도 문제인 ‘왜?’
윤이사 : 주차장, 어제 얘기한 PT 준비 다 됐어요?
주차장 : 앗, 그거 아직 안됐는데요?
윤이사 : 아니 ‘왜’ 이렇게 더뎌요? 간단한 내용인데…
주차장 : (참나 ‘왜’ 이렇게 보채고 난리야?)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백 대리를 찾는다) 어? 백대리 어디갔지? 이 사람은 복사 좀 해오란게 언젠데… ‘왜’ 아직도 함흥차사야? 내가 하고 만다. (복사기에 복사 용지가 없다) 아이씨~ 백대리!
백대리 : 아 예, 차장님. 찾으셨어요?
주차장 : 아까 복사 좀 부탁한게 언제인데 ‘왜’ 아직도에요? 그게 돼야 PT 준비를 하죠! 또 복사기 용지 좀 채워 달라고 한 게 언젠데 ‘왜’ 그대로죠?
백대리 : 아… 죄송합니다. 다른 일 때문에 좀 바빴습니다. 바로 채워서 복사하겠습니다.(복사기 종이가 씹힌다. 복사기를 발로 차며) 아, 이노무 복사기는 ‘왜’ 이 모양이야?
보다시피 ‘왜’는 전염이 된다. 한 사람이 ‘왜’ 그랬냐고 물으면 그것을 들은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왜’를 외치게 된다. ‘왜’를 함부로 외쳐선 안되는 또다른 이유다. 시작부터 서로 조심하면 좋겠지만 누군가 고리를 끊지 않으면 무한히 이어질지도 모른다. 일종의 원망의 사슬인 셈이다.
윤이사 : 주 차장, 어제 얘기한 PT 준비 다 됐어요?
주차장 : 앗, 그거 아직 안됐는데요?
윤이사 : 아니 ‘왜’ 이렇게 더뎌요? 간단한 내용인데…
주차장 : (나는 ‘왜’ 이렇게 더뎠을까? 음… 아침 커피 타임이 좀 길었지)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백 대리를 찾는다) 어? 백대리 어디갔지? 복사좀 해오라니까… 바빴나? 내가 해야겠다. (복사기에 복사용지가 없다) 백대리~
백대리 : 아 예, 차장님. 찾으셨어요?
주차장 : 복사 용지가 없어요. 아까 부탁했는데, 까먹었죠?
백대리 : 아! 죄송합니다. 다른 일 하다 보니 깜빡했습니다. 바로 채워서 복사하겠습니다.(복사기 종이가 씹힌다.) 내가 깜빡깜빡 하니까 너도 덜렁대는구나.

‘남에게 왜’ 보다 ‘나에게 왜’를
‘왜’의 사슬을 끊는 방법은 ‘왜’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왜’를 남에게 돌리면 원망이 되지만 자신에게 돌리면 성찰 내지 반성이 된다. 여기서 주 차장은 윤 이사의 ‘왜’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면서 그 사슬을 끊는데 성공했다. PT 준비가 늦은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으면서 엉뚱하게 백대리에게 화풀이하듯 내뿜던 ‘왜’를 삼갈 수 있었다. 이후 진행을 보면 화로 가득 찰 뻔했던 상황이 비교적 순조롭게 풀리게 된다.
물론, ‘왜’를 자신에게 돌리는 행위를 왜 해야 하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겠다. 왜 내가 사슬을 끊어야 하냐고… 그렇다면 묻고 싶다. 화를 분출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나의 경우 남에게 화를 내고 나서 기분이 좋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부분 화내고 난 후에는 후회가 됐다. 가능하다면 화를 내지 않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남에게 화 내는 것을 비교적 쉽게 막아 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남에게 ‘왜’는 갈등을 부르고 나에게 ‘왜’는 평화를 부른다고나 할까.
‘왜’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왜’라는 말의 역기능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왜’를 쓰지 않고 대체 표현을 찾으려 하는 바로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상대의 감정을 고려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 ‘왜’를 쓰지 않으려 하는 그 의지와 태도야말로 진짜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많은 갈등이 쏟아져 들려오는 지금 이 시대에 조금이라도 갈등이 줄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의 제목을 다시 한번 외쳐본다.
‘관계를 지키려면 ‘왜’냐고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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