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게 만든 만큼 얻는다
[이영균의 ‘말이란 말야’]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에 대해 ‘갑을 관계’에서 을은 어떤 전략을 ‘Door-in-the-face 테크닉’은 기본 한 단계 더 높은 전략은 무엇일까
어떻게 받아낼까
근래 대통령의 외교 행적 때문에 시끄럽다. 무언가를 줬으면 얻어야 하지 않나, 왜 얻는 것 없이 도발해서 손해만 보는가 등의 논란이다. 사실 외교 관계는 ‘주고 받기’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래서 타국에 무언가 양보나 호혜를 베풀 때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양보나 호혜의 약속을 받고 이를 양국이 동시에 발표하거나 거의 동시에 가까운 순차 발표를 한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아마도 무언가 줬으면 당연히 상대도 줄 것이라 믿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일상 생활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법이니까. 그러나 국가 관계는 그렇지 않다. 동시에 이뤄지지 않으면 내부적으로는 일방적으로 줬다고 판단 받기 때문에 이후에 보답을 한다든가 그런 것이 어렵다. 심지어 그 사이에 정권이 바뀔 수도 있으니 전 정권에 준 것을 현 정권에서 받는 것이 가능하겠나.
자, 외교 얘기는 뒤로 하고 일상 생활에서는 주고 받기가 어떻게 이뤄질까? 외교처럼 반드시 약속을 받았을 때에만 무언가를 줘야 하는 것일까? 계약 관계라면 그렇겠지만 일상의 행태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압박과 강요’전략, 통할까
일상 생활 중에 상대에게 무언가를 얻어 내기 위해서 ‘압박’과 ‘강요’를 동원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상대로 하여금 겁을 먹게 하거나 의무감을 갖게 만들어서 굴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를 중시하고 이후의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방법은 결코 좋은 수단이 아니다. 다음 부부의 대화를 보자.
수경 : 이번 주 토요일이 우리 엄마 생신인 거 알지?
정진 : 어, 알지~
수경 : 이번에는 선물이랑 식사 제대로 준비해. 안그러면 당신 어머니 생신 때 재미없을 줄 알아.
정진 : 아니, 왜 말을 그렇게 해?
수경 : 작년에도 그렇고 계속 맘에 안들었어.
정진 : 내가 뭘 어쨌다고? 양가 똑같이 하는데…
수경 : 똑같긴 뭐가 똑같아? 그리고 솔직히 우리 엄마가 우리 애들도 다 키워줬는데 똑같으면 안되지. 훨씬 더 잘해야 하는 거 아냐? 하여튼 두고 보겠어. 이번에 어떻게 하는지.
정진 : 몰라. 뭘 어쩌라는 거야?
수경은 정진이가 장모님 생신 선물이나 식사 예약에 좀 더 신경을 쓰길 바랬던 것 같다. 이를 위해 택한 전략은 ‘압박과 강요’. 그러나 과연 이런 식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이 대화 이후에 정진은 진심을 다해서 장모님 생신을 준비할까? 만약 강압에 못 이겨서 선물이나 용돈을 고가로 준비한다 치자. 이후 본인 어머니 즉, 수경의 시어머니 생신 때에도 역시 과한 선물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모님들에게 잘하는 것이야 좋은 것이지만 수경이 자신들의 형편 이상으로 무리하게 선물을 준비하는 것을 원한 것일까? 마음 속으로야 자기 엄마한테만 잘하기를 바랬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그같은 식이어서는 안되었다.

미안한 감정 끌어내기
수경 : 이번 주 토요일이 우리 엄마 생신인 거 알지?
정진 : 어, 알지~
수경 : 우리 엄마가 우리 아이들 키우고 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는데, 요즘 부쩍 나이든 모습을 보면 자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진 : 그렇지. 장모님 안 계셨으면 우리가 맞벌이도 불가능했지. 나도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
수경 : 지난 생신 때는 우리가 좀 부족했던 것 같아.
정진 : 어? 그랬었나?
수경 : 우리 형편에 과한 선물을 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여행이라도 보내드리면 어떨까 싶어.
정진 : 그래, 그러자.
두 대화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두 번째 대화에서 수경은 정진으로 하여금 ‘미안한 감정’이 들도록 유도를 했다. 사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것과 아이를 키워준 것에 명확한 인과 관계는 없다. 그럼에도 늙은 어머니에 대한 측은지심을 자극하고 아이들을 키워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남편이 미안한 감정을 가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미안한 감정을 해소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이를 일종의 불쾌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받으면 줘야 하고 빌리면 갚아야 한다는 일종의 규칙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오죽하면 누구가에게 뭔가 얻어 먹고 나면 ‘다음에는 내가 복수할꺼야’라고 할까. 하여튼 그런 본성 때문에 미안한 감정은 이를 보상해주고자 하는 행동으로 연결되곤 한다.
Door-in-the-face 테크닉이란
심리학에서는 이를 ‘Door-in-the-face 테크닉’이라고 한다. 일종의 판매 전략인데, 무언가 매우 큰 걸 요구하고 이를 거절당한 다음 거절한 사람의 미안한 감정을 이용해 작은 요구를 얻어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0만원짜리 상품을 권유한 다음 이를 거절당한 후에는 20만원짜리 상품을 제시해서 판매를 성공시킬 수 있다. 다른 대화를 한번 들여다 보자.
찬선 : 일찍 오셨네요? 많이 기다리셨어요?
인상 : 길이 하나도 안 막혀서 본의 아니게 20분이나 일찍 왔습니다. 약속 시간 보다 일찍 온 제가 문제죠. 뭐, ㅎㅎ
찬선 : 아이구, 많이 기다리셨네요.(왠지 미안한데?)
인상 : 주문하시죠. 오늘은 제가 맛있는 걸로 모시겠습니다.
찬선 : 일찍 오셔서 밥까지 사시려구요? ㅎㅎ
인상 : 당연하죠. 항상 여러 가지로 감사한 분인데…
찬선 : 하하. 제가 뭘 해 드렸다고…
인상 : 항상 베풀어 주시는 마음과 도움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이 대화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인상은 일부러 일찍 와서 기다림으로써 갑의 위치에 있는 찬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상황을 유도했다. 밥을 사겠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 대화에서 사실 찬선은 인상에게 뭔가 제대로 도움을 준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인상은 찬선에게 고맙다고 표현함으로써 ‘내가 뭐 해준 게 없는데’ 하는 미안한 감정을 유도한다. 이후의 거래에서 미안한 감정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례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갑과 을의 관계에서 흔히 오가는 것들이다. 흔한 상황이지만 이런 대화는 상대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전략이 표현된 것이다. 상대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전략이 이처럼 흔하게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다른 일상 관계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잘안된다, 미안하게 만드는 것이
그러나,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많은 경우 우리는 상대에게 강요를 하거나 화를 내는 등의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고 한다. 당연히 이런 방법으로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가 어렵다. 오히려 자칫 한바탕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은 고사하고 관계만 나빠지는 것을 누가 바라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든 원하는 것만 얻고 관계는 끝내겠다는 극한의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상대에게 미안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떤 관계이든 주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물건이든, 행동이든, 말이든 말이다. 상대에게 ‘네가 나한테 무언가를 받았음’을 은근하게 표현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상대는 미안함을 느끼게 돼 있다. 단,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상대에게 전략을 들키거나 상대로 하여금 반발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1부
정혁 : 아니, 국장님… 예고도 없이 찾아 오셨어요?
형식 : ㅎㅎ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사실은 지난 번에도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안계셔서 헛걸음 했습니다. 그렇지만 영업하는 사람이 무슨 예고씩이나 하고 찾아 오기도 죄송해서…
정혁 : 아이고 그러셨군요? 몰랐습니다. 오늘은 어쩐 일이십니까?
형식 : 네, 좋은 광고 상품이 있어서 제안드리러 왔습니다.
정혁 : 어허, 그럼 미리 전화를 좀 주시고 오시지… 저희 이번 분기 예산이 이미 다 소진됐습니다.
형식 : 벌써요? 아이고…
대화를 여기까지만 끊어 보자. 상대의 미안한 감정을 끌어내고자 하는 형식의 전략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예고 없이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했다는 사실로 한번 미안한 감정을 만들었고 이번에는 제안을 거절당해서 상대로 하여금 미안함을 느끼도록 했다. 아마도 이번 제안은 거절당할 것을 염두에 오고 방문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관계에서 심혈을 기울인 제안이라면 저런 식으로 불쑥, 아무 예정도 없는 방문을 통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을 미뤄 짐작해 볼 때 이번 방문과 제안은 다음을 위한 일종의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 다음 번의 진짜 제안을 위한 ‘Door-in-the-face’ 전략인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전략과 포석은 사실 상대에게 너무 뻔히 보이는 수법이다. 정혁은 이런 상황을 수없이 겪어 봤을 것이고 이에 대해서 특별히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다음이 중요하다. 계속 이어가 보자.
2부 1차 시도
형식 : 그런데 매번 한번도 안 챙겨주시는군요.
정혁 : 네? 그랬었나요?
형식 : 그렇죠. 올해 벌써 세 번이나 제안드렸는데…
정혁 : 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예산이 빡빡하다 보니…
형식 : 오늘은 이만 물러갑니다. 다음 번에는 꼭 챙겨주시는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정혁 : (돈 맡겨놨어?) 염두에 두겠습니다만 장담 드리지는 못하겠네요.
앞에서 상대의 미안한 감정을 끌어내되 너무 노골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대화는 그 예이다. 대놓고 ‘네가 나한테 미안해 해야 하고 다음에는 이를 보상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미안한 감정은 고사하고 오히려 반발심만 생기게 만들었다.
전반부 대화는 어떻게 보면 후반부 대화를 위한 ‘에피타이저’ 같은 내용이었다. 좋은 에피타이저를 내놓고 정작 메인 요리에서 입맛을 망쳐 버린 꼴이다. 이래서야 앞에서 미안한 감정을 조금씩 워밍업한 보람이 전혀 없지 않나. 형식씨, 2부 대화를 첨부터 다시 해봅시다!

2부 2차 시도
형식 : 상품이 좋다 보니까 예산 상황 확인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달려왔습니다. ㅎㅎ 저도 참 미련하네요.
정혁 : 별말씀을 다하시네요. 다음에도 좋은 제안 있으시면 주세요.
형식 : 네. 조만간 마음에 꼭 드실 제안을 하나 갖고 들어오겠습니다.
정혁 : 아… 뭔가 야심작을 준비하고 계시나 봅니다.
형식 : 네, 삼전사기! 지금까지는 예고편이었으니 이번에는 진짜 본편이 나올 겁니다.
정혁 : 아, 올해 벌써 세번이나 제안 주셨나요? 다음 번에는 진짜 잘 검토해 보겠습니다!
형식 : 감사합니다. 기대하십시오!
도와주게 만들어라
이번에는 허탕을 친 상황을 자신의 미련함으로 돌림으로써 상대의 측은지심을 자아 내었다. ‘미안하다’와 ‘불쌍하다’는 사실 다른 감정이지만 뭔가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유사성이 있는 감정이다. 따라서 미안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과 불쌍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교차 구사할 경우 유효한 전략이다. 하여튼 이 같은 감정적 토대를 만들어 놓고 드디어 형식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다음 번 제안을 주목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을 거둔다. 더불어 세번 제안했다가 모두 거절당했다는 내용도 은근하게 덧붙여서 다음 제안에 대한 집중도를 한번 더 키워 놓았다.
연인, 친구, 비즈니스 파트너로부터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얻어내고 싶은가? ‘은근하게’ 상대를 미안하게 만들어라. 상대가 냉혈안이나 소시오패스만 아니라면 반드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