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온 두 사나이, 누가 클레이코트 제왕될까

[박만규의 에티모버스(Etymoverse)] 노박 조코비치, 그 이름의 비밀은? 캐스퍼 루드도 흙에서 태어났다고?

프랑스 테니스 오픈 결승전에 오른 캐스퍼 루드(왼쪽)와 노박 조코비치. 사진=AP/연합뉴스
프랑스 테니스 오픈 결승전에 오른 캐스퍼 루드(왼쪽)와 노박 조코비치. 사진=AP/연합뉴스
  • ‘에티모버스’(Etymoverse)’는 어원을 뜻하는 Etymology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를 필자가 합성한 말이다. 어원에는 옛사람들의 사고가 비유 속에 담겨 있어 세계에 대한 인류의 다양하고 심오한 사유를 알게 해준다. 이는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준다.

흔히 라파엘 나달을 ‘흙신(神)’이라고 한다. 흙(클레이) 코트에서 대결을 펼치는 프랑스 테니스 오픈에서 14회로 최다 우승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흙신들은 따로 있다. 노박 조코비치(세계 3위)와 캐스퍼 루드(세계 4위)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이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현재 조코비치는 메이저대회 남자 단식 공동 최다 우승 기록을 갖고 있다. 22회로 라파엘 나달과 타이 기록인데, 이제 곧 펼쳐질 프랑스 오픈의 결승에서 우승하면 이 부문 최다의 기록을 다시 쓰게 된다.

한국시간 11일 밤 10시 결승전

오늘(10일) 새벽 파리 롤랑 가로스에서 끝난 카를로스 알카라스(세계 1위, 스페인)와의 준결승에서 조코비치는 알카라스를 3-1로 제압하고 7번째로 프랑스오픈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호주오픈은 10회나 우승해 하드 코트에 강한 면모를 보여주는 반면 클레이 코트인 프랑스 오픈에서는 고작 2회 우승에 그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대회에 그가 거는 기대가 그만큼 간절하다.

이번 대회에 ‘흙신’ 라파엘 나달이 불참해 우승의 의미가 다소 퇴색할 수 있지만 이미 이는 과거형이다. 이제 결승에서 상대로 올라온 노르웨이의 희망 캐스퍼 루드(Casper Ruud)를 이기면 최다 우승 기록이라는 전대미문의 일이 발생한다.

한편 캐스퍼 루드는 누구인가? 화려한 우승후보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주목받지 못했지만, 작년 그랜드 슬램에서 2회 준우승하며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랐던 실력자 중 실력자이다. 다만 아직까지 우승을 한 경험이 없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다르다. 작년 이 대회에서 나달에 막혀 무릎을 꿇었지만 1년 만에 다시 우승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조코비치와는 현재까지 상대 전적에서 4전 전패를 기록 중이므로 쉽지 않은 경기가 될 전망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도전이 될 것이다.

노박 조코비치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테니스팬이라면 노박 조코비치라는 이름에 대해 너무나도 친숙하게 생각하겠는데, 이에 대해 궁금증은 많이 갖고 있지만 대부분은 그 이름이 얼마나 흔한 이름인지, 그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다.

‘Djoković(조코비치)’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에서 사용되는 성(姓)으로, 키릴어 표기인 Ђоковић/Đoković를 로마자로 적은 것이다. Djoković는 Djoko(Đoko)라는 이름에 ‘아들’이라는 뜻의 접미사 오비치(-ovic)를 붙여 만든 부칭(父稱, patronym)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름에 아버지의 이름을 밝혀 적는 관습에 의한 작명법으로, 우리가 흔히 아는 (John, Jean, Johan에 해당하는) 이반(Иван, Ivan)의 아들을 이바노비치(Иванович, Ivanovic)라고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 영어권에서 존(John)의 아들을 존슨(Johnson), 잭(Jack)의 아들을 잭슨(Jackson)이라 칭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작명은 이후 여러 세대로 넘어가면서 ‘가문명(family name)’으로 정착됐다. 물론 아랍어권에서 라덴(Laden)의 아들 오사마를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라 칭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조코비치’의 ‘조코(Djoko)’는 무슨 뜻일까? 조코의 어원인 George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 즉 농부에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중세 영어 George는 라틴어 Georgius에서 온 말인데, 이는 ‘땅에서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Geṓrgios(Γεώργῐος, 게오르기오스), 또는 geōrgós(γεωργός, 게오르고스)에서 유입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땅의 여신 ‘가이아Gaia’도 같은 어원이다. 이 geōrgós에서 geō-(γεω-)는 ‘땅’을 뜻하고 érgon(ἔργον, 에르곤)은 ‘일’을 뜻한다. 영어에서 geo로 시작하는 단어들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는데, geography(지리학), geology(지질학)가 그 예다.

George(게오르게, 조지, 조르쥬 등)라는 이름은 12세기 십자군 원정 이후에 유럽의 여러 왕가에 유행하게 되었다. 1340년경 잉글랜드 수호성인의 이름도 조지아로 지어졌다. 이후 이로부터 조지아(Georgia)라는 지명도 매우 흔하게 쓰이게 된다. 미국의 주(州)이름인 ‘조지아’주, 그리고 예전에 ‘그루지아’라 불렸던 나라이름 ‘조지아’도 마찬가지 기원을 갖고 있다.

결국 조코비치는 조코의 아들. ‘조코’는 ‘조지’(George)에 해당하는 이름이므로, 조코비치는 ‘Georgeson(조지의 아들)’에 해당한다. 아들을 뜻하는 접미사는 앞말에 따라 ‘이비치’(-ivić), ‘예비치’(-ević), ‘오비치’(-ović) 같은 변이형들이 있다.

농부의 아들이 새로 왔어?

‘노박’은 무엇인가? 폴란드, 체코, 슬로베니아에서는 Nowak, Novák, Novak이 가장 흔한 성이다. Nov 혹은 Now-는 ‘새로운’ 을 뜻하는 슬라브어(꼭 슬라브어에서만은 아니지만)의 어근이다. -akor나 -ák은 ‘사람’을 뜻하는 슬라브어 접미사다. 그래서 예를 들어 Polak 혹은 Polák이라고 하면 폴란드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Polack, Poláček, Pollack 등 다양한 철자로 표시되는 이 성(姓)은 독일, 덴마크, 체코와 미국에서 흔한 성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시드니 폴락(Sydney Pollack)’ 감독 이름이 대표적이다.

결국 노박(Novak)은 ‘새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새로운 사람’(Newman)이라고 부를까? 우리가 잘 아는 영화배우 폴 ‘뉴먼’(Paul Newman)이 이런 뜻의 성을 쓰고 있다. ‘새로운 사람’이라 불리는 가장 흔한 상황은 어떤 사람이 집단에 새롭게 들어온 상황일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을 가리킬 때 “그 ‘새로 온 사람’ 있잖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상황은 그 집단 내에 이미 동일한 성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구분이 필요할 때, 새로 들어온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집단에서 Jackson이 이미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Jackson이 들어오면 새로 들어온 이 사람을 ‘뉴맨’ 즉 ‘노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같은 연원으로 ‘노박’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는 갓 결혼한 여자를 ‘새댁’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집단 내에 새로 들어온 여성을 가리키는 관념으로 볼 수 있다. 새로 시집온 여자는 기존의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새로 들어온 여자이기 때문이다.

슬라브어를 쓰는 나라마다 이 ‘노박’은 다소 철자가 다르다. 폴란드에서는 Nowak이라고 쓰고, 체코에서는 Novák,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서는 Novak, 키릴 문자를 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는 Новак이라고 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에 출연하여 스타덤에 올랐던 킴 노박(Kim Novak)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체코 출신이이서 Novak이라는 성을 가졌다.

한편 세르비아에서 노박(Novak)은 성으로는 흔하지 않은데, 이름으로는 곧잘 사용된다. 노박 조코비치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그렇다면 노박이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의 부칭(patronym)은 어떻게 될까? ‘-ović’(-오비치)를 붙여서 Novaković(노바코비치) 가 된다.

캐스퍼, 루드는 어디서 온 이름일까

그렇다면 노박 조코비치와 맞붙는 캐스퍼 루드는 어떤 이름일까? Casper는 구약성서까지 올라가는 기원을 가지는 말인데, 아람어(Aramaic, 히브리어와 가까운 언어로 예수가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언어)로 회계 담당자를 의미하는데 유럽으로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면서 흔히 쓰는 이름이 되었다. ‘루드(Ruud)’는 흔히 농가가 있는 지역의 지명인데, 본래 (숲 속의) 빈터를 뜻하는 고대 노르웨이어 ruð에서 온 말이다.

조코비치와 루드, 우연히도 둘 다 흙에서 왔다. 두 성 모두 흙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기원하였다. 그러니 이제 프랑스 파리의 롤랑 가로스에서 펼치는 흙에서의 대결이 우연으로만 치부될 수 없을 듯하다.

사실 일반적으로 하드 코트에서 강한 선수들이 흙 코트에서는 거의 기록을 못 내는 데 반해 조코비치는 예외적으로 흙 코트에서도 많은 기록을 세우는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루드도 비록 아직은 무관에 그치고 있지만 2년 연속 롤랑 가로스의 결승에 오르며 클레이에서 강한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흙에서 펼쳐지는 현대판 흙신들의 대결에서 과연 누가 이길까? 결승전은 한국 시간으로 11일 밤 10시에 펼쳐진다. (방송 등에서 이 글의 내용 일부를 인용할 때는 박만규 교수님 칼럼이 출처임을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편집자주)

글쓴이

박만규 아주대 교수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 현재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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