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의 본질? 사교육 아닌 ‘변별력’이다
사교육이 킬러문항 유도한 것 아냐 입시경쟁 탓에 출제위원들 변별력 강조 대학은 학생 잘 가르칠 준비하면 안될까
요즘 ‘킬러 문항’에 온 나라가 난리다. 얼마 전까지는 문화 분야나 비즈니스 분야에서 ‘킬러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야단이더니 이제는 대입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해야 한다고 난리다. ‘킬러’(killer)가 ‘콘텐츠’와 결합할 때는 ‘죽여주는’이라는 뜻, 즉 ‘커다란 만족감을 주는’이라는 뜻으로 쓰이더니, 이제는 ‘문항’이나 ‘문제’와 결합해서는 ‘죽이는’, 즉 수험생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는’이라는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도대체 킬러 문항이란 무엇인가?

사교육 아니라 입시 경쟁 탓
교육부는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활용해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를 반복 훈련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항’이라 정의했다. 이 정의를 잘 보면 기본적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의 선악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사교육’을 그 원인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킬러 문항의 발생 원인이 사교육에 있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놓고, 결과적으로 책임 또한 사교육에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킬러 문항’이 탄생한 것은 입시 경쟁의 격화가 낳은 산물이지 사교육 때문이 아니다. 입시 경쟁의 격화는 한두 문제의 점수 차이로 지망 대학의 차이를 결과시켰고 이는 수능 출제의 성패를 소위 변별력의 확보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되자 출제위원들은 고육지책으로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변별을 위해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초고난도 문제를 출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너도 나도 좋은 대학에 가려는 입시 경쟁 때문에 사교육이 등장한 것이지 사교육이 나타나는 바람에 입시 경쟁이 생긴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변별력의 필요로 인해 킬러 문항이 등장한 것이지, 사교육 때문에 킬러 문항이 생긴 것이 아니다. 킬러 문항을 풀어 내려는 수요가 사교육을 더욱 만연하게 한 것이다.
입시 경쟁의 심화를 완화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점수제에서 등급제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당시 대통령 자문기구 교육혁신 위원회의 개혁안은 5등급제를 제시하였는데, 대학들은 학생들의 수준 변별을 위해 15등급은 되어야 한다고 맞서다가 결국 교육부의 안인 9등급제로 결론이 났다.
1등급과 2등급을 나누려다 보니
수능 등급제에 따라, 국어와 수학, 탐구영역에는 과목별로 전체 수험생의 상위 4%에 1등급을 부여하고, 그 다음 7%(누적 11%)까지에 2등급을, 그다음 12%(누적 23%)까지에는 3등급을 부여한다. 이하 4등급에서 9등급까지에도 지정된 비율만큼 성적의 등급을 부여하게 된다. 성적에 따라 1등급에서 9등급까지 비율대로 부여가 되므로 큰 문제가 없는데, 다만 한 가지 문제는 2등급이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예컨대 만일 문제가 너무 쉽게 출제되어 만점을 받은 학생이 누적 11%를 넘게 되면 이들 모두에게 1등급을 부여해야 하고 이로써 2등급 없이 바로 3등급으로 넘어가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등급 하나 차이로 인생이 바뀌는 터에, 이럴 경우 수험생과 학부모들로부터 받게 될 지탄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므로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의 입장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정답률을 적절히 낮추는 것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초고난도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필수적이 되었다. 요컨대 킬러 문항은 이처럼 최상위권 수험생을 틀리게 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는 결코 사교육이 기승을 부려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처럼 어쩔 수 없이 출제가 되는 킬러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한 사교육의 수요를 만들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능 출제위원들과 검토위원들은 어떤 방식으로 킬러 문항을 만들까?
우선은 문제가 다루는 내용 자체나 지문이 담고 있는 내용을 어렵게 하는 것인데, 출제위원의 입장에서 보면 최상위권 학생들은 어떤 문제를 내도 다 잘 풀기 때문에 이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출제를 하다 보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범위를 조금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탄생하기도 한다. 국어의 경우 지문 자체의 전문성으로 인해 고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것인데, 예컨대 지난 6월 모의고사 국어 14번 문제 같은 경우 현대 철학의 추상적 개념과 내용을 고등학생이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로랜즈의 확장 인지 이론’ 등을 포함한 내용은 철학 전공 대학생 이상이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음은 높은 수준의 추론 같은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내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여러 개의 지문을 제시하고 이를 비교하여 하나의 관점에서 기술한 내용을 다른 관점의 기술 내용을 비판하라는 식의 문제가 그러하다. 그리고 6월 모의평가 수학 공통과목(수학Ⅱ) 22번 문제의 경우 3가지 이상의 개념(다항함수의 도함수, 함수의 극대·극소, 함수의 그래프)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 이를 비교하여 서로 다른 점을 파악해야 풀 수가 있는 고난도 문제이다.
이 같은 유형의 문제는 문제와 지문의 연결성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추론을 요구하고, 또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요구하여 수험생들을 이중고에 시달리게 한다. 물론 이 외에도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 소위 문제를 꼬는 방식도 있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지양한다.
또한 더 이상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선택지를 복잡하게 구성함으로써 킬러 문항이 되도록 하는 기법을 쓰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다음 중에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른 것은?’과 같은 형식의 질문을 던지고 선택지를 ①a, b ②b, c ③a, b, c ... 등으로 구성하는, 소위 합답형 문제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모든 경우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 정답을 맞히기가 불가능한 문제이다.
그런데 과연 정부의 예상대로 킬러 문항을 없애면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킬러 문항의 폐지는 준킬러 문항(적당히 어려운 준킬러 문항)에 그 역할을 이관할 뿐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난이도는 조금 낮아지겠지만 준킬러 문항으로 인해 적정 변별력은 유지될 것이다. 결국 이 일을 수행해야 하는 출제·검토위원들을 조금 더 힘들게 할 것이고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준킬러 문항에 좀 더 잘 대비해야 하는 심적 부담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체감적으로 다소 쉽다는 느낌을 주는 데 그치고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차제에 ‘변별력’ 논리에서 벗어나자
이제 아무도 던지지 않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 보자. 변별력은 왜 필요한가? 사실 이 변별력이 절대 명제처럼 간주되는 바람에 킬러 문항을 만들게 되니, 이에 관해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킬러 문항뿐 아니라 사교육을 통해 소위 ‘선행학습’이라는 것을 하도록 만드는 주범도 바로 이 변별력이라는 절대명제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각각의 연령대에서 알아야 할 것들을 배움으로써 건전하고 공동체 의식이 있는 시민으로 만드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단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진학 준비학교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도 바로 변별력이다.
이제는 이 변별력을 포기할 수 없을까? 변별력이 좀 낮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학생들로 하여금 그냥 교육과정 내의 내용과 사고력을 측정하는 정상적인 시험을 치도록 하면 안 될까? 그리하여 대학으로 하여금 꼭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우수성을 갖춘 인재가 아니라도 입학을 시키고 잘 가르쳐서 우수한 인재로 만들어 내보내려는 노력을 하도록 하게 하면 안 될까? 뭐 당연히 단번에 이렇게 하려면 혼란이 너무 크니 해마다 조금씩 변별력을 낮추어 대학들이 거기에 적응하도록 하면 안 될까? 킬러 문항뿐 아니라 변별력을 없애는 노력, 이제부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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