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공멸의 길이다

[현동균의 알기 쉬운 경제] 실질임금이 줄어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유효수요 줄어 기업·국가 모두 공멸의 길로 죄수의 딜레마 감안, 국가가 실질임금 올려야 진보진영도 새 전략적 논리로 전환해야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고용 이직 해고를 쉽게 하고,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임금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고용 이직 해고를 쉽게 하고,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임금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의미하는 것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이야기하자, 재계와 노동계는 희비의 쌍곡선을 그렸다. 그런데 도대체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무엇을 뜻하는가. 관변 단체인 자유기업원의 주장하였듯이 “고용·이직·해고를 쉽게,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임금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라는 말로 요약될 듯 싶다.

왜 그렇게 하여야만 하는가? 주류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노동시장의 수요 곡선이 그 이론적인 기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노동의 가격인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기업이 고용을 더 늘리는 유인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하여,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실질임금의 하락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도록 하자. 그런데, 이 주장을 너무 당연하다고 간주하거나, 혹은 의문을 제시하는 것 자체를 ‘좌파적 편견’이라고 단언하지 말고,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을 하기 바란다.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왜 고용이 늘어날까.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버스를 운행하는 사업을 생각해보자. 실질임금이 하락하였기에 버스 운행을 줄이고 사람이 인력거를 끄는 것이 더 이윤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고용이 증가된다거나, 인건비가 저렴하기에 버스 한 대를 이제는 두명의 운전사가 동시에 운전하게 되었다는 논리는 당연히 일반 상식과는 반한다. 현대적 기업에서는 주어진 “설비장치”의 운영에 필요한 적정 인력은 고정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렇다면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고용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그로 인하여 제품 생산(서비스 포함)이 늘고, 그 제품이 팔릴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차고에서 쉬고 있는 버스의 운행을 재개하거나, 기존 버스의 운행시간을 늘이거나, 혹은 새로 버스를 발주하고, 그에 따라 운전수를 새로 고용해 그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키게 된다.

일개 기업의 차원에서는 이것이 가능할 수 있다. 적어도 경제 내에 실업이 만연하여 낮은 실질임금 수준에서도 노동력이 공급 가능하다면 그러하다. 실질 임금의 인하를 통해 어느 정도 제품 가격 인하가 가능하다면, 기업이 제품 판매를 늘여 어느 정도 시장 점유율을 높이거나, 이윤이 없어서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사업을 회생시키거나, 혹은 이전에 포기하였던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전체”로 볼 때도 고용과 생산이 늘까?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일개 기업 차원에서는 실질임금을 줄이면 당장 득이 되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데 경제 전체로 볼 때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될 수 있을까. 일단 내 회사가 가격인하를 하면 경쟁사의 매출은 줄어든다. 그렇다면 경쟁사도 경쟁적으로 가격인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최초의 가격인하를 단행하였던 기업의 매출은 다시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만일 모든 기업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실질임금이 낮아지고 고용과 생산이 늘어난다고 할 때 과연 그 증가된 생산물이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을까.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 우선 내수시장만 살펴보자.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구매를 하여야만 한다. 그런데, 그 구매력의 가장 큰 부분은 근로자의 임금소득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실질 임금이 감소하면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소비 수요가 줄어든다. 줄어든 소비 수요는 시설재의 수요를 감소시키는 등의 연쇄 부작용을 유발한다.

즉, 실질 임금의 하락으로 인해 개별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그 기업의 고용을 늘릴 수는 있더라도 전반적인 실질임금의 감소는 경제 전체의 유효수요를 감소시키고, 결국 고용을 오히려 감소시킨다. 반대로 실질 임금의 상승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이윤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같은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제 전반적으로 볼 때는, 기업이 여전히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한 실질임금이 상승한다면 유효수요가 증가하고, 소비수요가 증가하며 그를 위한 시설재의 수요도 증가하는 등 전체적으로 고용과 생산은 증가된다. 위의 이야기는 케인즈의 경제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유효수요의 원리”를 아주 단순화하여 설명한 것이다. 즉, 순전히 국내 내수시장만 보자면, 전반적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인하여 내수는 죽고, 고용은 감소하고, 더욱이 기업의 이윤은 오히려 절대적으로 감소되게 된다. 한마디로 모두가 ‘공멸’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만일 해외 무역 부분이 존재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실질임금의 상승으로 인한 대외 수출 경쟁력의 감소가 문제시될 수 있고, 이로 인하여 고용과 생산, 그리고 소득이 감소되는 ‘부(負)의 관계’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을 포괄하였을 때의 종합적인 결과는 다분히 경험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실증 분석에 의하면, 한국을 포함한 선진국형 경제는 대체로 실질임금의 상승으로 인하여 국내 수요가 더 크게 진작됨으로써 전체 소득과 고용이 증가된다. 이를 “임금 주도형 경제”라고 한다(Onaran et al. 2012). 이는 그러한 국가의 수출 상품의 경쟁력이 저임금노동에 의존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는 제품 기술 경쟁력의 빠른 향상에 힘입어 중국도 이러한 임금 주도형 경제로 진입하였다(Jetin & Ortiz 2020).

합성의 오류, 죄수의 딜레마와 국가의 역할

현재의 노동시장 유연화 주장은 일개 기업의 행태를 분석한 후, 그러한 기업들의 단순 합산으로 경제를 설명하려는 논리에 기초하는데, 이렇듯 부분의 합으로 전체를 설명하는 바에서 비롯되는 오류를 소위 “합성의 오류”라고 한다. 하지만 경제는 개별 기업의 단순한 합은 절대로 아니고, 개인들이 사욕을 추구할 때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반면 아무리 경제 전체로는 바람직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할지언정, 어떤 기업도 자발적으로 먼저 실질임금을 인상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등장하는 이야기와 논리 구조가 동일하다. 두명의 공범을 따로 심문한 뒤 다른 공범의 죄를 실토하면 실토한 사람은 감형을 하겠다고 검사가 유인하면 양자 모두 다른 공범의 범행을 실토한다. 하지만 두 명 모두 침묵하면 모두 석방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실질임금 상승 정책은 국가가 준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여야만 실행 가능한데, 이는 개별 기업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생하기 위하여 민간이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를 국가가 해결하는 방법일 뿐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 생존 시에 국가가 개입하여 이윤을 어느 정도 창출하는 기업들의 실질임금 상승을 유도한 바 있었다. 그 같은 시도는 현재 진행형인데, 이는 현재 한국에서 보이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 정책과는 180도 반대되는 정책이라 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들이 2024년 적용 최저임금 노동계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들이 2024년 적용 최저임금 노동계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진보진영의 ‘전략적 사고의 전환’ 필요

인간인 이상, 자신이 부자이건 아니건 자기 것을 남과 나누라고 한다면 당연히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다. “분배의 정의”라는 슬로건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눠주는 쪽에게서는 호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나눠주는 쪽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에는 다분히 나눠받고자 하는 쪽만의 독백에 그칠 수 있다. 따라서 분배의 정의에 대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계층간의 갈등과 투쟁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규범적 주장은 이론적으로도 문제점을 내포한다. 반대하는 측에서 “분배가 우선인가”, “성장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답변이 궁색하다. 즉, 기업측에서는 이같은 분배에 대한 요구는 기업가의 의욕을 저하시켜 성장이 둔화된다고 하면서, 분배의 정의에 대한 주장은 곧 ‘갈택이어(竭澤而漁)’, 즉 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는 것과 같다고 강변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배의 정의”에 대한 외침은 가진 자들과 권력자들이 도덕적으로 기꺼이 동감할 자세가 되어 있는 한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몽상이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단순히 갈등 만을 야기하고 얻는 것은 별로 없는 도로무익(徒勞無益)한 주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에서 새롭게 내걸 슬로건의 핵심은, 실질임금의 하락은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오히려 고용과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키고 공멸을 초래할 수 있으며, 반면 실질임금의 상승은 고용과 기업의 이윤을 오히려 향상시킨다는 엄연한 이론적, 경험적 근거가 뒷받침된 사실이 되어야만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실질임금의 하락, 그리고 그릇된 이론에 근거한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화” 논리에 반대하는 것은 비단 “분배의 정의”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 아니다. 실질임금의 하락은 근로자와 기업 모두가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전체 ‘파이’를 감소시키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보 진영이나 노동계의 식자들에게 사고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의기(意氣)에 휩싸여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전략이며 그저 이상주의적 몽상에 그칠 수 있다. 실질임금의 상승을 요구하는 것은 비단 “분배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엄밀한 이론적, 경험적 기초에 의거하여 볼 때 노사 모두가 “공생”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길이라는 점을 앞으로는 강조하였으면 한다.

참고문헌:

-Jetin, B. and L. Reyes Ortiz (2020), ‘Wage-led demand as a rebalancing strategy for economic growth in China’, Journal of Post Keynesian Economics, 43 (3), 341–66.

-Onaran, Ö. and G. Galanis (2012), ‘Is aggregate demand wage-led or profit-led? National and global effects’, Working Paper No. 40, Conditions of Work and Employment Series, International Labour Office.

-헤이스, 마크 (2021), 케인즈 경제학을 찾아서 (현동균 역), 한울.

*이 글은 경성대학교 전용복 교수님의 친절한 코멘트를 반영해 완성했다.

글쓴이

현동균 경제분야 독립연구자

현동균은 금융인 및 경제학, 경제 사회학, 사회학 분야의 독립 연구자다. 과거 30년간 씨티그룹, ABN AMRO, VTB등의 대형 투자은행의 홍콩 및 싱가폴 아시아 지역 본부에서 근무하면서 주로 인프라, 에너지, 자원, 중공업 산업분야에 있어서 사업 금융 자문, 직접 투자 및 자본시장 금융 조달 업무에 종사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및 케임브리지대학의 메그나드 데사이 경 및 제프리 하코트 교수 문하에서 정치경제학 및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을 수학하였고, 포스트 케인지언 및 제도학파의 시각에서 투자이론, 화폐이론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해외 유수 경제학저널에 발표했다. 한글 역서로는 《케인스 경제학을 찾아서》(마크 헤이스 저, 2021),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에의 초대》(존 킹 저, 2022), ⟪권력의 법칙⟫(프리드리히 폰 비저 저, 2023)가 있으며, Bernhard Laum의 고전 Heiliges Geld를 영문으로 번역 및 해설하여 ⟪Sacred Money⟫(2023)를 출판. 최근 투자와 금융불안정성에 관한 논문인 ‘A financial frontier model with bankers' susceptibility under uncertainty’ (Metroeconomica, Wiley: Feb. 2023)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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