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 아빠를 기억하는 특별한 방식

[이화정의 ‘영화의 한가운데에서’] 샬롯 웰스 감독의 첫 장편영화 ‘애프터썬’ 친한 듯 불편한 아빠와 딸의 이별여행 딸의 대사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아... 같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내 마음에 담아둘래”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동네 마을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애프터썬’

일 년 내내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열린다. 영화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부산영화제와 전주영화제 정도는 알겠지만 그 밖에도 작은 영화제들이 많다.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서 열리는 작은 영화제들도 있다. 필자의 동네 근처에서도 마을 영화제가 열렸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머내마을 영화제’는 마을 공동체의 작은 축제였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서 열린 축제였다. 상영된 영화들은 주로 가족간의 사랑과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들로 선정됐다. 폐막작으로 선정된 <애프터썬> 역시 신예 감독의 신선한 감각이 돋보이는 가족 영화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이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런 관계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애프터썬>은 성장하면서 세월 안에서 내재된 개인적인 정서를 감독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누군가 촬영한 비디오 영상과 알 수 없는 영상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린 딸, 소피가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시간의 흐름이다. 과거와 현재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시간 흐름에 대한 암시를 주는 어떤 식의 기법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혼란스러워진다. 자주 삽입되는 사이키 조명의 클럽 장면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초점이 잡히는 한 여성은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그 여성의 정체는 후반부에 밝혀진다.

튀르키예로 떠난 어린 아빠와 딸의 ‘이별여행’

튀르키에로 여행을 떠나는 아빠와 어린 딸, 두 사람 사이에는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럽게 보이지도 않는다. 아이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아버지는 오빠라고 오해받을 만큼 젊고 어려 보이는 구석이 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소피의 대사가 아버지와의 이별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함께 있어도 그리움이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비디오나 수중 카메라를 통해 딸의 모습을 남기려고 하고, 호신술을 가르쳐주고 딸의 얼굴을 닦아준다. 그리고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닦아준다. 그러나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는 허무함의 감정이 소피의 대사를 통해 수시로 끼어든다.

소피는 아빠랑 함께 누워 하늘을 보다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아... 같은 태양을 쳐다본다는 건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잖아”라고 말하기도 하고 침대에 거꾸로 누운 채로 나이에 맞지 않게 우울한 감정을 언급해서 아버지는 “우리 여기 놀러 온 거 맞지?”라며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한다. 소피는 아버지가 돈도 없고,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아직 보호받을 나이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소피는 조숙해질 수 밖에 없다.

소피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아버지의 모습을 계속 촬영하다가 아버지한테 저지당한다. 그때 소피는 “그럼 이건 내 마음에만 녹화해둘게”라고 답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이 앞에 놓인 TV의 꺼진 모니터에 비친다. 그 뒤에도 아버지와 딸은 유리창에 투영된 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힌다. 샬롯 웰스 감독은 이렇게 독특한 촬영 기법을 사용한다. 잡히지 않는 그리움인 아버지를, 소피이면서 이 영화의 감독인 샬롯이 묘사하는 방식이다.

소피와 아버지가 손을 잡고 있거나, 껴안고 있는 친밀한 모습들이 나오다가 후반부에 사이가 어긋나 각자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나온다. 가까이 하고 싶지만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두 사람 사이에 있음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친철하지 않은 영화, 관객이 해석할 여지 키우는 친철함

영화에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삽입된다.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하는데 주변 환경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일부러 사운드와 이미지를 맞지 않게 사용하기도 한다. 조금 전의 시간이 현재와 겹쳐져서 연출되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춤추는 듯, 운동을 하는 듯 애매한 동작을 하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오는데 신체의 일부분만 잡힌다. 이런 식으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그리고 과거의 희미한 여러 기억을 회상하는 듯한 명확하지 않는 장면들이 인과관계 없이 나열된다.

모호함 속에서도 영화는 후반부에 한가지 정확한 정보를 준다. 도입 부분부터 잠깐씩 삽입됐던 성인 여성의 얼굴이 성장한 소피임을 알려주는 장면이 한번 나온다. 딱 한 장면이지만 소피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준다.

<애프터썬>은 샬롯 웰스 감독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이다. 데뷔작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 역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일단 공개되면 감독의 개인사와는 다른 성격의 독립된 작품이 된다.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영화 제목인 <애프터썬>은 썬크림, 혹은 자외선 차단제를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아버지가 어린 딸의 등에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하게 발라주는 장면이 몇 번 삽입된다. 아이가 혼자서 힘들게 바르려고 시도하는데 아버지가 뺏어서 발라준다. 둘 사이의 친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을 <애프터썬>이라고 정한 이유를 짐작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자신의 등에 발라줬던 크림의 느낌을 감독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영화 ‘애프터썬’의 한 장면.

<애프터썬>은 지금은 사라진 아버지를 추억하는 영화이면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단지 그 과정에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고 이미지로만 표현되기 때문에 친절하지 않게 느껴지는 영화다. 친절하지 않다는 것은 장면들 사이에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많다는 뜻이고, 그 공백에 관객의 생각이 끼어들 여지를 남겨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 이별, 그리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들은 잘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가슴 밑바닥에 있는 것들이다.

성장한 어른들은 어떤 계기가 있을 때마다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 추억이 담긴 비디오 영상을 봤을 때 잠시 그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머릿속에서 혼재된다. 그때의 느낌은 거리감과 그리움이다. <애프터썬>은 그런 느낌을 충분히 살려주고 있다. 특별하거나 극적인 사건이 없고, 서사 위주로 진행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기승전결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며, 우리가 성장하면서 부모와 가졌던 관계를 떠올리고 그리움이나 안타까움, 아쉬움 같은 정서가 다가온다면 감독의 의도대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서사의 극적인 진행에 초점을 맞춘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이미지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애프터썬>을 이 가을에 추천하고 싶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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