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례: 정치지도자가 잘못 손내밀었을 때

[최수정의 유럽 외교전] 독일 차기총리 후보 메르츠의 오판 중도 기민당, 극우 AfD에 손내밀어 당내 반발로 이민제한법 부결 ‘타격’ 정당해산 심판중인 AfD와 연합하다니 정치인의 신뢰는 민주주의 마지노선

앙헬라 메르켈 전총리(왼쪽)가 기민당의 차기총리후보에 오른 메르츠 당수(오른쪽)에 축하의 꽃을 전하고 있다. 둘은 지난 20년간 자민당내 라이벌로 불편한 관계를 보였다. 사진= 연합뉴스
앙헬라 메르켈 전총리(왼쪽)가 기민당의 차기총리후보에 오른 메르츠 당수(오른쪽)에 축하의 꽃을 전하고 있다. 둘은 지난 20년간 자민당내 라이벌로 불편한 관계를 보였다. 사진= 연합뉴스

연방하원, 이민유입제한법 부결

지난 1월 30일 독일 연방하원이 “이민유입제한법(Migrationsgesetz)”을 12표 차로 부결시키자 독일 정치권에서 난리가 났다. 마데부르크 테러(2024년 12월 20일), 아샤펜부르크 공격(2025년 1월 22일) 등 이민자들의 자국민 테러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이민제한과 난민유입 경로의 국경 접근을 강화한다는 이 법안의 ‘”부결” 사실 하나로 난리가 난 것은 아니었다. 이 법의 입안과정과 최종표결로 가는 과정에서 의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정치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오는 2월 23일 독일의 조기총선이 예정된 가운데 1월 말까지 지지율 단독 선두를 변함없이 지키던 당은 기독민주당(기민당·CDU)이었다. 기민당(CDU)과 기독사회당(기사당·CSU)의 연합은 30% 이상의 최대지지를 받고 있으나 50%의 지지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당과의 연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는 독일 의회주의의 독특한 형태로 국민들이 어느 한 당에서 절대과반수의 지지를 몰아주지 않는 탓이다. 주요 정당이라 할지라도 공동정부를 구성할 정당을 초청해 함께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차기 독일총리로 유력한 기민당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당수. 출처= tagesschau.de
차기 독일총리로 유력한 기민당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당수. 출처= tagesschau.de

차기 총리로 유력한 메르츠 당수

지금까지는 중도우파인 기민당(CDU)에서 총리를 배출하고, 기민당 중심으로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SPD)이나 녹색당(Grüne)이 합류해 연합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새 정부의 탄생은 작년 11월 7일, 사민당과 녹색당에 비해 보수적 색채가 강했던 자민당(FDP)이 ‘신호등’ 연정이 추구하는 차기 예산정책에 반기를 들자 결국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총리가 자민당과의 연정파기 선언한데 따른 것이다. 숄츠 총리는 연방하원의회에서 재신임투표에서 불신임을 받자 슈타인마이어 연방대통령에게 연방하원의 해산과 조기총선을 실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작년 12월 말까지 진행된 독일 조기총선 결정 과정을 보면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기민당의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당수가 차기 독일연방의 총리가 될 것이 확실시됐다. 독일 정가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메르츠가 연말연시 이민자들에 의해 발생한 마데부르크 및 아샤펜부르크 사고를 기점으로 총선 전에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이민제한법의 총선 전(前) 통과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한 것이다.

메르츠 당수, AfD와 손잡다

그 전까지 메르츠가 독일 의회정치의 어두운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 극우정당, 독일대안당(AfD)에 대해 특별한 호의를 보인 적은 없었다. 독일 정치의 전통인 중도적 정당이 독일 정치를 이끌어가는 것에 의문을 표시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 1월 20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후로 트럼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CEO가 독일 정치를 조롱하고, AfD만이 독일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는 식의 정치개입에 나선 것이 언론의 조명을 받자, 메르츠가 AfD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독일 민주주의의 방화벽(Brandmauer; firewall) 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민제한법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문제는 손을 내밀지 말아야 할 곳에 손을 내밀어 그들의 표로 자신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매우 도구주의적인 발상에 있다. 한번 방화벽 해제를 용인하게 되면 그들이 연정구성에서 기민당과 AfD의 연정 성립을 상상하지 못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연방하원이 발의한 AfD 위헌정당 심판

지금까지 AfD에 대해 이미 몇 차례 필자가 칼럼을 통해 언급한 바 있다. 최근의 일은 지난 1월 30일 연방하원의회의 발의로 AfD의 위헌정당 심판 요청 2건이 발의된 것이다. 다수의 연방하원의원들은 AfD의 정강정책 및 정책요구가 독일 기본법 제21조의 위헌정당 해산요건에 충족한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AfD가 주장하고 있는 것에는 인간기본권과 인간존엄무시, 반중동주의, 인간차별주의가 뿌리깊다는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소에 AfD의 위헌성을 심판해달라는 의회 발의안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회에서 단체로 AfD의 헌법 위반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그만큼 독일 정치가 느끼는 민주주의 위기가 단순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두 개의 안으로 발의됐는데, 어떤 특정정당 소속 의원들에 의해서만 작성된 것이 아니다. 17명의 헌법 전문가 및 약 600여 명의 변호사들이 연방하원과 연방정부에 보낸 서한을 기초로 했다. 이들이 속한 자유시민협회(Gesellschaft Für Freiheitsrechte: GFF)이라는 단체는 공공프로젝트형식의 기금모금을 통해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국민들의 요구사항인 기본법 제21조 제2항에 따른 위헌정당 심판을 위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하기 위한 보고서도 작성할 예정이다. 이들은 AfD의 정치활동이 독일 민주주의와 기본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사회가 인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방의회의 ‘방화벽’을 무너뜨릴 인물

이런 사회 분위기를 인지하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극우정당 AfD를 기성정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심지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실현시키고자 했다면, 그 결단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일회적 협력일 뿐 AfD와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그 선언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바로 차기 독일 정부의 가장 강력한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의 신뢰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메르츠는 강력한 국경폐쇄와 규제를 원한다. 이것이 다수 독일 시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예산편성을 무리하게 해서라도 최근 테러 사태에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총리의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손을 뻗지 말아야 AfD에 손을 뻗고 말았다.

절호의 기회를 맞았던 극우정당 AfD

AfD의 총리 후보인 앨리스 바이델(Alice Weidel) 당수는 회심의 미소로 화답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메르츠가 제시한 법안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함께 국경을 강력하게 틀어막자고 나섰다. 이미 그녀의 주가는 일론 머스크와의 “X”회담을 통해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게다가 독일 바깥에서는 독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당중 하나로 AfD가 거론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되고 있었다. 마치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가 이끌고 있는 미국 행정부의 전격적인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유럽으로 옮기면 AfD의 정책이 되는 것처럼 소문이 퍼져 나가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가 지지하는 AfD의 엘리스 바이델 당수. 출처= tagesspiel.de
일론 머스크가 지지하는 AfD의 엘리스 바이델 당수. 출처= tagesspiel.de

독일인들의 자기검열, 조롱으로 화답한 일론 머스크

독일인들은 1933년 스스로 히틀러를 연방총리로 선출했던 점, 이로 인해 독일과 인류의 미래에 가져온 해악을 감지하지 못했던 과거의 행동이 반복될 수 있다는 데에 깊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독일 연방 정치인들이 느끼는 불안함이 과거사에 대한 과도한 예민함일까? 독일 정치인들의 자기검열은 독일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자세에서 나온다할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날 히틀러 시절의 나치식 인사를 스스럼 없이 하는 모습이 TV공중파를 탔을 때, 그 미국인은 독일인들이 느꼈던 모멸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독일인들의 노력 앞에 한 미국인이 보인 행동은 공인으로서 동맹을 배려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조롱에 가까운 무례였다.

극우의 손을 빌려 자신을 증명하려한 정치인

독일이 직면한 경제위기와 이민갈등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독일내 정당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메르츠 당수가 선택한 방법은 매우 파격적이었고 파괴적이었다. 그는 극우의 손을 빌려 자신의 정책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했다. 결국 기민당내 약 12명 연방하원의원들이 반기를 들었고, 자민당 의원들 다수가 기권하는 바람에 의회통과를 자신했던 법안이 좌초됐다. 법안통과를 자신했던 메르츠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2025년 1월 마지막날 발생한 것이다. 메르츠는 당황했고, AfD는 기민당의 무능함을 비판하면서 메르츠가 총리가 될 자격이 있는지 꼬집었다.

메르츠, 신뢰할 수 있는 리더쉽을 가졌는가?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이 일이 일어난 후 주말동안 공식적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많은 연방의원들은 메르츠가 연방총리가 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과연 그가 독일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며, 당면한 문제들을 민주적 틀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AfD라는 지옥문에 또 노크를 하지 않을까?

메르츠는 직업정치인으로 오랫동안 정치를 해온 사람이다. 그의 입장에선 기술적으로 버티기만 해도 총리가 될 수 있는 지금 상황을 매우 다행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넘어,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함께 자신들의 삶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가 언제, 어떻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 원하는 걸 얻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인에게 있어 신뢰는 너무나 중요하다. 특히 정치지도자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면서 자신의 목표만 달성한다면 그 민주주의 체제는 안전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의 신뢰, 그 마지노선이 그 나라의 민주주의다

독일 정치권이 빠진 고민은 그들만의 고민일 수는 없다. 사회적 갈등을 겪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이 팔아넘길 수 있는 양심의 마지노선이 어디여야 하는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성숙도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신뢰가 없는 권위주의 강압정치에서는 정치인의 신뢰문제가 우스운 주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고도화된 사회에서 국가의 민주적 존립에 있어 정치인 스스로에게 선을 긋는 자기검열이 없다면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가 되는 것이 일상이 될 수 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메르츠 당수가 독일 총리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그러나 이번 이민제한법 부결이 좋은 경험이라고 평가한 그의 발언은 놀랍기만 하다. 이 표현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왜일까?

글쓴이

최수정 칼럼니스트

최수정 칼럼니스트는 독일 함부르크대학 법학박사과정에서 해양법을 전공하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개발원에서 11년간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다. 해양환경, 국제수산규범, 독도영토분쟁을 포함한 유엔해양법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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