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지렁이, 언덕, 세월이 만든 생태계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토양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태계’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시스템 흙의 원재에 기후, 생명체, 시간, 지형 등 요인들 상호작용하는 곳. 산업 생태계도 정책 정책 등 다양한 요인 통해 변화 발전해

세계토양의 날 행사 포스터 .출처=환경부
세계토양의 날 행사 포스터 .출처=환경부

▶ 유튜브로 칼럼 듣기

토양은 단순한 흙덩이가 아니다

달에는 토양이 없다. 달에는 지구에서 보는 흙과 같은 진정한 토양이 없다. 달 표면에는 ‘레골리스(regolith)’라고 불리는 물질로 덮여 있다. 레골리스는 토양이 아니다. 미세한 먼지와 자갈 바위, 유리질 입자로 구성되어 있을 뿐 유기물은 없다. 달 표면을 덮고 있는 물질은 지구의 비옥한 토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물질은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과 수분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다.

토양(土壤, Soils)은 지표 식물을 위한 자연 매질(媒質, medium), 모재(母材 Parent Materials)가 되는 각종 암석이 여러 가지 자연작용에 의하여 잘게 부서지고 쌓인 뒤, 표면에 유기물(有機物, Organic Matter)이 혼합되면서 여러 가지 토양생성인자의 영향을 받아 생긴 지표면의 얇고 부드러운 층이라고 정의한다. 달의 표층과 다른 이유는, 바로 유기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양은 ‘또 하나의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다.

토양은 단순한 흙덩이가 아니다. 여러 요인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토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 중, 첫째로 토양의 근본이 되는 모재(Parent Material)가 있다. 모재는 토양이 처음 형성되는 원래의 암석이나 퇴적물을 의미한다. 마치 건물을 지을 때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건물의 특성이 달라지듯이, 모재의 종류에 따라 토양의 기본적인 광물 조성, 입자 크기, 화학적 성질 등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토양은 석영과 장석이 주성분으로, 사질 함량이 높고 배수가 잘 된다. 현무암이 풍화된 토양은 철과 마그네슘이 풍부하여 비교적 비옥하고 보수력이 좋다. 즉 가장 토양의 기본적인 성질은 그 출발인 모재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흙의 생성과정. 출처=교육부 공식블로그
흙의 생성과정. 출처=교육부 공식블로그

토양을 변화시키는 엔진과 조력자들

두 번째 요인으로 토양을 변화시키는 기후이다. 기후는 온도와 강수량을 중심으로 토양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마치 날씨가 건물의 외관에 영향을 주듯이, 기후 조건은 암석의 풍화 작용, 유기물의 분해 속도, 물질의 이동 등 다양한 토양 형성 과정을 좌우한다. 이것은 사막과 툰드라, 온대 지대 또는 열대지대가 다른 형태의 토양을 지닌다는 말과 같다.

온도가 높으면 암석의 풍화를 촉진하고 유기물의 분해를 활발하게 하는 반면, 낮은 온도는 이러한 반응 속도를 늦춘다. 많은 비는 암석의 화학적 풍화를 활발하게 하고, 토양 속 물질들을 용해시켜 아래층으로 이동시키는 용탈 작용을 일으킨다. 반대로 건조한 지역에서는 염류가 집적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습하고 따뜻한 열대 기후 지역에서는 화학적 풍화가 활발하여 깊고 붉은색의 라테라이트 토양이 형성될 수 있다. 반면, 건조한 사막 기후 지역에서는 물리적 풍화가 우세하고 유기물 함량이 낮은 사막토가 나타난다.

세번째 요인으로는 토양을 형성하게 하는 생명체(Organisms)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생명체는 토양 내에 살고 있는 식물, 동물, 미생물을 모두 포함한다. 이들은 토양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성질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마치 정원의 식물과 벌레들이 흙을 변화시키듯이 토양 생물들은 토양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식물의 뿌리는 토양 입자를 결합시키고 유기물을 공급하며, 증산 작용을 통해 토양 수분 함량에 영향을 미친다.

남한 지역의 지질도. 출처=농업진흥청
남한 지역의 지질도. 출처=농업진흥청

지렁이, 두더지, 곰팡이들의 활약

낙엽은 분해되어 토양 유기물의 중요한 공급원이 된다. 동물 중에 지렁이는 흙을 파고 다니면서 통기성과 배수성을 좋게 하고, 유기물을 잘게 부수어 미생물의 분해를 돕는다. 두더지와 같은 동물은 토양 구조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토양 속엔 수많은 곰팡이균들이 서식하는데, 식물이 광합성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유기물의 형태로 변환한 후 뿌리로 방출하면 곰팡이균들은 이를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콩과 식물의 뿌리에서 발견되는 질소 고정 세균은 공기 중의 질소 기체를 암모니아(또는 암모늄 이온) 형태로 바꾸기도 한다. 이를 통해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질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즉 다양한 토양 생명체들이 토양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넷째, 토양이 성장하는 데 시간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시간은 토양이 성숙하고 발달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의미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듯이, 토양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요인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뚜렷한 토양 층위를 형성하고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된다. 토양 층위는 토양 단면을 수평으로 나눌 때 나타나는 뚜렷한 층들이다. 각 층위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특성이 서로 다르며, 토양 형성 작용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토양의 기능. 출처=전주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
토양의 기능. 출처=전주시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

오랜 시간이 흐를수록 모재는 더 많이 풍화되고, 유기물은 축적되며, 물질의 이동과 집적 작용이 활발해져 뚜렷한 토양 단면(층위)이 발달한다. 젊은 토양은 모재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성숙한 토양은 뚜렷한 층위 구조와 안정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화산 폭발 후 새롭게 형성된 땅은 처음에는 단순한 화산재로 이루어져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식물이 자라 유기물이 쌓이며 점차 비옥한 토양으로 발달하게 된다. 시간이 토양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때 비옥한 토양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다섯째 요인으로 토양의 입지조건인 지형이 있다. 지형은 경사, 사면의 방향, 고도 등을 의미하며, 물의 흐름, 햇빛의 양, 온도 분포 등이 토양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마치 건물을 지을 때 땅의 모양과 방향이 중요하듯이, 지형 조건은 토양의 환경을 결정한다. 경사가 급한 지역에서는 빗물이 빠르게 흘러내려 풍화 작용이 덜 일어나는 반면 토양 침식이 활발하다. 경사가 완만한 지역에서는 물이 천천히 흐르면서 풍화 작용이 잘 일어나고 유기물이 축적되기 쉽다. 사면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데 남향 사면은 북향 사면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받기에 온도가 높고 건조해 유기물 분해가 빠르다. 반대로 북향 사면은 서늘하고 습해 유기물이 잘 축적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증가해 풍화 작용의 속도와 종류에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토양은 모재라는 바탕 위에 기후라는 엔진의 힘과 생물이라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고,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지형이라는 입지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역동적인 생태계이다. 이 다섯 가지 요인들은 개별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서로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지구 표면의 다양한 토양을 만들어냈다.

산업생태계라는 토양의 조력자들

토양의 형성 과정과 요인은 산업 생태계의 기반을 형성하는 과정과 요인과 비슷하다. 산업 생태계 기반 구축 역시 특정한 바탕 위에서, 외부적인 동력을 활용하고, 다양한 주체의 협력을 통해, 오랜 시간 특정한 입지 조건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산업 생태계의 모재(Parent Material)는 곧 핵심 산업 자원을 의미한다. 산업 기반 구축에는 핵심이 되는 산업 분야나 천연 자원이 존재한다. 이는 산업 발전의 기초 재료이자 토대다. 예를 들면 철강 산업을 구축한다면 철광석과 석탄이라는 자원이 모재다. IT 산업이라면 숙련된 인력과 기술력이 그것이다. 제조업이라면 숙련된 노동력과 기본적인 생산 기술이 바탕이 된다. 각 산업이 속해 있는 지역마다 그 지역만의 특징적인 산업의 모재가 존재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확장해 나가야 하는 것이 산업 생태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둘째로, 토양에 대해 기후(Climate)요인은 산업 생태계에선 정부 정책 및 외부 경제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토양 변화의 엔진 역할을 하는 기후처럼, 산업 기반 구축에는 정부의 산업 정책, 규제 환경, 글로벌 경제 상황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이 강력한 동력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유치 정책, 세제 혜택, 기술 개발 지원 등은 산업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한다. 반대로, 불리한 국제 무역 환경이나 경기 침체는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중국의 한한령(限韩令)이나 미국 관세 전쟁 등은 한국 산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셋째로 생물(Organisms)은 산업 생태계 내에서 기업, 연구기관, 인력 등 다양한 주체를 의미한다. 산업 기반 구축에는 기업, 연구기관, 대학, 노동자, 투자자 등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협력과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들은 기술 혁신, 생산 활동, 인력 양성, 투자 등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발전시키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대기업,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숙련된 기술을 제공하는 노동자 등이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토양의 생물과 같다. 생물체의 활동이 활발하면 할수록 토양이 비옥해지듯이 기업 연구기관등의 산업 경제 주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산업 생태계의 토양은 비옥해진다.

넷째로 산업 생태계도 시간 (Time)이 중요하다. 이는 지속적인 투자 및 발전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견고한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도 끊임없는 투자와 기술 개발, 인력 양성 등 지속적인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간의 투자나 정책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산업 발전을 이루기 어렵다. 사실 특정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숙련된 인력을 양성하며,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야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핵심 산업 내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있을 때 산업 생태계가 활발하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기업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섯째로는 지형 (Topography)에 해당하는 것으로, 입지 조건 및 인프라를 의미한다. 산업 기반 구축의 성공 여부는 지리적 이점, 교통망, 에너지 공급, 통신망 등 다양한 입지 조건과 인프라에 크게 좌우된다. 마치 부산이 항만이 있어서 국제 항구로 개발이 되고, 경부 고속도로의 종점이 된 것과 같은 것이다.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가진 지역은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 발전에 유리하다. 잘 구축된 교통망과 통신망은 산업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기반 시설이기에 꼭 필요하다. 산업 생태계 기반은 인프라 구축에서 출발하면 효과적이다. 산업단지를 조성하지 않고 글로벌 경쟁력 있는 생산 기업을 만들어내는 힘들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하는 산업생태계

산업 생태계 기반 구축은 단순히 공장을 짓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단편적인 행위가 아니다. 핵심 산업이라는 토대 위에 정부 정책이라는 엔진의 힘을 빌려,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협력이라는 조력을 받아,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지리적 이점과 인프라라는 입지 조건을 고려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다. 토양 생태계처럼 산업 기반 또한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하루 아침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여건 분석을 하고 그 분석에 기반하여 산업 생태계의 기반 구조가 잘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이나 지역 산업 개발 정책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요소들은 바로 그 기반을 구축하는 과정에 대한 시간과 유기성을 인정하고 그 내용을 단계별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은 오랫동안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야 하며, 초기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집중적으로 정책 투자를 해야 한다.

어느 지역이나 그 지역에 맞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그런 산업 생태계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적확한 로드맵이 없고, 있어도 단기적으로 추진하고,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실패한다. 마치 황무지에서 옥토로 바뀌는 과정처럼 산업생태계도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조성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지역도 살고 국가도 험난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