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포퓰리즘’에 갇힌 5년…검찰 무죄 굴욕
윤석열 당시 중앙지검장 지휘 수사 무리한 증거 적용 시도하다 핵심 증거능력 불인정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등에 업고 시작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검찰 수사가 무려 4년 10개월 만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확정됐다. 이로써 검찰은 ‘수사 포퓰리즘’이라는 뼈아픈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이 사건의 대규모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만큼, 이번 무죄 판결은 검찰의 ‘성과주의’와 ‘여론 영합주의’가 낳은 참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무죄를 확정했다. 이 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 첫 단추는 1994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매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은 부친인 이건희 전 회장에게 증여받은 61억여원을 종잣돈으로 이를 사들여 결과적으로 에버랜드 최대주주가 됐다.
에버랜드는 삼성 승계작업의 핵심으로 지목돼 2007년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에 이어 조준웅 특별검사팀 수사로까지 이어졌지만, 이건희 전 회장은 2009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이 회장 경영권 승계의 마지막 단추였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삼성 경영권의 핵심이 삼성전자 지배력에 달린 상황에서 이 회장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간접적 지배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에 삼성전자 주식 4.06%를 보유한 2대 주주이던 삼성물산을 에버랜드에 합병시켜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는 내용의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G’가 2012년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마련됐다는 게 검찰 수사 내용이다.
이후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이라는 이름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고,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의 높은 지분율을 유지하고자 각종 불법행위가 자행됐다고 판단했다.
두 회사는 2015년 5월 제일모직 1주를 삼성물산 약 3주와 맞바꾸는 합병비율(1:0.35)로 합병을 결의했고, 같은 해 9월 합병이 이뤄졌다.
합병 과정을 둘러싼 수사가 촉발된 계기는 2016∼2017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이었다.박영수 특검팀은 삼성이 이 회장의 안정적 승계에 도움을 받고자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뇌물로 건넸다고 판단했다. 이 회장은 이 사건으로 2017년 2월 구속돼 징역 2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특검에 이어 서울중앙지검은 2018년 12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청구한 이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기도 했다.
검찰은 2년 가까운 수사 끝에 합병 과정에 허위사실 공표와 시세 조종 등 각종 불법행위가 이뤄졌다고 보고 2020년 9월 이 회장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이 회장의 신청으로 열린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하기도 했으나 수사팀은 결국 이 회장을 기소했다.
검찰은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배경 삼아 합병 과정에서의 부당한 개입, 주가 조작, 불공정 합병 비율 등을 ‘국정농단의 핵심 고리’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그 뒤에는 당시 수사를 이끌었던 윤 전 대통령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검찰의 이러한 수사 포퓰리즘은 결국 ‘무리수’로 귀결됐다. 법원은 1심부터 3심에 이르기까지 검찰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제출한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일관되게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검찰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고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을 위해 주가를 조작했다는 핵심 혐의는 법정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할 법적으로 유효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모든 피고인에게 무죄가 확정되며, 검찰은 5년 가까이 끌어온 대형 수사에서 ‘증거 불충분’이라는 뼈아픈 패배를 맛보게 됐다.
이는 검찰이 여론의 기대에 편승해 혐의 입증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 증거능력조차 합법적 절차를 거쳐 확보하지 못한 채 장기간 수사를 진행하고 국민적 피로감을 유발한 것으로, 이제 검찰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적 관심을 등에 업고 진행하는 수사가 과연 법치주의 원칙과 증거주의에 기반하고 있는지 항상 되물어야한다는 숙제를 검찰은 안게 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검찰이 정치적,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더욱 신중하고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하고 기소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무죄가 확정되면서 지난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진행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러 피고인들이 겪었을 고통과 기업 경영에 미친 불확실성은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 불확실성이 현재의 삼성전자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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