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챔프 박영균, 그리고 한국복싱 부활을

[조영섭의 잊을수 없는 선수와 순간들] 스피드,테크닉 약했지만 강철 체력의 ‘화신’ 세계 8차방어 성공한후 복싱 유망주 발굴 신정훈 관장과 ‘불도저 상’ 만들어 헌신

에스파라고사와 세계타이틀전을 벌이고 있는 도전자 박영균(오른쪽)
에스파라고사와 세계타이틀전을 벌이고 있는 도전자 박영균(오른쪽)

훈풍이 부는 상쾌한 3월이다. 이번주 ‘더 칼럼니스트’ 연재의 주인공은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페더급에서 세계를 제패한, <불도저 박>이란 닉네임으로 불리며 한시대를 풍미한 박영균 챔프다.

1967년 전남 담양 출신의 박영균은 고교 2학년 때 그의 우상인 황충재의 호쾌한 복싱에 반해 광주 챔피언체육관을 통해 입문한다. 황충재는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1980년 2월 동양 챔피언에 올라 동양웰터급 타이틀을 13차 방어에 성공했고 그중 12차례를 KO로 방어한 선수다.

‘우상’ 황충재를 따라서

박영균은 고교 3학년인 1985년 아마추어 청소년선발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자 그의 복싱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호남대학교 신승현 감독이 러브콜 하자 대학에 진하려 했다. 그러나 고심 끝에 진로를 바꿔 프로복서로 전환했다. 그는 1986년 12월 현대 체육관 소속으로 제16회 MBC 전국신인왕전에 페더급으로 출전, 6연승(2KO승)을 거두면서 우승과 함께 감투상을 받는다. 당시 최우수상은 주니어 페더급 민영천이 수상했다.

'불도저'로 불렸던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
‘불도저’로 불렸던 WBA 페더급 챔피언 박영균.

10연승(1무 포함)을 달리던 1988년 7월, 박영덕을 꺾고 한국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박영균은 1988년 11월 1차 방어전에서 테크니션 최재원에 판정패해 타이틀을 잃었다. 이후 한 체급을 올려 1989년 10월 전영만에 판정승하면서 이때부터 국내 페더급을 제패한다. 탄력을 받은 박영균은 1990년 1월 필리핀의 카이손이 갖고 있던 동양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 8회 KO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어 1991년 3월 30일 WBA 페더급 타이틀 8차 방어 도전자로 내정돼 세계 최정상 등극의 꿈을 꾸게 된다. 당시 WBA 페더급 세계챔피언은 베네주엘라의 에스파라고사로, 36전 31승(27KO승) 4무 1패를 기록한 강펀치의 소유자였다. 그는 7차 방어까지 대부분을 원정경기로 치렀고 그중 5차례를 KO승으로 방어에 성공한 역대급 챔피언이었다.

대기만성형...믿을 것은 체력

이에 반해 박영균은 신인왕부터 출발해 한국챔피언, 동양챔피언까지 마치 미장이가 벽돌을 쌓아 올리듯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온 ‘대기만성’의 평범한 선수였다. 전적도 19전 17승(10 KO승)1무 1패로 KO율이 떨어지고, 맞서 싸운 상대 복서들도 대부분 네임 벨류가 약한 동양권 복서들이었다. 전적 면에서나 객관적 전력 면에서나 모두 열세여서 그의 승리를 점치는 전문가들은 그야말로 극소수였다. 딱 하나 기대할 것은 ‘패기’였다.

극강의 챔피언이라는 에스파라고사는 1959년생으로 박영균보다 8살이 많은 32살로, 전성기를 지나 기량이 서서히 떨어지는 에이징 커브(Aging Curve)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를 포착한 박영균 측 김광수 트레이너가 주도면밀한 전략과 전술로 경기를 준비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라는 세간의 평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박영균은 지속적인 반복훈련으로 김 관장이 가르치는 전략과 전술을 습득했고,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로 결전에 나섰다.

1990년 3월 30일 세계 타이틀전의 1회전 공이 울리자 김광수 관장의 가르침을 스펀치 마냥 쏙쏙 빨아들인 박영균은, 지칠 줄 모르는 강철 체력과 활화산처럼 터지는 양 훅으로 쉬지 않고 챔피언을 몰아부쳤다. ‘불도저’ 그 자체였다. 녹슨 전차로 전락한 에스파라고사는 불도저에게 쩔쩔 매면서 수세에 몰렸다.

결국 박영균은 예상외의 선전으로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며 세계 타이틀 도전에 성공한다. 그가 소속되어 있는 현대 체육관은 그간 이삼중, 박찬목 두명의 지명도전자가 세계정상의 문을 두드렸지만 연달아 실패했고, 삼 세 번만인 1991년 2월 2일 최희용이 WBA 미니멈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김봉준(88프로모션)을 누르고 첫 챔피언으로 탄생한 지 불과 58일만에 박영균 마저 정상에 오르는 겹경사를 맞이했다.

근성, 투혼, 강한 체력과 우직함으로

박영균은 2년 9개월 동안 이 타이틀을 잘 지켜냈다. 수많은 난적들을 물리쳤고 당시에는 놀라운 기록인 8차 방어까지 성공한다. 1991년 6월 1차방어전에 당시 16연승을 질주하던 상승세의 다께다 마스아키(일본), 9월 2차 방어 상대인 22전 전승에 21연속 KO승을 거두며 ‘인간 지뢰’라 불리던 엘로이 로하스(베네주엘라), 5차 방어전에 베네주엘라 아마추어 국가대표 출신의 13승(6KO승) 3패를 기록한 니에바스, 6차 방어전에서 23전 전승에 21 KO승을 기록한 콜롬비아에서 온 ‘검은 자객’이라 불리던 지명도전자 벨레뇨, 또 8차 방어전에는 17전 전승(11 KO승)을 기록한 1987년 최우수 신인왕 출신의 전태식(한국) 등 대부분의 도전자들은 커리어가 탄탄하고 챔피언보다 스피드도 빠르고 주먹도 강했다. 하지만 박영균은 근성과 투혼 그리고 강한 체력과 우직함으로 차례차례 이들을 무너뜨렸다. 박수를 쳐주고 싶은 대목이다.

이런 화려한 전적의 이면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광수 트레이너 겸 관장이다. 그는 아마추어 국가대표 출신으로 박영균의 트레이닝을 담당했는데, 그의 맞춤형 지도법이 박영균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래 김 관장의 지도법은 2 M(Mind, Mental)과 5 S(Sense, Speed, Stamina, Skill, Speed)로 요약된다. 이중 ‘5 S’를 겸비한 선수는 WBA 미니멈급과 WBA 라이트 플라이급에서 2체급을 석권한 최희용 선수였다. 하지만 마인드(Mind)와 멘탈(Mental)과 체력(Stamina) 부문에선 최희용에 비해 박영균이 강했다. 그런 박영균을 김 관장은 맞춤형으로 지도했다.

복싱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한 최희용과 박영균 챔프(오른쪽)
복싱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한 최희용과 박영균 챔프(오른쪽)

동물의 세계에서도 뿔이 있는 소는 날카로운 이빨이 없고, 이빨이 날카로운 호랑이는 뿔이 없듯 누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다. 거북이는 산에서 토끼와 경주를 하면 승산이 없지만, 바다에서 토끼와 레이스를 펼치면 승산이 높다. 김 관장은 이런 역발상(逆發想)을 바탕으로 푸드 워크가 없고 스피드와 테크닉이 부족한 박영균에 대해 그만의 강점을 최대한 끌어올려 맞대결시킨 것이다.

이에 부응한 박영균은 파운드 포 파운드(pound for pound) 에스파라고사를 상대로, 마치 소형 오토바이로 대형트럭을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것처럼 대이변을 연출하며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김광수 트레이너 겸 관장은 이 공로로 1992년 WBA 총회에서 힐베르토 멘도사 회장으로부터 최우수 트레이너상을 받기도 했다.

한편 ‘불도저’ 박영균은 필자가 8차 방어의 대업을 이룬 비결을 묻자 “맹탕들과 싸워서 이긴 경기도 많다”고 자신을 한껏 낮췄다. 아마 일본 복서들로 1차방어전 다케다 마스야키, 3차 아사카와 세이지, 5차 마스모도 고지 등을 모두 KO 승으로 방어한 경기를 말하는 것 같았다. 칭찬을 겸손으로 응수하니 듣기가 좋았지만, 앞에서도 썼듯이 동급 체강들과 맞대결을 펼치며 쌓은 전적이었다.

엘로이 로하스와 방어전을 펼치는 박영균 챔프(왼쪽)
엘로이 로하스와 방어전을 펼치는 박영균 챔프(왼쪽)

석연찮은 패배...새로운 도전의 길

박영균은 1993년 12월 엘로이 로하스(베네주엘라)와 9차 방어전에서 석연찮은 판정에 고개를 숙인다. 당시 WBA 본부가 있는 베네주엘라 회장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던 경기였다, 그 고비만 넘겼더라면 충분히 15차 방어 이상을 할 수 있는 페이스였다. 박영균은 결국 32전 28승(16 KO승)1무3패의 전적을 뒤로하고 은퇴한다. 그는 목동14단지 아파트에 살면서 여의도에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 사업을 시작했으나 얼마 후 접었다. 돌고 돌아 지난 2015년 영등포구 당산동에 신정훈 관장이 운영하는 삼성체육관에서 트레이너로 활약하면서 지내고 있다.

박영균은 신정훈 관장과는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신정훈 관장은 법대를 나와 고시원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중 복싱에 입문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경북 신인대회 우승과 전국 신인대회 우승을 차지한 후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박영균 챔프와 합심, 침체된 한국복싱 부활을 위해 ‘불도저 상’을 만들었다. 한국 복싱 부활의 기폭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박영균의 닉네임을 따서 만든 것.

한국 복싱의 부활을 위한 ‘불도저’

지난 2007년 7월 WBC 페더급 챔피언 지인진이 타이틀을 반납한 이후 무관으로 전락한 한국복싱에 디딤돌을 쌓는다는 취지에서 지난 2018년 3월 첫 시상식을 가진 한 ‘불도저상’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오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월세를 내고 남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시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복싱 대회가 열리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경기를 참관한 후 모든 경기가 종료되면 대회 MVP를 선정해 상금과 상패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복싱 유망주 김동우 선수에게 불도저상을 시상하고 기념촬영하는 박영균 챔프(오른쪽)
복싱 유망주 김동우 선수에게 불도저상을 시상하고 기념촬영하는 박영균 챔프(오른쪽)

한 대회마다 35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불도저상’ 트로피는 상패에 24K 골드바가 장식되어 있다. 그동안 이 상은 WBO 오리엔탈 페더급 챔피언 강종선을 비롯, 이기수, 서인덕, 배민철, 김동우, 김예준 등 한국복싱의 미래를 빛낼 유망주들이 차례로 수상했는데 지금까지 모두 28명의 수상자를 비롯해 총 100명에게 지급한 격려금 등 총 6천만 원을 오르내리는 금액이 지출됐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의미있는 시상제도를 운영해온 신정훈 관장은 지난 2021년 3월 박영균 챔프 타이틀 획득 30주년 기념식을 자신이 운영하는 삼성체육관에서 열었다. 신 관장이 황금열쇠 10돈을 준비해 박영균 챔프에 전달해주자 박 챔프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왼쪽부터 황충재 챔프, 신정훈 관장, 박영균 챔프
왼쪽부터 황충재 챔프, 신정훈 관장, 박영균 챔프

박 챔프는 후일 필자에게 가슴으로 따스하게 대해주는 신 관장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회상했다. 척박한 한국 프로복싱 발전과 재건, 그리고 부활을 위해 복싱판의 한구석에서 묵묵히 선행을 베풀며 활동하는 신정훈 관장과 박영균 챔프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 행운이 함께하길 응원한다.

글쓴이

조영섭 문성길복싱클럼 관장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전북 군산 출신으로 1980년 복싱에 입문했다. 그 전에는 5년동안 야구선수 생활을 했는데,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조계현, 백인호 등 동료들과 우승한 경력도 있다. 1983년 복싱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쳤으며 1989년 지도자로 변신했다. 용산공고, 서울체고를 거쳐 천안 충의소년원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복싱강사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복싱인이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