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조 ‘우주지능’ 탄생...’지오스톰’ 비극?
머스크의 우주기반AI이란? ‘드록’이 스타링크를 조종하고 태양에너지마저 통제하면? ‘기술 전제주의’ or 신의 권위 인공위성에서 ‘지구 통제’
더치보이와 스페이스X
2017년 개봉작 영화 <지오스톰>. 영화 <300>의 주인공 제라드 버틀러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속에 전 지구적 기후를 제어하는 위성망 ‘더치보이’가 등장한다. 애초에 인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단 한 명의 야심가(에드 해리스 역의 미국 국무장관)에 의해 무기화돼 홍콩과 리우데자네이로를 파괴한다. 전 세계가 합작해 만든 위성망이지만, 특정 세력이 해킹하고 정보를 조작해 지구에 인위적인 대재앙(지오스톰)을 일으키려 하는 서사다. 또 다른 영화,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의 빌런은 디지털 정보를 조작해 국가 간 전쟁을 유도하는 AI ‘엔티티(Entity)’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아직 이런 빌런은 출현하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빌런’ 후보였던 일론 머스크가 아니나 다를까 인류의 윤리적 합의보다 기술적 보폭을 훨씬 앞세우며 치고 나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는 자신이 이끄는 스페이스X(SpaceX)가 또 다른 자신의 AI 기업인 xAI를 전격 합병했다고 발표했다. 기업 가치 1조 2,500억 달러(약 1,700조 원)의 이 거대 결합은 인류를 ‘행성 간 문명’으로 진화시키겠다는 머스크의 야심이 공식화된 것이다.
스타링크에 올라탈 ‘드록’
이번 합병의 핵심 두뇌인 xAI는 머스크가 “거짓말하는 AI(OpenAI)에 대항하겠다”며 세운 ‘진실 추구형’ AI 기업이다. 그런데 벌써 ‘진실 추구’가 위험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xAI는 머스크가 OpenAI가 영리화되고 ‘정치적 올바름(PC)’에 매몰되었다고 비판하며 만든 회사다. 이 회사가 개발한 AI모델인 그록(Grok)은 X(구 트위터)의 실시간 데이터를 직접 학습하기에 가장 현실에 업데이트가 빨리 되는 AI모델이다. 세상의 흐름을 가장 빨리 파악하며, 다른 AI들이 답변을 회피하는 민감한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하도록 설계됐다. 그록의 ‘가감 없는 답변’은 진실 추구라는 명분을 가졌지만, 거꾸로 말하면 사회적 합의나 윤리적 안전장치가 제거된 ‘날것의 지능’이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양사가 합병이 되면, xAI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슈퍼컴퓨터인 콜로서스(Colossus)는 ‘스타링크’라는 날개를 달고 우주 궤도로 올라가게 될 것이고, 그록이 이를 운영할 것이다.
이에 대해 머스크는 “AI를 위한 전 세계 전력 수요는 가까운 시일 내에라도 지역사회와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고서는 지상 기반 솔루션으로는 충족될 수 없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우주 기반 AI는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제 예측으로는 2∼3년 이내에 AI 컴퓨팅을 생성하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우주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이러한 비용 효율성만으로도 혁신 기업들은 AI 모델 훈련과 데이터 처리를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1t당 100㎾(킬로와트)의 연산 용량을 보유한 위성을 연간 100만t 발사하면 매년 100GW(기가와트)를 추가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연간 1TW(테라와트)까지 연산 용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문제는 ‘우주 기반 솔루션’이 그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있느냐이다.
당장은 ‘우주기반AI’ 솔루션이지만
머스크의 ‘우주 기반 자율 AI’는 지상의 법률이나 물리적 차단이 불가능한 궤도에서 작동한다. 만약 이 AI가 정보를 왜곡하기 시작한다면, 지상의 인류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할 방법조차 잃게 된다.
머스크는 이미 9,000개가 넘는 스타링크 위성을 띄웠고, 이제 여기에 xAI(인공지능)라는 두뇌를 직접 이식할 예정이다. 만약 이 인공지능이 영화처럼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다면, 전 세계의 통신과 정보 흐름을 한순간에 마비시킬 수 있는 실사판 ‘더치보이’가 되는 셈이다.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링크를 그렇게 활용한 경험도 있다. 스타링크 접속을 일방적으로 차단해 전황을 뒤흔들었던 전례는 한 개인의 판단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기술 전제 정치’의 예고편이었다.
상상 경계 밖의 ‘카드다셰프 Ⅱ형 문명’
일론 머스크의 이런 생각은 아직까진 가치중립적이어서 빌런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 이상을 제시한다. 그는 이번 합병의 목적을 설명하며 생소하지만 강력한 과학적 개념을 꺼내 들었다. 바로 ‘카르다셰프 II형 문명’이다. 그는 자신의 SNS와 공식 성명을 통해 이 개념을 직접 언급하며 기술적 진화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지구에서 쓰는 에너지는 곧 한계에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카르다셰프 II형 문명’으로 나아간다면, 우주 기반 태양광 발전을 통해 현재보다 약 10억 배 이상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번 합병은 인류가 ‘스타 문명’으로 진입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다.” — 일론 머스크, 2026년 1월 공식 포스팅 중
그가 말하는 ‘카르다셰프 Ⅱ형 문명’은 1964년 소련의 천문학자 니콜라이 카르다셰프가 제안한 것으로, 문명의 발전 단계를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양’으로 측정한다. 인류는 현재 지구 에너지를 활용하는 I형(0.7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머스크는 태양(항성)의 모든 에너지를 직접 수확하는 II형 문명으로의 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을 거대한 패널로 감싸는 ‘다이슨 스피어’ 같은 수준으로 항성(태양)의 에너지를 직접, 그리고 완전히 활용한다. 머스크의 끝없는 창의력을 엿보는 듯하다. 그러나, 태양을 감싸는 ‘다이슨 스피어’는 에너지의 독립을 뜻하지만, 이를 소유한 자는 지구의 생명줄인 ‘빛’을 통제하는 신의 권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빛과 정보를 통제하는 기술 전제주의자?
그는 “우주(Space)는 말 그대로 공간(Space)이다. 거기서 태양 에너지를 직접 받아 AI를 돌리는 것이 에너지 효율과 환경 위기에 대한 유일하게 논리적인 해결책”이라며 ‘우주 데이터 센터’를 II형 문명의 초석으로 제시했다. 지상은 전력과 냉각수 부족에 시달리지만, 우주는 무한한 태양광과 영하의 기온을 갖춘 천혜의 연산 환경이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화성 탐사에서 지구와의 통신 지연을 극복하기 위해, 우주선 자체가 스스로 판단하고 수리하는 ‘완전 자율 지능’을 구축하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지상의 법률이나 물리적 차단이 불가능한 공간에서 AI가 독자적으로 정보를 해석하고 뿌리게 된다. 이 ‘우주 신경망’의 스위치를 머스크가 쥐게 되는 것이다. ‘지오스톰’ 영화속 에드 해리스가 꿈꿨던 빌런이다.

이쯤되자 외신들은 머스크의 ‘기술적 진화’를 ‘정보의 전제 정치’라며 견제하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즈의 길리언 테트 수석 칼럼니스트는 ““머스크는 이제 국경을 넘어 궤도 위에 자신만의 ‘주권 국가’를 건설하고 있다. 지상의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오류’인지 ‘의도’인지조차 알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버튼우드 칼럼은 “이번 합병은 인류를 별들로 이끌 ‘성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전 지구적 정보를 사유화하는 ‘판도라의 상자’다. 우리는 지금 한 명의 억만장자가 인류 전체의 신경망을 장악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머스크는 이번 합병을 “‘인류의 의식’이라는 빛을 별들로 확장하기 위한 일”이라 부른다. 하지만 화성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무한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정보와 통신 권력을 단 한 명의 ‘기술 예언자’에게 넘겨주는 것은 타당한 거래일까. 그 성배 속에 담긴 것이 인류의 진화인지, 아니면 단 한 명의 의지에 종속되는 지능의 노예화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하는 사이 ‘궤도 위의 지능’은 이미 우리를 해석하고 재정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영화 <지오스톰>에서 시스템의 폭주를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대통령을 호위하던 비밀경호국 요원 사라 윌슨(애비 코니시 분)처럼, 우리에게도 이 거대한 기술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할 ‘수호자’가 과연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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