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질해설사 박태웅의 지구 속 이야기] ‘불의 고리’중 동쪽 안데스산맥 끝자락 나즈카판+남극판, 남아메리카판 아래로 마그마가 고생대 암석 뚫고 올라온 후 굳어진 거대 화강암 복합체 맨틀 대류, 판 움직이고 마그마 분출시켜
불의 고리와 안데스 산맥
안데스 산맥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서해안을 위에서 아래로 지나는 세계 최장의 대륙 산맥이다. 이 산맥은 카리브해 연안의 베네수엘라에서 시작해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진다. 태평양판의 동, 서, 북부를 둘러싸고 있는 <불의 고리(Ring of Fire)>의 오른쪽(동쪽)에 자리하는 산맥이다.

<불의 고리>의 정식 이름은 환태평양 조산대(造山帶)다. 조산대라 부르는 이유는 판과 판이 부딪힘에 따라 산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그마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지각 아래의 암석이나 지층을 뚫고 올라와 굳는 현상을 의미하는 마그마의 관입(貫入)도 조산대에서 일어나는 주요 현상들 중 하나다. 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암석에 주름이 생기는 습곡(褶曲), 암석에 금이 가거나 암석이 갈라지는 단층(斷層)이 생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단층은 지각 아래의 깊은 곳에 자리한 암석에 외부(지각판)의 힘이 가해져 생기는 내부 스트레스 및 변형이 쌓임으로써 생기는 현상이다.
조산대는 연대(年代), 구성, 습곡 양식 등에서 공통점이 없는 암석층이 나란히 자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로키산맥, 멕시코의 시에라 마드레 산맥 등과 함께 환태평양 조산대의 주요 산맥인 안데스 산맥의 기본 암석은 안산암(安山巖)이다. 안산암은 안데스의 암석이란 뜻이다. 안산암은 현무암과 유문암의 중간 정도의 밝기를 띤다. 현무암은 마그네슘과 철이 주요 원소여서 어두운 사장석, 감람석, 휘석 등의 광물로 구성된 암석이다. 유문암은 규소, 산소, 알루미늄이 주요 원소여서 밝은 석영, 장석 등의 광물로 구성된 암석이다. 안산암은 끈적끈적한 정도에서도 현무암보다 높고 유문암보다 낮다.(점성을 결정하는 것은 이산화규소의 비중이다.)
피츠로이와 다윈, 그리고 피츠로이산
안데스 산맥의 남쪽인 칠레- 아르헨티나 국경인 파타고니아주(州)에 피츠로이산(중앙)과 항공 루트를 개발한 프랑스인 조종사들의 이름을 딴 고봉들(좌우)이 있다. 이들을 피츠로이 매시프(massif, 대산괴, 大山塊)라 한다.
피츠로이는 19세기 초 영국 해군의 측량/ 탐험선 역할을 했던 HMS 비글호의 두 번째 함장 로버트 피츠로이로부터 유래한 이름이다. 피츠로이 함장은 남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중심으로 세계일주를 거행한 이 두 번째 항해에서 찰스 다윈과 인연을 맺었다. 다윈은 박물학자로 참여한 이 두 번째 항해의 5년(1831~1836) 경험을 자신의 삶의 모든 진로를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묘사했다.
산타 크루즈 강 계곡을 따라 여행하면서 자갈층과 표석의 지형과 층서를 완벽히 이해한 피츠로이 함장과 다윈은 해발 3,400여m의 화강암 산인 피츠로이의 정상을 목격한 최초의 유럽인이었을 것이다. 피츠로이 함장과 다윈은 산타 크루즈 강의 발원지를 찾아 파타고니아 내륙 깊숙이 들어가 산을 보았을뿐 산에 오르지는 않았다. 다윈은 파타고니아의 지질도를 만들었지만 피츠로이산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피츠로이산의 원래 이름은 ‘엘 찰텐’이다. 파타고니아 원주민인 테우엘체 부족어로 연기를 내뿜는 산 또는 불의 봉우리란 뜻을 가진 말이다. 물론 이는 산정을 수놓는 구름을 화산 연기라 생각하고 부른 이름이다.(파타고니아라는 단어는 1529년 마젤란 원정대가 장신의 테우엘체 족을 만나 이들을 파타곤(큰 발)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편집자주)
파타고니아의 빙원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른 인상적인 화강암체인 피츠로이 매시프는 촘촘하게 늘어선 수직 봉우리, 빙하에 침식된 능선으로 빛나는 대산괴이다. 조산대인 이유로 화강암, 반려암, 섬록암 등 다양한 암석이 존재한다. ‘세상의 끝’이라고도 불리는 파타고니아. 이를 브랜드로 한 의류 회사는 “파타고니아는 피오르드로 쏟아지는 빙하, 바람에 휩쓸린 험준한 봉우리, 가우초(목동)와 콘도르의 낭만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소개한다.
남부 파타고니아 batholith(저반)
피츠로이 매시프를 비롯 세로 토레(토레 언덕), 몬테 산 로렌조(성 로렌스의 산), 세로 산 발렌티나(성 발렌타인 언덕) 등을 남부 파타고니아 batholith(저반)라 한다.
이들은 해양판인 나즈카판과 남극판이 대륙판인 남아메리카판 아래로 밀려 들어간 뒤 마그마가 고생대 암석을 뚫고 올라와 굳은 뒤 주변 바위들의 풍화, 침식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 거대 화강암 복합체이다. 화강암질 마그마가 식은 뒤 얼음에 의해 조각된 화강암과 얼음의 산이다.
화강암은 광물 조성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낸다. 그린, 핑크, 화이트, 브라운, 그레이, 화강반암(검은 반점의 화강암) 등이 그것이다. 피츠로이 매시프의 암석은 라이트 그레이와 실버 그레이 화강암이 주를 이룬다. 남부 파타고니아 화강암 저반이 만들어진 시기는 1억 5천만년전 무렵으로 알려져 있다.
화강암체와 장구한 지질학적 시간
batholith, 즉 저반은 100km² 이상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화강암체를 뜻한다. 은유적으로 지구의 오랜 역사를 증거하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이런 화강암체는 오랜 기간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 아주 느린 과정의 산물이다.
이 과정은 ① 맨틀 상부 깊은 곳의 암석들이 녹는 시간, ② 녹은 물질이 거대하게 축적되는 시간, ③ 마그마가 지각을 거쳐 지표 가까운 곳까지 움직이는 시간, ④ 마그마가 식어 결정이 되는 시간, ⑤ 화강암체가 주변 암석의 배경 온도까지 식는 시간, ⑥ 화강암체가 지표 아래에서 지표면까지 이르는 시간, ⑦ 화강암체를 덮고 있던 기존 암석들이 풍화, 침식되어 화강암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참으로 장구한 과정임이 헤아려진다.
지각판이 움직이는 거리는 1년에 수㎜에서 수 ㎝ 정도다. 아주 짧은 거리이지만 10억 년이면 1만㎞를 움직일 수 있다. 10억 년이란 시간은 대륙과 해양의 위치가 바뀌어 현재와 다른 초대륙이 형성되고 분리될 수 있는 시간이다. 지질학자 로스 미첼은 “우리가 평생 살아가는 동안 지구의 표면이 크게 바뀌는 일은 없겠지만 수십억 년이 넘는 지질학적 시간을 통틀어 보면 이런 변화는 어마어마했다”고 말한다.(『다가올 초대륙』 16p)
다윈 역시 『종의 기원』을 통해 “인간의 생각은 백만 년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거의 무한한 세대 동안 누적된 수많은 작은 변화들의 영향을 다 더할 수도, 인지할 수도 없다”고 장구한 시간에 대해 말했다. 이 말에 주목하면 무한한 세대가 누적된 정도는 아니지만 거대 화강암체 역시 복잡하고 긴 단계를 거쳐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대륙판을 움직이는 맨틀의 대류
마그마의 관입, 지진, 화산 등은 모두 물질의 밀도 차이 때문에 빚어지는 대류의 산물이다. 판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맨틀 대류이고, 맨틀 대류의 원동력은 지구 형성 당시 충돌했던 미행성으로부터 전해진 에너지, 우라늄과 토륨 등 지구 내부의 방사성 원소가 붕괴할 때 발생하는 열이다.
지구 온도가 떨어지면 맨틀의 점성이 급격히 올라가 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맨틀의 점성이 줄어 열이 밖으로 배출된다. 대류는 정교한 온도 조절 시스템인 것이다. 이처럼 피츠로이 매시프가 주를 이루는 남부 파타고니아 화강암체와 그 대산괴를 포괄하는 안데스 산맥의 지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지구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대류의 역할과 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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