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돌아왔다, 위기에 빠진 한국은?

두 개의 세계사적 전환과 한국의 과제 ① 트럼프 취임과 법원 난입의 연결고리는? 美보호주의 새롭지도, 성공 전망도 없어 바이든과 다른 대중 봉쇄...느슨해질 수도 위기의 한국, 아직 실망하기에 이른 까닭

지난 2017년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4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 2017년 1월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45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모습. 사진=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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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두 개의 세계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의 47대 미국 대통령으로의 귀환이다. 또 하나는 탄핵 정국의 한국이 겪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다. 세계 민주주의 퇴보가 거듭되고 있는 오늘날 세계사에 유례없는 민주주의의 성취를 이룬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 여부가 지닌 지정학적 함의가 지대함을 자각해야 한다.

두 개의 세계사적 전환은 긴밀히 맞물려 있다. 더욱이 공교롭게도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을 하루 앞둔 1월 19일, 4년 전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폭동의 데자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2025년 1월 19일 한국 서울서부지법은 2021년 1월 6일의 미국 국회의사당과 비극적이게도 복제되었다. 이리하여 두 개의 세계사적 전환의 연결고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이 글은 서로 긴밀히 연결된 이 둘을 살피고 한국의 중장기 핵심 과제를 제시한다.

1. 진단과 전망

트럼프, 그가 돌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그가 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그의 귀환은 미국의 정치경제, 사회문화 전반으로 확산된 극심한 ‘양극화의 산물’이라 하겠다. 이것이 투영된 인플레이션과 이민 문제가 대선판을 흔들었고 트럼프가 들어올린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깃발은 강력한 대중적 소구력을 발휘하며 그를 미국정치의 이단에서 정통 주류로 승격시켰다.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는 트럼프가 무역, 동맹, 이민, 다자주의, 민주주의 연대, 인권 등 기존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거의 모든 요소에 도전할 태세를 갖췄다고 평한다. 기디언 래크먼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그를 시진핑, 푸틴과 함께 세계질서의 변동을 추구하는 수정주의자라고 한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는 리버럴한 세계질서의 결정적인 종언이라고 단언한다. 세계는 전후 미국이 국제사회에 제공해 온 공공재(public goods)가 공공악재(public bads)로 뒤바뀔까 좌불안석이다. 미국이 세계에 던질 불확실성은 상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미국우선주의를 신자유주의의 종언으로 보는 시각은 일면적이다(주- 김양희, 2024.11.19.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 누구를 위하여?”, 한겨레). 이것이 밖으로는 배타적 국수주의와 보호주의를 내거나 안으로는 규제완화, 감세 등 신자유주의를 공고화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자국의 경쟁력이 실추한 실물경제에서는 보호주의를, 여전히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한 금융부문에서는 자유화 기조를 유지한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이를 반영해 트럼프 정부에는 전자의 아이콘 JD 밴스 부통령과 같은 이와, 헤지펀드 출신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빅테크 출신 갑부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공동의장(공동대통령?) 같은 규제완화 신봉자들 간에 벌써부터 내홍 조짐이 보인다. 이런 양면성을 읽어내야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인다.

우리가 미지의 세계에 들어설 때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가 필요하다. 사실 자유무역은 경제학 교과서에나 자주 등장할 뿐, 16세기 이후 세계 무역사에서 오랜 주역은 보호주의였다. 19세기와 2차대전후 자유무역 확산은 비교적 최근 현상이며 이때도 선진국의 농업이나 첨단 산업 보호, 개도국의 유치 산업 보호무역 기조는 여전했다(주-자유무역 시기 구분은 논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보호무역주의 이론 및 이후 보호주의 역사에 대해서는 김양희, 2021, ‘프리드리히 리스트’, 한국사회과학연구회 기획 『경제학들의 귀환』, 박영률 출판사를 참조하라). 물론 무역사 연구의 대가 더글러스 어윈을 위시한 많은 경제학자들이 강조하듯 미국역사만 보더라도 미국의 경제와 기술 발전에 보호주의 역할은 부차적이었다(주-Douglas A. Irwin, 2020, “Trade Policy in American Economic History”, Annual Review of Economics Vol. 12). 이로부터 얻는 역사적 교훈은, 트럼프의 보호주의도 전혀 새로운 게 아니며 성공도 장담하기 힘들다는 희망 섞인 전망이다.

바이든 정부와 트럼프2기의 보호주의는 뭐가 같고 뭐가 다를까? ‘중국봉쇄’라는 목적함수는 두 정부 모두 같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은 세 가지다. 먼저, 보호주의 전선의 차이다. 전자는 점(미국) → 선(양자) → 면(소다자)으로 전선을 다층화하였다(주-김양희, 2023, ‘보호주의 진영화 시대, 한국 경제안보 전략 모색’, 『황해문화』 118호 2023) 미국의 패권 쇠퇴를 배경으로 외교 베테랑 바이든은 동맹과 우방의 쓸모를 발견하였다. 반면 후자는 이를 면 → 선 → 점으로 되돌리려 한다. 매사를 거래관점에서 보는 트럼프는 미국의 협상력이 극대화되는 양자관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가 그들(우방)의 쓸모를 몰라서가 아니라 더 절실해져서다. 다음은 보호주의 수단의 차이다. 전자는 첨단제조업 부활에 당근(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의 산업정책을 통한 보조금)과 채찍(고율의 수입관세)을 다 썼다면, 후자는 채찍만 휘두른다. 마지막 차이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거래의 달인답게 급작스럽게 미중 간에 모종의 빅 딜을 성사시켜 대중 봉쇄에 끈을 느슨하게 풀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된다.

트럼프의 고관세 전략에 대한 경제학적 비판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특히 트럼프뿐 아니라 바이든에게도 뼈아플 비판은 Global Trade Alert의 설립자인 사이먼 교수의 최근 연구 아닐까. 그는 트럼프1기와 바이든의 보호무역조치가 미국내 생산 증대와 수입 대체에 기여한 효과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그에 따르면 미국이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을 시작한 이래 외국인투자(FDI)는 계획 대비 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이 오매불망 바라던 수입대체 효과도 미미하다. 즉 트럼프의 미중 무역전쟁 발발 이전(2012-2017)에 비해 2023년에 총 제조업의 FDI는 늘었으나 이것이 대체하려던 수입도 늘었다. 8대 업종별로는 2개 업종(자동차, 전기기계·부품)만 FDI증가가 수입대체 효과를 냈다. 동 기간 고용도 계획 대비 실행 실적이 저조했다. Financial Times의 기업 서베이에 따르면 IRA 관련 예정 투자의 40%가 트럼프 집권후 불확실성으로 인해 지연되거나 중단되었다(주-Financial Times, August 11, “Delays hit 40% of Biden’s major IRA manufacturing projects”). 숙련노동자 부족, 취약한 제조생태계, 열악한 인프라 등에 더해 고관세도 FDI의 수익성을 저해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분석 결과는 직관적으로 경제 상식에 부합한다. 관세장벽을 넘기 위한 FDI가 M&A가 아닌 그린필드형(型)이라도 단기간에 수입 대체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FDI로 완성재 수입은 대체해도 현지의 중간재 조달 여건이 취약하면 이는 중간재 수입을 유발한다. 한국이 중국 및 동남아 등지로 수출하는 중간재의 주 고객이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이다. 물론 장기에는 FDI가 수입대체, 고용창출, 경영 노하우와 같은 암묵지 전파 등의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사이먼 교수의 연구는 트럼프2기의 양자관계에 기반한 채찍 위주의 보호주의 실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공수처 수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복귀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공수처 수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복귀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 연합뉴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회

“이 세상의 모든 법은 투쟁으로 생겨났다. 모든 중요한 법 명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되어야 했다. 그리고 모든 법적 권리는 그것이 국민의 것이든 개인의 것이든 간에, 언제나 그것을 주장하고 수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루돌프 폰 예링,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중에서)

2025년 1월 19일,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비상계엄과 내란 혐의로 47일 만에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나는 이 문장을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을 주어로 하는 능동태로 완성했다. 이는 루돌프 폰 예링의 명징한 경구처럼 얻어진 게 아니라 국민이 쟁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무도한 헌정질서 파괴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으나 국민의 민주주의 수호 열정과 헌신, 시민적 저항과 불복종이 이를 구해냈다.

윤석열은 자신을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화신으로 묘사했으나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적 권위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2024년 3월 발간한 2024년 민주주의 연차보고서에서 그가 도리어 한국 민주주의의 퇴보에 앞장선 역사의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명히 드러냈다. 2023년 기준 세계는 91개국의 민주주의 국가(자유민주주의, 선거민주주의)와 88개의 권위주의 국가(선거권위주의, 폐쇄적 권위주의)로 나뉘나 인구 기준으로는 29%(23억 명)만 전자에 속하고, 71%(57억 명)이 후자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은 무려 78%가 권위주의 국가인 동아시아에서 호주, 대만, 일본, 부탄과 함께 9%에 불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한국은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화에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나라다.

그런데 2023년 한국은 세계 민주주의가 1985년(인구 기준) 내지는 1973년(경제력 기준) 수준으로 퇴보하는데 앞장서는 나라라는 오명을 얻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지수(LDI)는 2015년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저점을 찍은 뒤 촛불항쟁에 힘입어 2017년 상승했고 2021년에는 17위가 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집권 후 급속히 추락해 2023년에는 최악의 47위를 기록하며 2015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리하여 한국은 ‘종 형태(Bell-turn)’를 그리며 급속히 권위주의로 후퇴한 10개국에 속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더구나 그 10개국 중 유일하게 권위주의화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었다. 이제 다음 보고서에 12.3 계엄과 법원 폭동 사태까지 반영하면 이 지위는 또 얼마나 추락할까?

자료: V-Dem Institute, 2024, “DEMOCRACY REPORT 2024 Democracy Winning and Losing at the Ballot”
자료: V-Dem Institute, 2024, “DEMOCRACY REPORT 2024 Democracy Winning and Losing at the Ballot”

다행히 아직 실망은 이르다. 1900년-2022년간 권위주의화된 48%가 민주화로 이어지는 ‘민주적 반전(democratic turnarounds)’이 일어났으며 최근 30년간에 이 비율은 70%로 증가했다(주- Marina Nord, Fabio Angiolillo, Martin Lundstedt, Felix Wiebrecht, and Staffan I. Lindberg, January 2024, “When Autocratization is Reversed: Episodes of Democratic Turnarounds since 1900”, Working Paper SERIES 2024:147 THE 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 University of Gothenburg, V-Dem Institute). 더욱이 그 반전 후 93%가 민주주의 수준을 회복하거나 오히려 향상시켰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유신체제를 ‘민주적 반전’으로 이끌었고 이후 1987년 비약적인 민주화를 일궈 21세기 들어서 만개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다시 후퇴한 뒤 2017년에 다시 회복되는 두 번의 ‘U’자형 ‘민주적 반전’을 보였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세 번째 ‘민주적 반전’을 이루고 탄핵이 끝이 아니라 원대한 새 여정을 시작할지 여부를 가르는 세계사적 전환기에 서있다. 나라 밖에서 우리를 예시주시하는 이유다.

글쓴이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김양희는 동경대 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거쳐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통상학과에 재직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 무역위원, 외교부 국립외교원 연구부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 저서는 『경제학들의 귀환』(2022, 공저), 『2024 한국경제 대전망』(2023, 공저), 논문은 “Interactions between Japan's ‘weaponized interdependence’ and Korea's responses: decoupling from Japan vs. decoupling from Japanese firms”(2021), “미국 주도 ‘신뢰가치사슬’은 작동 가능할까?”(2023), 보고서는 “Economic security vs economic coercion and data protection vs data protectionism”(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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