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이스라엘 발언, 던져야 할 3가지 질문
‘국익 중심 실용 외교’, 실험대에 오르다?
- 역설적 데자뷔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은 1973년 오일쇼크 당시의 ‘친아랍성명’을 연상시키며, 이는 단순한 가치 외교를 넘어 에너지 안보라는 사활적 국익 앞에서는 동맹과도 결을 달리할 수 있음 을 시사한다.
- 냉혹한 실전 외교 일본이 G7의 제재 속에서도 사할린-2 지분을 유지하며 미국으로부터 예외 승인을 받아낸 사례는, 국제 관계가 치밀한 논리와 정교한 외교술에 의해 움직이는 ‘힘의 논리’ 임을 증명한다.
- 시스템을 향한 질문 대통령의 발언이 즉흥적 감정 표출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실용 외교’로 승화되려면, 그 파장을 감당하고 국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 외교 시스템의 전략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글, ‘실용 vs 가치’ 이분법으로 볼 수 있나
이재명 대통령이 SNS 엑스(X)에 올린 이스라엘 비판 글이 국내외적으로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은, 작년 9월 이스라엘 측이 한 팔레스타인에게 자행한 끔찍한 인권침해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유하며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이 일이 지난해 벌어진 것인데 최근 사건으로 착각하는 등 일부 사실관계 착오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비판의 본질은 훼손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히며 굽히지 않았다.
이에 이스라엘 측은 자신들의 행위를 ‘홀로코스트’에 빗댄 것에 격앙하는 외교부 입장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외교부도 가세해 보편적 인권 문제를 다룬 글에 반박한 이스라엘 측에 유감을 표하며 공방이 벌어졌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공유하며 찬반 공방이 확산되었다.
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입장은 이미 국제적으로 가혹한 전쟁 범죄로 인해 지탄의 대상이 된 이스라엘측의 인권침해 비판은 인류보편적 가치인 인권 옹호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며 매우 용기있는 행동으로, 오히려 한국 정도 국력을 지닌 나라에서 늦은 감이 있다며 환영한다.
그 반대쪽에서는, 이것이 자칫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서방 내 균열을 보여주는 일이며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다른 이도 아닌 대통령이 사실관계도 부정확한 포스팅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무엇보다 지금껏 다른 유사한 사안에는 침묵하다가 이번 사안에만 선택적 정의감을 발휘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미숙한 처사라고 반박한다.
이 사안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위의 양 입장은 대통령의 글을 ‘실용 vs 가치’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재 논쟁에서 실용에 무게중심을 두는 측이 대체로 ‘보수’이고 후자를 중시하는 쪽이 대체로 ‘진보’ 진영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으로 보인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놀라운’ 친아랍성명
나는 대통령의 이번 글이 묘하게도 1973년 ‘친아랍성명’의 데자뷰로 느껴졌다. 사실 지난 9일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 당시 에너지 위기 대응 관련 발제문(사진 참고)에는 이에 관한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으나, 시간 관계상 발제자가 거의 언급을 못했다.
발제문에는 일본이 러-우전 이후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어떤 ‘실용 외교’ 행보를 보였는가에 대해서도 간단히 적었으나 이 또한 시간관계상 생략했다.
한국의 ‘친아랍성명’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발제문에서 우리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에너지 안보’라는 사활적 이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적어도 우리도 일본도 진영을 넘나드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이었다.

‘친아랍성명’이란 뭔가? 이는 지금 다시 봐도 한국 외교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이 발발해, 중동 산유국들은 감산 및 친미·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그에 따른 1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하고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당시 박정희 정부로서는 파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1973년 12월 15일, 한국 정부가 ‘중동사태에 관한 4개항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이를 이른바 ‘친아랍성명’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촉구, ▲팔레스타인인의 정당한 권리 존중, ▲중동 문제의 공정하고 평화적인 해결 지지, ▲아랍 국가들과의 우호 협력 확대 의지 표명’ 등 4개 항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당시 한국은 미국 동맹이자 친이스라엘 국가였다. 하지만, 이는 사실 EC(European Community; 유럽 공동체) 9개국이 그해 11월 6일 “이스라엘의 1968년 이후 점령지 철수 요구, 팔레스타인 인민의 정당한 권리 인정” 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을 따라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 때문에 우리의 성명 내용은 EC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던 한국으로서는 당시 아랍권의 친아랍성명 발표와 이스라엘과의 관계 단절 압박 요구에 굴할 수 밖에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고 잃었던가?
그래서, 우린 친아랍성명으로 무엇을 얻었을까? 당시 친이스라엘·친서방 국가로 인식되던 한국의 이런 파격 행보의 결과, 당장의 원유 도입은 어려웠으나 이후 중동 산유국과의 긴장 완화, 원유 공급 원활화 및 중동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기반 조성 등이 이뤄지고 중동에서의 차관 도입, 중동 건설 붐으로 이어진다.
현재 시점에서 ‘친아랍성명’을 복기해 보면, 우린 이로부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당시 우리의 역량을 따져 보면 무모하리만치 대담한 외교적 행보였다. 그러나 이는 사활적 국익이 걸린 경제 안보(에너지 안보) 사안에는 동맹과 다른 입장도 가능함을 보여준 매우 중요한 사례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놀랍게도 당시 이로 인해 한국이 한미 관계에서 두드러진 파열음을 낸 흔적은 없다. 왜냐하면 이미 EC도 그런 반응을 보인 터이고,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지닌 무게감도 크지 않았거니와 오일 쇼크로 인해 한국도 심각한 타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도 이스라엘은 한국에 강하게 반발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후 어제까지 한-이스라엘 관계는 마치 과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호적인 관계가 이어졌다. 왜일까? 서로의 필요에 의해 1973년 당시의 갈등이 봉합되었기 때문이다.
‘친아랍성명’과 이후 한국의 이스라엘 및 미국과의 관계가 시사하는 바는, 오늘날에도 한국의 사활적 이익이 걸린 이슈에는 동맹과 다른 입장에 설 수 있어야 하며, 단, 이때는 가급적 치밀하고 정교한 외교술로 동맹 및 우방과의 신뢰 관계를 손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에너지 외교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일본
에너지 위기 앞에서는 진영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실용 외교를 펼치는 나라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먼저, 이와 유사한 사례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러-우전 이후 아래에 소개하듯이 이례적인 대(對)러 행보를 취했다.
첫째는 일본의 사할린2광구 LNG 지분 유지 사례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G7(서방선진 7개국)이 대러 제재에 합의했으나, 이때 일본은 사할린1, 2 프로젝트 지분을 그대로 유지하며 러시아산 LNG를 계속 수입했다.
사할린2광구는 일본 전체 LNG 수입량의 약 8~9%를 공급하는 곳으로 미쓰이물산과 미쓰비시상사가 22.5%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2022년 8월 운영사를 국영 신설법인으로 강제 이전시켰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자국 정부 방침에 따라 지분 유지를 결정했다.
이때 일본 정부의 논리는 세 가지로 집약된다. 즉 일본의 단기 러시아산 대체 공급원 확보가 불가하고, 사할린에서 일본이 철수 시 중국이 물량 인수하는 것은 서방에도 좋지 않다, 일본의 사할린2 지분 유지는 일본의 장기 에너지 수급 안정에 필수라는 논리였다.
이에 대한 일본 국내외 평가는 어땠을까? 일본에서는 정부와 재계 모두 불가피한 선택지라며 대체로 수용했으며 에너지 가격 급등 우려로 반발도 크지 않았다.
미국과 EU는 공식적으로 일본의 에너지 취약성을 인정하며 묵인했다. 즉 G7 제재 공조 틀을 유지하면서도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물론 비판적 시각이 없지는 않았다. 가령 템플대의 브라운 교수는 ‘일본이 이것 없이 못 버티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다. 단지 하기 싫은 것’이라고 비판하며 사할린이 오히려 러시아의 대일 보복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취약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일부 유럽 연구자들은 일본에 대한 사할린 예외 결정은 일본이 G7 의장국으로서 강화를 다짐한 가치 기반 외교와 현저히 모순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그쳤다.
일본의 에너지 안보 관련 ‘실용 외교’ 노선 사례는 또 있다. 러-우전 이후 서방이 러시아의 전비 조달에 기여하는 원유 수출을 막고자 대러 수입 원유의 가격상한제(배럴당 60달러)를 도입할 때도 일본은 예외를 주장해 관철시켰다.
즉 G7, EU, 호주가 합의한 배럴당 60달러 가격상한제에서 일본의 사할린-2 산 원유에 한해 미국 재무부가 상한제 예외를 공식 승인했다. 그에 따라 2023년 1~2월에 일본은 약 74만 8,000배럴을 배럴당 약 70달러(상한 16.7% 초과)에 구입했다.
미국의 예외 승인 근거, 아니 일본의 미국 설득 논리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이는 LNG 생산 과정의 불가피한 수반 부산물일 뿐이다, 둘째, 소량이어서 러시아 수입 기여에서 무시할만한 미미한 수준(이지만 일본에겐 중요)이다. 2025년 9월 일본은 EU 선례를 따라 상한선을 배럴당 47.60달러로 인하했지만 사할린 거래는 여전히 예외를 인정받았다.
이런 사례는 비단 일본에 그치지 않는다. 단적으로 미국, 프랑스 등은 다른 나라도 아닌 러시아에서 고농축저순도우라늄(HALEU)을 연구로 및 의료용으로 러-우전 이전까지도 소량 수입하고 있었다.
사실 HAELU는 한 발만 더 나가면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기술로 이어지는 핵심 기술이다. 러-우전 이후 미국은 러시아의 HALEU 수출 무기화를 우려해 수입은 금지하고 DOE(미국 에너지부) 주도로 수입대체에 나섰으나, 기존 원전 가동에 필수적인 LEU(저농축우라늄)는 여전히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EU(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한국, 이제 국제무대에 목소리를 내기로 했는가
이것이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냉혹한 국제관계의 민낯이다.
그러니까, 나는 대통령의 X 게시 글을, 단지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 추구의 차원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직면한 에너지 위기 대응 차원이라는 지극히 실리주의적인 측면도 염두에 둔 일종의 돌파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혹시 사전적으로 그런 계산이 깔려 있는 게 아니었다면, 차제에 차라리 그렇게 연결해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대통령의 X 포스팅이 왜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침묵하다가 유독 이스라엘에 대해서만 날을 세우느냐는 비판이 터무니없는 궤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한국 정부는 ‘국익 중시 실용 외교’의 실체가 무엇인지, ‘가치 외교’는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해 답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에 뛰어 들었다.
한국 정부가 앞으로 인권에 관해 어디까지 보편 타당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는 중대한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직 한국은 대외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제 목소리를 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한국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무대에 스스로 입장을 밝히는 지위에 나선 것인지, 아니면 일회적 반응일 뿐인지 여부다. 이번 일은 한국이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아닌가 싶다.

외교시스템은 대통령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는가
‘현실 속 국제관계’란 한마디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모순 투성이의 세계다. 모두가 저마다의 국익에 기반해 일관성 없는 선택적 정의를 들이댄다. 북한에는? 중국이나 러시아에는? 왜 이스라엘에만? 이라는 비난은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충분히 들이댈 수 있는 잣대라고 본다.
다만, 그런 비판이 현실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면 솔직히 뭐가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물어야 할 것이 있다. 대통령의 명분 있는 비판이 외교 시스템으로 뒷받침된 결과물인지 여부다.
나는 솔직히 대통령이 부정확한 사실에 기반해 올린 포스팅이 충분히 치밀한 외교적 계산에 입각해 던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단, 이미 이스라엘의 도를 넘은 잔혹한 전쟁 범죄와 네타냐후의 지독한 정치적 이기심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적 비극을 전쟁광의 가해 서사로 전도시킨 행태에 분노가 인다. 그래서 나도 개인적으로는 대통령의 그 발언에 속이 시원하고 크게 공감한다.
다만, 한국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가 대통령의 일회적·즉흥적 가치 외교 포스팅의 사후적 변론 재료가 되어선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발언이 사전에 치밀하고 신중하게 계산된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로 인해 역풍을 맞더라도 조직적으로 버티고 대비하려면 그 답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1973년 ‘친아랍성명’은 그랬다. 일본의 대러 관계의 일탈(?) 행위도 치밀한 논거와 외교적 조율의 결실이었다. 지금 물어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이 글은 김양희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더 칼럼니스트>에 전재(轉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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