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팬덤으로 이해하는 건 군중혐오에 바탕한 엘리트 의식의 발로일지도 ‘민주적 대개혁’이란 목표의식 뚜렷 문제는 정당과 지지자들의 ‘대통령化’ 제왕적 대통령제 바꿔 정치병리 줄여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가 인천 계양구에 출마했을 당시 연설회에서 개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가 인천 계양구에 출마했을 당시 연설회에서 개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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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정치’가 아니라 전투적 시민정치!

윤석열과 한동훈의 갈등 때문에 시민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던 국민의힘 전당대회와는 달리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그야말로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결과가 너무도 뻔해서였으리라. 약간의 ‘소음’이 있긴 했다. 그 뻔한 결과를 낳은 주역인 ‘개딸’이 민주당을 점령했다는 김두관 후보의 발언 말이다. 그러나 김 후보는 바로 그 발언 때문으로도 민주당의 주류가 된 그 개딸들의 더 큰 비난과 공격을 받았고, 또 그래서 결과는 더 더욱 예상했던 그대로가 되지 싶다.

사실 개딸과 같은 민주당의 적극적 지지자들의 문제는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른바 ‘문빠’ 시절부터 이런 부류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여 온 거칠고 사나운 정치 참여 행태는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곤 했다. 주로 정치적 이견이나 다른 노선에 대한 불관용이라는 반다원주의적 행태가 문제였다. 수가 많아서 영향력이 큰 것도 문제였지만, 문재인이나 이재명 같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나치게 강한 애착과 지지가 그들의 기본 동기로 보인다는 게 핵심 시빗거리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의 정치를 연예인 팬덤에 빗대 ‘팬덤정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들의 정치 행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민주주의의 규범에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 국민의힘 정치인이나 지지자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같은 편이라도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면 ‘수박’이니 뭐니 하면서 맹렬한 적대의식을 드러내고 폭력적 언어로 비난을 해대는 걸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선거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런 행태는 중도층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번 국회의장 선출 과정에서 보았듯이, 이들은 또한 시민들의 주도성을 강조하면서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불신도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을 특정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지지자들로만 보는 게 반드시 옳은지는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특정 정치인에게 끌려 다니기 보다는 오히려 그 정치인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자신들의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 하는 듯하다. 어쩌면 이들을 단순히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팬덤으로만 이해하는 건 모종의 ‘군중혐오’에 바탕한 엘리트 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다.

나의 관찰에 따르면, 언론에서 흔히 민주당의 비합리적 강성 지지자들로 규정하는 그들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대개혁이라는 나름대로 뚜렷한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목표의 실천을 그냥 정치인들에게 위임하지만 않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 달성하려는 ‘시민정치’의 방식으로 수행하려 한다. 그들이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보인 적개심은 이 정치인들이 이런 목표에 대해 보인 모호한 태도 때문이라고 해야 하지, 단순히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 지지 탓이라고 보면 안 된다. 그들은 말하자면 전투적 시민정치를 하려는 거지 단순한 팬덤 행위에 빠진 건 아니지 싶다.

이런 전투적 시민정치에서 관용이나 다원주의 같은 자유주의적 규범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대변하는 우리 사회의 반개혁 기득권 세력은 너무도 강고할 뿐만 아니라,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잔인한 사법적 공격에서 보듯이, 무도하고 야비하기까지 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득권의 성채를 지키려는 이런 적들과 맞서 싸우는 데서 정중함이나 포용 같은 민주적 덕성은 한가한 사치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민주당의 ‘대통령제화’

지금 우리의 많은 전투적 민주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열망하면서 말하자면 시민사회의 광장에서 정당정치 한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전통적인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광장의 집회를 통해 정당에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보다는 직접적인 정당 참여가 훨씬 더 큰 정치적 효용감을 줄 수 있다고 여긴 때문이리라. 여하튼 덕분에 민주당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개혁적인 민주적 진보 정당의 위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를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다. 내가 볼 때 제일 큰 문제는 이 새로운 형식의 시민정치가 민주당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왜곡시킨다는 데 있다. 정당이란 본디 추구하는 가치와 일련의 정책을 기초로 모인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그 정치적 실현을 지향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유형의 시민정치는 그보다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유력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중심으로 발현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팬덤정치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나는 이게 우리의 대통령중심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미국 정치학자 사무엘스와 슈가트에 따르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의회제(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과 대통령제 나라들에서 정당들은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한다. 대통령제 나라들에서 정당들은 ‘대통령화(presidentialization)’된다. 다시 말해, 대통령 중심의 정당이 된다. 핵심은 정당이 대통령이나 후보에게 선거나 통치 전략과 관련해서 너무 많은 재량권을 부여하면서 정당이 그들에게 종속되는 일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이는 의회제 국가들의 정당과는 다른 모습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차원에서 확인된 바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특정 대통령의 당선은 정당이 아닌 대통령 개인의 집권이 되었다. 민주당 정부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였고, 국민의힘 정부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당보다는 대통령 후보의 선거 캠프가 중심이 되어 다양한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국정 방향이 결정되는 걸 보아 왔다. 정당은 이 과정을 주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기에 종속된다. 정당은 대표로 선출한 대통령을 통제하지 못하며, 그저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지키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전투적 시민정치가 ‘개딸 현상’의 양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수반이자 행정부수반이기도 한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서 국정 전반의 방향을 규정할 수 있다. 언제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국회 의석수만 뒷받침된다면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우리의 개딸 시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지도자가 이런 권력을 얻어 기득권 세력의 적폐도 청산하고 나라를 새로운 반석 위에 세우기를 바라면서 지금과 같은 양상의 정치적 실천에 나선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여기서 정당의 정책적 정체성 같은 건 아무래도 괜찮은 문제가 된다.

최근 민주당 일각과 이재명 대표의 종부세 폐지 및 금투세 시행 연기 시사에 대해 이른바 개딸들이 보인 반응을 보라. 종부세나 금투세는 민주당의 정당으로서의 핵심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민주당 내부에서 이 대표의 입장 표명을 두고 제대로 된 토론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처음 비-이재명계로 분류되는 고민정 의원이 종부세 폐지 문제를 꺼낼 때만 해도 일부에서는 꽤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기는 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같은 입장을 표명하자 대부분 침묵한다. 개딸들은 아마도 이재명 대표의 태도가 중도층을 포용하려는 고도의 선거 전략이라고 여기면서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문제엔 별 다른 관심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스트-87년체제를 열어야 한다

이런 현상을 보고 한심한 팬덤정치라고 조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의 참된 배경은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 이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이를 치유할지를 모색할 때다. 민주당은 그저 다음 대선에서 정권을 다시 되찾아 오겠다고 벼르기만 할 게 아니라, 지금 우리의 헌정체제를 이대로 계속 유지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과 사회적 논의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우리의 경험은 대통령제의 장점보다는 심각한 단점을 훨씬 더 많이 도드라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대통령제는 한 마디로 민주주의를 너무도 기형적으로 만들었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권력 분립이 잘 이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우리의 권력 구조는 너무 많은 권력을 대통령 개인에 집중시켜 국정 전체가 대통령 개인의 자질과 성향에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했다. 준비된 정책을 갖고서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지는 정당의 성숙을 가로막았고, 정당을 오로지 대통령 권력을 획득하고 지키기 위한 진지가 되게 했다. 정당들은 막강한 대통령 권력을 얻거나 지키기 위해 가장 기초적인 민주적 규범과 자제도 무시하면서 서로 상대를 헐뜯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

지금의 검찰통치체제도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닌 문제가 가장 극적으로 발현된 결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욕에 사로 잡힌 검사 윤석열이 ‘검란’을 일으키고 이를 발판 삼아 국민의힘이라는 보수 정당을 접수하며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빚어낸 극한적인 전쟁정치 상황과 그에 따른 정치의 교착상태가 있었다.

윤석열 검찰통치체제를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도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한 87년 체제를 끝내야 한다. 많은 시민들은 지금 윤석열 탄핵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은 성공하기도 힘들지만, 설사 성공한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정치체제에서는 제2기 검찰통치체제의 도래를 막아 낼 확실한 방법이 없다. 할 수만 있다면 탄핵은 탄핵대로 진행하되, 어떤 식으로든 포스트-87년 체제를 가능하게 할 개헌과 함께 새로운 정치체제를 열 수 있어야만 우리 민주주의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은 무엇보다도 지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이야기하지만, 그래서는 자칫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8년으로 늘리는 결과만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화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통령제 자체를 없애는 데 대해서는 시민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권한을 현저하게 줄인 분권형 대통령제라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치의 많은 병리들이 제대로 된 치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되고, 개딸이라고 조롱받는 민주시민들의 열정도 좀 더 적절한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공정의 배신>, <공화주의자 노무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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