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운명보다 중요한 것: 유시민의 생각에 덧붙여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윤대통령 퇴진명분 ‘불기소 특권’ 국민은 인센티브 제공에 동의할까? 尹 이후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 대연정 통해 ‘공화헌법’을 만들어내자
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제목의 유시민 작가 신간이 화제다. 이 책은 놀랍도록 명료하고 풍부한 통찰로 이 우울한 윤석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에게 뜻밖의 희망을 선물한다. 그는 말한다. “윤석열의 시간도 지나간다.” 듣고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의 목소리로 들으니 ‘정말 그렇겠다’고 무릎을 치게 된다. 갑자기 힘이 솟구친다.
아주 쉽고 가볍게 읽히는 책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너무도 적확하고 예리한 분석과 진단을 내리고 있어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주관적 철인왕’으로 여긴다고 조롱하는 데서는 미소를 짓다가도,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답답해 오는 마음에 한동안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아직 죽이지 못한 자’ 이재명과 ‘죽였는데 살아난 자’ 조국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여러 번 박수를 치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 책의 백미는 ‘그’의 운명에 대한 유 작가의 ‘아주 개인적이 생각’을 정리한 결론 부분이다. 작가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선택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자진 사퇴다. 그러나 유시민은 ‘자기객관화 또는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한 그가 이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한다. 두 번째 선택지는 협치다. 민주당 주도 대연정에 국정 운영을 맡기고 임기를 채우는 길이다. 유 작가는 역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스스로 사유하지도 학습할 능력도 없는 그가 이런 선택이 정말 바람직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남은 선택지는 역시 ‘대결’밖에 없다는 게 유 작가의 결론이다. 아무래도 그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국정을 이끌 것이고, 그런 선택은 결국 탄핵이라는 민심의 홍수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이는 총선 패배 이후 조금도 변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와 태도에서 확인되고 있는 바인데, 사실 우리가 달리 생각할 이유는 조금도 없지 싶다.
그런데 내가 가장 감탄했던 대목은, 탄핵이 확실해 보일 때 ‘그가 자진 사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자’고 제안했던 부분이다. 유 작가는 여기서 미국식 ‘놀리 프로시콰이(nolle prosequi; 항구적 불기소 특별사면)’ 제도를 입법해서 윤석열이 퇴임 후 기소당하고 처벌받을 걱정 없이 스스로 물러날 길을 열어주자고 한다. 박근혜 때와 같은 방식의 탄핵을 단순히 반복할 때 생길 수 있는 헌정 중단의 충격과 혼란을 줄여보자는 고민 끝에 나온 고육지책일 터이지만, 어떻게 이런 기막힌 생각을 해냈는지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마침 나는 지난 번 칼럼(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2903)에서 같은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나는 윤석열이 아닌 민주진보 진영의 선택지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었는데, 유 작가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과 나의 제안은 많이 겹치면서도 결정적인 지점에서 차이가 난다. 나는 탄핵이 생각만큼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유 작가는 ‘불기소 특별사면’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탄핵 전 자진 사퇴’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 놓는다. 또 나는 유 작가가 ‘협치’라고 규정한 선택지를 ‘임기단축 개헌’의 가능성과 연결시키고 이를 압박하기 위해 윤석열의 사퇴와 탄핵을 외치자고 했는데, 유 작가는 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한다.
왜 ‘임기 단축 개헌’은 아닌가
나는 유 작가와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만약 그가 제안한 대로 사태가 전개될 수 있다면, 탄핵이 현실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고, 국회 탄핵 청원 인원이 100만 명을 넘어 200만, 아니 300만 명으로 나아갈 태세다. 야당과 윤석열이 유 작가의 제안을 따른다면, 박근혜 탄핵 때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태가 진행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야당과 우리 시민들은 윤석열에게 ‘항구적인 면책특권’을 주자는 데 쉽게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유 작가도 책에서 언급한 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는 동안 진영을 바꿔가며 응축된 시민들 사이의 상대 진영에 대한 극한적 분노와 복수심은 유 작가의 ‘착한’ 제안을 순진하다며 일축해 버릴 수도 있다. 또 어쩌면 근시안 밖에 없는 윤석열은 그런 ‘놀리 프로시콰이’가 있더라도 끝까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유 작가의 제안에는 결정적인 게 빠져 있다. 거기에는 탄핵이든 자진 사퇴든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논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임기단축 개헌’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하지 못하겠다. 이 역시 상대 진영에 대한 ‘복수의 정치’라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고, 윤석열은 몰라도 정치적 몰락이 두려운 국힘당과 보수 진영 전체가 기꺼이 받을 수 있는 길이라서 그렇다. 유 작가는 윤석열에게 항구적 면책특권을 줘서 자진 사퇴를 위한 인센티브를 주자고 했지만, 임기단축 개헌도 그에게는 명예로운 퇴진의 길임에 틀림없을 테고 따라서 단순한 자진 사퇴보다는 더 나은 선택지 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개헌을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사회적 대타협의 경험은, 우리 사회의 분열과 적대를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해도, 시민들과 정치 주체들에게 지금 우리 사회에 제기되는 도전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큰 동력을 제공할 게 틀림없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을 떠올리며
이 지점에서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떠올린다. 당시 노 대통령은 지금 윤 대통령이 처한 것보다는 훨씬 나은 정치적 상황에 있었지만 ‘선거제도 개혁 수용’을 전제로 야당에게 국정 전반에 대한 운영권을 넘길 수도 있다는 제안을 했었다. 물론 그 제안은 당시 지지자들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한 채로 묻혀 버렸지만, 나는 그 제안의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크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민주진보 진영이 정권을 한 번 더 잡는 일보다는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승자독식 단순다수결 선거제도 대신 중대선거구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단기적인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비생산적인 한국 정치의 근본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제도 개혁을 희망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이런 종류의 제도 개혁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자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한다.
물론,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노 대통령이 극복하고자했던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치 양극화는 선거 제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흔히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헌법의 권력 구조에서 결정적인 자양분을 얻고 있다. 어떻게든 엄청난 권력을 가진 대통령 자리를 손에 넣겠다는 양대 진영의 필사적 대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 된지 오래다. 때문에 지금 우리 시민들이 윤석열에게 수용하도록 압박해야 할 협치, 곧 민주당 중심 대연정은 선거제 개편과 함께 우리 민주주의의 헌정적 틀 자체를 바꾸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개헌을 이야기하면 보통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떠올린다. 나는 이 문제가 결정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만약 여기에 여야가 쉽게 합의만 할 수 있다면 나쁠 게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대통령의 권한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줄이는 게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우리 정치의 근본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리 헌법이 제헌 헌법 때부터 담고 있던 국무총리 제도를 강화해 국회에 더 많은 통치 권한을 주는 실질적인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야한다. 간단하게 말해 내정은 국회의 다수당이 책임을 지고 대통령은 외교, 국방, 통일(한반도 평화) 같은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권력구조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물론 당장 이런 제안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가 쉽지 않으리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기본적인 합의만 이루어지면 지금부터라도 국회와 시민사회의 공론장을 활성화시켜 우리 사회에 가장 적합한 권력구조를 찾는 모색을 시작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지 싶다. 관건은 현 체제의 전쟁정치를 극복하면서 어느 진영에도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는 민주적 절차와 권력 구조를 찾아내는 일일 텐데, 쉽지는 않아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니만큼 우리 정치권과 시민들은 기어코 답을 찾아내지 않을까 한다.
선거제 개편은 진짜 힘들 수도 있다. 유 작가의 지적처럼, 국힘당의 영남 의원들은 어떤 경우에도 현행 선거제도가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길 게고 민주당도 거대한 수도권에서 얻을 수 있는 승자독식의 유리함 때문에 연동형 제도의 확대나 전면 도입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 역시 민주적 공론장의 활성화를 통해 답을 찾을 문제다. 필요하다면 한꺼번에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접근하면 된다.
‘민주헌법’을 넘어 ‘공화헌법’으로
지금 우리 헌법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시민들의 민주화 압력에 위축된 군부 세력과 당시의 유력 정치인들이 밀실에 모여 사실상의 ‘야합’을 통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합의의 외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시민들의 참여와 사회 전체의 숙의 과정 없이 소수 엘리트 주도로 우리 민주주의를 위한 헌정 체제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민주화의 힘은 대단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가 지배적인데, 이 과정에서 1987년 이후의 우리 민주주의 체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이는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이 체제는 지금 활력을 잃었고, 극한적 전쟁정치 상태만 남았다.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우리 민주주의 체제는 어떤 진영도 상대 진영의 벽에 막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거부권 정치체제(vetocracy)’일 뿐이다.
이제 사회적 대타협에 기초한 새로운 헌정체제가 필요하다. 이 체제는 밀실 야합이 아니라 광범위한 시민들의 참여와 토론을 통해 만들어져야 한다. 또 새 체제는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의 적극적 상호 인정의 체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 체제에서도 사회세력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과 대립은 지금과 같은 극한적 적대가 아니라 모두의 공동선을 위한 생산적 긴장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헌법은 한마디로 지금의 ‘민주헌법’을 넘어서 모든 사회 세력의 상호인정과 공존을 보장하는 ‘공화헌법’이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엄청난 위기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분단문제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같은 전통적 문제들에 더해 출생률의 저하는 물론 기후위기나 AI의 발전과 같은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정치가 나서야 하건만, 우리 정치는 이런 문제들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온통 ‘그’의 운명만 주시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다. 정치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소란이 새롭고 생산적인 헌정 체제를 낳기 위한 산고이길 바랄 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