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강’을 어떻게 건널까?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시한폭탄 째깍거리듯 위험한 나라 ‘윤통’ 장애물 제거하는 세가지 길 자진 하야의 길은 본인 원치 않아 탄핵은 헌재 재판관들이 막을 듯 방법은 임기단축 개헌...가능할까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뒤 퇴장하며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조 대표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에게 "민심을 받으십시오"라고 말했고, 이에 말에 윤 대통령은 특별한 답 없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뒤 퇴장하며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조 대표는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에게 "민심을 받으십시오"라고 말했고, 이에 말에 윤 대통령은 특별한 답 없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사진= 연합뉴스

▶ 유튜브로 칼럼 듣기

세 개의 길

정말이지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 3년은 너무 길다. 아니, 단 석 달, 단 사흘도 길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전체가 어찌 될지 모르겠다. 민주주의, 외교, 경제, 한반도 평화, 저출산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 영역에서 심각한 위기가 무슨 시한폭탄처럼 째깍거리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엉뚱한 짓거리들만 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그토록 엄중하게 경고했지만, 윤 대통령은 국정기조를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윤 대통령은 이제 우리 사회의 안녕과 번영을 위협하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윤석열의 강’을 건너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강을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 세 가지 길이 가능해 보인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하거나, 국회가 탄핵하거나, 아니면 임기 단축 개헌을 하면 된다. 그러나 어느 길이든 만만찮다. 결국 우리는 다음 대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첫 번째 길을 보자. 지지율이 계속 떨어져 이제 10%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윤 대통령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그냥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자신을 위해서나 이 나라를 위해서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보여 왔던 행적에 비추어 볼 때, 그는 결코 이런 선택을 할 리가 없다. 지지율이 더 떨어지고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거의 매일 같이 시위대가 하야를 외치면 또 모르겠지만, 아니 그럴 경우에라도, 그는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길, 탄핵은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길은 두 번째 길, 곧 탄핵이다. 이른바 ‘탄핵 마일리지’가 쌓여 가고 있다. 국민의 힘 당무 개입, ‘민생토론회’를 빙자한 노골적 총선 개입, 김건희 여사 디올백 수수 관련 부적절한 처신 같은 것들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지 싶다. 거부권 행사도 문제다. ‘김건희 특검법’ 거부도 그렇지만, 특히 ‘채해병 특검법’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정당한 내재적 한계를 넘어서 거부권을 행사했음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자신의 범죄 혐의를 덮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했으니 중요한 탄핵 사유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전대통령을 탄핵할 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탄핵저지선을 훨씬 넘는 128석의 의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명백한 탄핵 사유와 뜨거운 국민 여론 때문에 무려 60여 명이 넘는 여당 의원들이 탄핵에 찬성했다. 지금 국민의힘은 고작 108석의 의석밖에 없다.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탄핵 의결을 막아낼 수 있지만, 여론이 악화하고 대통령의 범죄 혐의가 더 뚜렷하게 밝혀지면 많은 여당 의원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의 탄핵 의결은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길에는 두 개의 함정이 있다. 하나는 여론이다. 과연 우리 국민들이 다시 한 번 탄핵 사태를 맞으려 하겠냐는 거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가 높은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 건 분명해 보이지만, 그 분노가 꼭 탄핵의 방식으로만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겠다. 2016/17년의 ‘촛불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또 어떻게 반동을 맞았는지를 잘 아는 시민들은 비슷한 경로를 다시 밟아 가자는 데 대해 선뜻 맞장구를 치지 않을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라는 함정

다른 하나는 헌법재판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만약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탄핵을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은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이번에도 상황은 일단 그렇게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헌법재판관의 인적 구성이 문제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 동기이고, 정형식 재판관도 윤 대통령이 추천했다. 다수 재판관들이 곧 퇴임하는데, 어떤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달 말 헌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관련자를 ‘보복 기소’하는 등 공소권을 남용했던 안동완 부장검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해 버렸다. 안 검사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대법원이 확인했던 바인데도 그랬다. 불법은 저질렀지만 탄핵할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기막힌 이유를 댔다. 이 판결은 윤석열 정부 이후 헌재가 확연하게 보수화되었음을 상징한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의결된다고 해도 헌재가 인용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쯤 해서 우리는 헌법재판소가 왜 존재하는지 한번 물어 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우리 헌법은 왜 정당한 민주적 선거 과정을 통해 구성된 국회의 다수가 의결한 사안에 대해 소수의 사법 엘리트들이 인용 여부나 위헌 여부를 최종적으로 가리게 한 것일까?

소수 사법 엘리트들

민주적 의회의 결정을 무효화할 수도 있는 우리나라의 헌법재판 같은 ‘사법 심사(Judicial Review)’ 제도는 근대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민주주의가 지닌 중우정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전횡’에 맞서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기본권을 최우선적으로 보장하자는 게 그 기본 취지다. 쉽게 말해, 이 사법 심사 제도는 민주주의보다 법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우위에 둔다.

이 제도는 시민 대중과 그 대표의 민주적 결정이 지닌 합리성을 의심한다. 대중은 감성적이고 선동에 취약하며 변덕스럽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고, 무엇보다도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소수의 권리를 자주 무시한다는 거다. 그래서 보편적 법치의 정신과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 법관들에게 그런 대중의 판단이 수용할만한지를 심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데서 꽤 긍정적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헌법재판소가 국민들의 기본권 보호라는 존재 이유에 언제나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헌재는 그동안 ‘자유권’은 몰라도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차원의 삶의 안정성을 위한 ‘사회적 권리(사회권)’를 보장하는 데서는 일관되게 소극적이었다. 자유권과 관련해서도, 우리 시민들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해 온 국가보안법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를 이전하겠다는 참여정부의 계획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던 일은 헌법재판소의 기득권 편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헌재는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조선 시대 이래의 ‘관습헌법’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는데, 아마도 세계 헌법재판사에 기록될 엽기적인 판결이 아닐까 싶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가 왕조 시대의 유사 헌법을 근거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수도 이전 계획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니 말이다. 많은 시민들은 이 황당한 판결의 배경에 서울에 기반을 둔 당시 헌법재판관들의 이해관계, 특히 부동산 기득권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가 진행하는 사법심사 제도가 지닌 가장 심각한 자가당착은, 민주적 다수결주의의 위험성을 근거로 도입된 이 사법심사도 결국 다수결로 최종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에서도 많은 경우 사안의 본성이나 시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가치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헌법재판소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닌 재판관들로 구성되는가에 따라 판단의 방향이 결정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9명 헌법재판관들의 다수결이 300명 국회의원들의 다수 판단보다 더 낫다고 여겨야 할 무슨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윤석열 정권 조기종식을 위한 탄핵의 길이 적어도 지금 우리의 헌정 체제에서는 현실주의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민주적이지도 않은 선택지일 수도 있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다. 박근혜 탄핵의 빛나는 기억에만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박근혜 탄핵 때는 국정농단이 너무도 심각해서 국민들 거의 전체가 압도적으로 탄핵을 지지했고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이 그 여론에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을까?

물론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나 그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지지율을 보면, 헌법재판소가 역시 여론에 따라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 힘 지지율 격차는 의석수 격차만큼 크지는 않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윤석열 탄핵을 원하지 않는 국민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 최소한 우리는 예단을 해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 탄핵이 기각이라도 되면, 윤석열 대통령은 기고만장해져서 이 나라를 어떤 혼란으로 몰고 갈지 모른다.

“하야하라” 외쳐야할 마지막 길

이제 세 번째 길을 보자. 이 길은 윤 대통령이 국민의 힘을 탈당하게 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한 뒤, 여야 합의로 구성된 국회 개헌특위에서 윤 대통령의 임기단축을 명시한 부칙과 함께 마련한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로 승인하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길이 자칫 윤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그에 대한 단죄의 초점을 흐릴까봐 걱정하지만, 내 생각에 이 길이야말로 가장 현실주의적이면서도 바람직하다.

탄핵과 단죄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나라 전체의 공동선과 미래를 위해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게 무엇일지를 진지하게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땅에 좀 더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 곧 제7공화국을 건설하는 일은 저 2016/7년 촛불혁명을 이제라도 완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윤석열의 ‘검란’과 함께 시작된 반동도 제대로 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윤석열의 검찰통치 시기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 위해 왜 새로운 헌법 체제가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어쩌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결론을 소수 엘리트에게 맡겨버린 지금의 헌법재판 절차도 중요한 개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여하튼 이 새로운 공화적 헌정 체제를 위해서는 모든 정치 세력의 대타협은 불가피한데, 지금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 길에서 윤 대통령은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받아서 좋고, 여당은 윤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정치적 일체화 때문에 떠안게 될지도 모를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은 윤석열 정권 조기종식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 모두에게 좋다. 이제 그 수명을 다한 제6공화국 헌법의 맹점과 한계를 보완해서 참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가능하게 할 제7공화국 헌법을 가질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이렇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 모두가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 세 번째 길 역시 처음부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시민들 입장에서도 윤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이 못마땅할 수도 있지만, 윤 대통령도 자신의 참된 이익조차 계산 못하고 임기단축의 길을 무턱대고 회피하려 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길을 가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에 대한 압박과 저항을 늦춰서는 안 된다. “하야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고, 탄핵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윤 대통령은 우리 정치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한 새로운 공화 체제로서의 제7공화국을 여는 길에 마지못해서라도 동참할 수 있지 싶다. 아마도 이게 이 세 번째 길 앞에 놓인 커다란 함정일 것이다.

글쓴이

장은주 영산대 교수

장은주는 영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정치철학자다. 어떻게 하면 한국 민주주의가 좀 더 안정되고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필요한 철학적 인식을 다듬는 게 주된 관심사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대학에서 ‘비판사회이론’을 공부해서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 사회의 고유한 삶의 문법과 발전 동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민주적 역량 함양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권의 철학>, <정치의 이동>, <유교적 근대성의 미래>, <시민교육이 희망이다> 같은 책을 썼다. 최근에는 <공정의 배신>, <공화주의자 노무현>을 발표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