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이 답해야 할 문제들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조국 대표는 ‘복수의 정치’를 하려는가 ‘사회권 선진국’은 민생과 무슨 관계인가 어떤 진보 정당을 꿈꾸고 있나 치열한 고민 통해 올바른 자리 찾기를
조국혁신당은 이번 4.10총선에서 한국 정치사에 전무후무할 하나의 신화를 썼다. 창당 이후 고작 한 달을 조금 넘기고 치른 총선에서 무려 국회의원 12석을 얻었다. 게다가 조국혁신당은 민주진보진영 전체의 압승을 견인했다. 그동안 민주당 일각에서 강하게 이야기되었던 이른바 ‘조국의 강’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름 아닌 그렇게 걱정하던 ‘조국’이 민주당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미 이런 신화적인 성공의 이유들을 잘 설명했다. 조국 대표 개인의 인간적 매력과 높은 ‘정치적 상품성’, 선명한 반(反)-윤석열 전선의 형성, 민주당의 공천 갈등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유입, 우리 정치의 상황과 현행 선거제도의 현실을 잘 고려한 ‘지민비조’ 전략, 전통적 진보 정당 지지층의 흡수 등이다. 내가 특별히 더 보탤 게 없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한 이런 요인 중 많은 것들은 또한 동시에 이 당이 하나의 정당으로서 지속하는 데 필요한 주요 과제를 가리키기도 한다. 조국혁신당은 이에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세 가지 정도의 차원에서 이에 대한 나의 제안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왜 ‘검찰개혁’인가?
조국혁신당은 선명했다. 가장 분명하고 단호하게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고, 검찰독재의 무도함을 공격했다. 그러나 이런 선명성이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 받을수록, 다른 한 편에선 불편한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조국은 결국 어떤 ‘복수의 정치’를 하려는 건 아닌가? 당연한 의구심이고, 조국혁신당은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조국혁신당이 최우선적인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검찰개혁은 단순히 ‘사적 복수’의 표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공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불의한 목적을 위해 오용하고 남용했던 세력에 대한 정당한 ‘공적 심판’이어야 한다. 이런 심판을 통해서만 민주 사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의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조국 가족이 검찰의 부당한 권력 남용에 고통을 겪은 게 억울해서가 아니라 지금과 같은 한국 검찰의 존재 양식은 우리 사회의 커다란 불의(不義)이기 때문에 검찰개혁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검찰개혁은 왜 해야 할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금의 한국 검찰이 사실상 국민의 힘 ‘위성 정당’으로, 철저하게 과두 특권세력의 편에서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사회 개혁에 큰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검찰은 법치를 통해 시민의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수사권 및 기소권에 대한 독점을 무기로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오히려 시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하고 있다.
이건 ‘법치(rule of law)’가 아니라 우리 사회 과두 특권세력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해 법이라는 국가적 강제 장치를 폭력적으로 악용하는 ‘법을 수단으로 한 지배(rule by law)’일 뿐이다. 이런 사이비 법치에 기초한 검찰통치체제는 우리 사회가 다른 모든 문제 해결에 앞서 가장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너무도 ‘현저한 불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불의의 해결 없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사회권 선진국’인가?
그러나 이런 검찰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조국혁신당이 당장 맞딱뜨릴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조국혁신당은 검찰개혁 단일의제 정당인가? 검찰개혁은 가령 대다수 시민들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인 이른바 ‘민생’ 문제와 무슨 관계인가?
이런 맥락에서 조국혁신당이 선거 과정에서 ‘사회권 선진국’을 내세우며 ‘제7공화국’의 깃발을 높이 세워 올린 건 아주 적절했다. 조국혁신당이 결코 검찰개혁이라는 하나의 의제에만 집중하는 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검찰독재의 조기종식이 결국 올바른 민생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드러낸 좋은 선택이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요시하는 많은 진보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서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지난 총선 과정에서 이러한 지향이 충분히 제대로 언론과 유권자들에게 수용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이 문제가 결국 조국혁신당의 이념적 정체성과도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사실 심각하다.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사회권에 대한 이런 강조는, 이미 ‘조국식 사회주의’라는 비난에서도 확인되었듯이, 불필요한 ‘이념 전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조국혁신당은 앞으로 검찰개혁의 과제와 사회권 선진국에 대한 추구를 함께 묶어 주고 정치적으로 추구해야 할 그 밖의 다양한 정책들의 방향과 색깔도 체계적으로 정당화해 줄 이념적 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여기서 민주공화국의 해방적 잠재력에 주목하라고 제안한다.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민주공화국은 기본적으로 법과 공동선에 기반을 두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만들어 낸 정치공동체다. 여기서 그 공동선의 핵심은 모든 시민의 자유와 존엄을 예외 없이 보장하는 데 있다. 이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시민은 존엄성의 훼손과 모욕 없이 당당하고 위엄 있는 존재로 자기실현을 위한 다양한 모색과 실험을 펼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장기적인 실업 상태로 살아가야 하거나, 비정규직 상태로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지속적인 고용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그와 같은 위엄을 갖춘 삶을 살기 힘들다. 부의 정도에 따라 질병 치료의 질이 결정되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주거와 같이 인간으로서 지닌 가장 기본적인 필요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사회나 타인의 자의적인 선의에 의존해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경우에도 그렇다.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이라면 시민들이 그러한 상황에서 지배당하거나 고통 받으며 살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한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주공화국은 고도의 복지국가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한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은 단순히 정치적 선언 수준을 넘어서 모든 시민이 다른 어떤 정치적 고려들에 앞서 최우선적으로 누릴 수 있는 헌법적 기본권의 보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런 게 주거, 의료, 교육, 일자리 등에 대한 사회권이다.
반드시 조국혁신당의 의제가 아니더라도 제22대 국회는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탄핵을 거치든 아니든, 거국내각의 수립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하는 개헌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이다. 개헌은 ‘너무 긴 3년’을 단축할 좋은 방안이다. ‘제7공화국’이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대통령 4년 중임제’ 같은 권력구조만 바꾸는 개헌은 우리 사회에 별다른 개혁적 효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조국혁신당이 제22대 국회에서 검찰통치의 완전한 종식과 함께 사회권 선진국을 가능하게 할 제7공화국에 대해 명확한 비전과 정치철학을 가지고 개헌정국을 주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국혁신당은 새로운 진보 정당인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념적 정체성과 정책적 방향성을 확립한다면, 조국혁신당은 민주당보다는 정의당 등과 같은 진보 정당에 가깝다. 조국혁신당은 진보 정당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진보 정당인가? 사실 조국혁신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금껏 정의당에 갔던 많은 표를 흡수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는데, 조국혁신당은 정치적으로도 정의당을 대신할 수 있을까? 또는 그래야 하는가?
나는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국혁신당이 변화된 상황과 조건에서 새롭게 탄생한 독자적 진보정당이 되어야 지속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고 또 그게 우리 사회와 정치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때 조국혁신당이 지향해야 할 진보는 통상적인 진보와는 달라야 한다. 우리 사회의 통상적 진보는 말하자면 ‘보수적 진보’로, 오래된 유럽적 진보 정치에 대한 향수에 젖어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역사의 단계적 발전에 대한 역사철학적 신념 위에서 ‘자본가 대 노동자의 대립’ 같은 계급주의적 도식을 고수하며 급진적인 자본주의 비판에 초점을 둔다. 이번 총선은 이런 진보가 적어도 지금과 같은 틀과 지향을 갖고서는 더는 생명력과 정치적 자리를 가질 수 없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지 않았나 싶다.
조국혁신당이 지향해야 할 진보는 이런 진보와는 다른 새로운 ‘시민적 진보’여야 한다. 이 진보는 시민적 주체라는 기반 위에서 민주공화국의 해방적 잠재력을 활성화하는 가운데 모든 시민의 존엄한 인간적 삶의 도덕적 깊이를 심화하고 그 너비를 확대하려는 진보다. 이 진보는 저 통상적 진보는 물론, 민주당이 사로잡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나 진보당식 ‘좌파 민족주의’ 노선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 사회의 숱한 근본적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개혁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
이 진보는 사회권의 심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향상시키고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추구함으로써 전통적인 진보 정치의 의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해 내어야 한다. 나아가 다른 다양한 새로운 문제와 도전에도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간적 삶의 조건 전체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위협하고 있는 기후위기 문제가 중요하다. 기후위기는 이제 자연의 일부이자 그 자체로 자연인 사람들의 존엄한 삶을 위협하는 새로운 종류의 지배다.

물론 이런 진보 노선은 조국혁신당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 개혁 정치의 ‘본진’인 민주당이 이런 시민적 진보의 길을 갈 수 있어야 우리 사회의 숱한 개혁 과제들은 좀 더 온전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조국혁신당이 총선 과정에서 사용했던 ‘예인선’의 비유는 여기서도 중요하다. 조국혁신당은 말하자면 ‘혁신민주당’이 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지향하지는 않되, 민주당이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주저하는 의제와 가치를 과감하게 앞장서 추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제7공화국과 함께 좀 더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총선과 대선에서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조국혁신당은 독자 노선을 부각하며 좀 더 선명하게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켜볼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양당 중심의 정치 체제에서도 민주당 왼쪽에서 민주당보다 진보적인 지향을 갖는 개혁 정당으로서의 조국혁신당이 수행해야 할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부디 치열한 고민을 통해 올바른 제 자리를 잘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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