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지 못하면, 귀환하는 undead 뱀파이어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충분한 애도 바쳐야 영혼도 떠나는데... 뱀파이어물 대표작 소설 ‘드라큘라’ 아내 죽음 애도 않아 자신도 영면 못해 세월호 희생자에 ‘사회적 애도’ 충분해야
애도하지 못해 벌어지는 비극물(物)
올해로 세월호 참사 10주년이다. 유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재난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추모행진을 벌였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같은 패턴의 사고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2년 전 이태원 참사를 지켜보며 되새겨야만 했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갈등의 불씨를 키운다. 제주 4.3항쟁,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국가폭력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애도할 기회조차 오랜 세월 박탈해온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다. 예술에는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이 있다. 애도하지 못해 벌어지는 비극을 문학(그리고 영화)은 여러 형식으로 형상화했고 뱀파이어물도 여기 속한다.
뱀파이어 소설의 홍수 속에서 태어난 브램 스토커의 야심작 『드라큘라』(1897)는 이 장르의 집대성이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이 공전의 히트를 하며, 나중에는 세기말 분위기까지 가세해 근대문명이 가져올 재앙을 예견하는 ‘고딕소설’(음산한 분위기의 공포물)이 유행하던 때였다.
드라큘라와 뱀파이어
『드라큘라』는 이 소설 저 소설에 흩어져 있는 들쭉날쭉하고 더러는 막연하던 뱀파이어의 속성을 분명히 하고, 기원과 계보를 부여했으며 첨단 과학지식을 배경으로 내러티브를 짰다. 그러나 당대에는 저속하다는 혹평에 시달렸으며, 『프랑켄슈타인』의 명성에 눌려 상업적 성공도 그의 기대에 못 미쳤다. 근대의 자본가들을 ‘흡혈귀’에 비유할 정도로 시대성과 상징성을 갖춘 이 소설이 재평가받은 것은 미국의 비평가 레슬리 피들러가 고급문학을 비판하고 대중문학의 가치에 주목한 「경계를 넘어서고, 간극을 좁히며」(1969)가 시작이었다.
한편 애도의 의미가 좀 더 선명히 드러나는 이 장르의 소설로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The Vampire Chronicles)(1976~2014) 시리즈가 있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Interview with the Vampire)>(닐 조단 감독, 1994)가 상영되면서 국내에 알려진 라이스의 소설은, 어린 딸의 죽음을 계기로 삶과 죽음을 통찰한 결과물이었다. 라이스는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딸을 애도하고 부활을 기원하며 뱀파이어를 불러냈다.
뱀파이어 소설은 애도의 문학이지만 신화적 또는 민담적 요소와 신비주의, 에로티시즘 등의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다. 특히 『드라큘라』는 트로이전쟁 원정대를 꾸리는 호메로스의 『일리어스』 이래 사랑받아온 원정대 형식도 가져왔다.
흡혈 신화에 대해
흡혈귀 또는 흡혈에 관련된 신화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사람의 피를 취하는 흡혈은 식인의 한 형태이며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살과 피를 뿌리는 제의나 그리스신화의 디오니소스 제의에서 살아 있는 동물의 살을 뜯고 피를 마시는 행위, 뉴기니 군도의 하이누웰레(Hainuwele) 신화나 우리나라의 박혁거세 신화에서 살과 피를 사방에 뿌리는 행위도 여기 속한다. 이는 대체로 곡물 전달자에 대한 내력(來歷)이나 풍요의 기원과 관계된 희생제의 행위였다.
또 흡혈귀가 피를 취한다는 설정은 기독교 의례에서는 아주 익숙한 행위다. 가톨릭은 예수의 살과 피를 취하는 의식을 미사 때마다 치른다. 그런 점에서 흡혈의 이미지는 유럽인에게 내면화된 두려움의 산물이자 금기다. 프로이트는 되살아난 시체에 대한 두려움을 ‘억압된 익숙함의 귀환’으로 설명한다. 불멸에 대한 욕망, 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죽은 자가 돌아와 아직 죽지 않은 자를 데려간다는 불안감에 빠지게 한다. 따라서 돌아온 뱀파이어는 전혀 새로운 대상이 아닌, 익숙하지만 억눌려 있던 두려움이며 원시시대부터 보존되어온 감정이다. 다시 말해 뱀파이어는 인간의 무의식으로 가라앉은 ‘낯선 익숙함(uncanny)’의 귀환이다.
흡혈귀 퇴치원정대 리더 ‘반 헬싱’
드라큘라 백작은 루마니아의 쇠락한 성에 거주하며 런던으로 진출할 음모를 꾸민다. 변호사 조너선 하커에게 런던의 주택 매입을 의뢰하고, 나중에는 자신을 초대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는 불멸의 존재로 막강한 힘을 지녔으니, 런던행 정도는 바로 실행할 만도 한데 굳이 예의를 따져 번거로운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이 화소(話素)는 후대의 소설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욘 A. 린크트비스크, 2004)에서 “초대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이엘리(뱀파이어 소녀)의 말로 이어져, 뱀파이어식 매너를 널리 각인하는 계기가 된다.
드디어 답장을 받고 영국에 진출한 드라큘라는 미나 머레이를 납치할 계획을 세웠고 여기 대항하는 기사단이 꾸려진다. 기사단이 지키는 상황에서 드라큘라는 미나가 거처하는 창문으로 드나들며 그녀의 피를 탐하는 데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 뱀파이어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진한 성애의 암시이며, 루마니아인들은 성에 눈을 뜨게 하는 악귀를 ‘즈부러토룰’(Zburătorul)이라고 불렀다. 즈부러토룰은 창문으로 드나드는 야래자(夜來者)다. 또 악령 ‘스트리고이’(Strigoi)는 사람의 피를 빨아 바늘에 찔린 모양의 상처를 남기는데 이는 뱀파이어 장르에서 익숙한 장면이다(즈브러토룰과 스트리고이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지난 칼럼 “민간전승신화는 왜 이렇게 에로틱할까”에 나와 있다).
드라큘라에서 흡혈귀 퇴치 원정대는 의사인 존 수어드를 중심으로 그의 스승인 반 헬싱, 미나의 남편 조너선 하커 등 영국인과 네덜란드인, 미국인으로 구성된 다국적 기사단이었다. 미녀가 납치되자 원정대가 꾸려졌다는 점에서 트로이전쟁을 연상시킨다. 그리스신화에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어 던진 황금사과를 놓고 다투던 여신들은, 트로이의 왕자이며 목동인 파리스에게 심판을 부탁하러 갔고 파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물하겠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납치하지만 그녀가 저항한 기색은 없고 둘 사이에는 오히려 로맨스가 형성된다.
그런가 하면 드라큘라는 자신의 심장을 뚫어 미나에게 마시게 한 자발적 피흡혈자(被吸血者)였고, 그의 피를 받은 미나와 드라큘라 사이에도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미나는 원정대와 드라큘라 사이에서 이중성을 띠며 점점 강해졌다. 미나의 몸속에서 통합된 뱀파이어의 피가 엄연하다면, 미나가 낳은 아들은 온전히 하커 2세이며 인간의 아들일까,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일까? 같은 의문점을 남겨 흥미롭다.
어찌됐든 반 헬싱 교수는 과학자와 법률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원정대의 리더로서 미신과 과학, 이교도의 연금술과 근대 의학의 힘을 결합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악의 근원 뱀파이어를 퇴치한다. 이들 원정대원의 흡혈귀 퇴치는 신흥 자본가들에 의한 구시대 귀족의 몰락을 상징한다. 고전이 된 논평이지만 뱀파이어를 사회현상으로 명징하게 짚고 있다.

애도할 줄 몰라 영면하지 못하는 백작처럼
그런데 왜 드라큘라 백작은 뱀파이어가 되었을까?
드라큘라 백작의 모델은 1427년 트란실바니아(루마니아 북부)에서 태어난 발라키아의 왕자였다. 어릴 적 터키와 헝가리 제국의 볼모였던 그는 왕위에 오르자 많은 전쟁을 벌이고 터키군 포로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긴 꼬챙이를 항문에 찔러 산 채로 매단 데서 ‘쩨뻬쉬(꼬챙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아버지가 헝가리의 지그문트 2세에게 받은 작위 ‘드라쿨(Dracul, 용)’을 따와 ‘용의 아들’을 이름 뒤에 붙이면서 ‘블라드 쩨뻬쉬 드라쿨라(Vlad Tepeş Dracula)’가 되었다. 그는 밀매로 부를 축적하는 작센 상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겨 피폐한 민생을 살폈다. 이러한 그의 결단력과 행동이 루마니아인에게는 정의롭고 용감한 왕으로, 유럽에는 잔혹한 흡혈귀의 이미지로 퍼져나간다(박정오, 신화의 나라 드라큘라의 나라, 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7).
그렇지만 드라큘라 백작이 왜 뱀파이어가 되었는지 이 소설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출신지를 악령이 출몰하는 변방으로 설정하고 ‘악마와 거래한 조상의 후예’(드라큘라, 박종윤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2016)라는 소문이 돈다고 언급해 오컬트(occult)의 영역에 둔다. 그런 드라큘라에게 서사를 부여한 것은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였다. 스토커가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뱀파이어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인데 비해, 영화는 죽은 아내를 애도하지 않은 채 스스로 영면하지도 못하는 백작의 슬픔에 주목하고 미나를 통해 한을 풀어주는 데 집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몇백 년을 거슬러 그의 영혼을 불러낸 미나의 역할은 우리에게는 낯설고도 익숙한 샤먼이고 영화는 씻김굿이었다.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비결은 전설이 되어가던 인물에 서사를 부여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애도에는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 있다. 뒤집어 말하면 충분히 애도받지 못한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빚으로 남고 갈등의 불씨를 키우게 된다는 뜻이고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부디 세월호 유족들의 추모행진에 담긴 의미처럼, 참사로 고통받는 이들의 바람처럼, 진상 규명이 있고 사회적 애도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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