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전승신화는 왜 이렇게 에로틱할까
[김경은의 ‘신화의 시대, 시대의 신화’] 풍요와 에로티시즘, 민간전승의 경험 고대부터 출산을 고무한 ‘에로티시즘’ 신화 에로스는 ‘사랑의 불’ 지르는 무책임한 신 기독교는 에로티시즘에 ‘부도덕’ 덫 씌우고
우리는 온갖 콘텐츠를 드라마로, 영화로, 혹은 게임으로 즐긴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현대인의 이러한 행위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기원은 사라지고 의례만 남은 콘텐츠들은 사람들을 더욱 미혹(迷惑: 마음을 홀리는 것)하는데, 이는 고대의 풍습이 무의식으로 살아남아 지금까지 내려오는 까닭이다.
미혹하는 강력한 이야기들 중에는 마녀와 마법사, 늑대인간, 뱀파이어 물(物)들이 있다. 이들 장르물에서 신비한 화소를 걷어내면, 풍요를 기원하는 민간전승의 풍속이나 민담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다.
출산이 절실했던 고대
생명, 생산력이 에로스와 결합한다면, 이를 훼방하는 타나토스 같은 악마가 반대편에 생겨나고, 다시 그 길항 축으로 선한 마법을 쓰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식으로 내러티브는 복잡계를 형성한다. 덕분에 민간전승은 다양한 버전의 풍부한 이야기를 낳았고 현대에도 스토리텔링의 원천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풍요나 출산은 민담의 기원인 신화에서도 당연히 중요한 화소다. 신화에는 왕성한 개체 번식을 고무하는 이야기로 넘쳐난다. 그런데 종족 번식을 위한 이성간 조화(造化)가 하도 절묘해, 인간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생리작용을 ‘신의 뜻’으로 돌릴 때가 많다. 현대 과학에서는 이러한 질풍노도기를 신경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길, 전두엽의 활성화와 호르몬의 변화라 둘러댄다.
신화에서는 사랑의 신, 에로스는 경솔한 행동으로 우주적 생명 활동을 책임지는데, 그의 무기를 여기저기 날려 ‘사랑의 불’을 지르는 무책임이 그 비결이다. 이처럼 그리스‧로마 신화가 아니더라도 성애(性愛)를 말하는 이야기는 세계 어디에나 있다. 상열지사(相悅之詞)의 화학작용에는 이성보다 감성, 태양보다는 달, 한낮보다는 한밤중이 잘 어울린다. 짙은 어둠이 지배하는 숲이나 밤은 관능이 극대화하는 감각의 시공간이면서, 정령들의 활동과 에로틱한 이야기가 결합하기 좋은 무대였던 것이다.
루마니아의 성애의 화신 이야기
루마니아 신화에는 성애의 화신으로 즈부러토룰(Zburătorul)이 있다. 그는 고대부터 ‘날아다니는 것’을 뜻하는 신성한 존재이자, 밤이면 찾아오는 정체 모를 외부인 즉 야래자(夜來者)를 말한다. 젊은 여성이 즈부러토룰에 사로잡히는 날이면, 운명의 덫에 걸려 버둥거려야 한다. 즈부러토롤은 ‘날개 달린 뱀이나 용, 타오르는 불꽃의 모습’을 뜻하는데, “늠름하게 발기한 남성의 성기(性器)를 연상”시키며, 인큐버스(incubus, 夢魔)와도 같은 악령이다. 전하는 많은 버전 가운데 토칠레스쿠가 채록한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다.
“아주 옛날, 짝짓기 싸움에 승리한 수컷 뱀이 마법의 돌을 삼키자 즈부러토룰이 되었고 멋진 남성의 몸을 얻는다. 한밤중, 마을로 잠입한 즈부러토룰은 앳된 모습을 벗어나기 시작한 소녀를 찾아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짓”으로 몸을 닳게 만들고는 새벽닭이 울 즈음 사라졌다. 소녀는 밤이 올 때까지 열병을 앓다 꿈결에 즈부러토룰을 만나는 일을 반복한다. 부쩍 수척해진 딸의 거동이 수상해 혹시나 침실을 지키던 가족들에게 이 모든 경위가 발각되는 날이 왔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가족들은 악령이 숨은 곳을 불 질러 태웠고 소녀도 시들부들 앓다 세상을 떠난다.”
때로 즈부러토룰은 타오르는 황금빛 머리카락에 은빛 비늘이 온몸을 휘두른 반신반인의 형상으로도 나타났다. 무성한 버전으로 민간에 널리 퍼지며 미신으로 발전했고 이를 퇴치할 주술과 제구(祭具)도 만들어졌다. 집안의 틈이란 틈에는 모조리 마늘을 바르고 칼을 꽂아두거나 주술 효능이 있는 약초 자루를 매다는 ‘액막이 행위’도 성행시켰다.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가감하다 보니 극적 결말로 가져간 면도 있겠지만, 소녀의 죽음은 여성으로 발돋움하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여성을 괴롭히는 악령의 존재는 성(性)에 눈뜨는 변화를 외부화한 상징으로,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다(권혁재 외 『동유럽의 신화』, 2008).
뱀이 남자로 변신해 처녀와 관계를 맺는 야래자(夜來者)는 우리 설화에서도 신묘한 존재로 등장한다.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고 찾아온 사내의 옷자락에 찌른 바늘과 실을 따라가니 지렁이가 죽어 있었다는 ‘견훤의 탄생’ 일화는 유명하다.

유럽 농민들과 마녀 이야기
저명 종교 연구가인 미르치아 엘리아데에 의하면 유럽, 특히 남동부 유럽에는 기독교가 전파되고도 오랫동안 민간전승이 농민들 사이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권력층은 이른바 ‘이단’이라는 전승을 흡수하고서야 기독교를 민간에 정착시킬 수 있었다(『신화와 현실』, 이은봉 역, 2015).
엘리아데 교수가 “농민들의 특이한 종교체험”이라고만 언급한 민간전승의 내용을 역사가인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밤의 역사』에서 아래처럼 자세히 기술한다.
“종교재판에 불려와 진술한 사내에 따르면 자신은 베난단티(Benandanti)로 태어났으며 연중 행사로 들에 나가 밤의 전투를 벌이는 선량한 마법사였다. 이들의 전투 목적은 수확물을 지키는 일로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문화의 전통이었으니 베난단티는 일종의 무당이었다. 이런 존재 가운데는 스트리고이(Strigoi)로 불리는 마녀도 있었는데, 벌판에서 탈혼 상태로 밤샘 전투를 벌인 뒤 화해한다고 전해진다. 베난단티나 스트리고이는 모두 막에 둘러싸여 태어났다는 점에서 양막(羊膜)을 쓰고 태어난 아이들을 신비화하던 풍속을 엿볼 수 있다(『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주경철, 2002). 탈혼은 사후세계에 들어선 상태를 말한다(필자 칼럼 <신화 속 외발, 악마의 잔치, 밤의 전투>에 좀 더 자세히 나와 있다).
이들 중 스트리고이는 루마니아에 구전되는 정령 또는 마녀인데, 이동할 때는 빗자루를 탄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날아다니지 못해 평소 친척이나 이웃을 찾아다니지만 먼 곳을 갈 일이 생기면 빗자루나 나무 막대기에 의지해 날아간다. 물을 건널 일이 있으면 나무통을 타고 간다. 초승달이 뜨는 밤을 좋아해서 이런 날엔 밖으로 몰려나오는데, 해칠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들만의 장소에 모여 빗자루, 도리깨, 삽 따위를 휘두르며 일삼아 싸운다.
누군가가 ‘빨간 마늘’이라고 외치면 싸움을 벌이고, ‘하얀 마늘’이라 외치면 싸움을 그친다. 싸우면서 “때린다. 때리지만 자르지는 않는다”는 말을 외치지만 재수 없게 “때린다. 때리고 자른다”라는 외침이라도 울리는 날에는 다 죽게 되는 위험천만한 싸움이다(권혁태 외, 같은 책).
집안으로 틈입하는 이들을 막을 방법은, 즈부러토룰의 경우와 같지만 평소에 정리정돈을 잘해두는 게 관건이다. 스트리고이가 솥단지나 숟가락을 부르며 “문을 열어다오” 하는 말에 흐트러진 가재도구들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스트리고이는 살아 있는 사람의 혼령인 ‘스트리고이 비이(Strigoi vii)’와 망령인 ‘스트리고이 모르치(Strigoi Morţi)’로 나뉘며, 차이점은 전자가 부정한 기운을 받고 태어난 생령(生靈)이라면 후자는 승천하지 못하고 지상을 맴도는 원귀가 된 사령(死靈)이다. 사람에게 해악을 끼친다는 점에서는 이들은 다를 바 없다.

‘출산의 동력’ 에로티시즘에 부도덕의 덫이
민담이 이렇게나 자세하고 시시콜콜하게 혼령의 일상을 전하는 걸 보면, 혼령(정령)과 민중은 분리할 수 없는 덩어리로서 정체성의 큰 지분을 차지했다고 말한들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분된 악령이나 불온한 기운으로 가득 찬 금기는 그만큼 경계할 일이 많던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가 유럽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출생 이력의 ‘무당’들은 사회적 약자인 나병환자나 유대인, 무슬림 들과 함께 ‘이단’으로 몰려 재판에 회부되곤 했다. 밤이면 들이나 숲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의례에 ‘악마의 잔치’를 벌였다는 혐의를 씌운 것이다. ‘악마의 잔치’는 식인과 난교, 근친상간을 근간으로 하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이면서 무의식에 각인된 금기였다. 그러니까 출산, 풍요의 동력인 에로티시즘에 비윤리‧부도덕의 덫을 씌운 것이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닌, 경계인 가운데는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도 있다. 마늘, 빗자루, 어둠 짙은 초승달이 뜬 밤에서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까지, 생활에서 우러난 소품과 배경이 이야기에 동원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루마니아는 뱀파이어 문학의 정전(正典)이라 할 드라큘라 백작의 주인공이 출생한 나라라는 점에도 눈길이 간다.
엘리아데의 말처럼 고대사회의 의례는 기념이 아니라 재현이자 경험하는 것이라면 민담이나 풍속을 원천 콘텐츠로 삼는 드라마나 영화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고대부터 내려온 집단무의식의 재현이다. 현대인은 이러한 재현 콘텐츠를 찾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의례를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