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왜 그토록 절박했을까

‘게임을 반복할 수 없다’는 위기감 절박감은 위기이자 회복의 신호 대통령은 ‘절차적 공정성 준수’하고 야당은 위기관리로 절박감 해소해야

지난 2023년 11월29일 부산 엑스포 유치실패에 대해 사과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3년 11월29일 부산 엑스포 유치실패에 대해 사과하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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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게임’ 정치의 상실 가능성

또 한번의 절박한 선거가 막을 내렸다.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 때마다 마지막 선거와 같은 절박성을 느끼는 것 같다. 민주진영 유권자들은 지난 총선에 이어 또 한 번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200석 확보 실패를 이유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것은 현재의 정치상황이 지속되는 것이 점점 감당하기 힘든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보수도 마찬가지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테러는 보수의 불안과 두려움이 극단적 방식으로 표출된 사례다. 유세 막바지에서국민의힘 후보의 ‘전직 대통령 죽여’라는 고함은 이 대표에 대한 테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민주주의 체제의 안정성은 패자가 다시 도전하여 승리할 수 있는 ‘반복 게임’ 조건이 충족될 때 유지된다. 선거 결과에 대한 유권자들의 절박성은 한국 정치가 이러한 반복 게임 성격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다. 일상의 정치과정에서 주요 쟁점이 해소되지 못한 채 충돌하고 대치하다가 선거로 결판을 내려니, 사안에 대한 숙의는 멀어지고 선거에 대한 절박감이 커진다. 지금부터 2026년 6월 지방선거까지 우리는 큰 선거 없는 정치기간을 맞게 된다. 다음 선거의 절박감이 최소화될 수 있는 일상의 정치과정을 기대하며, 이번 선거 결과로 만들어진 정치 조건을 검토해보자.

새해 벽두인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부지 방문 중 테러를 당해 바닥에 쓰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새해 벽두인 1월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부지 방문 중 테러를 당해 바닥에 쓰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변한 게 없는 듯 변화 에너지를 축적한 선거

진영 구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제22대 총선결과는 제21대 총선의 재현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비례정당 의석을 포함하여 175석, 여기에 조국혁신당 12석, 진보당 1석, 새로운미래 각 1석을 합하면 189석에 달한다. 189석은 지난 총선의 민주당 180석에 열린민주당 3석, 정의당 6석을 합한 의석과 동일하다. 반대로 국민의힘(21대 때는 미래통합당)은 108석으로 지난 총선에 비해 5석을 늘렸다. 그렇지만 지난 총선 당시 우호적인 무소속 당선인 5명이 이번에는 없다. 총선에서 3석을 확보한 이준석의 개혁신당은 지난 총선의 안철수 국민의당과 같은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므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하는 진영 구도에는 변화가 없다. 때문에 정치 진영 구도의 지속은 민주진영 유권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다.

제22대 총선 결과

제 21대 총선 결과

각 정당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선거결과는 구도에 대해 다른 해석과 기대를 가능케 만든다. 야당의 압승, 여당의 참패로 요약되는 결과는, 통상 대통령 선거 직후 실시되는 총선에서 여당이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야당이 이 정도 수준으로 압승하고, 여당이 참패하는 결과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시점상 집권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정권심판론’이 선거쟁점을 주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야당인 민주당은 이낙연 전총리와 일부 의원들의 탈당으로 분열 후유증을 공천과정에서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결과는 정권심판론이 이번 선거를 지배했음을 의미한다.

군소정당 중에는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압도적이었으며, 개혁신당의 원내정당 진입과 녹색정의당의 원내정당 이탈이 대조적이다. 조국혁신당의 24% 수준의 정당득표율은 병립형 비례대표제가 채택되었더라도 12석을 확보할 수 있는 득표율이다. 제20대 총선에서 안철수의 국민의당 정당득표율과 비슷한 수준이고 정당투표제 도입 이래 제3정당 최고 득표율에 해당된다. 그리고 개혁신당은 선거과정에서 새로운미래 세력과 합당 및 분당을 거치면서 위기를 겪었지만,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이에 비해 2004년 민주노동당으로 원내에 진입한 이래 제3정당 위상을 유지했던 (녹색)정의당은 20년 만에 원내정당에서 탈락했다. 제21대 국회에서 거대 양당을 거부하는 군소정당 중심의 독자적 제3정당 실험은 실패했고 진영 또는 여야 대립구도는 강화됐다.

선거결과를 인물 측면에서 보면 이번 총선에서 핵심 쟁점 행위자는 단연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그는 선거 직전까지 민생토론회를 반복했고, 의대정원 2천명 증원 조치로 의사집단과 대립했다. 해병대 사망사건 관련 인물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호주대사 임명했다가 사임을 받는 등 정권심판론을 지속적으로 소환했다. 두 번째 관심 대상이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대선 캠페인 예비과정’으로 착각한 듯 지원유세를 했으며, 자신의 외모나 인기 그리고 상대 정당 조롱에 몰입된 듯한 거의 유아적 수준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을 억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국민의힘 대선 전망도 어둡게 만들어 놓았다.

이에 비해 이재명과 조국 대표는 정권심판론을 주도하며, 소속 정당의 원내 제1당 유지와 제3당 진입을 성공시켰다. 이는 제22대 국회에서 야당 주도 정치 가능성을 한층 강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주도로 그동안 계파정치로 위축되었던 민주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발판이 마련되었고, 조국혁신당은 ‘민주당 2중대론’을 벗어나고자 했던 정의당과 달리, 민주당보다 정부·여당 견제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이준석 대표는 윤 대통령과 마찰로 축출되었지만 국민의힘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로, 현재는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만 국민의힘 차기, 차차기 대권 후보 가능성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숨을 곳은 별로 없다

이처럼 제22대 국회는 진영 구도 측면에서는 제21대 국회와 연속성을 유지하지만, 정당 관계와 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인 측면에 볼 때 여야대립 양상은 차별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양당 대립구도에서 벗어나려는 제3정당 모색 시도가 이번 선거를 통해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국회의 여야 교착상태의 책임을 거대 정당에 대한 양비론으로 버틸 수 있는 조건이 약화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제22대 국회에서 제3정당으로서 조국혁신당이 민주당보다 강하게 정부견제를 주도하고, 여기에 개혁신당이 야당으로서 정부견제에 힘을 싣는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정치’가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의 수동적 기권에 의해 크게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협조 필요성을 강화시킬 것이며, 윤석열 대통령이 제한적이나마 일방적 국정운영 방식을 자제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결과가 나온 어제(11일) 오전 총선 결과에 대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우선 조치로 인적쇄신 가능성과 함께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그리고 국무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인적쇄신은 총선 결과에 대한 대통령 대리 책임의 성격이 강하다. 실질적인 국정쇄신을 위해서 반드시 대통령 자신의 국정운영 방식이 변화해야 하며, 대통령 국정운영의 절차적 규칙 준수 약속이 우선되어야 한다. 국정운영의 절차적 공정성은 바로 법치와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조건들이다.

윤 대통령이 해야할 일들, 국회가 해야할 일들

예를 들어 대통령 가족 비리를 보호하고 대통령 공약에 반하는 거부권 행사하는 행위, 균형 원리를 무시하고 선출직 공무원 공천으로 직결되는 잦은 사면권 행사, 수사와 기소로 위협을 시작하는 정책추진방식, 정부비판 기사 및 보도에 대한 준사법적 압박, 감사원이나 방통위 운영의 편법성과 정치적 편향성, 검찰 수사와 기소의 정치적 편향성 및 불공정성 등을 우선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정책기조 측면에서는 변화된 조치 시행 이전에, 이번 총선 이전까지 보였던 “재정건전” 주장과 이번 총선을 앞둔 민생토론회 공약 실현을 위해 예상되는 재정지출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윤석열 대통령이 해명해야 한다.

야당은 윤 정부의 부적절한 통치방식을 견제하고, 편향된 정책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지금까지 잘못에 대해 당사자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와 경제상황은 야당이 이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번 총선 결과가 유권자들이 느끼는 전방위적 위기감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면, 야당은 이에 우선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급해 보이는 사례로 ▲고물가 대응 ▲의료대란 가능성 ▲R&D 예산삭감 피해 ▲부동산 금융 불안정 및 사상최대 가계 부채 ▲러시아와 외교마찰 ▲원전 안전 등이 떠오른다. 위기관리를 전제로 저출산대책, 기후변화대책, 신재생에너지정책, 입시위주 교육체계 개혁, 노동양극화 해소 등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처벌이나 응징성 조치는 나중으로 하고, 위기관리 관점에서 시급하고 중대한 사안에 대해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고, 조기에 예방 및 대응하는 조치를 우선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절차의 준수, 위기관리에 대한 국회 문제제기에 성실한 답변과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숙의 과정이 다음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절박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글쓴이

박용수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박용수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 전임연구원은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의 규제개혁의 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가관리연구원에서 한국 대통령제 관련 연구를 하고 있으며, 노무현 재단 민주주의 리더십 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민주화 이후 한국의 만성적 입법교착 연구”,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론에 대한 비판적 시론”, “제2차 북핵위기 전개과정과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김대중 정부의 자유주의적 대북대외전략의 현실주의적 측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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