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반복해서는 안된다
[장은주의 시민을 위한 정치철학] ‘정권 심판’을 넘어 ‘제7공화국’으로! 정치 근본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 이로 인한 극한대립, 정당정치 실종 제왕적 대통령제 넘어 분권적 대통령제
‘심판 이후’는?
이번 총선의 화두는 단연 ‘심판’이다. 우습지만 여권에선 ‘운동권 심판’과 ‘이, 조 심판’을 외치고,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정권 심판’의 기치를 내세워 선거를 치르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의 분위기만 보면, 유권자들은 야권의 정권 심판 호소에 더 많이 반응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범야권 200석’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척 신나는 일이다. 국회의 ‘반윤’ 의석이 200석이 된다면 사실 정치적으로 무엇이든 가능하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수많은 사유를 쌓아 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도 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윤석열 정권 조기종식’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물론 조심스럽다. 모든 선거는 투표함의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했다. 여론조사의 한계도 있고, 여론이 그대로 투표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열정적으로 투표하는데 야권 시민들이 투표를 포기하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게 현실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서는 총선 이후에도 다시 지금과 같은 두 거대 정당 중심의 ‘전쟁정치’라는 배경 위에서 대통령은 계속 ‘왕 놀이’ 하느라 바쁜 풍경이 펼쳐질 터인데, 그런 걸 심판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역시 윤 대통령을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거나 탄핵할 수 있는 범야권 200석은 되어야 제대로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시민들이 이 방향으로 힘을 모아주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큰 의문이 하나 든다. 이번 총선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 완성되었다고 치자. 그리하여 탄핵이든 뭐든 이루어진다고 하자. 그다음에 우리 정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만들면 이 나라의 모든 혼란은 사라지고 다시 ‘태평성대’가 열리게 될까? 아니면 이제 반대편에서 새 대통령을 흠집 내고 공격하면서 심판하겠다는 대대적인 공세가 이루어지면서 우리 정치는 다시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지는 않을까?
오해는 말자. 이재명 대표가 부족한 대통령감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가 너무도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다만 윤석열 정권에 대한 이번 선거가 단순한 심판을 넘어 우리 정치의 질병에 대한 더 근본적인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는 없겠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그런 비전이라도 있어야 우리 시민들이 단순한 응징을 넘어 더 큰 확신을 갖고 범야권 200석을 기꺼이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나는 그런 치유가 단지 새로운 헌법 체제를 갖춘 ‘제7공화국’에서만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보안관 역할을 못 하는 알파메일’이 문제일까?
유시민 작가는 어디선가 침팬지들의 세계에 빗대 윤석열 대통령을 ‘보안관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알파메일(최강자 수컷)’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다.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추구하지도 않고 약자들을 돌보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권력만 누리려 하고, 자기편 사람들만 챙기는 윤 대통령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자 비판이다. 크게 공감한다.
그러나 동시에 약간의 의문도 든다. 그런 설명은 혹시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혼란을 모두 어떤 사회생물학적 토대로 환원시키는 것이지는 않을까? 이런 접근법이 아예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좀 더 온전한 설명을 위해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침팬지와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동일한 사회생물학적 토대를 갖고 있다고는 해도, 윤 대통령의 권력 행사 방식은 단지 알파메일로서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을까?
확실히 그는 정말이지 침팬지 세계의 이기적이고 비정한 알파메일이 했음직한 일을 너무 많이 저지르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많은 정부 요직에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앉혔다. 대부분 검찰 출신이거나 친구거나 선후배다. 특히 자신의 ‘심복’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해서는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법을 달랑 시행령 하나만 고쳐 무력화시켰다. 자신의 ‘친한 동생’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시켜 역시 시행령으로 경찰국을 행안부 아래 신설함으로써 경찰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밖에 자신의 ‘부인’인 김건희 씨에 대한 특검법을 포함하여, 기득권 세력이 반대하는 모든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우리 사회의 헌법이 그런 일을 ‘해도 좋은 일’ 또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허용하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해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 또는 틀이 윤석열 같이 품격도 능력도 없는 이가 대통령이 되도록 만들었고, 그런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온 나라를 하루아침에 엉망으로 만들어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윤석열과 같은 무도한 알파메일을 응징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 그 자체를 혁파해야 한다. 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온전한 심판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다시는 윤석열 같은 무도한 알파메일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해야 하고, 설사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그런 이가, 유시민 작가가 자주 비유하듯이, 마치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간 코끼리’처럼 나라를 온통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단지 국회가 거부권을 거부할 수 있는 의석수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탄핵만으로도 안 된다.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때도 그 이를 탄핵하기만 하면 새로운 정치가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촛불이 밝힌 봄날도 잠시, 다시금 거대한 퇴행이 벌어진 걸 목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또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민주주의의 근본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새로운 헌법체제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1987년 ‘6.10 항쟁’의 성과물이다. 당시에는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이 재집권하는 걸 막는 게 가장 우선적인 정치적 과제였고,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이렇게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라는 과제의 핵심에 놓이다 보니, 우리 사회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누적되어 온 한국식 대통령제 자체가 가진 문제를 깊이 성찰하지 못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절대 왕정이나 가질 법한 권력 구조는 거의 그대로 둔 채 왕만 국민 손으로 직접 선출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우리 민주주의는 이제 이런 수준을 벗어나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이, 가령 미국의 대통령에 비해서,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만 문제는 아니다. 제대로 된 견제도 받지 않고 마구잡이로 행사될 수 있는 대통령의 절대 권력은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 전체를 질식시켰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중추인 정당들을, 여당일 때나 야당일 때나 상관없이, 오로지 대통령 자리만 바라보며 조직되고 운영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사실상 정당이 무의미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는 정당이 아니라 후보의 ‘캠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만 떠올려 보라. 최근 국민의힘에서 목도했듯이, 우리 민주주의에서는 대통령이 제 맘대로 당 대표를 갈아치우는 일도 가능하다.
지금껏 우리 사회가 목도해 온 전쟁정치도 근본적 수준에서 보면 한국식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결선투표 없는 단순다수결제에서는 단 1표의 차이로도 절대적 권력을 승자가 독식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모든 정치적 경쟁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이기려 하는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인다. 여기서 상대는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절멸시켜야 할 적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려는 충분한 덕성을 갖춘 시민들도 그 제왕적 대통령을 둘러싼 전쟁정치의 일부로 편입되고 만다. 흔히 말하는 ‘팬덤정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유력 대통령 후보를 지켜내서 마침내 대통령으로 만들어내겠다는 시민들의 사명감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시민들은 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곧잘 의견이 다른 시민이나 정치인을 ‘내부총질’을 한다며 비난하고 배제하는 ‘사나운 시민’이 되곤 해서 우려를 자아내는데, 이 역시 우리 정치의 근본적 권력 구조가 빚어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지금 우리 정치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 근원을 도려내야 한다. 나로서는 대통령중심제를 ‘의회중심제’로 바꾸는 게 제일 낫다고 보지만,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아마도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 운동이 낳은 역사적 성취라서 그럴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압도적으로 대통령제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대통령 권력을 많이 축소하고, 국회가 국무총리를 선출하게 하여 국가 통치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게 하는 방향으로 우리 민주주의 근본 틀을 바꾸어야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자는 이야기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은 권력의 분점과 상호 견제다. 요점은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세력이 정치적으로 권력을 분점하면서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권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래야 양당 중심의 전쟁정치를 극복할 수 있고 정당들도 제대로 민주화될 수 있다. 또 그래야 극한적인 대결정치가 아니라 참된 문제해결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이런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국회의원 선거 제도의 비례성을 높이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모든 정당이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지지율에 비례해서 국회의 의석을 갖게 해야 한다. 구체적인 제도를 반드시 헌법에 명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비례성이라는 기본 원칙만큼은 헌법에 담을 필요는 있다. 그래야 양당제가 극복되고, 각 정당들은 어정쩡한 포괄정당이 되지 않고 나름의 정체성과 지향을 분명히 할 수 있다. 그 바탕 위에서 국민의 지지에 따른 의석수를 바탕으로 정당들이 과반 다수 의석을 얻기 위해 서로 협상하고 조율하는 방식으로 입법 활동을 하고 국정도 이끌 수 있다.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우격다짐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 위에 이루어지는 참된 민주 정치는 단지 이런 방식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도 이런 비례성 높은 제도에서만 제대로 정치적으로 대변될 수 있다.
그밖에 새로운 헌법이 담아야 할 내용이 많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길게 논의해야 할 일이다. 나는 다만 여기서 우리의 윤석열 정권 심판에 대한 시선이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를 강조해 두려 한다.
이번 총선이 단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심판을 넘어 제7공화국을 열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투표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 이제 마지막 남은 변수는 투표율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민주시민은, 본인이 반드시 투표에 참여하는 건 물론, 주위의 이웃도 제7공화국을 위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독려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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