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이든, 지시든 품격있게 해라

[이영균의 ‘말이란 말야’] 명령이든 지시든, 제대로 하는 방법은 ‘의문문형’ 표현, 교양있는 지시의 기본 부정의문문 사용은 부정적 답변 유도해 품격있게 지시했는데도 효과가 없다면?

수원지방법원에 출두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사진=연합뉴스
수원지방법원에 출두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사진=연합뉴스

부당한 명령, 요령있는 지시

‘명령’, ‘항명’, ‘명령불복종’, ‘지시불이행’... 뉴스에서 요즘처럼 ‘명령’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던 적이 있었던가? 해병대 병사의 구조 활동 중 순직 사건과 이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갈등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떠오른다.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부당한 명령’이라 판단해서 결과적으로 항명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당한 혹은 불법적인 지시라면 따르지 않는 것이 준법이고 윤리이고 시민의 사명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군인의 경우에는 특히 전시 상황에서는 아무리 부당한 지시라 하더라도 따라야 하는 것이 직업 윤리이자 사명이다.

그렇다면 전시 상황이 아닌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 난 그 정답을 언급할 자신은 없다. 법률가나 군인, 혹은 철학자가 아니니까. 그러니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다만 여기는 대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오늘은 바로 그 ‘명령’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명령’을 일상식 표현으로 바꾸면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지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식당에서 어떻게 주문할까

21세기의 삶 속에서 어떤 상황에서건 지시를 한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잘못했다가는 ‘갑질’로 몰리거나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런 일들까지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반감, 불성실 이행 등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지시할 것인가? 일단은 간단한 일상 생활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 보자.

“이봐, 여기 국밥 둘에 전병 하나!”

식당에서 종종 저 같은 주문을 듣곤 한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주문 받는 사람 기분 나쁘겠다? 당연하다. 그런데, 난 그 전에 이런 생각이 든다. ‘주문하는 사람, 참 교양없다.” 주문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엿보게 된다. 주문 하나 가지고 인격까지 언급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주문 매너를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한다. 심지어 자라온 집안의 수준까지 판단한다는 사람도 봤다. 그러니 주문하는 법을 잘 배워야 한다. 남들이 판단하는 나의 교양 문제이니 말이다.

식당 주문은 넓게 보면 ‘지시’의 일종이다. 돈을 낼 것이니 상응하는 음식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돈 내고 음식 달라고 하는 건데 어떻게 주문하느냐가 뭐가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른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교양의 문제이다. 누군가 나한테 수준 낮은 집안에서 자라 주문도 수준 낮게 한다고 얘기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 즉시 한바탕 싸울각이겠지.

귀족들이 배우는 ‘지시의 기술’

기본을 다지는 차원에서 모두가 알만한 상식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 예부터 서양의 귀족층에서는 어려서부터 ‘지시의 기술’을 몸에 밸 정도로 습득시켰다고 한다. 그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의문문형으로 지시하라”이다. ‘Would you please…’를 아예 입에 달고 살도록 하는 것이다.

‘지시를 명령문형으로 하는 것은 교양 없는 행위’라고 정의를 해놓은 것인데, 이건 듣는 사람 기분을 생각한 규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문문형으로 지시했다고 해도 그 내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기분이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건 그냥 일종의 사회 규범 같은 것이다. ‘의문문형으로 부드럽게 지시하는 것이 교양 있는 행위’라고 그냥 ‘딱’ 정해 버린 거다. 이러한 정의(?)가 서양 문화의 전파와 함께 우리나라에도 오래 전부터 상식화되어 버렸다. 즉, 의문문형 지시를 구사해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식당 주문은 물론이고 대부분 지시는 의문문형이 무난하다. 아까 주문이라면 “여기요, 국밥 두 개랑 전병 하나 주시겠어요?”라고 하면 된다. 의문문 형태를 싫어한다면 부탁문형으로 해도 된다. “여기 국밥 두 개랑 전병 하나 부탁드립니다”라고 해도 된다. 부탁형의 표현은 사실 일본식 표현이다. 하여튼 무난하다. 물론, “여기 국밥 두 개랑 전병 하나요”처럼 주문을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의문문형이 좀더 ‘교양 있고 정중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것이다. 다만 식당 주문에서는 이런 부분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른 상황으로 심화 학습을 해보자.

1번 대화. 마음만 바쁜 영선

영선 : 기사님 좀더 빨리 달릴 수 없을까요?

상균(기사) : 아이고, 지금도 빨리 가고 있는데요.

영선 : 제가 늦어서 그래요. 지름길이라든지 뭔가 방법을 찾아주세요.

상균 : 막히는 시간이라 어디로 가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영선 : 아니, 차선 변경도 하고 그러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상균 : 차라리 직접 운전 하시죠.

늦어서 초조한 영선의 마음… 택시 기사에게 잘 전달 되었을까? 위 대화에서는 그 초조한 마음에 공감을 얻는데 실패한 듯하다. 이번에는 영선 대신 영빈의 지시를 엿보자.

2번 대화. 바쁠 수록 돌아가는 영빈

영빈 : 기사님 좀더 빨리 달릴 수 있을까요?

상균(기사) : 예, 좀더 빨리 가보겠습니다.

영빈 : 제가 늦어서 그래요. 지름길이라든지 뭔가 방법이 있으면 좋겠네요.

상균 : 막히는 시간이라 큰 차이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영빈 : 고맙습니다. 운전을 참 잘하시네요.

상균 : 자, 그럼 20년 베스트 드라이버 출동합니다!

말투에서 확인하는 세가지 차이

차이를 느꼈는가? 1번 대화에서도 영선은 의문문형으로 지시를 했고, 말투 자체는 정중했다. 기본적으로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같은 의문문형이라 하더라도 부정의문문은 좋지 않다. “좀더 빨리 달릴 수 없을까요?”에 “예”를 붙여보자. “예, 달릴 수 없습니다”가 된다. “있을까요?”에 “예”를 붙이면, “예, 가능합니다”가 된다. 우리 말의 독특한 측면인데, 우리 말의 ‘yes’는 영어와 달라서 상대가 부정형으로 물으면 ‘예’가 부정적 대답이 돼 버린다.

주문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단 ‘예’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니 부정형으로 물어보면 부정적 대답이 되는 것이다. 좀더 빨리 달릴 수 없냐고 물었으니 ‘예’가 곧 ‘빨리 달릴 수 없다’가 되는 것이다. 실제 우리 잠재의식 속에서는 뇌가 이같은 메커니즘으로 작용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무언가 주문을 할 때는 의문형으로 하되 긍정형으로 하는 것이 좋다.

둘째, 지시를 할 때 명령문형은 좋지 않다고 했다. 영선의 발언 속에 “방법을 찾아주세요”는 정중해 보여도 명령형이다. 또한 그 표현의 속뜻에는 ‘당신이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는 책망이 느껴진다. 이래서야 상대의 반발만 사고 말 것이다. 아마 영선의 말에 상균은 반발심을 느꼈을 것이다. 반면 2번 대화 속에서 영빈은 ‘뭔가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며 본인 희망의 형태로 이야기했다. 훨씬 부드럽고 우아한 표현이다.

셋째, 일을 맡겼으면 결정적이거나 치명적이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그냥 맡기는 것이 맞다. 특히 방법론에 대한 것은 결정적인 내용이 아니라면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자칫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되기 때문이다. ‘차선을 바꾸라’며 기사의 운전 방식에 대한 자존심을 건드린 영선과 달리 영빈은 지시의 필수 스킬인 ‘칭찬’을 가했다. 지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칭찬은 매우 중요하다. 칭찬은 당신을 믿고 맡기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지시 받는 사람의 의욕과 ‘하고잡이 마음’을 돋운다.

이 같은 몇 가지의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상당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 당신은 이 같은 상황에서 영선의 조급함을 선택할 것인가, 영빈의 지혜로움을 따를 것인가?

그래도 바로 잡고 싶을 때는

자, 여기서 추가 질문! 주문 받은 사람이 일을 엉터리로 하고 있거나 성의가 없다면? 그때도 무조건 정중하게 부탁하듯이 해야 하는 걸까? 교양도 챙기고 일도 바로 잡는 방법은 없을까?

석재 : 앗! 사장님, 도배지가 주문한 색상이랑 다른데요?

성원 : 에이, 그럴리가요… 전 주문 받은 그대로 가져온 건데요?

석재 : 주문서랑 한번 비교해 봐 주시겠어요?

성원 : 아, 맞다니까 그러시네… 볼 필요도 없어요.

석재 : (다소 무거워진 톤으로) 아무래도 아닌 것 같으니 확인해 주세요.

성원 :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지 못해 확인해 본다. 석재 말대로 주문서와 제품이 다르다) 어이쿠,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고객님 말씀대로 잘못 가져왔네요.

석재 : 번거롭게 되셨네요.

성원 : 제 잘못인데요, 빨리 다녀 오겠습니다.

여기서 석재는 처음에는 정중하게 의문문형으로 주문을 하다가 상대가 성의 없는 답변 내지 서비스를 제공하자 명령문형으로 톤을 변경했다. 그 변화의 효과는 강력해서 상대가 꼼짝 못하고 지시대로 하게 만든다. 사실 석재는 처음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고른 벽지인데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아마도 보자마자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명령형으로 비교해 보라고 지시를 했는데 만약 성원이 확실히 맞다는 식으로 반응을 한다면 이때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지시의 교양’을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 작업 시간 내내 험악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을 것이다. 그 차이를 실감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결과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이른바 ‘품격있는 지시의 힘’이다.

글쓴이

이영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필자인 이영균은 홍보 전문가로 25년간 사람 만나는 일을 해왔다. 약 4만 명의 사람들과 깊고 얕은 만남을 지속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의 기술, 관계의 기술을 습득했다. 만나온 사람들은 주로 언론인, 기업인, 방송인, 연예인들이다. CJ E&M, 오리온 등에서 홍보팀장 및 홍보임원(상무)으로 재직했다. 현재는 ‘에브라임 커뮤니케이션’의 대표 컨설턴트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 홍보>(2015), <제대로 통하는 소셜마케팅 7가지 법칙>(2011), <미르몽의 원더풀 트위터 라이프>(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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