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는 고사하고, ‘꼰대’가 되기 싫다면
[이영균의 ‘말이란 말야’] ‘꼰대’가 쓰는 말투를 알아두면 멘토 같은 선배될 수 있을까 건방진 후배에겐 어떻게 할까
‘꼰대’가 될 것이냐, ‘멘토’가 될 것이냐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때문에 시끄럽다. 국제적인 큰 행사를 유치해 놓고 준비 미흡으로 행사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국격 훼손이고 세계적 망신이라며 공방전으로 소란스럽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여당과 야당이 서로가 잘못했다며 삿대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호 비판에 전혀 공감이 되지 않고 왠지 ‘꼰대’가 연상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서로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해대니 이래서야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될 듯하다. 나 역시 공방전에 한 스푼이라도 더 보탤 필요는 없을 듯하니 이 얘기는 이즈음 하고, 꼰대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꼰대가 되지 않는 법’에 대해서 얘기를 해볼까 한다.
해외에도 알려진 단어, ‘꼰대’. BBC는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오늘의 단어’로 ‘kkondae’를 소개하며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고 풀이했다고 한다. 이 정의에 비춰보면 꼰대라는 것은 ‘나이의 권위’가 잘못 발현된 형태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런데 사실 권위라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우러러보게 되고 또 존경하게 되는 데에는 때로는 ‘권위’라는 것이 필요조건이 되기도 하니까. 즉 권위가 잘 발현되면 멘토로 존경받게 될 것이고 그것이 잘못 발현되면 꼰대로 추락하게 될 터이다. 권위의 발현도 결국은 말에서 비롯될 테니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멘토가 되기도 하고 꼰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나이는 상대적인 것이다. 꼰대는 중년 이상의 나이 지긋한 사람들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후배가 있고 기질(?)이 있다면 심지어 10대들도 꼰대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구나 꼰대로 취급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해당사항이 없어’라고 생각하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다가는 어딘가 누군가로부터 꼰대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하여튼, 후배들로부터 ‘꼰대’로 취급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피학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꼰대 가능성’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꼰대의 말투엔 특별한 게 있다
영은 : 선배, ‘스트리트우먼파이터’라는 TV 프로그램 본 적 있으세요?
진명 : ‘스우파’라는 거? 그거 보긴 봤는데 센 언니들이 막 오버하는 것 같아서 별로더라.
영은 : 그러셨어요? 그래도 보다 보면 퍼포먼스가 꽤 멋있어요.
진명 : 멋있긴 뭐가 멋있어? 발레나 고전 댄스에 비하면 수준이 낮잖아.
영은 : 예, 발레도 좋죠. 그렇지만 여러 장르의 댄스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에요.
진명 : 넌 잘 몰라서 그래. 춤은 원래 예술의 영역이야. 그걸 너무 대중화시켜서 예술을 다 파괴한 것 같아. 난 큰 문제라고 봐.
영은 : 네… (이런 꼰대…)
꼰대를 벗어나는 단 한가지 비결은 후배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혹 ‘존중’을 넘어 ‘인정’까지 가능하다면 그때부터는 ‘멘토’로 승격이 된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하면 ‘뭐? 나이 어린 후배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라고? 난 못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천상 꼰대’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겠냐고 생각된다면 자기 자신을 한번 들여다보라. 후배들을 어리다고, 잘 모른다고 낮게 본 적이 없었을까? 한두 번 그럴 수 있다면 매번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런 사례들이 모이면 ‘천상 꼰대’가 되는 것이고…
꼰대가 되지 않는 실전 요령
실전으로 들어가서, 대화하면서 꼰대가 되지 않는 몇 가지 요령이 있다.
첫째, 자기 생각과 다르더라도 후배들의 말을 무시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정 다른 의견을 표명하고 싶다면 일단 인정하고 그 뒤에 ‘다만’ 정도의 표현을 써서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회사 사장님과의 대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회사 사장님이 무슨 얘기를 했는데 바로 이어서 무시하거나 부정할 수 있을까? 존중한다면 그런 것이다. 상대의 발언을 함부로 무시하고 부정한다는 것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너는 잘 몰라서 그래’ 따위의 표현은 금지다. 이 말은 꼰대의 전유물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을 구사함과 동시에 바로 꼰대 낙찰이다. 너는 잘 모르고 나는 잘 안다는 표현은 어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이제 막 입문했는데 지나치게 건방을 떠는 초보자에게나 해줄 법한 표현이다. 그 초보자의 미래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하든 ‘너는 잘 몰라서 그래’라는 말은 꼰대의 표현인 셈이다.
셋째, ‘추억팔이’도 금지다. 흔히 ‘라떼는 말이야’로 조롱을 받는 ‘나 때는 말이야’. 과거 이야기로 자기가 나이 많은 것을 과시하는 이런 표현은 정말 볼썽사나운 꼰대 언어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과거를 언급하는 것은 역사 수업 시간이 아니라면 동년배끼리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때나 적합할 듯하다. 이른 바 ‘불멍’을 때리며 아름다운 추억 이야기를 할 때 말이다. 표현은 ‘우리 그 때 생각나니?’로 수정되겠지만.
넷째, 후배 입장에서 확실히 듣고 싶을 것 같고(그러나 대부분은 듣기 싫을 것이다) 후배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최대한 후배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도저히 얘기를 안 할 수 없다는 간절함을 보이면서 이야기하라. 그렇지 않으면 후배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함)’일 테다.
영은 : 선배, ‘스트리트우먼파이터’라는 TV 프로그램 본 적 있으세요?
진명 : ‘스우파’라는 거? 어, 본 적 있어. Z세대 취향 저격 깔맞춤 프로라며? 하하.
영은 : 네. 퍼포먼스가 꽤 볼만해요.
진명 : 그래? 나도 다시 한번 집중해서 봐야겠네. 이전에 봤을 땐 잘 못느꼈어.
영은 : 예, 여러 장르의 댄스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꽤 매력적이에요.
진명 : 그렇구나. 역시 요즘은 경연 프로그램이 대세인 모양이다. 다만 요즘 이런 대중 댄스에 밀려서 발레나 고전 무용이 너무 홀대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그건 좀 아쉬운 듯. 하하, 너무 아저씨 같은 느낌인가?
영은 : 맞는 말씀이죠. 다만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매력이 있는거죠.
진명 : 맞아. 그 말은 백프로 공감함.
영은 : 선배, 같이 차 마시러 가요.

건방진 후배는 어떻게 다룰까
이 정도 오면 이런 말도 나올 수 있겠다. ‘꼰대 탈출은 좋은데 후배랑 이야기하면서 이렇게까지 조심하고 신경 써서 해야 하는 거냐’고. 피곤해서 못할 것 같다고. 그러나, 선배랑 얘기할 때는 조심하면서 얘기하지 않나. 딱 그만큼만 유의해서 얘기하면 된다. 그럼 적어도 꼰대 소리는 듣지 않을 지니, 잠깐! 꼰대가 안되는 건 좋은데, 그렇담 건방진 후배는 어째야 하지? 건방진 녀석들한테도 똑같이 존중하고 듣고 싶을 얘기만 하고 그래야 하는건가?
영삼 : 혜정 과장, 작성해 온 보고서 내용 중에 보니까 너무 유튜브에다 모든 예산을 몰빵하는 것 같던데 그게 맞아?
혜정 : 당연한 거죠. 요즘 MZ 세대가 유튜브 말고 이용하는 매체가 있나요?
영삼 : 아니 많이들 보고 이용하는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인스타그램, 틱톡 정도는 자원을 좀 배분해야 하지 않아?
혜정 : 그건 부장님이 요즘 광고 집행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 그건 무시해도 되는 비중이에요. 거기에 자원을 배분하면 유튜브에 쓸 돈이 너무 적어져요.
영삼 : 혜정 과장이 나보다 요즘 트렌드를 잘 아는 건 알겠는데, 나도 보는 게 있어요. 인스타그램 때문에 20-30대 여자들 사이에 골프가 유행하고 있고, 틱톡 때문에 10대들한테 커버댄스 붐이 일고 있는 게 현실인데 무슨 컨셉인지 상관없이 무조건 유튜브에만 몰빵하는 건 위험해 보여요. 자료 가지고 얘기합시다. 감으로 얘기하지 말고. 구체적인 레퍼런스랑 시뮬레이션 자료를 부탁해요.
혜정 : 네…
‘역꼰대’를 만나더라도
요즘 중장년들이 꼰대 소리를 하도 무서워하니 이를 이용한 ‘역꼰대’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본인 보다 나이든 세대를 무조건 무시하고 ‘요즘 애들은’, ‘요즘 트렌드는’ 등의 얘기로 포장하면서 자기 얘기가 맞다고 우기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도 인정 내지 존중의 자세는 지키라. 후배를 존중하는 자세는 내가 꼰대가 되느냐 안되느냐를 결정하는 관문이지, 상대가 어떠냐에 따라 버리고 말고 하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역꼰대’들에게는 논리와 경험에서 오는 노하우로 냉정하게 맞서면 된다. 그런 측면에서는 후배가 선배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경험이라는 것은 21세기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존중’과 ‘냉정’은 얼마든지 양립이 가능한 생활 태도임을 기억하자. 하여튼, 이 땅의 꼰대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소망을 품어 보며, ‘새만금 잼버리’도 잘 마무리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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