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광
번역가
홍성광은 서울대 독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독문학박사로, 독일 문학 및 철학 관련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 니체의 『비극의 탄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실러의 『도적들』,『간계와 사랑·빌헬름 텔』,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카프카의 『성』,『소송』,『변신 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등이 있다.
홍성광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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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조르쥬 상드와 쇼팽, 해방과 사랑의 변주곡
19세기 프랑스 문단에 ‘남장 작가’로, 여성해방문학으로 논란을 일으킨 조르쥬 상드(George Sand, 1804~1876)는 자유분방한 연애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다. 어린 시절 프랑스 중부의 노앙(Nohant)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으며, 루소를 좋아하며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으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과의 성격 차이와 구속적인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낀 상드는 1831년 두 아이를 데리고 파리로 옮겼다. 1832년 소설 『인디아나』를 발표해 일약 유명해졌으며, 이때 필명 ‘조르주 상드’와 남장 차림으로 문인들 사이에서 문필 활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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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나쁜 남자 브레히트를 위대하게 만든 여인들
현대 연극의 문법을 바꾼 ‘혁신가’라는 평가와 함께 천재적인 평가와 함께 “지적으로는 자극적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차가운 이론가”라는 평가를 받은 특별한 인물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그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독일 극작가, 시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서사극( Episches Theater, 관객이 극을 보면서 계속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연극-편집자주 )’이론을 발전시키고 ‘낯설기 효과’ 기법을 통해 관객이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연극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동적인 참여자’로 변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연극을 본 관객에서 “얼마나 감동했는가?”만 묻는 것이 아니라, “왜 세상은 이렇게 되어 있는가?”, “다르게 만들 수 있는가?”라고 묻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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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구스타프 말러, ‘팜므 파탈’ 지치게 한 사랑
현대 낭만주의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보헤미아 태생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이자, 지휘자다. 구스타프 말러와 ‘팜므 파탈’ 알마 말러의 사랑은 단순히 ‘예술가 부부’를 넘어, 서로에게 깊은 영감과 동시에 씻을 수 없는 불안과 상처를 주었던 ‘독성 강한 사랑’의 전형으로 회자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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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레마르크와 디트리히의 ‘전쟁과 사랑’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벌인 전쟁이 곧 끝났다. 평화는 돌아오지만 사랑은 희생됐다. 문학 역사의 반전소설은 그 슬픈 사랑과 희생을 자세히 묘사한다. 반전소설 작가의 대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는 20세기 독일 문학의 지평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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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사랑을 사랑한 여자: 베티나와 ‘가짜 괴테’
독일 문학 철학계의 거장, 볼프강 폰 괴테도 한 ‘가짜 사랑’의 희생양이었다. 톨스토이와 그의 제자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 반대로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이 문학예술계의 대표적인 ‘가짜 사랑’으로 기록된다면, 괴테도 그 가짜 연인 때문에 말년에 적지않은 고통을 겪었다. 1832년 괴테가 떠난 지 3년뒤 『괴테와 어느 아이의 서신 교환』이라는 서간집이 세상에 나오면서 이를 편집한 한 연인이 주목을 받는다. 편지 곳곳에 괴테와 자신이 나눈 사랑의 이야기가 점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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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쿠데타 반대” 19년간 망명한 위고의 연인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의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는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다. 또한 서양 문학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독서와 시 창작에 매료되었던 위고는 일기에 “나는 샤토브리앙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기록해 두면서, 불과 11살의 나이에 프랑스의 문호가 되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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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사랑은 영혼의 안식처”...횔덜린의 비극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1770~1843)은 생전에는 무명에 가까운 불운한 시인이었지만, 사후에는 독일 현대시의 선구자 중 선구자로 꼽히는 시인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스토리는 시인 횔덜린의 비극적 생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그는 독일 낭만주의의 핵심 시인이자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신들이 떠나고 새로운 신들은 오지 않은 ‘궁핍한 시대’를 노래한 영성의 시인이기도 하다. 횔덜린은 당대에는 잊혔다가 사후 80여 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독일 최고의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헤겔, 셸링과의 초기 교류와 그들로부터의 철학적 영향 덕에 독일 관념론의 발전에 일조한 중요한 사상가라는 평가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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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사랑이냐 혁명이냐’ 발터 벤야민의 비극
20세기 인류 지성사에서 최고의 지성 중 하나로 꼽히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그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화 비평가, 번역가로 문화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독립적인 사상가로서 테오도르 W. 아도르노(1903~1969)와의 우정을 바탕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와의 우정과 협력, 연인 아샤 라치스(Asja Lācis, 1891∼1979)와의 만남은 그의 사상과 저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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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 ‘불멸의 연인’ 후보들
음악을 좋아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존중받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금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전에 많은 여인들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멸의 음악가’로 평가받는 그지만, 애정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 약속을 한 적도 있고, 심지어 사생아로 낳은 딸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사후 그의 비밀 서랍에서 발견된, 익명의 여인을 향해 썼으나 발송하지 않고 숨겨두었던 편지의 주인공, 일명 ‘불멸의 연인’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 수신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200년이 흐른 지금도 논란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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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두 얼굴의 톨스토이, 절망한 아내 소피아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와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에 이어 세 번째 악처 이야기의 주인공은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다.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 1828∼1910)는 위대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일 뿐 아니라, 복잡하고 격렬한 감정의 인간이기도 했다. 두 살 때 어머니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한 후 톨스토이는 이모의 손에서 양육됐다. 젊은 시절의 톨스토이는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쾌락주의자였다. 러시아 문학과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명으로 꼽힌다. 버지니아 울프는 톨스토이를 “모든 소설가 중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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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소크라테스 ‘악처’ 크산티페를 위한 변명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의 사랑 이야기 홍성광 번역가 오늘은 독일의 철학자나 작가가 아닌, 서양의 ‘악처’ 대명사 크산티페와 그녀의 남편 소크라테스 이야기이다. 지난번 모차르트 아내 콘스탄체 베버의 악처 소문에 이은 후속편쯤 될까.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BC 399)는 평생을 철학적 토론에 바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사상가다.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며 무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의 시작이라 가르쳤고,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지행합일을 통해 올바르게 살 것을 강조했다. 자신을 깊이 성찰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라고 역설한, 참으로 인류의 스승다운 면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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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뜨거운 남자 모차르트...아내 향한 불타는 사랑
역사상 세계 3대 악처(惡妻)가 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그리고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를 흔히 세계 3대 악처라고 일컫는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과연 악처였을까? 불멸의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음악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도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모차르트의 사랑 이야기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그의 사생활은 음악적 천재성과 함께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그의 가장 유명한 사랑 이야기는 콘스탄체 베버(Constanze Weber, 1762∼1842)와의 결혼이지만, 그전에 그녀의 언니 알로이지아(Aloysia)와 열렬히 연애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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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팜므 파탈’ 루 살로메의 성(性)을 깨운 릴케
20세기초 독일어권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고독과 방랑, 장미의 시인’으로 불리는 릴케는 괴테와 하이네 이후 독일어권 최고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독일어뿐 아니라 프랑스어로도 시를 썼는데, 유명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금세공 장인의 솜씨로 글을 빚는 언어의 대가’라고 릴케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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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위대한 사상가 마르크스와 지고지순한 사랑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19세기는 물론 20세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정치 철학과 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의 사상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정치적 박해와 망명의 연속이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트리어에서 태어나 파리, 브뤼셀을 거쳐 결국 영국 런던에서 삶을 마감했다. 저널리즘과 정치 활동에 힘쓰는 동시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와 함께 역사적 유물론을 발전시키며 공산주의 이론의 기초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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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독재자 히틀러, 사랑도 스토커처럼
극우 전체주의 나치즘의 화신, 아돌프 히틀러(1889~1945)는 그의 포악한 정치적 이미지 만큼 여인과의 사랑에서도 복잡하고 비극을 연출했다. 그의 연애사는 인간관계에서도 권력, 통제, 그리고 비극적 결말을 암시했다.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 연인으로는 ‘첫사랑’ 슈테파니 이자크, ‘금지된 사랑’ 겔리 라우발, ‘비공식적인 연인’ 에바 브라운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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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노벨상’ 토마스 만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은 괴테의 뒤를 잇는 20세기의 위대한 고전 작가이자 문명 비평가이다. 그는 건강한 삶의 세계를 동경하는 시민적 기질, 미와 정신세계를 희구하는 예술가적 기질간의 대립과 갈등, 조화를 문학적 과제로 삼아 문학 활동을 했다. 그에게 삶의 세계와 예술의 세계사이의 갈등은 은밀한 의미에서 이성애와 동성애 사이의 갈등을 의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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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나치 수용소에서 生 마감한 카프카의 연인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한 뒤 독신으로 지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두 번 약혼, 두 번 파혼한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 1887~1960)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편에 소개했고, 이번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사랑의 결실은 맺지 못한 밀레나 예센스카(Milena Jesenská, 1896~1944)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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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결혼 비관론자’ 헤르만 헤세의 힘겨운 사랑
흔히 ‘성자’ 또는 ‘현자’로 불리는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놀랍게도 두 번이나 이혼했고, 세 번 결혼했다. 헤세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 소위 ‘결혼 비관론자’였다. 여성들의 나이도 들쭉날쭉했다. 사진작가인 첫째 부인은 자신보다 9세 연상이었고, 성악가인 둘째 부인은 20세 연하, 셋째 부인은 18세 연하였다. 고대 유적지를 탐방하고 고대 문화 연구에 열정을 쏟았던 고고학자 겸 미술사학자인 셋째 부인 니논 아우스랜더(Ninon Ausländer, 1895~1966)와는 헤어지지 않고 끝까지 같이 살았다. 헤세는 그녀를 ‘어린 소녀’라고 부를 정도로 그녀와는 나이 차가 있었다. 자살 충동이 있었던 그는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오래 살아 그토록 유명한 문필가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 가정과 가족에 무심했던 헤세의 결혼생활은 상대편인 여성들 입장에서는 삶 전체가 난폭하게 휩쓸고 지나가는 재난과 같았다. 헤세의 성향은 유목민이나 사냥꾼, 방랑자, 외톨이에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세번째 결혼한 후 말년에 그는 비로소 성자(聖者)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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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혁명 시인’ 하이네와 사치에 빠진 아내
독일 시인 중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만큼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시인도 드물 것이다. 그는 넘치는 열정과 정의감, 철두철미한 인권 의식을 가지고 시와 신문 기사, 산문을 썼다. 하이네는 『노래의 책Buch der Lieder』으로 세계적인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 시집에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로렐라이」도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 때문에 하이네는 흔히 사랑과 사랑의 고통을 노래한 낭만주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칼 마르크스의 친구로서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꿈꾼 ‘혁명 시인’이기도 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표현도 실은 하이네가 마르크스보다 10년 앞서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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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바람둥이 괴테, 74세에 청혼한 ‘마지막 연인’
지난 회에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프리데리케의 사랑 이야기를 한 데 이어 이번에는 울리케 폰 레베초(Ulrike von Levetzow, 1804~1900)와의 사랑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괴테는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의 사랑에 실패하고 각지를 떠돌던 중 문필가 조피 폰 라 로슈(Sophie von La Roche, 1731~1807)의 딸 막시밀리아네에게 연정을 느꼈지만 그녀가 상인 브렌타노와 약혼하고 이듬해 결혼하자 심적 타격을 받는다. 그러다가 릴리 쇠네만을 만나 사랑하고 약혼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듯했으나 귀족인 그녀와의 신분 차이로 파혼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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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바람둥이’ 괴테의 연인...프리데리케 브리온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문학계의 제우스’ 같은 인물이다. 천재성이 신의 경지이기도 하지만, 그의 연애사(史) 역시 제우스의 신화에 필적할 인물이었다. 그는 많은 여성들을 흠모하고 사랑했으며, 또한 뭇 여성들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었다. 첫사랑의 소녀는 술집에서 심부름하던 그레트헨(Gretchen)이다. 괴테는 그녀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묘사한다. 좀 커서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닐 때는 쇤코프(Anna Katharina Schönkopf)와 사귀었다. 그녀는 괴테가 16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해 그 시절에 출입하던 술집 주인의 딸이었다. 괴테는 세 살 연상인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안출신인 그와 평범한 집안의 여성 사이의 사랑은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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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아모르 파티’ 니체와 ‘팜므 파탈’ 루 살로메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는 사랑에 관해 많은 글을 쓴 ‘사랑의 철학자’이자 ‘심층 심리학자’다. 그는 여성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쓴 탓으로 지금 시각으로 볼 때 부정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는 여성뿐 아니라 ‘대지에 생긴 질병’이라며 인간이라는 종(種) 자체에도 비판적이었다. 나아가 독일인과 기독교, 유대교에 대해서도 매서운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니체는 기독교와 유대교와 같은 종교, 교회와 사제들을 비판했지, 예수 그리스도나 개개의 유대인을 비난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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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삶이 고통’이라던 대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사랑
그동안 프리드리히 니체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했던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가 최근 들어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삶이 고통스럽다고 외치는 그의 철학에 공감하는 청춘이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그는 1833년부터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해 고독하게 살면서 친구도 아내도 없었다. 처음에 쇼펜하우어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열광하다가 후일 그를 우울한 예언자라며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선 니체는 자신의 유고집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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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헤겔 앞섰던 셸링, 엉뚱한 아편 처방으로 사랑 잃어
독일 관념론 철학의 대가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Schelling, 1775~1854)은 지금은 헤겔의 명성에 가려져 빛을 잃었으나 어린 시절 보기 드문 신동이었다. 피히테나 헤겔 보다 더 셸링이 독창성과 천재성뿐 아니라 열정과 진지함을 지닌 철학자였다. 그는 실존주의와 유물론에 기초를 제공한 인물인 동시에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의지 철학의 시원이 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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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한나 아렌트는 왜 ‘나치’ 하이데거를 사랑했나②
①에 이어서 1941년 한나 아렌트와 그녀의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는 스페인 리스본을 거쳐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들은 1941년 5월 뉴욕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부부의 수중엔 단돈 25달러밖에 없었다. 뉴욕 맨해튼 웨스트 95번지의 초라하고 좁은 방에서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집필했다. 그녀는 벤야민의 자살 소식을 듣고 「W. B.」라는 제목을 붙인 작별의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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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문화
한나 아렌트는 왜 ‘나치’ 하이데거를 사랑했나①
인간이 품을 수 있었던 가장 심오하고 복잡한 사고를 소유함으로써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천재, 그러한 ‘슈퍼맨’이 어떻게 나치 이념에 동조하고 히틀러 같은 사악한 괴물을 편들 수 있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는 친나치 철학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독일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치에게는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당대의 천재가 필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