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마르크와 디트리히의 ‘전쟁과 사랑’
[홍성광의 독일 작가의 사랑이야기]
- 망명자들의 처절한 서사 세계 2차대전 직전 나치의 탄압을 피해 고국을 잃고 떠돌던 작가 레마르크와 여배우 디트리히의 만남은, 거대한 시대의 폭풍 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탐닉했던 서글픈 연대였다.
- 지독한 불일치의 불행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사랑을 원했던 예민한 작가와 여러 연인 사이를 오가는 자유분방한 여배우의 성향 차이는 레마르크를 극심한 질투와 불안, 우울증의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 불멸의 문학으로 남은 여인 이 파괴적이고 위태로웠던 사랑의 상처와 갈망은 역설적이게도 걸작 『개선문』 속 주인공들의 격정적인 로맨스로 투영되어 영원한 문학적 영감으로 박제되었다.
포화 속에서 피어난 문학 천재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벌인 전쟁이 곧 끝났다. 평화는 돌아오지만 사랑은 희생됐다. 문학 역사의 반전소설은 그 슬픈 사랑과 희생을 자세히 묘사한다.
반전소설 작가의 대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1970)는 20세기 독일 문학의 지평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겨우 열네 살의 나이에 칸트와 쇼펜하우어, 니체의 철학을 탐독했던 이 문학 천재는, 청춘의 한복판에서 마주한 전쟁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생한 참전 경험을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1929)는 출간 즉시 전 세계적인 경이작이 되었고, 인류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반전(反戰) 문학의 기념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히틀러와 치열하게 대립하던 레마르크는 결국 1931년 고국을 등지고 스위스로 망명길에 오른다. 광기에 사로잡힌 나치는 1933년 집권하자마자 그의 책들을 ‘분서(焚書) 목록’에 올리고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비극은 오빠를 떠나보내고 독일에 홀로 남겨진 여동생 엘프리데 라마르크에게로 잔인하게 번졌다. 1943년, 단지 반전 발언을 했다는 죄목으로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여동생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만다.
나치의 철저한 언론 통제 탓에 망명 중이던 레마르크는 종전 후인 1946년에야 비로소 여동생의 부고를 전해 듣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 걸작 『개선문』(1946)에 이어, 수용소의 야만을 고발하며 고인이 된 여동생에게 처절하게 헌정한 소설 『생명의 불꽃』(1952)은 뒤늦게 마주한 혈육의 비극과 부채감 속에서 탄생했다.
또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4년)는 동부전선을 배경으로 한 반전 소설이다. 출판 후 이 소설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으며, 1958년에는 더글러스 서크 감독이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도 했다.

첫 부인 잠보나와의 위태롭고 기묘한 동행
레마르크의 실제 삶과 사랑 역시 그가 창조해 낸 소설만큼이나 극적이고 강렬했다. 스물일곱이던 1925년, 그는 독일 여배우 일제 유타 잠보나(1901~1975)와 첫 번째 결혼반지를 나눠 꼈다. 그러나 천재 작가의 예민한 성격과 서로를 향한 불륜의 상처는 엇박자를 냈고, 결국 5년 만인 1930년 이혼 도장을 찍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뒤 계속된 인연이다.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서로의 주위를 완전히 겉돌지 못하다가, 나치의 광기가 극에 달한 1938년 돌연 재혼을 선택한다. 이 두 번째 결합은 사랑의 결실이라기보다, 전 부인 잠보나가 나치 독일에 강제 송환되어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한 레마르크의 인도주의적 구원의 손길이었다.
법적인 부부의 방패를 든 두 사람은 1939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함께 시민권을 취득했고, 나치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1957년에 이르러서야 서로를 완전히 놓아주며 최종 이혼했다. 레마르크의 나이 쉰아홉,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증오와 연민으로 얽힌 위태로운 동행의 끝이었다.
‘팜므 파탈’ 디트리히와의 만남, 그 파괴적 로맨스
미국 망명 시절 레마르크는 오스트리아 출신 헤디 라마, 멕시코 출신 돌로레스 델 리오 등 당대 할리우드를 수놓은 숱한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러나 그의 영혼에 가장 깊숙이 파고든 단 하나의 사랑은 독일 출신의 전설적인 스타,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였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고국을 잃고 떠도는 불안한 망명객이었던 남자와, 할리우드를 매료시킨 자유분방하고 도발적인 매력의 여자는 운명처럼 끌릴 수밖에 없었다.

1937년 9월, 베니스 영화제가 한창이던 리도의 한 카페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마주했다. 모두 나치의 탄압을 피해 고국을 떠나온 처지였다. 디트리히가 먼저 다가가 이름을 건네자, 레마르크는 그녀의 압도적인 미모에 숨이 멎은 채 나직이 말했다.
“당신은 너무 아름다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오. 하지만 내가 쓰기에는 너무 젊은 것 같구려.”
그러자 디트리히는 특유의 매혹적인 저음으로 받아쳤다.
“제가 보기엔 당신이 너무 어려 보이는데요.”
이 지적이고도 도발적인 첫 대화를 시작으로, 세기의 작가와 당대 최고 여배우의 격정적인 연애가 막을 올렸다. 파리의 화려한 호텔과 안티베의 해변, 할리우드의 저택을 오가며 두 사람은 서로를 탐닉했다.
레마르크는 그녀를 ‘나의 푸른 천사’, 혹은 야생의 매력을 담아 ‘푸마(Puma)’라 부르며 수백 통의 시적인 연서를 보냈다. 그는 디트리히를 자신의 피폐해진 망명자 영혼을 구원할 유일한 여인으로 믿으며 맹목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디트리히는 레마르크를 깊이 사랑하면서도, 다른 남성 및 여성들과의 연애를 멈추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사랑을 갈구했던 예민한 작가에게 그녀의 화려한 남성편력은 지옥과 같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질투와 불안에 눈이 먼 레마르크는 알코올에 의존했고 심각한 우울증까지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헤어날 수 없었다. 디트리히는 그에게 고통인 동시에 유일한 ‘창작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이 파괴적이고 위태로운 사랑의 기억은 훗날 레마르크의 세계적인 걸작 『개선문』(1946)으로 승화되었다.
둘의 관계는 방대한 서신 교환으로 이어졌다. 1938년 5월과 6~7월에 둘은 함께 파리의 랭커스터 호텔에서, 다음해인 3월 27일부터 6월 9일까지 베벌리 힐스에서 사랑을 나눴다.
이후 뉴욕을 함께 여행한 뒤 퀸 메리호를 타고 유럽으로 돌아가 파리의 호텔에서 생활했다. 격렬하게 타오르던 이들의 관계는 뉴욕, 파리를 오가는 방대한 서신 교환 끝에, 결국 1940년 11월 결별을 나눈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미련’
레마르크는 이후 또 다른 할리우드 스타 폴렛 고다드(Paulette Goddard)와 재혼하여 평온을 찾았지만, 눈을 감는 순간까지 디트리히를 마음 한구석에서 간직하고 있었다.
1970년 레마르크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을 때, 디트리히는 그의 장례식장에 피처럼 붉은 장미 꽃다발을 보냈다. 그러나 평생 남편의 마음속 유령과 싸워야 했던 부인 고다드가 질투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그 장미를 즉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는 씁쓸한 일화가 전해질 만큼, 그들의 사랑은 주변마저 태워버릴 듯 강렬했다.

디트리히는 소위 ‘팜므 파탈’이었다. 반면 레마르크는 사랑에 쉽게 빠지는 감성적인 작가였다.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강렬하게 탐닉했다. 그러나 디트리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레마르크는 ‘독점적인 사랑’을 원했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했다. 레마르크는 디트리히를 작품 속 인물로 형상화할 만큼 강렬한 감정을 품었다.
디트리히는 과연 레마르크를 쉽게 잊었을까. 그녀는 나이가 들어 진행한 인터뷰에서 숨을 고르며 이렇게 회고했다. “레마르크는 나를 가장 깊이 사랑했던 남자 중 한 명이었다”라고.
2003년, 레마르크가 디트리히에게 보낸 애달픈 편지들을 묶은 서신집 『날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출간되었을 때 세상은 다시 한번 숨을 죽였다.
편지 속에서 그는 그녀를 ‘내 삶의 태양’,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라 부르며 광기 어린 갈망을 쏟아냈다. “당신의 목소리는 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아요. 당신을 볼 수 없는 밤은 어둠뿐이야. 당신을 가질 수 없다면, 세상은 의미가 없어요.” 이 고백은 그대로 문학이 되었다.
그러나 디트리히는 다른 남자들과도 연애 관계를 이어갔다. 1941년 그녀는 ‘인생의 사랑’으로 여겨지는 프랑스 배우 장 가뱅(Jean Gabin)과 관계를 맺기 시작, 1948년까지 관계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관계 역시 파국으로 끝났다. 그 이유는 디트리히가 뉴욕에서 살기를 원했으나, 가뱅은 프랑스를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그녀는 다른 헐리우드 배우들과도 가까웠으며, 레마르크는 견디기 힘들어했다.
『개선문』의 조앙 마두는 디트리히인가?
레마르크는 디트리히의 사랑을 확신할 수 없었고, 질투와 불안에 시달렸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이 담긴 소설이 바로 『개선문』이다.
걸작 『개선문』 속 주인공인 망명 의사 ‘라비크’는 파리의 어두운 밤무대에서 신비롭고 자유분방한 여배우 ‘조앙 마두’를 만나 파멸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조앙의 변덕과 영혼의 자유로움에 상처받으면서도 그녀를 절대 놓지 못하는 라비크의 절규는, 곧 레마르크가 현실의 디트리히에게 바친 가장 생생한 연애의 기록이었다.
훗날 디트리히는 소설 속 조앙 마두가 너무 이기적으로 그려졌다며 투덜댔지만, 그 작품이 자신들이 나눈 격정의 크기를 증명하는 유산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리스본의 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역시 디트리히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디트리히는 레마르크를 떠났을까? 그녀는 레마르크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다시 다가왔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레마르크는 그녀에게 지쳐갔다. 결국 다른 여성과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했다.
레마르크와 디트리히의 사랑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품은 관계였다할 것이다. 레마르크는 거친 전쟁과 방랑 속에서 안착할 안식처를 원했고, 디트리히는 대륙을 넘나들며 거침없이 날아오르고 싶어 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방식이 너무 달랐다. 이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문학과 역사 속에 영원히 남았다. 레마르크는 그녀를 사랑한 기억을 끝까지 간직했고, 디트리히도 그의 이름을 마지막까지 기억했다.
레마르크는 “그녀는 나의 영감이었고, 나의 불행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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