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사랑한 여자: 베티나와 ‘가짜 괴테’
[홍성광의 독일 작가의 사랑이야기] 불멸을 설계한 어느 스토커의 빗나간 사랑 괴테와 베티나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갈등
- 치밀한 기획 19세기 인플루언서 베티나는 자신의 불멸을 위해 위대한 천재, 괴테와의 관계를 ‘낭만적 연애’로 조작하고 편집했다.
- 스토킹의 미화 실제로는 괴테를 괴롭힌 집착과 스토킹이었으나, 그녀는 탁월한 문학적 재능으로 이를 화려한 낭만주의 서사로 세탁했다.
- 이미지의 승리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서처럼, 베티나는 거인의 옆자리를 훔쳐 자신을 역사에 박제하며 진실보다 강력한 ‘가짜 불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위대한 천재를 추종한 여인
독일 문학 철학계의 거장, 볼프강 폰 괴테도 한 ‘가짜 사랑’의 희생양이었다. 톨스토이와 그의 제자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 반대로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이 문학예술계의 대표적인 ‘가짜 사랑’으로 기록된다면, 괴테도 그 가짜 연인 때문에 말년에 적지않은 고통을 겪었다.
1832년 괴테가 떠난 지 3년뒤 『괴테와 어느 아이의 서신 교환』이라는 서간집이 세상에 나오면서 이를 편집한 한 연인이 주목을 받는다. 편지 곳곳에 괴테와 자신이 나눈 사랑의 이야기가 점철되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베티나. 그녀는 ‘19세기의 인플루언서’였다. 베티나는 ‘탁월한 재능’을 ‘불순한 목적’의 도구로 사용한 아주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괴테의 서사’를 자신과의 사랑으로 조작한 천재였다.
베티나는 괴테와의 편지를 재구성·편집·창작하여 자신과 괴테의 관계를 낭만적이고 영원한 사랑 이야기로 꾸몄다. 사실 괴테는 항상 사색적이었고 차분하고 절제적이고, 그녀에게 사무적이었는데, 책에서 베티나는 괴테를 격정적인 ‘영혼의 연애’를 나눈 주인공으로 변모시켰다.
베티나는 괴테를 ‘불멸의 인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 불멸을 구축하고, 괴테와의 관계를 영원한 사랑의 서사로 조작했다. 이 책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베티나에게 문단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문학적 자질도 뛰어났다.
하지만 20세기 초, 괴테의 원본 편지가 공개되면서 베티나의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괴테와 자신의 관계를 극적으로 미화한 사실 ‘가짜 사랑’이었다.
1990년 밀란 쿤데라는 장편 『불멸』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다. 쿤데라는 괴테와 베티나의 관계를 단순한 개인적 일화가 아니라 이미지와 불멸의 문제로 탐구했다. 핵심은 “사람은 죽은 뒤에도 타인의 이미지 속에서 살아간다”라는 주제였다.
베티나는 괴테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기보다, 괴테라는 거인의 옆자리에 서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는 치밀한 계산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 사랑은 왜 계산되고 왜곡됐을까.

낭만파 작가의 여동생 베티나
괴테의 ‘스토커’ 베티나 폰 아르님(Bettina von Arnim, 1785∼1859)은 작가·출판인·작곡가이자 젊은 인재의 후원자이자 사회 운동가로 평가받는 여인이다. 그녀는 낭만주의 시대정신의 원형이자 정통 예술가들 사이 수많은 창의적 관계의 핵심이었다.
그녀는 괴테, 베토벤, 슐라이어마허와 절친한 친구 사이로 지냈으며 이들 사이에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베티나는 괴테의 고향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이탈리아 상인 브렌타노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 막시밀리아네는 한때 괴테의 연인이었다. 1793년 37세의 나이로 어머니가 사망하자, 8살의 베티나는 수녀원에 보내져 오빠 클레멘스의 보호를 받으며 문학과 예술을 공부했다. 오빠는 베티나의 멘토이자 보호자였으며, 그녀가 당시의 시, 특히 괴테의 시에 깊이 빠지도록 영감을 주었다.
오빠 클레멘스 브렌타노(Clemens Brentano)는 아힘 폰 아르님(Achim von Arnim)과 함께 소년의 마술피리를 펴낸 유명한 낭만파 작가다. 아힘 폰 아르님이 베티나의 남편이 된다.
괴테를 연모한 베티나
베티나는 10대 중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감격해 괴테를 연모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우연히 서류를 뒤적이던 그녀는 어머니와 괴테가 한때 연인사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연인의 딸인 베티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괴테를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한다.
괴테는 샤를로테에 대한 실연의 상처로 여기저기 떠돌다가, 작가 조피 폰 라 로슈의 저택을 드나들었다. 거기서 그녀의 딸이자, 베티나의 어머니가 되는 막시밀리아네와 사랑에 빠진다. 사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로테의 외모는 현실의 샤를로테보다 오히려 막시밀리아네를 더 닮았다고 한다.

괴테는 막시밀리아네가 상인 브렌타노와 결혼한 이후에도 이들과 계속 우정을 유지했으나, 그녀 남편 브렌타노가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러고 35년이 지난 후 그녀의 딸인 베티나가 어머니를 대신해 괴테와의 관계를 이어가려 했다.
괴테와의 첫 만남과 교류
베티나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 어머니 집으로 찾아가 괴테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기며 괴테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괴테의 어머니는 그녀를 귀여워하며 사랑했다. 베티나는 괴테 가문과 더욱 친밀해졌고, 집안을 드나들며 자신이 마치 괴테 세계의 일원이 된 듯 느꼈다. 괴테는 후일 자서전 『시와 진실』을 쓸 때 베티나가 적어놓은 이때의 기록을 이용하기도 했다.
1808년 봄, 마침내 베티나는 바이마르에서 괴테를 직접 만난다. 당시 괴테는 59세, 베티나는 22세, 무려 27살의 나이 차가 있었다. 베티나는 괴테에게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소녀’로 다가갔지만, 곧 그의 주위를 휘젓는 생명력과 열정으로 강한 인상을 심었다.
베티나는 괴테의 무릎 위에 앉거나 거침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등 당시 사교계 관습을 깨는 파격적인 행동을 보이며 괴테를 독점하려 했다. 그녀는 괴테와의 만남 이후 편지를 통해 뜨겁고 감정적인 애정 표현을 쏟아냈다. 두 사람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나중에 베티나가 출판한 『괴테와 어느 아이의 서신 교환』(1835) 의 밑바탕이 된다.
그녀는 자신을 ‘당신의 아이’라고 칭하며, 순수한 사랑과 영적 헌신을 표현했다. 괴테는 처음에는 그녀의 열정적인 성격을 즐겼고, 재능과 감각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는 가끔 다정한 어조로 답장을 보냈으나, 대체로 차분하고 절제된 태도를 지켰다.
하지만 괴테에겐 아내 크리스티아네가 있었다. 베티나는 괴테의 집까지 드나들며 은근히 크리스티아네의 교양 수준을 비하하는 동시에 괴테와 자신이 마치 ‘정신적 연인’이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1811년 괴테의 아내는 불같이 화를 내며 베티나와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 베티나가 전시회에서 크리스티아네의 외모와 태도를 모욕했고, 화가 난 크리스티아네가 베티나의 안경을 바닥에 던져버린 사건이다. 그 일로 괴테도 크게 격분해 즉시 베티나에게 출입 금지를 명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졌다.
충격을 받은 베티나는 결별 이후에도 계속해서 괴테와의 관계를 자기 삶의 중요한 자산으로 삼으며, 훗날 이를 문학적으로 조작에 가까운 재구성을 하게 된다.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베티나
베티나는 제멋대로이자 천방지축이었으며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여자였다. 동시에 남편에게는 충실했고, 일곱 명의 자녀에게는 헌신적인 어머니였다.
낭만주의 성향인 그녀는 본인의 개인적인 자유를 중시하면서 거의 기인에 가까울 정도로 사회 관습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다. 또 민감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어떤 일에 헌신할 정열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르시시즘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성격을 예찬하기도 했다.
큰 싸움이 있은 후 10여년이 지난 1821년 베티나는 다시괴테를 찾아갔다. 괴테의 동상 초안을 가지고 갔다. 그 이후에도 자주 찾아갔는데, 괴테는 드러내놓고 부담스러운 감정을 토로한다.
사실 괴테에게 그녀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했지만, 베티나에게는 괴테가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남편 아힘 폰 아르님이 1831년에 사망한 후에도 베티나는 외부 생활을 이어갔다. 괴테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되살아나, 1832년 괴테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괴테와 어느 아이의 서신 교환』이란 ‘일대의 사건을 담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성공을 거둔 『괴테와 어느 아이의 서신 교환』
베티나는 괴테와의 편지를 재구성·편집·창작한 이 책에서 자신과 괴테의 관계를 낭만적이고 영원한 사랑 이야기로 묘사했다. 괴테의 실제 태도는 훨씬 차분하고 절제적이며 사무적이었는데, 베티나는 괴테를 ‘불멸의 인물’로 묘사한다.
베티나는 이 차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기 불멸을 구축하고, 괴테와의 관계를 영원한 사랑의 서사로 재구성했다. 베티나는 괴테에 대한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의 원천으로 추켜세운다.
그녀에게 괴테와의 관계는 삶과 예술이 하나로 합쳐지는 낭만적 체험이었다며, 편지 속에서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조작했다. 이 책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베티나에게 문단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괴테의 원본 편지가 공개되면서 베티나의 조작이 드러났다. 그래서 편지를 토대로 한 이 책인 괴테와 자신의 관계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편지를 토대로 가공한 창작물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베티나에게 괴테는 제우스 같은 신적인 존재로서 자아 성찰을 할 수 있는 본보기이자 거울과 같은 제2의 자아였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이 작품에서 괴테는 베티나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녀는 괴테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실은 괴테에 대한 사랑을 사랑한 셈이었다.
사실 그녀는 괴테를 유난히 사랑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한다. 베티나 입장으로서는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선택된 인물이 괴테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녀는 스토커로서 사랑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나름대로 연인을 창조한 셈이었다.
사회개혁가 베티나
책에서 그녀는 위대한 인물을 모방하고 그와 동일시되고자 하는 욕망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1840년대에 베티나는 정치 개혁의 선봉에도 섰다. 또한 빈민층, 유대인, 정치범들의 권익 옹호에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그녀는 억압받는 유대인 공동체의 옹호자였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동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여성 최초의 사회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사회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담은 책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 바치기도 했다. 그녀는 정치적으로 반체제적인 작품 두 편을 발표했으나 국왕과의 우정 때문에 처벌을 받진 않았다. 그러나 1848년의 독일 혁명이 실패하자 그녀의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다.
밀란 쿤데라가 읽은 이들의 사랑
베티나가 괴테에게 보낸 편지들은 훗날 대중에게 읽힐 것을 염두에 둔 일종의 ‘문학적 퍼포먼스’였다. 그녀에게 괴테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불멸의 궤도에 올려줄 ‘우주선’과 같았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속 괴테는 베티나의 과도한 열정에 당황하며, 그녀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박제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쿤데라는 소설에서 베티나가 괴테와의 관계를 과장하고 심지어 편지를 위조·편집하여 편지글을 출판했다고 언급한다. 쿤데라는 이를 ‘타인의 이미지를 훔쳐 자기 불멸을 구축한 사례’로 해석한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의 소설속에서 베티나는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이 한 일은 ‘왜곡’이 아니라 사랑을 영원히 남기기 위한 창조적 행위였다고.
쿤데라는 소설에서 괴테와 베티나의 관계를 통해 “불멸은 타인의 기억과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과정은 종종 왜곡과 연출로 얼룩진다”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소설 속 장면에서 괴테는 ‘작품을 통한 불멸’을 원했지만, 베티나는 ‘사랑과 감정의 연극을 통한 불멸’을 구축했다.
실제 그녀는 ‘위대한 천재’를 스토킹하며, 자신의 문학적 재능으로 강한 집착을 화려한 낭만으로 세탁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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