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으로 ‘10억 자산’ 만드는 개혁

[김병철의 퇴직연금 되살리기] -제도 전환의 로드맵과 과제 ‘기금형’ 채택하면 7% 수익률도 가능 40년 꾸준히 부으면 퇴직때 10억도 저소득층엔 정부의 매칭 지원 있어야 이직해도 적립금 누적되는 ‘통산’ 가능 연금 정보 공시하고, 평가하는 기관도

사진출처=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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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낮아지는 현실 속에서 퇴직연금은 국민의 노후소득을 지탱할 핵심 축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수익률은 낮고, 가입률은 여전히 저조하며,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퇴직연금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퇴직연금 개혁법안은 제도 전환의 방향을 제시한다. 핵심은 ‘기금형 퇴직연금’으로의 전환이다. 이는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을 넘어서, 국민의 노후소득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이다. 기금형 제도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전문적인 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며, 가입자에게 더 나은 선택권과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다.

제도 전환 이후의 로드맵

개정법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개정된다고 가정하고 준비, 도입초기, 활성화 단계로 나누어 로드맵을 살펴보려 한다.

준비단계 : 안정적인 기반구축

1. 제도 전환 준비 및 법·제도적 정비

기존의 계약형 퇴직연금에서 기금형으로 전환하기 위한 행정적·법적 정비가 필요하다. 시행령 개정, 관계부처 협의, 연금사업자와의 조율이 필수적이다. 특히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 간 협업이 중요하며, 제도 전환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혁법안의 핵심 취지인 ‘대규모 기금, 장기투자, 전문가운용을 통한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가 제도 설계 과정에서 변질되지 않아야 한다.

2. 기금전문운용사 설립 및 인허가

퇴직연금 기금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기금전문운용사의 설립이 필수적이다. 개별 사업자가 단독으로 설립하거나, 둘 이상의 사업자가 연합하여 공동 설립할 수 있다. 충분한 규모의 기금이 조성되기 전까지 인력 및 비용 부담을 고려하여 기존 집합투자운용사가 계정을 분리해 겸업하는 방식도 초기에는 고려될 수 있다.

기금전문운용사는 자본시장법 제8조 제4항에 따라 집합투자업자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퇴직연금 기금운용을 위해 고용노동부장관의 별도 허가도 필요하다. 이는 해외 사례에서 나타난 적격성이 부족한 부실기금 난립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다.

3. 퇴직연금사업자의 역할 재정비

퇴직연금사업자는 기존의 계약형 퇴직연금과 병행하여 기금형 퇴직연금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 인력, 절차 등을 정비해야 한다. 개혁 법률은 ‘TDF(Target Date Fund) 상품 하나를 추가한다’는 개념으로 기존 전산 인프라와 인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가용성을 높이도록 설계되었다. 가입 절차 역시 간소화되어, 복잡한 성향 분석 및 상품 선택, 디폴트 옵션 선택 과정 없이 기금형 선택 여부만 확인하면 된다.

퇴직연금사업자는 단순한 상품 제공자가 아니라, 기금형 제도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실행 주체로 변화해야 한다. 조직의 역할 재편과 가입자 중심의 서비스 전략이 병행되어야 하며, 현장 직원에 대한 교육과 안내도 필수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초기단계 : 기금조성과 전략적 운용

4. 기금의 효과적 조성

제도 시행 초기, 기금의 조성 속도와 규모는 퇴직연금사업자의 전략과 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적극적인 사업자는 자사 브랜드의 기금을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내부 직원 성과평가 지표에 기금유치 실적을 반영하는 등 공격적인 전략을 펼칠 수 있다. 반면, 소극적인 사업자는 가입자의 자발적인 요구에 의해서만 기금을 유치하고 조성하게 되어 활성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러한 사업자의 전략 외에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언론의 보도 내용 역시 기금의 조성 속도와 규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도에 대한 긍정적인 정책적 유도와 언론의 신뢰성 있는 보도는 가입자의 제도 참여를 촉진할 것이다.

하지만 개혁법안의 기본 원칙인 ‘가입자의 선택권 강화’에 따라, 제도 실행 초기 단계에서는 다양한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가입자 개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따라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의 활성화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5. 기금운용

기금의 운용 전략은 기금의 성장과 안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극단적으로 원리금보장 중심의 운용 전략을 채택할 경우, 계약형 퇴직연금에서 나타났던 저조한 수익률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공격적인 운용 전략으로 단기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경우 가입자를 유치하는 것은 쉬울 수 있으나, 시장 변동성에 노출되는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다.

기금의 전략을 결정하는 것이 기금운영위원회(또는 심의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다. 기금운영위원회는 목표수익률과 위험한도 등 기금의 운영방향을 설정하고, 기금운용위원회가 자산배분 및 운용전략을 결정하는 중심 역할을 수행한다. 올바른 프로세스의 정립이 기금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이러한 균형 잡힌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하며, 이에 따라 정부 당국의 감시와 감독, 그리고 사업자에 대한 정책적 유도와 독려는 필수적이다.

활성화단계 : 투명성과 통산성 강화

5. 정보공시 및 기금평가

퇴직연금의 정보공시 체계는 가입자의 합리적 선택과 제도의 신뢰 확보를 위한 핵심 요소다. 그러나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의 경우, 가입자별 운용 방식과 상품이 달라 수익률이 상이하게 나타나며, 이에 따라 정보 제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가입자가 자신의 연금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웠고, 결과적으로 ‘깜깜이 투자’ 또는 ‘사업자의 광고에 의존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기금형 제도에서는 동일한 기금에 가입한 모든 가입자가 동일한 기준가격을 적용받으며, 같은 기간 동안 동일한 수익률과 위험을 공유하게 된다. 이는 펀드와 유사한 구조로, 기금별 하나의 기준가격만을 공시함으로써 정보의 투명성과 비교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기금전문평가기관은 공시 정보를 바탕으로 기금별 기준가격, 수수료, 운용 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다. 가입자는 기금전문평가기관을 통하여 각 기금의 성과를 쉽게 비교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적합한 기금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6. 통산과 연금화

현재의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가 퇴직할 때마다 별도의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를 개설하여 퇴직급여를 수령하는 구조다. 잦은 이직이 일상화된 노동시장 현실 속에서 근로자는 이직할 때마다 새로운 계좌를 만들게 되어, 퇴직연금이 여러 계좌로 분산되는 ‘뿔뿔이 계좌’ 현상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자산이 소액으로 나뉘어 관리되기 어렵고, 결국 일시금으로 인출되는 경우가 많아 퇴직연금이 지향하는 ‘연금화’의 흐름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 개혁법안에서 제시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근로자가 퇴직하더라도 기존에 가입했던 동일한 기금에 계속 적립할 수 있어, 개인의 적립금이 누적되어 ‘통산’이 가능해진다. 자산 규모가 큰 계좌일수록 연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실증적 결과에 따라, 기금형 제도는 적립금의 규모를 확대하여 연금 수령의 기반을 마련하고, 퇴직연금이 단순한 퇴직급여가 아닌 노후급여로서 기능하도록 유도하는 구조적 기반이 된다.

다만, 정부는 이러한 통산과 연금화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과 제도적인 보완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후속과제와 입법방향

기금형 퇴직연금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 가입자 유도 및 자동가입제 도입

기금형 퇴직연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가입률 확대가 필수적이다.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를 중심으로 ‘자동가입제‘를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영국의 NEST 제도처럼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에 자동가입을 의무화하면, 퇴직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제도의 보편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 세제 혜택 및 재정 지원 확대

가입자 유인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세액공제, 정부 보조금 등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저소득 근로자에게는 정부의 매칭 지원이 실질적인 혜택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제도 참여를 확대하고 연금 자산의 형성을 촉진하는 데 효과적이다.

○ 일임제도의 확대와 디폴트옵션 제도수정

기금형 제도는 집합된 자금을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방식이다. 추가로 계약형 구조의 개별 적립금에 대해서도 전문가 일임이 가능하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로보어드바이저에 한해 소규모 적립금에 대한 제한적 허용이 되고 있다.

또한,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의 한국형 디폴트옵션(사전운용지정제도)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적립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퇴직연금사업자가 추천한 상품이나 기금형 퇴직연금에 자동 가입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더불어 호주처럼 보험을 디폴트옵션으로 포함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수 있다.

결론: 퇴직연금은 ‘국민의 미래’다

퇴직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제도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사업자의 노력으로 규모의 성장이 이루어졌지만, 국민이 안심하고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더욱 본질에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안도걸 의원의 퇴직연금 개혁법안은 그 첫걸음이다. 이제는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실행이 뒤따라야 할 때다. 퇴직연금 개혁은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을 바꾸는 일이다. 지금이 바로, 퇴직연금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시간이다.

이 개혁은 제도적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의 삶의 안정성과 존엄을 지키는 사회적 약속이며,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복지의 기초가 될 것이다. <시리즈 끝>

글쓴이

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는 자산운용회사와 증권회사가 합쳐진 투자신탁회사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해 자산운용시장의 영업, 제도, 상품 등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 2000년 (주)제로인에서 펀드평가시장 개척에 나서 펀드와 펀드매니저, 자산운용사를 평가했고, 연기금 등 투자자에게 성과평가 및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제공했다. 2016년에는 KG제로인 대표이사를 지냈고, 올해 한국연금평가를 법인을 설립하고 연금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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