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기금화, 논쟁 끝내고 시작하자

[김병철의 퇴직연금 되살리기] 대통령은 이해했고, 논쟁은 엇나갔다 퇴직연금 기금화 오해도 일리 있지만 관치 아닌 경쟁, 독점 아닌 통제의 문제 해법은 ‘공공·민간 하이브리드’ ‘국유화’ 공포 넘어 ‘거버넌스 혁명’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근로자 퇴직연금의 기금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근로자 퇴직연금의 기금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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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서 퇴직연금 기금화를 둘러싼 ‘국유화’ 공방이 뜨겁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자칫 ‘사유재산의 국유화’이자 정부의 ‘외환시장 방어용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1%대에 머물고 있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방치하는 것은 국민 노후에 대한 직무유기임을 강조하며 기금형 확대에 힘을 실었다.

언뜻 보면 날 선 대립 같지만, 사실 이 논쟁은 우리 퇴직연금 제도가 나아가야 할 ‘정확한 설계도’를 그려가는데 꼭 필요한 논쟁이다. 야당의 우려는 ‘잘못된 설계(관치)’에 대한 합리적 경고이며, 대통령의 발언은 ‘올바른 설계(수익률)’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간 9편의 칼럼을 통해 강조해 온 ‘공공·민간 하이브리드 경쟁형 기금 모델(안도걸의원 법안)’이 이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두 가치를 모두 실현할 열쇠임을 확신한다.

수익률 7~8%는 마법이 아닌 ‘거버넌스 알파’의 필연적 결과

어제(21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연 7~8% 수익률은 결코 허황된 수치가 아니다.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이나 미국의 401(k)가 수십 년간 증명해 온 ‘글로벌 표준’이다. 심지어 국내에서도 국민연금과 기금형의 시초인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이 이미 8%대의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계약형 구조의 퇴직연금만 1~2%대에 갇혀 있는가? 이는 개인에게 복잡한 상품 선택을 떠넘긴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현재 구조에서는 전략적 자산배분도, 수수료를 낮출 규모의 경제도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을 배분하고 수탁자 책임을 다할 때, 시장 평균을 넘어서는 이른바 ‘거버넌스 알파(Governance Alpha)’가 발생한다. 기금화는 바로 이 높은 수익률을 만드는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퇴직연금의 국유화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는 발언을 했다. 사진=TBC 뉴스 캡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퇴직연금의 국유화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는 발언을 했다. 사진=TBC 뉴스 캡쳐.

‘국유화’ 공포를 지우는 무기- ‘메기 효과’와 ‘이동권’

야당이 우려하는 ‘국유화’나 ‘연금 사회주의’는 국가가 단일 기금을 독점 운영할 때나 가능하다. 사실 이런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야당의 우려가 과장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도걸 의원의 개혁 법안(하이브리드 모델)은 관치(官治)가 발붙일 틈을 주지 않는다.

첫째, 공공과 민간의 ‘메기 효과’다. 근로복지공단 등 공공기관이 사각지대를 메우고, 요건을 갖춘 민간 퇴직연금 사업자들도 기금을 조성해 참여한다. 공공 기금과 다수의 민간 기금이 시장에서 오직 수익률과 서비스 경쟁으로 정면 대결하는 구조다.

둘째, 가입자의 ‘이동권(Portability)’이다. 이것이야말로 관치를 무력화하는 가장 강력한 민주적 장치다. 만약 정부가 특정 기금을 쌈짓돈처럼 쓰려 하거나 수익률이 떨어진다면? 가입자는 즉시 스마트폰을 켜고 더 나은 기금으로 자산을 옮기면 그만이다. 가입자의 선택권이 살아있는 시장에서는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퇴직연금을 갖다 쓰는” 시스템은 작동할 수 없다.

4중 제동 장치- 사람의 선의가 아닌 ‘시스템’이 통제한다

기금의 오용을 막는 것은 정치인의 선의가 아니라 ‘정교한 거버넌스 구조’다. 하이브리드 기금 모델은 4개의 독립된 위원회가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을 갖춘다.

▲장기 목표를 설정하는 ‘기금운영위원회’, ▲수익률 달성에 집중하는 ‘기금운용위원회’, ▲외압과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는 브레이크 역할의 ‘위험관리위원회’, ▲운용 과정을 현미경처럼 감시하는 ‘성과평가위원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도록 한다.

여기에 민간 연금평가사가 각 기금의 기준가격(NAV)과 운용 실태를 실시간으로 비교·공시한다. 과거 필자가 펀드평가 시장을 통해 자산운용사의 옥석을 가려내 시장의 투명성을 높였던 것처럼,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시장의 눈’은 그 어떤 권력보다 강력한 감시자로 작동할 것이다.

근로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근로자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결론: 논쟁을 넘어 ‘국민의 부(富)’를 키울 때

퇴직연금 기금화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바라는 ‘수익률 정상화’와 야당이 요구하는 ‘정치적 중립성 및 사유재산 보호’는 하이브리드 모델 안에서 완벽하게 양립 가능하다.

이제 정치권은 ‘누가 관리하느냐’는 소모적 주도권 싸움을 멈추고, ‘어떻게 국민의 500조 원을 1,500조 원으로 불려줄 것인가’라는 본질적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공공과 민간이 경쟁하고, 독립적 거버넌스가 작동하며, 투명하게 평가받는 시스템. 이것이 대한민국 퇴직연금 개혁의 완성이다.

글쓴이

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김병철 대표는 과거 펀드평가사 (주)제로인을 이끌며 한국 자산운용 시장의 투명성을 높인 주역이다. 현재는 한국퇴직연금개발원을 통해 퇴직연금 제도의 구조적 개혁과 기금형 제도 도입을 위한 정책 자문 및 입법 지원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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