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역사상 ‘가장 난폭한 폭행 사건’

[지질해설사 박태웅의 지구 속 이야기] “지구는 한 손으로 역사를 쓰고, 다른 손으로 역사를 지운다.” 화산 활동으로 인한 5번의 대멸종 시베리아 大화산과 ‘석탄 연소’사건 2억5천만년전 생물 대멸종 원인 제공

아이슬란드 화산 활동 모습.
아이슬란드 화산 활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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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활동이란 이 행성이 내놓을 수 있고 인류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난폭한 폭행이다.” 작가 제임스 해밀턴이 『화산 - 불의 신, 예술의 여신』이란 책에서 한 말이다.

작가에 의하면 화산활동이라는 폭행은 인간의 기억에 희미하고 아득한 서사의 흔적들을 가장 먼저 남겼을 것이다. 그 흔적들은 유품, 기록된 신화 등을 통해 띄엄띄엄 부분적으로 전해진다. 이런 만큼 인류가 가진 자연에 대한 앎은 충분하지 않다.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지질학 교수인 조앤 프릭셀(Joan Fryxell)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500년 정도 양질의 정보를 더 수집하면 자연 현상을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역사는 46억년에 달한다. 프릭셀이 말한 500년의 920만 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 역사를 한 마디로 요약한 말이 있다. “지구는 한 손으로 자신의 역사를 쓰고, 다른 손으로는 쓴 역사를 지운다”는 말이다. 이는 자연사(自然史) 연구자이자 지구 및 행성 과학 교수 앤드루 놀(Andrew Herbet Knoll; 1951~ )의 말이다.

시베리아 현무암 대범람

놀의 말을 ‘지구는 한 손으로 자신의 역사를 지우고, 다른 손으로는 역사를 새로 쓴다’는 말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다. 시베리아 현무암 대범람이 초래한 ‘페름기(期)멸종- 트라이아스기(期) 회복’은 놀의 새로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전형적 예다.

지구는 오르도비스기(期), 데본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백악기 등 다섯 번의 대멸종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섯 번의 회복 또는 재생이 있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다섯 번의 순환이 한 손으로는 지우고, 다른 손으로는 새로 쓰는 지구의 위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소요 시간으로 헤아리면, 100만~200만년에 걸쳐 일어난 용암의 대범람으로 고생대가 지워지고 중생대의 역사가 새로 쓰였다. 고생대가 끝났다는 표현은 시베리아 현무암의 대범람으로 해양 생물의 최대 96%, 육상 척추동물의 70%가 멸종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3억년을 이어온 삼엽충도 페름기 현무암 대범람의 결과로 멸종했다.

한 고생물학자에 의하면 이 사건은 가장 깊은 대양에서 가장 높은 산에 이르고, 적도에서 양극(兩極)에 이르는 모든 곳에서 거의 모든 생물이 멸종한 파국적 사건이다.(마이클 벤턴 지음 『대멸종의 지구사』, 111p) 이름하여 ‘페름기 멸종’이다.

드넓은 시베리아 트랩

시베리아 현무암 대범람 사건으로 만들어진 것은 시베리아 트랩(Siberian Trap)이라 불리는 거대 현무암 대지(臺地)다. 스웨덴어 트라파(trappa)에서 온 트랩이란 말은 현무암 또는 검은 화산암이 계단 형태로 쌓인 대규모 용암대지를 가리키는 단어다. 이 용암대지는 철, 마그네슘 등의 원소 때문에 검은색을 하고 있다. 이 용암대지를 트랩이라 부르는 것은 이 지층이 시간이 지나며 침식되어 계단을 닮은 층층(層層)의 지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트랩은 치솟은 고원과 현무암으로 조각된 깎아지른 계곡들로 이루어져 있다.”(피터 브래넌 지음 『대멸종 연대기』 183p)

지질학자들은 시베리아 트랩을 대규모 화성암(火成巖)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LIP(Large Igneous Province)라고도 부른다. 이는 이그니어스(Igneous)란 단어가 현무암과 검은 화산암들을 아우르는 화성암의 형용사형이기 때문에 가능한 명명이다.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대지를, 계단을 뜻하는 트랩이라 부르는 것은 옛 철원 지역에서 한탄강을 층층의 주상절리 절벽 사이를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로 ‘체천’(砌川)이라 불렀던 사례를 닮았다. 체(砌)는 섬돌, 계단을 뜻한다. 이는 자연현상에 대해 동서양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는 경우다.

시베리아 트랩의 위치는 카자흐스탄 북부에서 북극해까지 러시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2,500km 길이의 우랄산맥 동쪽이다. 면적은 남북한 면적의 17배가 넘는 390만 ㎢에 이른다. 이는 유럽연합의 면적인 423만여 ㎢에 가까운 수치이며 러시아의 면적 1710만 km²의 22 % 정도에 해당한다. 두께는 대개 2,500m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트랩은 시베리아 아래의 맨틀 플룸이 지각의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발생한 대규모 화산 활동의 산물이다.

시베리아 트랩의 위치도. 파란색은 용암 즉 현무암, 붉은색은 화산재가 퇴적해 굳어진 응회암, 파란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이 시베리아 트랩 화산지대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시베리아 트랩의 위치도. 파란색은 용암 즉 현무암, 붉은색은 화산재가 퇴적해 굳어진 응회암, 파란선으로 둘러싸인 부분이 시베리아 트랩 화산지대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지난 2020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지구우주탐사학과 린디 엘킨스-탠턴(Lindy Elkins-Tanton) 교수팀이 시베리아 현무암 대범람의 증거에 대해 언급했다. 시베리아 중부를 흐르는 안가라(Angara)강을 따라 수백㎞에 걸쳐 형성된 화산쇄설암 절벽(화산 분출시 나온 재, 모래, 암석 조각 등이 쌓여 굳은 암석, 즉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에 대한 탐사를 마친 후였다. 연구팀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한 용암에 의한 ‘석탄 연소’(燃燒)를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멸종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대멸종의 시나리오

구체적으로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초거대 화산 분출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대거 방출되어 온난화가 일어난다. 석탄 속 메테인이 대량 방출되어 온난화를 더욱 가중시킨다. 메테인은 이산화탄소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온난화로 인해 바닷물 온도가 오르면 녹아있던 산소 분자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산소가 바다를 벗어나 대기로 빠져나간다.

이 결과 바다에 산소가 부족해진다. 바닷물로 유입된 이산화탄소 때문에 해양 산성화가 일어난다. 바다가 따뜻해지면 넓은 수역이 성층화(成層化)한다. 성층화란 바닷물이 섞이지 않고 여러 층으로 나뉘는 현상을 말한다. 바다는 지구 열의 90% 이상을 흡수한다. 이 때문에 표층수와 심층수 사이의 기체 교환이 억제되어 특정 지역에서 산소가 극소화되는 현상이 빚어진다. 이 부분에 독일의 기후학자 한스 오토 푀르트너(Hans-Otto Pörtner)가 세 가지 과제(three challenges) 또는 죽음의 세 조합이라 부른 ‘온난화’, ‘산소 부족’, ‘해양 산성화’가 모두 들어 있다. 이 요인들이 서로 만나면 강력한 상승효과가 발생한다.

페름기 대멸종 이후 재구축된 지구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메운 동물 '이노스트란케비아' 상상도. 호랑이 크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연합뉴스
페름기 대멸종 이후 재구축된 지구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 자리를 메운 동물 ‘이노스트란케비아’ 상상도. 호랑이 크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연합뉴스

재구축되는 지구 생태계

페름기(2억 9,889만년 전~2억 5,190만년 전) 다음의 기(期)는 트라이아스기(2억 5190만년 전~2억 136만년 전)다.(주- 최덕근 지음 ‘지질시대’ 참고) 이 시기에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 다양한 육상 척추동물들이 기원했고 소나무, 전나무, 사이프러스 같은 침엽수들이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생태계가 재구축된 시기이자 지구사가 새롭게 기록된 시기다.

다만 도입부는 소수의 종(種)이 혹독한 조건 속에서 먹이를 찾느라 몸부림치던 시기였다. 첫 1,000만년은 나무와 숲이 없어 석탄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석탄 공백기’이자, 얕은 바다에 생물초(生物礁)가 없었던 ‘생물초 공백기’이기도 했다. 생물초는 생물 기원 암석(biolith) 또는 바이오 리프(bio-reef)를 의미한다. reef는 암초란 뜻이다.

지질시대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으로 분류하는 것은 생명체 화석에 근거한 방법이다.생명의 생(生)과 고, 중, 신생대의 생(生)은 같은 한자다. 멸종 역시 생명체 화석을 대상으로 판단한 개념이다. 시베리아에 현무암이 대범람하는 바람에 페름기가 끝났다는 주장은 가장 강력한 가설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분명한 사실은 화석 기록을 통해 해당 시기에 어떤 생명체들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멸종은 극한의 자연 조건들이 만나 만들어진 결과다. 그렇기에 화석 기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글쓴이

박태웅 자연 칼럼니스트

박태웅 자연 칼럼니스트는 자연과 인문의 창의적 어울림을 목표로 하는 독서인이다. '새와 생명의 터(Birds Kore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소에는 서울 역사/문화해설사(2017년~ )로 활약중이다. 특히 한탄강(연천) 세계지질공원해설사(2020년~ ) 일을 하고 있다, 해인사(海印寺) 월간지 해인지 등에 기고했다. 저서로는 ’공공역사를 실천중입니다‘를 출간(2023년; 푸른역사 刊 공저)했고 ’한국의 세계지질공원‘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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