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보 씨의 ‘책의 향연’’
[베르나르 피보를 애도하며] “책은 초콜릿 상자처럼 열리고 보석함처럼 닫힌다” 프랑스 문학 대중화 이끈 ‘전설의 독서가’ 89세 일기로 떠난 베르나르 피보 당대 최고 지성, 정치인, 스타 불러내 서적 판매에도 막강한 영향력 미치기도
TV 문화 프로그램으로 나라를 깨운 사람
한손에는 책을, 다른 한손에는 안경을 든 동그란 얼굴에 볼이 통통한 남자가 정면에 있는 1인용 의자에 앉아 자리를 주재한다. 그의 앞 탁자에는 여러 권의 책이 되는 대로 놓였고, 남자 앞쪽으로는 네댓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남자의 진행에 따라 열띠게 말을 한다. 그들 가운데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고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떠들썩하게 웃는가 하면 때로 모욕을 퍼붓고 격하게 소리치며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남자는 프랑스의 기자이자 방송인인 베르나르 피보이고, 금요일 저녁인 지금 그는 TV에서 <아포스트로프>라는 문학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저녁 9시 40분에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1번의 멜로디와 함께 시작된 방송은 75분 동안 진행될 것이고 프랑스 전국에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는 중이다. 방송사는 소수의 매니아를 대상으로 한 문화 전문 채널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두 채널 가운데 하나인 앙텐2이고, 프로그램은 12%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보통 3백만에서 5백만, 정말 많을 때는 6백만의 시청자 수를 자랑하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아포스트로프>는 1975년부터 1990년까지 모두 724회에 걸쳐 방송되며 프랑스의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고 피보는 모든 프랑스인이 아는 국민적 인물로 떠올랐다. 프랑스와 프랑스문학에 대해 많은 훌륭한 글을 쓴 알자스 출신 독일 문헌학자 에른스트-로베르트 쿠르티우스는 프랑스에서 문학 프로그램은 특별한 의미와 지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문학 프로그램’의 이러한 인기는 문예공화국 프랑스 특유의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수사학에서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갑자기 불러 주의를 환기시키는 돈호법을 뜻하는 <아포스트로프>를 제목으로 정하면서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이 활기 넘치게, 때로 격하게 생각을 주고받기를 바랐던 프로그램은 미리 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네댓 명의 저자가 한자리에서 토론을 벌이는 방식과 한 사람만의 단독 인터뷰를 병행했다. 롤랑 바르트,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노먼 메일러,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마르그리트 뒤라스, 르클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수전 손택, 피에르 부르디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작가나 학자들은 물론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달라이 라마, 프랑수아 미테랑 같은 정치인들,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프랑수아 트뤼포, 장뤽 고다르 같은 영화인들, 세르주 갱스부르, 조르주 브라상스 같은 가수들, 심지어 무하마드 알리 같은 운동선수들이 프로그램을 다녀갔다.
망명한 솔제니친을 방송으로 불러낸 피보
피보가 가장 큰 자부심을 느꼈던 방송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의 인터뷰였다. 소련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한 자전적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로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1973년에는 파리에서 『수용소 군도』를 발표하여 이듬해 소련으로부터 추방당했던 솔제니친이 추방 후 처음으로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낸 이 방송이 일으킨 파장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방송 역시 주목을 끌었는데, 질문지를 미리 주고 위스키를 홍차로 둔갑시켜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롤리타』의 작가는 인터뷰에 응했고 그의 앞에 쌓인 책 더미 뒤에 감춘 답변 원고를 보면서 피보의 질문에 대답했다.
가장 소란스러웠던 것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를 쓴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가 돌출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방송으로, 술에 취한 그는 함께 출연한 여성 소설가의 무릎을 더듬고 치마를 들치려고 하면서 자리를 난장판으로 만든 끝에 결국 술병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이밖에도 첨예한 역사적, 정치적 주제를 둘러싸고 출연자들이 서로를 모욕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격한 논쟁과 충돌의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거두며 무려 15년 동안 계속된 <아포스트로프>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높은 시청률은 고스란히 책 시장에 대한 영향력으로 변환되었고 1980년대에는 프랑스 책 판매의 거의 1/3에 영향을 준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이 이럴진대 방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미테랑 대통령의 문화 담당 고문이었던 레지스 드브레는 책 시장에 대한 <아포스트로프>의 “독재”를 비판했고,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는 “작품 대신 ‘경력’, ‘독자’ 대신 ‘대중’”을 우선 말하게 된 현실을 개탄했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문학 비평의 제로 상태, 문학의 예능 쇼”란 표현으로 프로그램을 비판했으며 심지어는 <아포스트로프>가 “프랑스에서 문학 창조를 압살하는 시스템을 대변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비판은 물론 문학의 본연을 일깨우는 중요한 말로서 새겨 들어 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아포스트로프>가 없었더라면?

TV 앞에서 ‘받아쓰기’ 하는 가족
피보는 1991년 이후에는 <아포스트로프>와 비슷한 형태의 문학 토론 프로그램인 <부용 드 퀼튀르>(문화의 수프)를 같은 채널에서 진행했고, 이는 2001년까지 10년 동안 계속되며 금요일 저녁 10시 40분에 1백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TV 앞으로 이끌었다. 그는 또한 1985년 프랑스 철자법선수권대회를 창시했고, 이후 <디코 도르>(황금 사전)로 이름을 바꾼 이 행사는 2005년까지 계속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까지 문학교사가 텍스트를 읽고 학생들이 받아쓰는 학습활동을 하는데, 이러한 받아쓰기가 <디코 도르>의 핵심적인 부분을 구성했다. 이 행사는 의외로 크고도 지속적인 국민적 성공을 거두었다. 지역 예선 이후 열리는 결승에는 세대별, 지역별 대표들이 출전했는데, 피보가 직접 텍스트를 쓰고 읽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학창시절의 고역이기만 했던 받아쓰기가 <디코 도르> 결승전이 열리는 날에는 아이, 부모, 조부모가 TV 앞에 모여 앉아 참여하는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다. <디코 도르>의 놀라운 성공 역시 문학과 언어에 남다른 중요성을 부여하는 프랑스 특유의 현상으로 보아야 할까?
25년동안 하루에 10~12시간 독서
책과 말을 가지고 <아포스트로프>, <부용 드 퀼튀르>, <디코 도르>를 진행하며 일반 대중과 오래 행복하게 소통했던 베르나르 피보가 지난 5월 6일 89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문학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25년 내내 그는 매일 10시간에서 12시간씩 일주일에 14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방송에서 그의 앞 탁자에 있던 책은 바로 그렇게 읽은 책이었던 것이다. 어려서 사전 읽는 것을 즐겼던 그는 “책과 말의 연인”으로 불렸다. 유쾌하고 직설적으로 말할 줄 알았던 그는 사람들을 편안하고 자발적인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리옹에서 태어나 성장했던 그는 축구 클럽 AS생테티엔의 열렬한 팬이었다. 처음에는 리옹 팀을 응원했지만 2부 리그에 머무르던 고향 팀은 그를 만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식료품상인 아버지가 트럭으로 피보를 60㎞ 정도 떨어진 생테티엔까지 데려가주었고, 한동안 양다리를 걸쳤던 그는 AS생테티엔의 유럽컵 활약을 계기로 몸과 마음이 온통 초록색 저지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자신의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머리는 초록색 저지를 입은 수십 명의 선수들이 내달리는 운동장입니다. 백년을 살아도 내 기억은 여전히 초록색일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의 가족은 어머니의 고향인 보졸레로 옮겨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 ‘보졸레’는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그해 수확한 포도로 빚은 햇포도주 보졸레누보가 나오는 바로 그 보졸레이다. 포도주는 피보의 또 하나의 열정이었다. 그는 보졸레에서 시의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지역 포도주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쳤으며 포도밭을 갖고 있었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붙인 포도주가 생산된다. 내일, 5월 14일 오후 그는 이곳의 가족묘지에 묻힐 것이다.
사람 좋은 얼굴에 쾌활한 분위기를 잃지 않았던 그는 그렇게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1985년 제인 폰다가 <아포스트로프>에 출연했을 때 그는 미국 여배우에게 매료된 나머지 “그녀를 배려하며 다른 사람들을 소홀히 하다가 자칫 직업적 과오를 범할 뻔 했다”고 말했다. 솔직하고 유쾌한 그의 면모를 드러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초콜릿 상자처럼 열리고 보석함처럼 닫힌다”
피보에 대한 비판은 그가 만들고 진행한 TV프로그램의 인기와 그것의 책 시장에 대한 영향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출판사 쪽에서의 압력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고도 절묘했다. “나의 임무는 책을 팔게 하는 게 아니라 사게 하는 것입니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국 성인의 종합독서율은 43%로, 10명 가운데 약 6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비단 한국에 국한된 얘기는 아닐텐데, 베르나르 피보의 TV를 무대로 한 인생에서 우리가 주목할 중요한 것은 바로 ‘책을 읽게 하는 역할’일 것이다. 책을 여는 자리는 고독한 자리이며 지성과 성찰의 자리이다. 피보는 “책은 초콜릿 상자처럼 열리고 보석함처럼 닫힌다”고 말했다. 책으로 보다 많은 사람을 이끄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고 여기에 TV가 기여한다면 그것은 TV를 제대로 선용하는 셈이 될 터이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피보를 추도하며 그를 “월경 안내인”에 비유했다. 피보는 덧없는 일상에서 지성과 성찰의 진지한 자리로, 초콜릿 상자의 뚜껑을 들어 올리면서 정신의 보석함을 여는 풍요로운 순간으로 일반 대중을 이끌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말일 것이다.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불렀다. 하지만 세기 전반에 있었던 극단의 대립과 충돌 이후 긴장된 의식을 잃지 않은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정신적 탐색에 뛰어들었고,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한편의 진지함과 다른 한편의 활달자재한 생각이 대담하고 열띠게 부딪쳤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담론과 사유의 창출로 이어졌다. 20세기는 그런 시대였고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앞선 시기의 성과가 폭넓게 확산되던 때였다. 한손에는 책을, 다른 한손에는 안경을 든 동그란 얼굴에 볼이 통통한 베르나르 피보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주재하던 책의 향연은 바로 그 같은 시대가 거두어들이던 지적 성취를 유쾌하게 토론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성에서 멀어지며 날로 부박해지기만 하는 21세기의 오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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