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모범생 칠레의 ‘서늘한 경고’

칠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칠레의 극우 정치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의 극우 정치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 [1분 핵심요약]
  • 충격의 결과 중남미 민주화의 성지 칠레, 2025년 대선에서 ‘독재자 피노체트’를 공개 지지하는 극우 카스트 후보가 58%로 당선.
  • 변심의 원인 급증하는 마약 범죄에 따른 치안 공포, 통제 불능의 불법 이민자 유입, 그리고 보리치 좌파 정부의 무능한 개혁.
  • 서늘한 교훈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도 일상의 ‘안전’과 ‘질서’를 보장하지 못할 때, 시민들은 언제든 과거의 권위주의를 그리워한다.
  •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 배고픈 민주주의는 질서를 그리워한다 칠레 시민들이 피노체트의 후계자를 선택한 것은 독재로의 회귀를 원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진보 권력에 대한 응징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고결한 가치도 일상의 평온(치안)과 경제적 안정 없이는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칠레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 시민사회의 각성과 대응 칠레의 오늘이 우리의 내일이 되지 않으려면, 민주주의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또 한편, 시민사회의 각성과 조직적 대응만이 정치적 퇴행을 막는 유일한 방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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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를 극복한 민주주의 모범생

칠레는 중남미 20개 국가 중 군부독재의 유산을 성공적으로 청산하고 민주화를 달성한 대표적인 국가로 평가된다. 칠레 정부는 지속적인 사법 개혁을 통해서 군부독재 시절(1973~1990)의 국가폭력에 책임이 있는 인물 상당수를 처벌했으며, 대통령을 지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의 면책 특권을 박탈해서 인도에 반한 범죄와 반부패 범죄로 기소했다.(피노체트는 가택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다가 2006년에 사망했다.).

두 차례(1991년, 2003년)에 걸쳐 운영된 ‘진실화해위원회’는 군부 독재 시절의 강제 실종과 인권 유린의 실상을 공개하여 가해자의 공식적인 사과와 군부의 정치 불개입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칠레의 진실화해위원회 운영 경험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국가가 도입한 과거사 청산 기구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지난 97년 9월11일 산티아고의 부대를 방문해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지난 97년 9월11일 산티아고의 부대를 방문해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

급반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난 30여 년에 걸친 칠레의 정치적·사회적 발전은 여러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DI)는 45위로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높으며, 세계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2024년 부패인식지수(CPI)는 세계 31위로 선정되었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의 2025년 민주주의 지표(Democracy Index)는 167개 국가 중 29위로 32위인 우리나라보다 3단계 높고,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의 2025년 보고서는 칠레의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의 수준을 95점으로 평가하고 유럽 수준의 안정적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했다.

칠레는 쿠바,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 브라질 등과는 다르게 이념적 지형의 급격한 전환이 없이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정치 발전을 이끈 드믄 사례에 속한다. 군부 독재 종식 이후 다섯 차례 걸쳐 집권 세력이 교체되었으나,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가 번갈아 집권하며 순조롭게 정권을 이양했다.

민주화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 저항인 2019년 ‘사회적 폭발’(Estallido Social)을 거치면서 학생운동권 출신의 급진 좌파 가브리엘 보리치(Gabriel Boric)가 집권했으나, 보리치 정부의 이념 노선은 전통적인 사회주의보다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

여러 분석을 종합하면, 칠레 정치가 이념적으로 중도적 성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옌데(Allende) 정권(1970-1973)의 사회주의 실험 좌절과 그 후 피노체트 군부 독재 정권의 참혹한 국가 폭력 사태에 대한 집단 기억과 정치적 반성이 자리잡고 있다.

전두환 신군부 지지자가 대권을 잡은 꼴

이런 상황에 비추어볼 때, 지난 2025년 12월 14일에 치러진 칠레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피노체트 이후 가장 강경한 우파 정치인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José Antonio Kast)가 58%의 높은 득표율로 좌파 연합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카스트는 칠레의 주류 정치 영역에서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졌던 피노체트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정치 활동을 시작해서 세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지지자가 국가 수반이 된 것이다.

세계 2차대전 패전 후 칠레로 망명한 독일 나치 군인의 아들이자 6명의 자녀를 둔 복음주의 가톨릭 신자인 카스트는 청년 시절부터 피노체트의 열성적인 지지자로 정치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피노체트 노선을 지지하는 우파 정당인 ‘독립민주연합’(UDI)에 입당하였고, 2001년부터 2018년까지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당내의 대표적인 강경 우파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의 형인 미겔 카스트(Miguel Kast)는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노동부 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인물로, 칠레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주도한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의 일원이었다.

연말 당선, 오는 3월 취임하는 극우 대통령

카스트는 피노체트를 비롯하여 군부독재 정권 시절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 단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은 피노체트의 이념적·정치적 후계자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며 오히려 두각을 나타냈다.

피노체트의 집권 연장 여부를 묻는 1988년 국민투표에서 찬성 측에 가담한 자신의 이력을 자랑스럽게 내세웠고, 피노체트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 때문에 칠레가 중남미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피노체트 정권의 인권 탄압은 국가 전복을 꾀하는 좌파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강조하면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노체트 정부 시절 인물들에 대한 사면과 복권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4년전인 2021년12월 대통령에 당선됐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4년전인 2021년12월 대통령에 당선됐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급진주의에 대한 국민의 심판

여러 분석을 종합하면, 카스트의 당선이 칠레 사회의 장기적인 우경화를 예고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칠레의 정치적 지형이 불과 4년 사이에 급변하게 된 배경에는 이전과는 다른 여러 사정이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첫째, 최근 급증하고 있는 치안 불안으로 인권 보다는 안전과 질서를 우선시 하는 ‘공권력 통치’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는 점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마약 카르텔과 범죄 조직의 유입으로 인한 살인, 납치 등 강력 범죄의 확산은 칠레 국민들에게 큰 공포를 심어주었다.

카스트는 엘살바도르의 부켈레처럼 범죄에 대해 무관용 원칙과 철권통치를 약속했으며, 이러한 선명한 공권력 강화 공약으로 중산층과 도시 거주 유권자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냈다.

반면, 2024년의 여론조사(Latinobarómetro)에 의하면 칠레 국민의 70%가 엘살바도르의 부켈레식 범죄 소탕 모델을 지지했음에도 당시 보리치 정부의 인권 우선의 유화적 조치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둘째, 이웃 국가의 정세 불안으로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자국민주의’(nativism) 정서가 강해졌다는 점이다. 2018년에 1만 명 수준에 불과했던 불법 이민자 수는 2023~ 2024년 사이에 무려 33만 명으로 급증했으며, 2025년에는 6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 위기와 정치적 불안을 피해 탈출한 베네수엘라 출신이며, 최근에는 아이티, 콜롬비아, 온두라스, 볼리비아 출신들도 대거 유입되고 있다.

카스트는 미국처럼 국경 지역에 참호와 장벽을 설치하고 불법 체류자들 즉각 추방하겠다는 강경한 정책을 내세웠는데, 이는 과거 칠레 정치권에서 금기시되었던 극우적 담론이 대중적 지지를 얻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반이민 정서는 백인 국가를 지향하는 칠레에 잠재한 인종주의의 부활을 예고했다.

셋째는 좌파 정권의 진보적 개혁 실패에 대한 반작용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2019년 ‘사회적 폭발’ 이후 등장한 보리치 정부는 ‘사회권’(Social Rights) 국가의 비전을 발표하고 1980년 헌법의 전면 개헌을 추진했으나, 두 차례에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정치적 동력을 상실했다.

예상되는 정치적 퇴행을 막을 방법

유권자들은 진보 진영이 제시한 ‘새로운 칠레’ 모델이 그 급진성 때문에 오히려 경제 침체와 무질서를 초래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과거의 안정과 질서를 대변하는 카스트를 선택한 것이다.

보리치 정부는 집권 초기 50%의 지지율을 유지하다가 2022년 개헌 실패 이후부터는 지지율이 30%를 넘지 못했다.

한달 뒤인 오는 3월 11일에 집권하는 카스트 정권이 그 극우적 성향 때문에 칠레의 민주주의가 제한되거나 권위주의 정권으로 퇴행할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포용과 타협이 없는 배타적·극단적 정치 세력이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와 파시즘으로 치달았던 여러 사례를 익히 경험했다. 나아가 이 경험은 시민사회의 각성과 조직적 대응만이 이런 정치적 퇴행을 막는 유일한 방패임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지난 30여 년에 걸쳐 칠레의 시민사회가 보여준 정치적 역동성이 이 교훈이 참임을 다시 증명해 주길 기대한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5:39 한국보다 민주주의 높다더니..? 좌파 정권의 몰락과 극우의 부활!
글쓴이

최용주 (전)5.18진상규명조사위 조사1과장

최용주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은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공직을 은퇴한 후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을 맡았다. 지금은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책장 덮기: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이행기 정의>(진인진 2022), <5.18 푸른눈의 증인>(한림출판사 2020), <나의 이름은 임대운>(객, 2022) 등이 있다. 1958년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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