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중동에 필요한 ‘스팀슨의 지혜’

독일 말살 계획한 ‘모겐소의 분노’인가, ‘이성에 의한 정의’ 택한 ‘스팀슨의 지혜’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발전소 등 인프라 폭격을 예고한 지난 6일 이란 서남부 후제스탄 아흐바즈 교량에 모인 시민들이 인간사슬을 만들며 저항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 파르스 통신/MBC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발전소 등 인프라 폭격을 예고한 지난 6일 이란 서남부 후제스탄 아흐바즈 교량에 모인 시민들이 인간사슬을 만들며 저항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 파르스 통신/MBC
  • 역사의 변곡점, 모겐소 vs 스팀슨 2차 대전 말기, 독일을 농업국가로 황폐화하려던 ‘모겐소 계획’의 보복적 분노를 잠재운 것은 법치와 재건을 강조한 ‘스팀슨의 이성’이었다.
  •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절제 가혹한 응징(카르타고적 평화)이 또 다른 전쟁의 불씨가 된다는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 중동 전쟁의 승자들에게 ‘즉결 처형’이 아닌 ‘적법 절차’가 왜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 미래를 향한 문명의 선택 인류가 지향해야 할 태도는 분노에 찬 피의 복수가 아니라, 권력이 이성 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패배자조차 문명국가로 회복시키는 ‘관용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독일 말살’ 준비한 모겐소 계획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계기로 독일의 패전이 임박하자, 연합국 측은 전후 독일 처리 방안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또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전쟁 도발 의지 제거와 전쟁범죄자 처리가 핵심 과제였다.

1944년 8월, 미국의 재무장관 헨리 모겐소는 매우 급진적인 내용을 담은 전후 처리 계획을 작성해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이른바 “모겐소 계획”(The Morgenthau Plan)이라고 불리는 “항복 이후 독일 처리안”(Suggested Post-Surrender Program for Germany)이 그것이다.

1944년 1월과 9월 초 사이에 작성된 '모겐소 계획'의 원본 메모. 제목은 "독일을 위한 항복 후 제안 프로그램"으로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1944년 1월과 9월 초 사이에 작성된 ‘모겐소 계획’의 원본 메모. 제목은 “독일을 위한 항복 후 제안 프로그램”으로 루스벨트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모겐소 계획의 핵심은 독일이 더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독일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하부구조를 19세기 “농업국가” 수준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었다.

모겐소는 루르(Ruhr)와 자르(Saar) 지역 등 독일의 핵심 공업 지대에 있는 모든 공장을 해체하거나 파괴하고, 특히 철강·화학·기계 등 전쟁 수행과 직결된 모든 산업 시설의 완전한 폐쇄를 제안했다.

나아가 ‘제3제국’이 합병한 영토는 이웃 국가에 즉각 반환하고, 독일을 북부와 남부의 두 개의 주권 국가로 영구 분할하여, 독일이 향후 강력한 제국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만 명의 처형을 요구한 소련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 처리 계획은 더 급진적이었다. 모겐소는 나치의 주요 범죄자들은 재판과 같은 “지루한 절차”를 생략하고 “즉결 처형”(Summary Execution)할 것을 제안했다.

처형 대상자 명단을 미리 작성하여 체포되는 즉시 법적 재판이나 변론의 기회 없이 총살형에 처하는 것이다. 모겐소는 실제로 2,500명의 처형 대상자 명단을 작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모겐소의 이런 과격한 제안에는 자신이 홀로코스트로 큰 충격을 받은 ‘유대인’이라는 개인적인 배경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당시 연합국 측의 독일에 대한 격앙된 ‘분노’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낸 4년에 걸친 참혹한 전쟁에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감정적 대응이었다. 영국, 프랑스, 소련은 모겐소의 제안을 즉각적으로 환영했으며, 1944년 9월 16일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미국과 영국 간 정상 회담에서 루스벨트 미대통령과 처칠 영국총리는 모겐소의 제안을 승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영국과 프랑스는 처형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고, 소련은 처형 대상자가 20만 명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쟁 포로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했다.

‘문명에 대한 범죄’ 막고 나선 스팀슨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의 전쟁부(Department of War, 현 국방부)의 헨리 스팀슨(Henry Stimson) 장관은 이 “분노에 가득찬 카르타고적 평화안”을 강력하게 반대했다.(기원전 149~146년 제 3차 포에니 전쟁후 승리한 로마는 카르타고를 완전히 불태워 없애버렸고, 살아남은 카르타고인들 모두 노예로 팔아넘겼다.-편집자주)

전쟁을 직접 수행한 당사자가 제기한 반대라는 점에서 더 놀라웠다. 스팀슨은 모겐소 계획이 ”문명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국익에 치명적인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임 대통령 루스벨트와 처칠 총리가 이미 실행하기로 합의한 모겐소 계획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보고서를 이제 막 취임한 트루먼 신임 대통령에게 제출했고, 트루먼은 고민 끝에 모겐소 계획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스팀슨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의 배상 의무를 지나치게 강요한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 국민들에게 복수심과 원한을 심어주었고, 결과적으로 히틀러의 ‘나치즘’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역사적 교훈은 패전국 독일이 경제 재건을 통해 문명국가로 재출발해야 유럽에 평화가 보장됨을 보여주는 뼈아픈 반면교사이며, 전후 독일의 경제 발전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유럽 경제의 부흥을 이끌 견인차임을 강조했다.

헨리 스팀슨 전쟁부장관.
헨리 스팀슨 전쟁부장관.

독일인의 속죄를 전제한 ‘스팀슨의 지혜’

여기에는 당연히 독일의 지도자와 국민이 자신들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속죄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스팀슨은 독일 국민과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통렬하게 반성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나치 지도자 등 전쟁범죄자들을 적법적 절차에 의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결처형 등의 초법적 조치는 독일 국민들에게 분노와 복수심을 심어주어서 또다른 갈등과 대립을 야기할 뿐이었다.

그 결과, 1945년 8월 연합국이 모여서 전범 처리에 관한 ”런던 헌장“을 채택하였고,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이 설치되었다. 이 법정에서 헤르만 괴링과 한스 프랑크 등 24명이 기소되었고 21명이 교수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른바 “스팀슨의 지혜”라고 평가되는 전후 독일 회복 계획의 이면에는 당시 본격화되기 시작한 냉전 체제 하에서 소련의 팽창주의를 경계하려는 미국의 현실주의적 외교 전략이 숨어 있었다.

스팀슨의 ‘관용적’ 대독일 정책이 전후 독일의 나치 유산 청산을 저해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역시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패전국에 대한 전승국의 이러한 정책 전환에는 분노에 찬 피의 “복수”보다 이성에 의한 절차있는 “정의”의 실현이 인류 평화에 기여한다는 계몽주의적 믿음이 여전히 유용함을 보여주었다.

스팀슨의 독일 부흥 계획은 나중에 ‘마셜 플랜’으로 발전해서 유럽의 부흥과 통합을 이끌며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의 결과는 도쿄 재판과 함께 침략 행위,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범죄, 제노사이드 등 인류의 양심에 반하는 국제범죄를 단죄하는 도덕적·법률적 규범으로 자리잡았으며,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출범하는 단초가 되었다.

정의를 위해 분노가 아닌 이성이 나서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수석 검사를 맡았던 미국의 대법관 로버트 잭슨(Robert Jackson)의 기소장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승리에 도취되고 부상의 고통에 신음하는 위대한 네 국가가 복수의 손길을 거두고 사로잡은 적들을 법의 심판에 자발적으로 맡긴 일은 “권력”이 “이성”에 바친 가장 위대한 헌사 중 하나입니다.“ (That four great nations, flushed with victory and stung with injury, stay the hand of vengeance and voluntarily submit their captive enemies to the judgment of the law i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tributes that Power has ever paid to Reason.)

이 문장은 ‘분노’의 폭력이 아닌 ‘이성’에 의한 정의의 실현이 인류의 양심이 요구하는 최고의 미덕임을 감동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 간의 전쟁으로 평화의 시대를 새롭게 열기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인류가 복수에 눈이 멀어 저지른 수많은 만행과 그것이 초래한 파국적 결과를 엄중히 상기해야 한다. 이른바 ”장엄한 분노의 작전“을 수행한 트럼프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실용주의자면서 엄격한 도덕주의자인 당신들의 대선배 “헨리 스팀슨의 지혜”를 돌아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세네카의 금언처럼, “이성은 정의로운 결정을 하지만, 분노는 정의롭게 보이는 결정에 기여할 뿐이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7 “독일을 농업국가로?”… 독일 말살 준비한 '모겐소 계획'의 실체!
글쓴이

최용주 (전)5.18진상규명조사위 조사1과장

최용주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은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공직을 은퇴한 후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을 맡았다. 지금은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책장 덮기: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이행기 정의>(진인진 2022), <5.18 푸른눈의 증인>(한림출판사 2020), <나의 이름은 임대운>(객, 2022) 등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