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아직도 “무젤만”인가?

5.18민주화항쟁 당시 진압군에 잡혀 곤봉으로 폭행을 당한 박남규씨. 사진= 5.18기념재단
5.18민주화항쟁 당시 진압군에 잡혀 곤봉으로 폭행을 당한 박남규씨. 사진= 5.18기념재단
  • 히틀러의 나치가 만든 ‘무젤만’ 1980년 전두환 내란 집단은 광주시민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거세된 ‘무젤만’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반인도적 인식 아래 막대한인명 피해가 예견되었던 잔혹한 진압 작전을 수립하고 실행했다.
  • ‘무젤만’을 거부한 광주시민들의 영웅성 광주시민들은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굴복하는 대신 스스로 무장하여 자치공동체를 운영하는 영웅성을 발휘하며 ‘무젤만’이 되기를 거부했다. 이 숭고한 저항은 훗날 1987년 6월 항쟁을 비롯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거대한 자양분이 되었다.
  • 누가 ‘무젤만’의 굴레에 살고 있는가 오늘날 여전히 광주항쟁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 주권자로서의 존엄을 스스로 파괴하며 영혼 없는 ‘무젤만’의 굴레에 갇혀 허우적대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임을 우리는 엄중히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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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절멸 수용소’에서 무너진 인간 존엄

히틀러의 나치는 절멸 수용소에 갇혀 영양실조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유대인들을 “무젤만”(Muselmann)이라고 조롱했다. 무젤만은 이슬람 교도를 의미하는 단어이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거세당하고 숨만 겨우 붙어있는 좀비 같은 육체를 뜻하는 은어이기도 했다.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자신의 수용소 생활 체험을 담은 책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무젤만’으로서 유대인의 극단적인 절망감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레비의 책이 출간된 후 ‘무젤만’은 반인도적 국가 폭력의 비극성을 은유하는 인문학적 개념으로 차용되기도 했다.

나치가 유대인을 그렇게 취급했던 것처럼, 1980년 광주항쟁 당시에 전두환 내란 집단도 광주시민을 ‘무젤만’으로 대했다. 광주 학살은 정치적·도덕적으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 집단이 인간을 향해 저지른 만행의 표본이었다. 이 집단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전쟁 수준의 폭력은 광주시민을 무젤만으로 간주하지 않고는 실행 불가능한 사건이다.

광주시민을 대했던 전두환 세력의 야만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 작업에 참여한 나는 전두환 내란 집단이 작성한 각종 기록철을 검토하면서 광주시민을 무젤만으로 취급한 이들의 경악스러운 행태를 재삼 확인하고 전율했다.

이들은 광주시민을 ‘폭도’로 묘사하는 것조차 부족해서 ‘양아치’, ‘걸인’, ‘전과자’, ‘사회부적응자’, ‘빨갱이’라고 불렀고, 시민의 저항을 “일망타진해야 할 난동”으로 간주했다. 계엄사령부는 광주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는 문건에 “광주지역난동”이라는 제목을 달았으며, 진압계획을 세우면서 “소탕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광주시민을 지칭하며 “놈”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차용했다.

전두환 내란 집단은 심지어 “광주사태”가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미국 마이애미의 “흑인 폭동”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흑인의 집단적 저항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을 광주시민의 저항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유대인을 ‘무젤만’으로 본 나치의 파시즘과 궤를 같이 하는 표현이다.

눈감아준 존 위컴조차 걱정했던 폭력의 잔혹성

내란 집단은 부당한 국가 폭력에 대항하여 무장한 광주시민을 빨치산 수준의 “게릴라”로 간주하고,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무력을 앞세운 진압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무력 진압을 찬성했던 한미연합사령부 사령관 존 위컴조차도 당초의 진압작전 계획에 대해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계엄사령부의 작전일지에는 진압작전을 전개하면 10만 명 정도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메모가 발견되었다. 광주시민을 ‘무젤만’으로 취급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계획으로, 헬기 사격이나 폭격설이 단순한 소문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광주항쟁은 그 비극성과 영웅성의 두 측면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법의 지배를 표방하는 근대국가가 폭력 수단을 총동원하여 자국의 민간인을 대량으로 학살했다는 점에서 비극성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광주 상무관에 안치된 희생자들. 사진=위키피디아
광주 상무관에 안치된 희생자들. 사진=위키피디아

비극을 극복하고 존엄을 지킨 영웅성

계엄군의 발포 등으로 1980년 5월 18일에서 5월 27일까지 광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 166명의 민간인이 죽었으며, 최소 73명은 아직까지 실종 상태이고, 100명 이상이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현장에서 사망한 민간인 중에는 항거 능력이 없는 14세 이하 어린이 9명과 12명의 여성이 포함되어 있다.

계엄군의 폭력으로 2,600여 명의 민간인이 부상을 당했고, 2,500명 이상이 체포, 연행, 구금되었으며, 400명 이상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의 충격으로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던 피해자는 200명이 넘고,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50명이 넘는다.

광주시민은 이런 야만적인 국가 폭력에 대항하여 스스로 무장을 하고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비록 잠깐 동안이지만, 광주시민은 폭압적인 국가의 군대를 몰아내고 놀라운 자기 조절 능력으로 자치공동체를 운영하는 영웅성을 시현했다.

전후(戰後) 현대 국가에서 국가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난 평범한 시민들이 무장을 하고 불법적인 국가를 자신들의 공동체 밖으로 몰아낸 예는 1980년 대한민국의 광주가 유일하다. 광주시민은 시민적 존엄과 인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저항으로 ‘무젤만’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광주항쟁은 당시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 문화적 통념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건이다.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유신 정권의 암흑기에 갇혀 있었던 시민사회가 정치적 각성을 이루고, 민주화를 견인하는 새로운 주권 세력이 성장했다.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민주화와 정치발전에 대한 염원은 장대한 사회운동으로 진화했고, 1987년의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1993년의 하나회 해체와 1997년의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군의 탈정치화를 가져와서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내란을 막은 시민사회의 저력 역시 1980년 5월 광주 시민의 희생에서 자양분을 섭취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80년 5.18민주화항쟁 당시 광주 금남로 모습. 평범한 시민들이 불법적인 국가를 자신들의 공동체 밖으로 몰아냈지만 시민들이 자치공동체를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다. 사진= 5.18기념재단
1980년 5.18민주화항쟁 당시 광주 금남로 모습. 평범한 시민들이 불법적인 국가를 자신들의 공동체 밖으로 몰아냈지만 시민들이 자치공동체를 만들어 질서를 유지했다. 사진= 5.18기념재단

누가 아직도 무젤만으로 신음하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광주항쟁의 희생자들을 여전히 ‘무젤만’으로 여기며 비하하는 세력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음을 참담한 심정으로 확인한다. 이들에게 광주항쟁은 여전히 공산주의자와 불순분자의 “폭동”이며, 시대착오적 지역 혐오와 극우 파시즘의 정서가 가세해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폄훼와 언어적 폭력을 생산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 데이” 사건과 배재고 야구부의 조롱 사건은 우리 사회 저변의 광주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표출된 단면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금 향유하는 정치적 안정, 주권의 보장,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인권 신장은 46년 전 광주의 희생에 크게 빚지고 있다. 당시 광주시민들이 무젤만이 되기를 온몸으로 거부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무젤만 취급을 받지 않을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광주의 희생자를 여전히 무젤만으로 격하하려는 자들은 주권자로서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딱하지만, 진정으로 영혼 없는 무젤만의 굴레에 갇힌 이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2:05 스타벅스 탱크데이? 광주를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일침!
글쓴이

최용주 (전)5.18진상규명조사위 조사1과장

최용주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은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공직을 은퇴한 후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을 지냈으며, (전)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1과 과장을 맡았다. 지금은 독립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책장 덮기: 역사적 관점에서 본 이행기 정의>(진인진 2022), <5.18 푸른눈의 증인>(한림출판사 2020), <나의 이름은 임대운>(객, 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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