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보도, 좋은 소재 두고 왜 ‘나쁜 논쟁’에 빠졌나
[박정인의 언론비평] ‘현수막’ 일본 열도 반발?...한 매체 보도였을 뿐 시대 뒤떨어진 여혐 남혐 논쟁...외신도 어이없어 해 여자마라톤 ‘탈진 투혼’ 은 외면...34위 때문인가 우리 언론, 언제쯤 공정하고 양심적인 언론될까
[박정인(필명) 칼럼니스트]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습니다.” 도쿄 올림픽 우리 선수단 숙소 앞에 걸린 현수막 사진이 개막을 8일 앞둔 7월 15일 국내 언론에 일제히 게재됐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 나서면서 선조에게 올린 장계 (제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尙有十二 舜臣不死)를 패러디 한 것이었다.
‘도쿄에 한일전을 치르러 간 것도 아닌데 굳이 저런 현수막을 걸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일본 올림픽 조직위가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했다거나, 경기장 곳곳에 욱일기가 걸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현수막 걸만 했네’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필자도 영락없는 한국인이니.
열도가 뒤집혔다고? 어디에 그런 모습이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이튿날 벌어졌다. 현수막 기사로 재미를 본 국내 언론이 앞 다퉈 2탄을 쏟아낸 게 그랬다. 일본 언론이 현수막에 대해 ‘딴죽을 걸고, 생트집을 잡아서, 열도가 뒤집혔다’는 식의 기사가 잇따랐다. 기사마다 일본을 비난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린 건 물론이다.
일본 매체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나 보다고 짐작하며 찾아봤더니 거의 모든 기사에 인용된 ‘일본 언론’은 <도쿄스포츠>라는 온라인 매체 한 군데 뿐이었다. 제목을 보고 흥분해 기사를 끝까지 읽고 나면 딴죽과 생트집은 <도쿄스포츠> 혼자 벌인 것인데 열도가 그것 때문에 뒤집혔는지는 불분명했다. 대한민국 언론이 총동원돼 <도쿄스포츠>를 일본 언론의 단독 대표로 등극시킨 셈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12척 대(對) 왜군 함대 수 백 척 싸움을 180도 뒤집어 놓은 모양새였다.
아사히, 요미우리, NHK나 극우라는 산케이는 현수막 기사를 썼는지 궁금했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필자는 찾아 볼 도리가 없었다. 현수막을 두고 벌인 우리 언론의 ‘간결하고 속 시원한’ 반일 마케팅은 넘치는 국뽕 댓글들과 함께 성황을 이루다 며칠 못가 썰물처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쿨한 대답을 엉뚱하게 활용한 언론
사상 첫 양궁 3관왕의 영예를 거머쥔 안산 선수는 위업을 이루는 길목에 세계적인 경쟁 상대들 뿐 아니라 황당한 인신공격과도 싸워야 했다. 안 선수가 금메달 두 개를 목에 건 직후 누군가가 인스타그램에 “왜 머리를 자르나요?“라고 물었고 안 선수가 ”그게 편하니까요~“라고 답한 게 출발이었다. 이 짧은 대화가 한편에서는 ‘숏컷 응원 댓글’로,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 남혐 표현 의혹’으로 번지면서 기사 사냥꾼들의 레이다에 딱 걸려버렸다.
필자의 처음 반응은 가벼웠다. “아니 숏컷이 뭐가 어때서? 그게 문제면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은?” 하지만 상황은 가볍게 흘러갈 수 없었다. 기사가 자꾸 나오니까 연예계와 정치권이 반응했다. 이어 신기하다는 듯한 외신보도가 뒤따르더니 급기야 야당 대변인의 ‘아리송한’ 논평까지 숟가락을 얹었다.
언론의 논조는 대부분 안 선수에 대한 공격을 비판하는 방향이었지만 ‘안산 페미 의혹’ 같이 사안을 의혹으로 몰아가거나 ‘메달 박탈해야 vs. 선수 보호해야 - 갑론을박’ 같이 뜬금없이 기계적 균형에 충실한 제목도 눈에 띄었다. 유튜버 아무개가 안 선수를 비난하는 영상을 올리면 내용을 받아쓰기 하듯 단순 전달하기도 했다. 숏컷 보도는 본질은 어디다 놔둔 채 이슈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여혐 남혐 공방의 디테일한 언어들만 생중계하면서 며칠을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사이 안 선수는 숏컷을 한 채로 금메달을 하나 더 따서 3관왕이 됐다.
‘인간 승리’의 생생한 모습 전달하려는 노력 ‘미흡’
세상의 모든 소식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게 뉴스라는 착각과는 달리 뉴스는 끊임없는 취사선택의 결과이다. 언론이 중요성과 시의성 같은 원칙에 따라 많은 것을 버리고 일부를 골라 대중에게 전하는 것이다. 취사선택의 과정이 얼마나 현명하고 공정하고 양심적이었는지가 뉴스의 품질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도쿄 올림픽을 다루는 우리 언론의 취사선택은 적절했을까? 안타깝게도 붕어빵 찍어내듯 자극적인 기사를 반복 생산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언론의 현실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분석이 더 타당해 보인다.
올림픽은 언제나 처럼 격조있는 기사를 쓸 풍성한 소재들을 펼쳐줬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최선의 노력과, 방금 내게 패배를 안긴 상대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주는 절정의 스포츠맨십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소재들이 넘쳐나는데 우리 언론이 현수막 국뽕과 여자 선수 숏컷 헤어에 지면과 시간을 소모했다는 건 아쉬웠다.
아쉬움은 여자마라톤 최경선 선수 소식에 이르러 더욱 깊어졌다. 경기 중 넘어졌다 가까스로 일어나 탈진상태로 완주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포털에서 검색하다가 놀라울 만큼 기사량이 적은 걸 발견했다.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툭툭 튀어나왔다. 도대체 왜? 대회 끝물이어서? 34위여서? 한일전이 아니어서? 머리가 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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