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척결·윤어게인’ 걷어찬 유권자의 승리
- 이념 구호 걷어찬 실리 표심 유권자들은 야당의 ‘내란척결’과 여당의 ‘맹목적 추종’을 모두 거부하고, 서울 집값 지역과 용인 반도체 등 철저한 ‘민생과 일’을 선택했다.
- 여야 지도부 동시 책임론 서울 탈환에 실패한 민주당 정청래 체제와, 충청 전멸 및 부산·울산을 잃은 국민의힘 장동혁 체제 모두 거센 책임론과 당내 균열에 직면했다.
- 대안 인물 부상과 정국 개편 유권자의 경고로 기성 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오세훈과 한동훈 등 차기 주자들이 전면에 부상하며, 2026년 하반기 정치권은 극심한 권력 재편에 돌입할 것이다.
‘딱 거기까지만’으로 해석될 성적표
한마디로 “정치의 무가치함과 싸운 유권자의 승리”였다. 인기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황동만’이 ‘변은아’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는 것과 비슷했다고나 할까.
유권자는 ‘변은아’고 정치권은 ‘황동만’이었다. ‘국민의 삶과 유리된 채 따로 가는 무가치한 정치 말고 제대로 된 민생 정치를 하라’는 요구다.
그래서 집권 민주당은 16곳 가운데 12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했으면서도 두 손 번쩍 들고 환호하기 어려워졌다. 국민의힘은 TK와 PK 교두보를 부분적으로나마 지키고, 서울에서 신승했지만 이마에 ‘딱 거기까지만’라는 도장이 찍혔다. 결국 ‘내란척결’이든 ‘윤어게인’이든 “당신들은 지금 엉뚱한 쪽을 바라보고 있어”라는 뜻으로 봐야 할것 같다.
여권에 대한 유권자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샘플이 ‘서울시장 선거’였다. 오 시장은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0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강남, 서초, 송파, 용산은 그럴 수 있다 치자.
강동, 영등포, 광진은 색다르다. 특히 광진이 그렇다. 광진은 과거 7번의 선거에서 보수 후보가 단 두 차례 승리한 데 그친 곳이다. 보수가 전국 선거를 압승으로 이끌던 때 뿐이었다. 이번은 사정이 정반대였는데도 시장 선거 뿐 아니라 구청장 선거까지 국민의힘이 승리했다.
확인된 부동산정책 반발 심리
이 지역에서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과 구의자양1구역 재정비 촉진 등 부동산 개발이 숨가쁘게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이 승리한 10개 자치구 가운데 8곳이 ‘서울 집값 상승률 톱 10’에 들었다. 나머지 둘은 강남과 서초다. 집값 상승률이 가파르거나 이미 집값이 오를대로 오른 지역에서 오 시장이 앞섰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세 강화 기조에 대한 반발 심리가 읽히는 대목이다.
여당이 정치적 구호인 ‘내란척결’에 매몰된 사이, 세금 부담이 늘고 아파트 재건축 전망이 어두워질 지도 오른다는 유권자들의 피로감과 걱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지금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도 그렇다. OECD가 우리나라 올해 경제성장률을 1.7%에서 2.6%로 크게 올렸다는 소식을 피부로 느끼기 힘든 요즘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아무리 하늘을 찔러도 동네 식당마다 빈 자리가 여럿이다. 서민들은 “주가 상승으로 돈 번 분들은 민주당에 투표하세요”라는 구호에 화가 난다.
‘구호’보다는 ‘일’이었다
벌여놓은 일이 많으니 야당이라도 현직 시장을 뽑자는 정서 역시 눈에 띄었다. 용인특례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의힘 이상일 후보가 그렇다.
현직이 용인시장에 재선된 건 사상 처음이다. 유권자들에게는 정치보다 ‘반도체 중심도시 완성’이 더 절실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도지사도 민주당, 도의회 의원도 압도적으로 만주당을 찍었지만 주민 삶과 직결된 행정책임자 자격은 여야보다 ‘일’이 우선이었다.
국민의힘이라고 사정이 나을 게 없다.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자리 8곳을 잃었다. 이른바 영남 교두보에서도 부산과 울산이 넘어갔다. 장동혁 대표의 출신 지역인 충청권은 전멸했다.
서울에서는 오 시장이 전략적으로 장 대표와 거리를 뒀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부산북갑은 당에서 제명된 한동훈 후보가 당선됐고, 유의동 후보가 당선된 평택을은 당의 지원보다 진보분열의 덕이 크다.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에 여전히 별 관심이 없다. 더구나 ‘윤어게인’은 터무니 없다는 정서가 보수 내부에서도 번지고 있다. 대구시장 선거에서 이겼지만 민주당 김부겸 후보의 기세는 위협적이었다.
최소한의 정치적 밑천은 챙겨줄테니 엉뚱한 윤어게인 대신 민생에 신경쓰고 정부 독주를 열심히 견제하라는 뜻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대구도 보장 못한다는 경고다. 그리고 그 재건작업을 주도할 인물로 오세훈, 한동훈을 꼽았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온다
선거결과에 따른 향후 정국은 ‘돌아온 정치의 계절’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도 완승을 선언하지 못한 채 기사회생한 자들과 고군분투 끝에 석패한 자들이 생겼다.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변화의 몸부림이 시작될 것이다.
우선은 여권의 당내 역학과 당청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지역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했다. 하지만 서울 탈환에 실패하고 이른바 ‘명픽’이라던 하정우 후보가 낙선한 건 손실이다.
정청래 대표 역시 전반적인 승리와 전북 수호가 득이었다면, 대구, 경남을 놓친 것과 하 후보를 적극적으로 전략공천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당내에서 대통령이나 대표 책임론이 전방위로 번질 것 같지는 않지만 비명, 비청계를 중심으로 다음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고개를 들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향한 항해에 굳이 ‘정청래 선장’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청와대에 대해서는 내란척결 말고 민심을 돌아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수 있다. 이른바 ‘공소취소’ 이슈 역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불씨다.
여권에서 목소리를 높일 인물로는 우선 김민석 총리가 떠오르고, 하남갑에서 당선돼 신주류 그룹에 한 자리를 얻은 이광재 후보가 거론된다. 김부겸 후보도 ‘졌지만 잘 싸웠다’와 ‘어쨌든 영남 민주당의 기둥’이라는 명분을 업고 보폭을 넓힐 수 있다.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된 추미애 경기지사 당선자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졌다.

조국과 한동훈의 엇갈린 ‘명운’
조국혁신당 조국 후보의 실패는 그의 정치행보 만큼이나 개별적이고 돌출적이다. ‘국힘 제로’를 내세우고 출사표를 던졌는데 결과는 ‘진보 제로’가 됐다. 향후 민주당과 합당을 추진할 때 내세울 값어치가 떨어졌다. 따로 있자니 갈수록 존재감이 퇴색하고, 합치자니 헐값 매각이 걱정이다.
다만 조국이란 이름이 그리 쉽게 사라질 수는 없다. 또 처음 자기 선거를 치러봤다는 경험이 소득이라는 의견도 있다.
무너질 가능성 높은 장동혁 체제..그 다음은
국민의힘에서는 대표 책임론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제기될 전망이다. 장동혁 대표에 대해 ‘승리 기여도(서울)는 낮고, 패배 책임(부산북갑)은 크다’는 여론이 번질만 하다. 당장 비주류가 한동훈의 금의환향을 촉구하고 나설 채비다.
오세훈 시장의 목소리도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하다. 서울 수도권 현역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의 총선 계획표에는 장동혁은 지워지고 오세훈과 한동훈에 별표가 붙었을 것이다.
장동혁 체제가 무너지면 비대위를 누가 이끌지가 관심사다. 오세훈은 현역 시장이고 한동훈은 제명 상태니 당장 당 지도부를 이끌 수 없다. 조만간 치러질 원내대표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가 변수다. 비대위원장엔 외부 명망가 영입도 생각할 수 있다.
어떻게 되든 국민의힘은 상당히 소란스러운 2026년 하반기를 보낼 것 같다. 선거를 계기로 비주류의 명분이 커졌지만 ‘우향우’를 원하는 당내 세력은 여전하다. ‘우로 갈수록 총선에 유리하다’고 믿는 TK 세력과 ‘우로 가면 총선은 폭망’이라고 확신하는 서울 수도권 세력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어느 쪽이든 먼저 나가 딴 살림을 차릴 생각도 없다. 큰 집 놔두고 굳이…
비주류를 끌어당길 외부 원심력이 약한 것도 분당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외부 원심력이랄 수 있는 이준석과 개혁신당은 소리소문없이 1패를 당했다. 기초의회 의원 한 명을 배출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보다 후퇴한 결과다. 더구나 오세훈과 한동훈의 부상으로 이준석이 보수 재편의 주도권을 잡기 어려워졌다. 고민이 깊을 것 같다.
이번 지방선거도 결국 승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유권자들’이다. 선택의 결과로 정치권이 흔들리고 소음이 늘어나게 됐으니까. 정치권이 시끄럽다는 건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유권자 눈치를 더 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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