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식 언론관을 버릴 때 됐다

[박정인의 정치비평] 언론을 설득보다 압박하는 시각 ‘문제’ 기자가 ‘뒤통수 대고 물어야 하는’ 상황 자초 언론 멀리하면 부메랑 돼 자신을 겨냥할 것 언론도 대통령 술집 출입 캐는 취재 관둬야

도어스테핑을 끝내고 돌아서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어스테핑을 끝내고 돌아서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박정희도 언론을 무서워했다

유신정권 시절 이름을 날렸던 원로 뉴스 앵커 한 분이 필자에게 직접 들려준 비화다. 말 그대로 ‘목숨 걸고’ 매일 저녁 정권을 비판하는 앵커 멘트를 했더니 청와대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랐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꿈쩍 않고 멘트를 계속하니까 어느 날 청와대 비서관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지금 중정 (중앙정보부)에서 너를 잡으러 가고 있으니 빨리 달아나!”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줄행랑을 쳤다. 우선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중정 요원은 보도국에 그가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고는 보도국장과 차 한 잔하고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그 뒤에도 중정 요원과의 숨바꼭질은 계속됐다. 하지만 앵커는 잡혀가기는커녕 자리를 오래 지키면서 마음껏 입담을 과시할 수 있었다. 시대의 엄혹함을 기억하는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일화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는 동아투위, 조선투위의 역사만 봐도 알 수 있다. 탄압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기자도 있다. 원로 앵커의 경우는 이례적이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중정 요원과 매일 어김없이 뉴스 스튜디오를 지켜야 하는 앵커가 어설픈 숨바꼭질을 계속했다면 애초에 잡아가 협박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같은 시절 기자생활을 했던 다른 원로 언론인께 답을 구했다. “박정희 정권이 사실 기자들을 두려워했지. 두려워서 탄압했지만 두려워서 쉽게 건드리지도 못했어. 기자가 두렵다는 건 국민 여론을 두려워한다는 뜻이지.” 총칼을 쥐고 있었어도 온 국민이 사랑하는 앵커를 잡아가 원성을 들을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언론 설득할 의지가 없는 윤대통령 언론관

국민 여론에 취약한 정권일수록 언론에 대한 탄압과 회유가 극과 극을 달린다. 정상적인 권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우니 양 극단으로 편법을 쓰는 것이다. 어느 쪽 극단이든 국민 여론을 중시하고 여론의 향배에 영향을 미치는 언론과 잘 지내 보자는 의도는 일치한다.

민주화와 다원화가 진행되면서 탄압과 회유로 언론에 대응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모든 정권은 가능한 합법적 방법을 총동원해 언론을 압박하거나 설득하려고 애쓴다. 추세는 압박이 줄어들고 설득이 늘어나는 쪽이다. 예컨대 정무수석이나 홍보수석이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치던 게 YS 시절까지고, 언론사들을 세무조사로 겁주던 게 DJ 시절이라면 이제는 그런 압박은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설득이 압박보다 몇 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들고 결과도 똑 부러지게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마다 언론에 대해 가급적 설득이란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압박 자체가 국민 여론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다. 언론을 압박하면 국민 알권리를 압박하는 걸로 인식된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정부의 언론 대응 방식은 복고적이면서 독특하다. 설득보다 압박의 비중이 다시 늘어나는 건 과거 회귀이고, 여론 눈치를 잘 안 보는 건 독특한 부분이다.

최근 사례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거취에 대한 태도가 있다. 진보는 물론 보수층 일부도 이 장관을 경질하는 쪽에 손을 들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표결처리하자 대통령이 곧바로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고심하는 흔적도 비치지 않는다. 대통령실의 설명대로 진상규명이 먼저라면 그 이전까지 적어도 이 장관의 실언들에 대한 사과와 해명, 주의환기는 있어야 한다.

MBC 기자를 해외 순방 전용기에서 배제한 조치는 전형적인 압박이다. 그런데 뭘 얻으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출입기자가 전용기에 못 타도 해당 언론사가 입는 손실은 사실상 제로다.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로 작정한 언론사가 이 정도 압박에 고개 숙이고 사과할 리도 없다. 반면 대통령은 국민 상당 수에게 ‘보기 싫다고 비행기도 안 태워주는 째째한 사람’이 돼 버렸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여론에는 무관심하다.

대통령 되어서도 검사시절 언론 대하듯

언론에 대한 압박과 여론에 대한 무관심의 원천이 어딘지 궁금했다. 혹시 검찰시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봤다. 그것은 검찰과 출입기자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기자들에게 검찰 출입은 남다른 경험이다. 취재과정에서 검찰처럼 정보의 비대칭이 심한 곳이 드물다. 취재원과 취재소재가 일반인 출입이 차단된 검사실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를 구속 수사하거나, 비밀리에 내사하는 특성 때문에 기자들이 뉴스거리를 직접 취재하기가 극히 어렵다. 캐내려는 기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숨기려는 검사는 모든 것을 다 쥔 채 줄다리기가 진행된다.

과거 새내기 검찰 출입기자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검찰청 쓰레기 하치장 뒤지기’였던 사실이 이를 상징한다. 쓰레기를 뒤져 메모 조각 하나라도 찾지 못하면 도대체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다. 자연히 공식 브리핑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나마도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질문에는 선문답만 반복하는 검찰 간부의 태도에 속이 타기 일쑤다.

어쩌다가 수사 검사나 검찰 간부가 식사라도 하자고 하면 출입기자는 만사 제쳐두고 달려갈 수 밖에 없다. 검사와의 친분이 취재력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어느 출입처라고 다르겠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정도의 차이가 크다. 식사 자리 등을 통해 검사는 관계를 유지할 기자를 고르고 먹이감을 조금씩 던져 주며 수사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검사가 친한 기자에게 수사정보를 흘리면 기자는 그 정보를 이용해 단독 기사를 낸다. 기사는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수사받는 피의자나 사건 관계자들에게도 심리적인 압박을 가한다. ‘기사로 수사하는’ 방식이다. 검사가 정보를 흘리는 이유를 뻔히 알아도 기사를 안 쓸 도리가 없다. 내가 안 쓰면 어차피 다른 기자에게 차례가 돌아가고 나는 낙종한 삼류기자로 전락할테니.

기자가 애써 취재한 단독기사를 뭉개거나 부인하는 것도 검찰의 특권이다. 기자가 수사 과정의 내용을 확인할 방법도 없으니 검사는 어떤 기사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무시해 버리거나 이유도 붙이지 않고 부인하면 끝이다. 기소와 재판까지 긴 시간을 지나 훗날 기사가 진실이었다는 게 밝혀져도 이미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뒤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용기 안에서 가까운 기자 몇 명만 따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이 그의 언론관을 설명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열쇠’다. 취임 초 해외 순방 때도 같은 일이 벌어져서 참모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말렸다는데 소용 없었던 모양이다. 이게 검찰에서는 흔히 가능한 장면이다. 다른 기자들이 뭐라고 탓하지도 않는다. 친분관계에 의한 취재 환경에서 친분에 밀려 검사를 못 만났으면 내 탓일 뿐이다.

MBC 같은 특정 매체에 대해 압박과 배제에 나서는 것도 검찰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검찰이 특정 언론이 쓴 불편한 기사를 빌미로 정보를 차단하면 출입기자 입장에서는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 운 좋게 검사의 음주운전 비리나 피의자 인권침해 제보를 받아 잽을 날리는 정도가 전부이다. 며칠 몇 주씩 세상을 시끄럽게 뒤흔드는 대형 사건 수사 기사는 번번이 물먹으면서 잽 몇 개 갖고 뉴스를 끌어 가기는 쉽지 않다.

문제가 반복되다가 결국 문을 닫은 데일리 도어스테핑에서도 검찰의 냄새가 난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근혜 특검 수사팀장과 서울중앙지검장, 그리고 검찰총장을 지내면서 매일 출근 길에 익숙했던 환경이 있다. 기자들이 현관에 몰려가 기다리면 차에서 내린 취재원은 귀찮은 듯 살짝 미간을 찌푸리거나 여유있게 미소를 지으면서 한 마디 던진 뒤 청사 안으로 사라진다.

취재원의 발을 붙잡을 수도 없는 기자들은 그저 그의 발걸음이 늦고 말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게 전부다. 오죽하면 MBC 기자가 걸어 들어가는 대통령 뒤통수에 대고 질문하겠다며 소리를 질렀을까. 압도적으로 취재원에게 유리한 구도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검찰의 사례로 본 언론과 취재원의 관계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정보 독점력의 강도와 언론의 취재원에 대한 의존도는 비례한다.

제공되는 정보의 희소성과 언론의 권력 비판/견제 의지는 반비례한다.

언론 매체의 숫자와 권력의 언론에 대한 부담감은 반비례한다.

3번의 경우는 달라진 언론 환경에 대한 공식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매체가 수 천 개에 달하고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수 백 명이라고 한다. 기사를 찾아 떼로 몰려다닐 뿐이지 지배적 영향력을 가진 매체나 언론인이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한 매체의 뉴스 앵커가 전국민적인 신뢰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심하게 표현하면 장수가 없는 오합지졸 뿐이니 별로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공군 1호기에 오르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공군 1호기에 오르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언론의 헛발질, 권력 견제에 도움안돼

더구나 언론이 알아서 헛발질을 하는 바람에 대통령실의 대언론 압박과 배제, 무관심이 더 힘을 얻는 것 같다. 더탐사의 ‘청담동 회식 폭로’가 대표적이다. 취재와 보도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정권에 대한 증오에 경도돼 내놓은 참사 수준의 가짜 뉴스였다. 의미없는 인터넷 매체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취재를 주도한 사람이 메이저 언론사 기자 출신이고 야당 대변인이 국회에서 인용까지 했다면 다른 얘기다.

MBC의 윤 대통령 욕설 보도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대통령이 해외 정상외교 공간에서 욕설을 했다는 것은 충분히 보도 가치가 있는 기사였다. 하지만 정교함이 너무 떨어졌다.

혼자 또는 별 문제 삼지 않는 사람과 대화에서 욕설을 하는 것은 범죄도 아니고 사회적인 문제도 아니다. 대통령도 집에 혼자 앉아서 또는 지인들과 술 한잔 하면서 욕설을 할 수 있다.

MBC 보도가 아쉬운 점은 대통령이 참모들과 사사롭게 나눈 대화를 외교 결례와 국가 망신이라고 지적했는데, 그걸 언론이 보도하지 않고 사적 대화로 끝나게 했으면 어땠을까. 더구나 MBC가 풀로 취재한 영상이 엠바고가 풀리기 전에 외부로 유출됐고 야당에 넘어갔다는 의혹도 또다른 오점이다. 또 제대로 된 기사답게 보도를 하려면 ‘욕이 아니었다’는 반박과 ‘듣기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가능성에 대비해 철저히 확인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식으로 언론이 자초하는 실수 또는 무리수들은 결과적으로 정권이 언론을, 더 나아가 국민여론을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 국민도 더 이상 언론을 믿고 존중하지 않게 될 것이다. 국민여론을 조성하는 언론의 역할은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아젠다 세팅을 주도하는 일이다. 언론이 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여론은 집결되기 어렵고 자연히 권력에 대한 견제도 어려워진다.

다시 검찰로 돌아가 비교하자면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야당이 검수완박이라는 무리수까지 두며 힘을 빼려고 애쓸 만큼 검찰이 비대하고 강력해진 배경에는 던져주는 기사 물기에 바쁘고, 비판에는 소홀하고, 자기들끼리 제 살 깎아먹는 경쟁에 몰두했던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다.

최근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쓴 ‘도어스테핑 중단했더니 대통령 지지율 올라’라는 기사를 봤다. 대통령의 언론 노출을 줄이고 비공개 행보를 하니까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논조다. 필자는 눈을 의심했다. 그럼 앞으로는 출입기자들 스스로 대통령 취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지지율 상승을 위해 비공개 행보만 해도 그냥 놔둘 생각인가?

언론과 척 져서 국민 지지 얻는 지도자는 없다

흔히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검찰 시절부터 굳어져 온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관도, 대통령실의 홍보전략도 그리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위에 언급한 기사를 게재하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일견 언론이 윤 대통령 스타일의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권력과 언론이 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공생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국가와 국민이 입을 피해가 너무 크다. 민주주의에서 대의정치는 유능한 인물에게 국민의 뜻을 잘 반영해 나라를 이끌도록 권력을 위임하는 것인데, 위임 받은 자가 국민의 뜻을 무시하면 민주주의의 틀이 흔들린다. 선진국 병에 걸려서 엄습하는 외환위기를 무시했던 YS, 국민보다 최순실과 대화를 선호했던 박근혜 대통령, 대북정책이나 부동산 정책을 여론보다 신념만으로 추진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비슷한 경우들이다.

더 나아가 당장 불편하고 껄끄럽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권력과 국민을 이어주는 언론을 멀리 하면 그런 태도가 어김없이 부메랑이 돼서 자신을 겨냥하곤 했다. 정부부처의 기자실 폐쇄를 추진했던 노무현 대통령이나 집권 초기 청와대 참모들과 기자들 간의 접촉을 엄금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다.

지금 우리는 정권과 언론 간의 건강한 긴장관계가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우선 윤 대통령은 검찰 시절부터 익숙했던 언론관을 버리고 검사가 아닌 국가지도자로서 언론을 대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기자들을 피해서 단기적으로 지지율이 오를 수는 있겠지만 어느 민주국가에서도 언론과 척을 지면서 국민 지지를 얻는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매체 난립과 무한경쟁의 틈새를 이용해 단물만 뽑아 마시다가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할 통로를 잃어 버릴 수 있다.

언론도 대통령의 술집 출입 여부 같은 걸 캐내는데 시간을 쏟기 보다는 더 중요한 국가과제나 권력형 비리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에 나설 때다. 그런 심층 기사가 대통령의 술버릇, 말버릇이나 대통령 부인의 다리 꼬고 앉는 버릇 같은 걸 다루는 기사보다 매출에 도움이 안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언론의 고유 역할이다. 건강식 판다는 간판 걸어 놓고 매출이 안 나온다고 술 손님을 받을 수는 없지 않는가. 자신이 없으면 술집으로 간판을 바꾸는 게 도리이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