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로, 대한민국의 해악이 되고 있지 않은가
[박정인의 정치평론] 방송계 제작비 부담에 시사프로만 늘려 모두 다 아는 듯한 시사평론가의 민낯 미국은 해당분야 전문가를 꼭집어 섭외 자극적인 평론에 낚이고 휘둘리는 국민들
SBS(서울방송)는 현재 지상파 편성 전체를 통틀어 드라마가 한 편만 방송되고 있다. 금토 드라마 <커넥션> 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일일 아침드라마, 일일 저녁 드라마, 월화 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가 줄줄이 편성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유는 제작비 부족이다. ‘규제’ 때문에 지상파 방송은 자체 재원 외에 투자 같은 방식으로 제작비를 충당하지 못한다. 드라마 제작비는 로켓의 속도로 치솟는데 지상파 방송의 광고수입은 따라가지 못하니 방법이 없다.
한 지인이 최근 방송된 32부작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 제작비가 350억원 투입됐다고 입을 떡 벌렸다. 32부작 드라마에 350억원이면 엄청 ‘헐값’에 제작한 거라고 설명해주자,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개울 같은 압록강과 동네 깡패 싸움 같은 전쟁 장면이 다 이유가 있고, 출연진에 잘나가는 젊은 배우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그제서야 의심을 거뒀다.
최근 히트를 친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제작비가 400억원 투입됐다고 추측하는 기사를 봤다. 16부작이니 편당 25억원이다. 8년 전 화려한 스케일과 송중기, 송혜교 같은 대스타 캐스팅으로 대박을 친 <태양의 후예>가 130억원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드라마 제작비 상승각은 가파르다.
드라마 정도는 아니지만 예능 프로그램 제작비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러닝맨> 같은 류의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면 카메라가 100대 넘게 투입된다. 다큐멘터리는 오래 전부터 방송사의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으니 길게 언급할 것도 없다.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한 편 제작하는데 드는 비용은 천차만별인데 완성된 프로그램에 붙는 광고는 미미하다.
입으로 시간 때우는 시사프로그램 ‘홍수’
자연히 요즘 방송 프로그램들은 스튜디오에 앉아서 ‘입으로 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시사토론이 낮 시간을 책임지는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지 꽤 됐다. ‘시사 홍수’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닐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제작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주요 신문사 정치부장이 부모님을 뵈러 갔더니 팔순 넘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일장 훈시를 했다고 한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은 왜 그렇게 도이치 모터스 수사에 신경질적이라니? 그게 이런저런 경위로, 이런저런 일이 벌어진 건데 솔직하게 털어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지. 너희 신문은 이런 걸 비판하지는 못하고 도대체 제대로 쓰는 기사가 없어…”
쏟아지는 시사 프로그램이 하루 종일 TV를 시청하는 노모에게 생활에 필요한 중요 정보를 적절히 제공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어머니가 과잉 정보에 피해를 입고 계시다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
제작비 절감의 정점에는 뉴스가 있다. 어느 방송사든 가장 값싸게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뉴스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월급을 주는 기자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방송사든 뉴스로 돈 버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상파의 경우 보도본부 한 해 적자가 수백 억원에 이른다. 그래도 종합편성의무를 충족하고 언론사로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적자 덩어리를 끌어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적자의 대부분은 기자 인건비다. 기자들이 놀든 일하든 인건비는 나간다. 이왕이면 일하게 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광고를 유치해야 방송사에게 이득인 것이다. 그래서 출발한 게 낮시간 뉴스시사프로그램이다. 앵커도 기자, 스튜디오 출연자도 기자, 리포터도 기자, 진행담당자도 기자다. 사시 프로그램 전담 작가들이 받는 보수는 드라마 작가들에 비해 ‘0’이 여러 개 빠진다. 시청률도 높지 않은 낮 시간에 낮은 제작비로 소소한 광고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시사평론가들이 사는 법은
그러다가 시사평론가라는 새 직업이 등장한다. 주로 변호사나 정치권 논객들이다. 출연진을 기자로 다 채우기는 벅차고 재미도 덜 하니 이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한번 출연에 20만원 정도면 된다. 하루 다섯 명을 불러도 1백만원, 일주일 다섯 번 방송해 봐야 5백만원이다. 하루에 몇 시간씩 편성을 책임지면서 뉴스 의무편성 비율을 메워주고 광고도 파는데 출연료가 이 정도면 최강 가성비다.
방송사 입장에서 출연료 20만원은 푼돈이지만 출연자 개인 입장은 다르다. 방송사마다 편성돼 있는 시사 프로그램 중에 하루 두 군데 출연한다 치면 한 달 수입이 8백만원이다. 총선에서 떨어진 정치인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이고, 요즘 법률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변호사에게도 괜찮은 수입이다. 출마를 위해, 사건 수임을 위해 자기 홍보를 하는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서울 광화문 오피스텔에 가면 이런 시사평론가들의 사무실이 여럿 있다. 주 고객인 종편과 뉴스전문채널들이 4대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로 사무실 뿐 아니라 뉴스와 정보도 공유하면서 효율적인 공생관계를 만들어 간다. 정치권의 가십이 이 곳에서 확대재생산되기도 한다.
방송사 직원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게 출연자 섭외라는 걸 잘 아는 이들도 시사평론가들이다. 한 진영 쪽 평론가를 섭외했는데 반대 쪽에 마땅한 상대가 없어 고민인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진보 평론가와 보수 평론가가 팀을 이뤄서 아예 짝으로 출연 섭외에 응하기도 한다. 방송사 섭외담당자는 편해서 좋고, 보수와 진보 커플은 출연 기회가 늘어서 좋다. 팀으로 움직이니 과격한 논쟁도 마음대로 연출할 수 있다. 무슨 소리를 해도 카메라가 꺼진 뒤 서로 웃을 수 있는 짝이라면 자극적인 공격이 어렵지 않다.
변호사는 자격증이 주는 신뢰감과 법률지식에서 일단 방송적합성을 평가 받는다. 여성이라면 점수가 더 높다. 아무래도 여자 변호사가 남자보다 방송에서는 더 주목받는다. 저렇게 출연을 많이 하면 본업인 변호사 일은 언제하나 궁금할 수 있다. 아예 변호사 일을 하지 않는 변호사 출연자도 꽤 된다. 소속 로펌에서 방송 출연과 로펌 홍보를 전담해 시사평론이 본업이 되는 것이다.
내용의 품질은 객관적으로 언급하기 어렵다. 시청자마다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저급한 대담이라도 보는 이가 즐겁고 유익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다만 품질을 평가하는 지표는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담의 주제와 사실관계에 대해 출연자가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가. 주제 분야별로 얼마나 적절한 전문가가 출연하는가. 이런 것들이 지표의 몇가지 사례다.
앞서 설명한 현황을 보면 현실은 암울하다.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시사프로그램을 편성하다보니 특정 주제에 대해 출연자가 깊이 있게 고민하고 판단할 시간 따위는 없다. 조간신문 기사와 통신사 속보, 그리고 다른 시사프로그램에서 나온 말들을 버무려 오전을 때우고, 다시 석간신문 기사와 본인이 오전에 한 말들을 정리해 오후를 때운다. 정치권 주변에서 챙긴 뒷얘기를 제공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출연자의 전문성도 마찬가지다. 시사평론가는 만능을 요구받는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모든 분야의 이슈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제를 가리지 않는 출연자 어뷰징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 자리에 계속 앉아 채상병 특검 공방과 한중일 정상회담 전망, 가수 김호중 구속, 그리고 해외 이상기후 현상까지 설명하는 출연자도 있다. 매 사안마다 일일히 전문가를 섭외하기란 쉽지 않다. 혼자서 다 얘기해주는 출연자가 있으면 안성맞춤이다.
평론을 잘못 하게 되는 경우
사실 설명과 관점 피력을 각각 담당할 출연자를 구분하는가도 지표 가운데 하나다. 특정 사안에 대한 사실 설명은 취재한 기자가 하고 이에 대한 관점은 각자 의견이 다른 평론가들이 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우리 시사프로그램들은 출연한 평론가나 변호사에게 사실 보도와 관점 피력을 한꺼번에 맡기는 경우가 흔하다. 이게 왜 문제일까? 관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실 자체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한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채상병 특검법을 받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법 수용에 찬성하는 여론이 67%에 이르렀다.
기자가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도한다면 1, 2, 3을 모두 포함시킬 것이다. 하지만 보수쪽 평론가는 1과 2만 ‘사실’로 설명하고 3을 뺀 뒤 관점을 말하는 과정에서 왜 특검법 수용이 직무유기인지에 대해 강조하게 된다. 반면 진보쪽 평론가는 1과 3만 설명하고 대통령실의 입장을 뺴거나 축소해 특검법 관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할 수 있다.
기자는 뉴스를 보도할 때 항상 자기가 취재한 사실과 반대되는 정황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검토하도록 훈련받는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워야 하는 평론가 입장에서는 일부 사실을 누락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수 있다.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도 사실과 관점이 한꺼번에 쏟아질 경우 구분이 어려워 왜곡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사실과 관점을 한 사람이 도맡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지표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나라 시사프로그램들은 시청자에게 품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정보시장을 떠도는 이른바 ‘지라시’들의 방송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이 시사프로그램의 특성을 악용하는 사례들도 생긴다. 이 방송 저 방송에서 똑같은 주장들이 하루 종일 반복 재생되는 현상에 기대어, 특정 정파가 대중에게 퍼뜨리기 원하는 정보를 시사프로그램에 흘리는 방식이다. 반대쪽에서는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그 정보는 “사실이다, 사실이 아니다”라는 공방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반복해 방송되면서 결국은 사실로 굳어지게 된다.
정치권이 자기편 시사평론가들을 후원한다는 것도 정설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바라는 평론가는 자진 충성이 상식이다. 하지만 기자나 여론조사업체, 또는 정치컨설팅 업체 출신 평론가는 다르다. 각 정당이 챙겨주는 정도에 따라 입장을 바꿀 수 있다. 후원은 뒷돈이나 정치적 이익, 그리고 방송출연에 필요한 정보 같은 것들이다.
정권이 바뀌어 여당이 야당이 되고 야당이 여당이 되면 평론가 시장도 요동친다. 집권한 세력은 과거 반대 편에 섰던 평론가들을 분류해서 “이 친구는 좀 심했어”라고 낙인 찍곤 했다. 정권 교체 후에 갑자기 방송에서 사라지는 평론가들이 그들이다. 방송사는 정권이 낙인 찍은 평론가에게 계속 출연 기회를 주기 쉽지 않다. 신문과 달리 방송은 인허가 사업이기 때문이다.

정치토론 난무하는 미국은 어떨까
‘시사토론의 백화점’이라고 부를 법한 미국의 방송은 프로그램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를 두고 있다. 주제별로 적합한 전문가를 섭외해 전문적인 의견을 구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 사례다. CNN에서는 Guest Booking Producer가 그런 역할을 한다. 오랜 기간 축적된 인물 데이터 베이스와 전문가로서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출연자를 섭외한다. 평론가나 변호사라는 직함으로 온갖 시사를 혼자 다루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또다른 품질 유지 방법은 주간 시사 프로그램의 무게감이다. 미국도 데일리 프로그램에서 그때 그때 들어오는 시사 소식들을 분석하지만 아무래도 시사의 중심은 주간 시사 프로그램들이다. ABC의 <This Week>, NBC의 <Meet the Press>, CBS의 <Face the Nation>은 긴 역사와 품격을 자랑하는 주간 정치시사 프로그램들이다.
일간이 아니라 주간이란 사실은 다루는 정보가 ‘활어’가 아니라 ‘선어’라는 뜻이다. 정보가 세상에 뜨는 순간 당장 다루기 보다는 며칠 시간을 두고 그 정보의 정확성과 파장, 각 정파의 반응들을 지켜본 뒤 종합적인 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미 모든 당사자들을 통해 사실관계가 충분히 정리된 뒤 논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관점을 내세우기 위해 사실을 축소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
미국 시사프로그램도 모두가 완벽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트럼프 등장이후 정파적 갈등이 심해지면서 지엽말단의 자극적 소재에 몰두하고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상당 부분을 우리 시사 프로그램들이 차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ABC 뉴스 <나이트라인>을 26년간 진행한 원로 앵커 테드 코펠의 언급이 인상적이다. 지난 2017년 편향적이기로 유명한 폭스 뉴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션 해니티에게 한 말이다. 코펠은 생방송 인터뷰를 통해 션 해니티 면전에서 “당신은 미국에 해악이 된다. 사실보다 이데올로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시사프로그램은 대한민국에 해악이 되는가. 분명한 건 방송의 특성상 자극이 자극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사실은 재미없고 관점은 흥미롭다. 본질은 덤덤하고 곁다리는 짜릿하다. 전문가는 아니까 말을 조심하고 비전문가는 모르니까 말이 많아진다. 논쟁이 접점을 찾으면 김이 빠지고 싸움으로 번지면 흥이 난다. 이런 이유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면서 이른바 품격있는 방송은 자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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