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정치 ② 우연과 기획과 조작의 상징들

사진작가는 아이부터 구했어야 했나 김정은 옆에 제3의 손은 왜 있을까 천안문사태 탱크맨, 저항의 상징으로 김건희씨 사진, 의도적으로 기획했나 인간 정신의 고결함 담으려는 노력도

사진기자 캐빈 카터가 찍은 '독수리와 어린 소녀' 사진
사진기자 캐빈 카터가 찍은 '독수리와 어린 소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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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의 어느 날 남아공 출신 사진기자 케빈 카터는 혹독한 기근에 시달리는 수단의 아요드 마을 식량 배급소 근처에서 한 아이를 발견한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아이의 뒤에는 무섭게 생긴 독수리가 보였다. 며칠 뒤 <독수리와 어린 소녀> 사진이 《뉴욕타임즈》 1면에 실리자 먼 나라 얘기 취급받던 수단의 기근은 세계적 관심 한가운데로 끌어 올려졌다. 카터는 이듬해 퓰리처 상을 받았다.

이 사진은 하지만 포토저널리즘 역사상 가장 큰 논란에 휘말린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아이는 어떻게 했냐, 독수리가 언제 해칠지도 모르는 아이를 놔두고 사진을 찍고 싶었냐 등등 카터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카터는 촬영 직후 아이를 챙겼고, 독수리도 쫓았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퓰리처 상을 수상한지 석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는 다른 이유들과 함께 비난 여론이 한몫 한 걸로 추정된다.

워낙 유명해서 진부하기까지 한 스토리를 굳이 꺼내는 것이 취재윤리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재난 현장에서 기자가 관찰자로 남아야 하는가, 개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순간 그 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이미지의 상징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화두로 내세워 봤을 뿐이다.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아이가 독수리의 먹잇감이 될 만큼 완전히 고립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부모가 식량 배급소로 가다가 잠시 다른 일을 보러 그 자리에 아이를 앉혀 두었던 걸로 알려졌다. 또 사용된 렌즈가 망원이라면 독수리와 아이 사이의 거리는 보기보다 훨씬 멀었을 가능성도 있다. 더 나아가 독수리가 실제로 아이를 노리고 있었는지는 정말 독수리 밖에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1993년 3월26일자 《뉴욕타임즈》를 펼쳐 본 독자들의 마음은 순간 한결 같았을 것이다. “아니, 굶주린 저 어린 것을 독수리가 노리고 있잖아. 이럴 수가 있나!” 이 대중 감정이 결국 사진을 수단의 참상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이미지의 상징성은 이렇게 렌즈 앞에 실재하는 사실과는 별개로 이미지를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새로 태어나곤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텍스트는 눈으로 들어와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전달된다. 반면 이미지는 눈으로 들어와 곧바로 가슴을 거친 뒤 머리로 간다. 과학적이지 못한 논리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지를 볼 때 이성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을 먼저 한다’는 취지다.

거리 한 복판에서 수병과 간호사가 키스를 나누고 있는 사진. 우리는 두 사람의 자세와 주변의 표정을 보고 뜨겁고 환희에 찬 키스라는 느낌을 첫 눈에 받는다. 떠나는 연인을 눈물로 보내는 쪽 보다는 돌아온 연인을 반기는 쪽이 분명하다.

키스하는 수병과 간호사.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의 사진이다.
키스하는 수병과 간호사.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의 사진이다.

이 사진은 2차대전 종전(終戰)이 선언된 순간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에서 환호하는 인파 속 커플을 찍은 것이다. 작가는 앨프리드 아이젠스타트. 두 남녀는 사실 생면부지의 사이였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에 거리로 뛰쳐나온 간호사를 지나가던 수병이 기습 키스하는 장면이다.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난 게 기뻐서 그랬단다. 전쟁이 계속됐으면 언제 전사했을지 모르는 수병과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부상병들을 돌보며 매일 같이 눈물지어야 했을지 모르는 간호사. 이 둘의 키스는 종전의 상징이 되기에 충분했다.

사진의 상징은 우연히 만들어질 수 있고, 때로는 작가의 의도에 의해 기획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작가가 사진윤리를 무시하고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적인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가 찍은 <미군의 오마하 해변 상륙>은 전쟁사진의 백미로 꼽힌다. 사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미군 병사들이 박격포탄과 총알을 뚫고 돌격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미지는 어둡고, 흔들렸고, 초점도 거의 맞지 않았다. 당연하지.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초점은 무슨 초점! 그래서 짜릿함이 더하다. 2차대전 첫 반전의 순간에 교차하는, 승리를 향한 투지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적으로 상징했다. 종군 사진의 대가답다.

로버트 카파가 찍은 '미군의 오마하 해변 상륙' 사진.
로버트 카파가 찍은 ‘미군의 오마하 해변 상륙’ 사진.

그런데 이 사진이 보여주는 상징은 사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우연히 만들어졌다. 카파가 잘 찍어 보낸 필름을 인화 담당자가 잘못 다루는 바람에 망가뜨린 게 원인이었다. 가까스로 살려내긴 했지만 원본의 선명함은 사라지고 흐릿한 이미지만 남았다.

그러나 보는 이들이 가슴으로 느끼는 상징, 목숨을 건 상륙작전의 긴박감은 오히려 증폭됐다. 전투 현장을 묘사한 사진이 연출사진처럼 쨍했다면 어땠을까. 돌진하는 병사들이 용감하다는 느낌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생사의 경계에서 외줄타기 하는 그들의 심정은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포토저널리즘의 세계에서는 의도치 않게 상징을 포착하는 행운이 간혹 찾아오기도 한다. 최근 졸지에 트럼프를 강한 미국의 상징으로 띄워 올린 저격사건 사진이 그랬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이른바 <탱크맨>도 있다. 1989년 6월5일 천안문 광장에는 이틀에 걸친 유혈진압을 마친 인민해방군 전차부대가 줄지어 진입하고 있었다. 순간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남자가 나타나 탱크를 막아섰다.

전차부대 전체가 청년 한 명 때문에 올스톱된 이미지는 중국 공산당의 무자비한 진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됐다. 멀리서 망원렌즈로 잡은 청년의 뒷모습에는 두려움도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 주변에서 취재하던 어느 기자도 피의 진압을 겪은 이튿날 이런 이벤트가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1989년 6월5일 천안문 사태 당시의 사진.
1989년 6월5일 천안문 사태 당시의 사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청년을 20세기 지도자와 혁명가 20인 리스트에 올리면서 이렇게 기록했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89년 6월 5일 천안문 광장 근처의 탱크 열 앞에 서 있던 그는 쑨원보다도 더 생생하고 친밀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세계 기억 속에 새겼을지도 모른다. 자기 초월의 순간에 윈스턴 처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제임스 조이스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목격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윈스턴 처칠이 나온 김에 그와 관련한 사진 얘기로 넘어가 보자.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상징을 기획한 사진이다. 포트레이트(인물) 사진의 대가 요세프 카쉬가 영국과 연합국을 이끌고 나치 독일에 대항하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사진을 찍을 기회를 얻었다. 촬영준비를 모두 마치고 셔터만 누르면 되는데 처칠의 표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쟁 지도자답게 고집스럽고 강인한 처칠 특유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카쉬는 즉석에서 꾀를 냈다. 처칠에게 다가가 입에 문 시가를 갑자기 잡아채 버렸다. 순간 처칠의 눈꼬리가 올라가고 미간이 찌푸려졌다. 찰칵! 사진은 시사사진잡지 《라이프》의 표지를 장식하며 전쟁에 임하는 영국의 의지를 세계에 알렸다. 실제 처칠의 화난 시선은 카쉬를 향한 것이었지만 사진을 보는 다른 이들은 그 시선을 히틀러를 향한 선전포고로 느꼈다.

화난 윈스턴 처칠을 찍은 요세프 카쉬의 사진.
화난 윈스턴 처칠을 찍은 요세프 카쉬의 사진.

분명히 기획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기획의 냄새가 짙게 나는 사진도 있다. 우선 시계를 르네상스 시대로 돌려보자. 미켈란젤로는 불과 24살에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걸작 <피에타>를 세상에 선보였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아들 예수를 안은 채 슬픔에 빠진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안정된 삼각구도, 섬세한 표정처리, 근육과 피부의 생동감 등 모든 면에서 성모 마리아를 표현한 가장 위대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가 캄보디아 순방에 동행해 난치병을 앓고 있는 현지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찍어 공개한 사진이 논란이 됐다. 야당이 이른바 ‘빈곤 포르노’ 공세를 펴면서 조명을 쓴 연출이니 아니니 공방이 번졌다.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문제가 된 사진의 메타데이터(해당 사진과 관련된 각종 촬영 정보)를 보니 조명을 쓴 것 같지는 않았다. (노이즈를 감수하고 ISO 값을 굉장히 높였는데 조명을 쓰면 그럴 이유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의 사진.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의 사진.

정작 흥미로운 건 다른 데 있었다. 김건희 씨가 아픈 아이를 무릎에 눕혀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눈에 들어온 이미지의 윤곽이 <피에타>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누워 있는 모습, 두 팔로 아이를 안은 자세, 아이를 내려다 보는 시선, 표정에 담긴 감정,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피에타>였다.

김건희 씨는 미술과 사진 전시의 전문가인 만큼 본인이 기획했을 수 있고, 대통령실 내에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획이 아닌 우연의 일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피에타>를 기억하는 필자의 가슴이 눈이 방금 보내준 이미지를 두고 오판했을지 모른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마침 같은 장소 다른 사진 중에는 김건희씨가 좋아하는 배우 오드리 햅번의 소말리아 봉사활동 사진과 똑같은 포즈로 찍은 것도 있다. 그래서 기획의 의심이 짙어진다. 만약 <캄보디아 피에타>가 기획이라면 자신을 성모 마리아에 비유한 건 과했다는 지적이 나올 법 하다. 물론 프로파간다는 원래 과하게 하는 것이다. 이왕 하려면 확실히 하는 게 낫다. 다만 사진과는 달리 그동안 언행에 비춰볼 때 김건희씨가 성모 마리아와는 꽤 거리가 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사진의 상징을 기획하는 것을 넘어서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경우를 꼽자면 북한을 빼놓을 수가 없다. 다양한 방법으로 절대 존엄의 이미지를 조작해 온 역사가 길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 간혹 생기는 실수 때문에 ‘조작도 미숙하다’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2013년 김정은은 미 프로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김정은은 로드먼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다. 둘이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사진이 공개됐는데 뭔가 이상하다. 로드먼의 손이 세 개다. 그래서 농구를 잘 했나? 내막을 추측하면 이렇다. 원래 두 사람 사이에 통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사진이 의도하는 상징은 영어도 유창한 국제적인 지도자 김정은이다. 통역의 존재는 상징을 훼손한다. 그래서 포토샵으로 없앴는데,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니 실수로 구석에 숨은 손을 지우지 못한 것 아닐까?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오른쪽). 아래에 펜을 쥔 손이 보인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장과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오른쪽). 아래에 펜을 쥔 손이 보인다.

현대 사진은 AI 시대로 접어들면서 보정을 넘어선 전면적인 조작이 너무 쉬워졌다. 누구나 조금만 배우면 있는 사람을 감쪽같이 지우고, 없는 사람을 집어넣는 정도의 작업은 식은 죽 먹기가 됐다. 김정은의 경우처럼 끊임없이 상징조작을 추구하는 온 세상 권력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권력자를 미화하고, 그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포토샵 프로그램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오염된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맑은 물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사진 하나만 더 소개하고 마무리 한다.

1962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총상입은 병사를 신부가 부축하고 있다. 신부는 총탄이 빗발치는 전투 현장 한복판에 들어가 병사가 숨지기 전 하나님께 죄 사함을 청하는 성사(聖事)를 집전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군사 쿠데타 당시 헥터 로든이 찍은 사진이다. 역시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나는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바닥에 바짝 엎드렸는데 신부님은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헥터 로든이 찍은 'Aid from the Padre(신부의 도움)' 사진이다.
헥터 로든이 찍은 ‘Aid from the Padre(신부의 도움)’ 사진이다.

신부님은 무사히 성사를 마쳤을까? 그 병사는 목숨을 구했을까? 아니면 목숨은 잃었지만 신부님 성사 덕에 천국에 갔을까? 많은 질문을 가슴에 품게 만든 사진이었다. AI 세상이 열려 아무리 정교하게 이미지를 만들고 조작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천안문 광장의 탱크맨이나 카라카스의 신부님 같은 인간 정신의 고결함을 순간 그대로 기록하려는 포토그래퍼들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글쓴이

박정인 칼럼니스트

필명 박정인을 쓰는 필자는 사진의 정치, 사회적 영향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전직 언론인으로, 부다페스트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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